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 마니 반메 훔
이법산 스님/ 서울캠퍼스 정각원장

불교에는 현교(顯敎)와 밀교(密敎)가 있다. 현교는 응화신(應化身)인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말씀하신 교리를 말하며, 알기 쉽게 드러난 수행법이라고 한다.

밀교(密敎)는 법신(法身)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인 대일여래(大日如來)를 모시고 부처님의 마음에 계합하는 수행으로 마음의 관심(觀心)과 입의 다라니(陀羅尼)와 몸의 인계(印契)의 삼밀(三密)이 상응하여 공성(空性)을 체득하고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을 말한다. 이러한 밀교는 수행자 자신의 몸(信)·입(口)·마음(意)의 3업이 상응(相應)하는 것, 즉 삼밀(三密) 유가(yoga)라고 하여 손으로 인계(印契)를 맺고, 입으로 다라니를 염송하고, 생각으로 본존(本尊) 부처님이나 보살 혹은 종자자(種子字)인 아자(阿字)를 관상하여 상응하는 수행법이다. 몸과 입과 생각이 철저하게 공(空)하여 본존인 부처님과 보살에 계합되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는 수행이다. 그러므로 밀교는 철저한 자기 참회와 수행으로써 성불하는 비밀법이라고 한다.

밀교는 7~8세기경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학문적으로 극치에 이르러 종교적인 신앙이 희석되어 가는 상황에서 시대상황과 힌두교의 번성에서 적절한 불교의 수행방법을 새롭게 하려는 의도에서 개발된 것이므로 정통의식에서 약간 벗어난 듯하지만 불교의 본질을 벗어난 것은 결코 아니다.

밀교에서 입으로 외우는 주문을 「관세음보살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옴 마니 반메 훔」이라 하는데, 관세음보살의 여섯 글자로 된 크게 밝은 지혜의 진실한 말씀이란 뜻이다. 본래 진언은 해석을 하지 않는다. 다만 간략히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해석을 하자면, 옴은 범음(梵音)으로 청정한 본원적 발성을 의미하며 우주 진리의 말씀이고, 마니는 구슬의 의미인데 어떤 대상이든 상대의 색상 즉 근기에 상응하여 청정한 본원 자성을 들어내어 깨달음을 성취하게 하는 상징적 언어이며, 반메는 연꽃이라는 뜻으로 연꽃이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물에서 피었으나 꽃에는 물이 묻지 않듯이 깨달으면 비록 중생 속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청정한 본원 자성을 들어내며 중생심에 물들지 않고 중생을 제도한다는 깨달음을 상징하는 언어이다. 훔은 이러한 마니와 반메를 성취한다는 의미이며 곧 자비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의 크고 밝은 지혜와 구원의 원력을 자신의 마음에 새기고 자기의 원력으로 삼아 이를 성취하고자 하는 진리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나 중국의 불교 신행자가 가장 많이 염송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다. 밀교에서 「옴 마니 반메 훔」을 염송하는 것도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여겨진다. 물론 밀교에서는 이 밖에 외우는 진언이 수행의 차제나 각파의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많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이 진언이다. 진언(眞言)은 진리의 말씀이란 뜻이고, 범어로는 다라니이며 주문(呪文) 또는 총지(摠持)라고도 한다. 마치 생명의 기(氣) 우주의 힘이 핵(核)을 이루고 있는 불가사의한 진리의 총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진언·다라니·주문·총지는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제목인 명칭에 따라서 효능이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진언은 모두 범어 원문으로 염송하며 그것을 해석하지는 않는다. 진리의 언어이기 때문에 해석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않된다는 것이다.

밀교의 수행에 주로 염송하는 이 「옴 마니 반메 훔」은 대승불교 신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관세음보살」의 신행이다. 티베트 포탈라궁의 보타락가산도 관세음보살의 상주처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관음도량으로 가장 유명한 동해의 홍련암, 남해의 보리암, 서해의 보문사가 있는 산이 모두 보타낙가산(菩陀洛迦山)이다.

밀교의 국가인 티베트 라사에 있는 포탈라궁의 법왕(法王)인 달라이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신으로 존경받고 있다. 밀교의 수행과 의례가 일반 불교와 다른 점이 많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는 역시 깨달음을 얻고 모든 생명이 다 함께 성불하는 것이다. 밀교에서 반야사상을 중요시하고 중관론을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수행차제를 통하여 마음에 공성(空性)을 체득하게 하고 마음을 돈오(頓悟)하여 중생을 함께 성불하도록 교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옴 마니 반메 훔」을 염하며 깨침을 향해 정진하는 것은 간화선에서 화두를 들고 ‘이 뭣고?’ 하고 참구하는 방법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밀교에서 태장(胎藏) 만다라를 참구하는 것은 여래장사상에서 중생의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여래(如來)의 불성(佛性)을 참구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장(藏)은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이므로 모태(母胎)나 중생심 속에 감추어져 무한한 자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시겁래에 지은 행위, 즉 업(業)에 의해서 죄고의 괴로운 과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행을 통하여 번뇌의 창고인 장(藏)을 부수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아(無我)의 이치를 실현하는 깨달음의 방법은 불교의 발달과정에서 여러 가지 방편으로 제시되어 왔다. 인도에서의 부파불교(部派佛敎)와 중국에서의 종파불교도 모두 깨침의 실현을 위하여 상좌부(上座部)·대중부(大衆部), 소승·대승, 현교·밀교, 돈종(頓宗)·점종(漸宗) 등 여러 가지 자기 부파가 우월하다는 의미에서 자칭하는 이름들이다. 교학(敎學)을 익히고 선정을 통하여 깨침의 길로 수행 정진하는 불교의 근본사상에서는 우월과 열등이 있을 수 없다.

 「옴 마니 반메 훔」을 열심히 염송하고 계율을 잘 수지하여 수행정진을 열심히 잘하면 역시 성불의 길은 나에게 성큼 다가 올 것이다.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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