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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이란 무엇인가

권기종/ 불교문화연구원 원장

 

대승, 또는 대승불교라는 말은 많이 쓰여지는 불교의 중요한 용어이다. 그러나 경전에서 대승이 어떻게 설명되고 있나를 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구마라지바〉가 번역한 「소품반야경」의 다음의 교설을 통해서 대승의 바른 이해를 하고자 한다.

경문에서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대승이란 또 어떤 뜻입니까? 보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러한 수레는 어느 곳에 있으며 어느 곳에서 옵니까?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양을 헤아릴 수 없고 수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대승이라고 한다. 이 수레가 어느 곳에서 오고 어느 곳에 머무느냐 하면, 이 수레는 삼계(三界)로부터 와서 모든 것을 꿰뚫는 지혜에 머문다. 이 수레를 타고 오는 이는 없다. 왜냐하면 새로 나오는 대상과 새로 나오는 사람 모두 있는 바가 없는데 새삼 어떤 대상이 나오겠느냐?”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말씀하긴 대승이란 천상과 인간과 아수라 등이 모든 세간을 뛰어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승은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허공이 한량없고 아득히 많은 중생을 품고 있듯이 대승 또한 한량없이 많은 중생을 받아들입니다. 허공이 온 곳도 없고 간 곳도 없고 머무르는 곳도 없듯이 대승 또한 지난 시간에서도 붙잡을 수 없고 현재의 시간에서도 붙잡을 수 없고 다가오는 시간에서도 붙잡을 수 없으니, 이 수레는 삼세에 걸쳐 모두 같습니다. 때문에 대승이라고 합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칭찬의 말씀을 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보살마하살의 대승이란 그대가 말한 바와 같다.”그때 부루나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수보리로 하여금 반야바라밀을 설법하게 하시더니 이제 다시 대승을 설법하게 하시는군요.”』

대승이란

우리는 흔히들 대승불교를 말하고 있다. 과연 이럴 경우 대승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 대승이란 말의 어원적 의미는 mahayana, 즉 큰 수레를 의미한다. 큰 수레는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는 수레이다. 그러므로 대승불교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불교이다. 그러나 말로만 대승불교를 부르짖고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면 이것은 대승불교가 될 수 없다.

대승이라는 말은 소승을 상대해서 대승들 스스로가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소승이라는 말도 소승인 스스로가 자신들을 소승불교라고 한 것이 아니다. 대승불교가 상대를 얕잡아보면서 붙여준 이름으로, 우리는 대승이며 너희는 소승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승이라는 표현에는 변변치 못하다거나 저열한 무리라는 상대를 깔보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소위 스스로가 자신들을 소승이라고 한 일은 없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백년 경부터 상좌부와 대중부가 갈라지고 이어 불멸3·4백년 경에 이르는 기간에 더 많은 부파가 나뉘어져 소위 부파불교시대를 맞게 되었고, 이 부파불교는 복잡한 교리적 논의에만 치우치게 되었다. 이 같은 불교는 대중을 외면하게 되었으며, 오직 전문가인 학자만의 불교로 흐르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같은 부파불교를 소승이라고 공격하고 새로운 불교운동이 일어났으니, 이 불교가 곧 대승불교인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경문은 바로 이 대승불교의 대승을 반야경의 위치에서 설명하고 있다. 대승은 큰 수레라는 의미이지만 그 크다고 한 양을 헤아리거나 잴 수 있는 그런 상대적 크다는 말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크다고 표현할 때는 작은 것과 비교하여 크다고 한다. 그러므로 비교되어서 큰 것은 보다 더 큰 것 보다는 또 작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수레는 크다고 말하지만 작은 것과 비교되어진 큰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수레는 어디서 오고 또 어디에 머무는 그러한 수레가 아니며, 오직 삼계로부터 와서 지혜에 머무는 것이다.

대승불교가 지향하는 목표

대승불교가 지향하는 바 목적은 모든 사람이 깨달음을 이루는데 있다. 이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목표로 하지 않는 불교인은 비록 불교를 믿는다 하더라도 대승인이 아니며, 보살도 아니다. 오늘 우리의 주위에는 많은 불교도들이 있다. 그러나 과연 이들 중에 깨달음을 위해서 노력하는 불교인이 몇이나 될까. 거의 모든 일반 불교도들은 현실의 이익을 위해서 부처님을 믿고 있음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모두가 철저한 이기주의자들이지 참다운 대승의 불교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대승은 마치 허공과 같다고 하였다. 허공이란 무엇이 있어서 그것을 허공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텅 비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허공이다. 그러므로 이 허공에는 무엇이라도 들어갈 수가 있다. 따라서 대승불교에는 어떤 중생도 다 받아들인다. 대승에는 천인이나 인간이나 아수라 등의 차별도 없고,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구분도 없다.

대승불교는 모든 사람의 불교이며, 폭넓은 불교임을 밝힌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승불교는 출가 중심의 불교가 아니라 출가와 재가를 구분하지 않고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고 수행하는 불교이다. 뿐만 아니라, 대승불교는 시간을 초월한 불교로서 삼세에 걸쳐 무궁한 것이다.

불교는 중층적 체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어려운 불교도 있고 쉬운 불교도 있으며, 높은 수준의 불교도 있고 낮은 수준의 불교도 있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향한 불교가 진실한 가르침이고 가장 높은 불교이며, 그 외의 불교는 하나의 과정이나 낮은 단계의 불교임을 대승불교는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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