크메르의 앙코르와트
상현숙 스님 /도서출판 시공사 출판2팀장

그것은 붉은 흙먼지길이었다.

돌을 떡 주무르듯 주물러 놓은 신기한 손의 흔적이었다.

화려했던 과거의 기억만을 부둥켜 안은 채

그걸 팔아서 먹고 사는 가난한 캄보디아였다.

그것이 앙코르와트였다.

 

태국의 방콕 북부 터미널에서 새벽 3시 30분 버스를 탔다.

캄보디아와의 국경에 도착하니 아침 7시.

걸어서 국경을 통과한다. 이제부터는 캄보디아 땅...

한참의 흥정 뒤 픽업 트럭을 탄다. 외줄로 끝없이 내닫는 이 붉은 흙길이 어디서 끝날지 가늠할 수가 없다. 터덜거리는 트럭이 요동을 친다. 차가 지날 때마다 붉은 먼지구름이 피어오른다. 아무래도 잘못했지 싶다.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생고생을 하고 앉아 있단 말인가...

열 시간을 붉은 길과 씨름했다. 씨엠리업이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의 도시.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이틀 걸렸다. 빨리 숙소 정하고 짐 푼다.

 

앙코르의 아침은 붉은 색으로 차오르는 하늘과, 그 일출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들, 관광객들을 태운 크고 작은 오토바이들, 차들로 시작된다. 행렬에 묻혀 우리의 앙코르 구경도 시작되었다.

 

앙코르는 대략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존재했던 캄보디아의 옛 왕국 크메르의 수도였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지와 유물군은 크게 몇 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 하나가 앙코르와트인 것이다. 앙코르와트는 사원의 도시라는 뜻을 지녔다. 앙코르 유적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 그래서 앙코르와트가 앙코르 유적을 대표하기도 하고 캄보디아 국기 한가운데에까지 그려져 있다. 일출 시간부터 일몰 시간까지, 앙코르와트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앙코르와트는 작은 우주이다. 가운데에 메루산이 우뚝 솟아 있고 메루산 주변의 봉우리를 상징하듯 다섯 기의 탑이 중앙탑을 둘러 서 있다. 메루산으로 가는 길은 인간의 쉬운 발길을 허락지 않는다는 듯 가파르기 그지없는 촘촘하고 좁은 돌계단이다. 그 꼭대기 한가운데에 불상 한 기가 모셔져 있다. 관리인이 향 하나를 내 준다. 부처님 앞에 올리고 꾸벅 절 한 번 하고 나온다. 각 기둥마다에 새겨져 있는 촘촘한 산스크리트 글자들과 압살라 무희들, 좌불의 모습들, 만져볼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앙코르와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앙코르 톰이 있다. 커다란 도시라는 뜻이란다. 앙코르 톰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과도 같다. 안으로 들어가는 성문은 다섯 개가 있는데, 보통 남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문의 꼭대기에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 커다랗고 높게 부조로 새겨져 있다. 그것도 동서남북 사방에 하나씩 돌아가면서... 다른 문들 위에도 다 이렇게 얼굴 부조가 높고도 장엄하게 버티고 서 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바욘 사원을 만난다. 사원 안에도 또한 커다란 기둥에 누군가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앙코르의 미소... 이 얼굴이 그 유명한 앙코르의 미소다. 일설에 의하면 앙코르 톰을 지은, 당시 크메르 왕국의 왕,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도 하고 혹은 아발로키테스바라라고도 한다. 아발로키테스바라가 누구인가? 관세음보살님 아니시던가? 오라, 그래서 이 얼굴이 그렇게 익숙해 보였던 거다. 동서남북 사면 모두에 관세음보살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50여개의 기둥으로 장엄된 이곳 바욘 사원은 이 자체가 그대로 메루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앙코르의 유적지는 대개가 사원이다. 그리고 그 사원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메루산을 상징하는 중앙탑을 중심으로 조형되어 있다. 당시 크메르인들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서도 사원을 지어 바쳤고 왕국의 번영을 위해서도 사원을 지었다.  

 

앙코르 톰에서 지나칠 수 없는 다음 코스는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이왕의 테라스이다. 그 벽에 빽빽하게 새겨진 조각들을 만져 보니 그저 감탄과 탄사만 이어질 뿐이다. 1,000년 전에, 이 커다란 돌덩이들을 어디서 어떻게 날라다가 무엇으로 이렇게 섬세하게 새겨 놓았더냐? 앙코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자 동시에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임을 십분 이해한다.  

 

걸음을 돌려 따 프롬으로 향했다. 이곳 역시 사원이었다고 한다. 문어발 모양으로 자란 원시림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나무 뿌리가 얼마나 무성하게 뻗어나갔는지 건물과 조각들 사이로 뚫고 지나가, 어떤 곳에서는 돌로 쌓은 입구를 내리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초록 이끼가 빡빡히 자라고 있는 돌담, 화려한 조각으로 뒤덮여 있건만 그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돌기둥들, 쓸쓸한 폐허로 남겨진 유적지... 그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알 수 없는 사색에 취해 쉽게 발길이 돌려지지 않는다.

앙코르와트는 여운이 긴 여행이었다. 증명사진처럼 박아온 기념 사진 뒤로, 정리되지 않는 감상들이 줄을 잇는다. 천년 전에 이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조상을 둔 캄보디아 사람들, 그들의 지금 모습은 어떤가?

앙코르와트는 그대로 하나의 신비이자 의문이었다. 하나의 건물, 하나의 사원이 아니라 몇십개의 사원을, 거대한 사원군을 이룩하게 한 것은 권력의 힘이었을까 신앙의 힘이었을까?

앙코르와트는 우리 모습을 돌아보는 여행이었다. 기왓장 위에 새겨진 문양 하나만 봐도 닦고 다듬어 박물관에 전시해 놓는 문화가 있는가 하면 부조가 빽빽하게 새겨져 있는 돌기둥들이 비바람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도 손을 못 대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30년 전쯤,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 역시 그러하지 않았을까?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가 아니었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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