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나의 참 인연
정유진 스님 /불교문화대학 교수

어떠한 사람이든지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죽음은 수행이 점점 깊어짐에 따라서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알게 된다고 한다.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출생의 문제에 대해서는 잠시 미루어 두고 오늘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고, 훌륭한 인격을 형성해 갈 수 있게 하는 송대 법운스님의 말씀을 거울삼아 글의 실마리를 풀어 보고자 한다.

법운(法雲)스님은 1088∼1158년 사이에 생존한 고덕으로서 중국 장주 채운리 사람이다. 성은 재(才)씨이며, 자(字)는 천서(天瑞)이다. 또 자호(自號)를 무기자(無機子)라 하였다. 다섯 살 때 자행(慈行)의 행공(行空)을 스승으로 섬겼고, 다음해에 『법화경』7권을 외웠으며, 아홉 살에 머리를 깍았고, 열살에 계를 받았다. 1117(정화7년)에 송강(宋江)의 대각사에 있으면서 보윤대사(普潤大師)란 호를 받았고, 그 절에서 8년동안 『법화경』등을 강의했다. 남송 고종 28년(1158) 9월 28일에 입적했다. 그 때 스님의 나이는 71살이였다.

스님은 평소에 학인들이 참문하면 늘 공부하는데 게을리 하지 말 것을 간절히 부탁하면서 10가지 제목을 설정하여 훈계를 했다고 전한다. 스님의 그 10가지 말씀 가운데 하나인 “生我者는 父母요 成我者는 朋友(나를 나아 준 사람은 부모이고, 나의 인격을 완성시켜 주는 사람은 벗이다)”란 말을 특히 자주 했다고 한다.

스님이 강조하신 말씀의 본 뜻은 참으로 깊고 넓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불교의 연기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삼라만상 중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서로서로 관계를 가지면서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 불교의 연기사상이다. 태어나는 것도 우연이 아니고, 주위의 벗을 만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지만 자기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인연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에 피가 될 수 있고, 살이 될 수 있는 인연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그 인연이란 좁게는 자기 주변의 벗이 될 수도 있지만, 넓게는 우주가 자기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주위의 벗을 좋은 인연으로 만들려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면 자기와 친구가 하나가 되고, 나아가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까지 자기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도반임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좋은 인격을 형성해 가는 과정으로써 지금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자기 인생의 반려자로 만들어 가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옛 성현들을 자기의 도반으로 만드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옛 성현들과 눈썹을 같이 맞추어 가며 자기의 도반으로 만드는 방법은 고전을 읽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예를 들면 임제의 어록을 읽게 되면 임제가 자기의 도반이 되는 것이고, 마조의 어록을 읽으면 마조가 나의 도반이 되는 것이며, 칸트(Kant, 1724∼1804)의 철학서를 읽으면 칸트가 나의 도반이 되는 것이다.

훌륭한 도반을 만들고, 좋은 인연을 맺고 가꾸어 가는 일은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귀중한 일이다. 좋은 인연은 발로 훌륭한 지도자를 찾아다니면서 만들어야 하고, 또 좋은 인연은 항상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자기가 하는 일을 미루지 말고 내가 아니면 이 일을 누가 할 것이며, 지금 아니면 어느 생에 이 일을 끝마칠 것인가를 언제 어디서나 생각하면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자신과 자신, 남과 자신과의 신뢰 속에서 좋은 벗이 만들어지고, 또 인격은 완성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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