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선(禪)이 중국적인 생활종교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한
스님은 혜능(慧能)이다. 『육조단경』에
혜능은 가난한 서민 중에서도 서민으로
태어나 글자도 모르는 짐승 같은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신분을 완전히 바꾸어 성불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곧 중국인에게 “나도 성불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부여해 주는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이다.
오늘은
육조혜능이 성불한 후 처음으로 교화하는
혜순(惠順)과의 선문답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해 보는 편안한 시간을 갖고자 한다.
혜능이
실존했던 인물인 것만은 틀림없으나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으며, 또 언제 입적했는지에
대한 전기자료는 없다.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전기는 모두 후대에 만들어
진 것들이다.
혜순이라는
이름은 돈황본 『육조단경』에 나오는
이름인데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혜명(惠明)과
같은 사람이다. 이 스님의 법명은 뒤에
또 몽산도명(蒙山道明)이란 이름으로 개명된다.
그는 삼품장군 출신으로 성격이 난폭한
사람이었으나 혜능을 만나 마음의 눈을
뜨게 된다.
육조혜능이
오조 홍인선사로부터 가사와 법을 이어
받고 남쪽으로 가는 도중, 이 가사를 탈취하려고
대유령(강서성 남안부 대유현 남쪽 25리에
있음)까지 단숨에 달려온 사람이 바로
혜순이다. 혜능은 그가 뒤쫓아 오고 있는
것을 알고 두려운 생각이 들어 가사를
바위 위에 올려놓고 숲 속으로 몸을 숨겼을
때, 혜순이 가사를 취하려고 하였으나
가사가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도리어 혜순이 겁에 질려 혜능에게 “내가
여기까지 달려 온 것은 가사를 빼앗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법문을 듣기 위해서 온
것이다.”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혜능에게
법문을 청했는데 그 법문의 내용이 『전등록』권4에
실려 있다.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않는
바로 그러한 때 그대의 참된 면목을 생각해
보라.”고 한 말끝에 혜순은 대오(大悟)하게
된다.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은 신회어록의 「단어」나 『조당집』권2에도
나온다. 일체의 선악을 한꺼번에 생각하지
말라는 말은 바로 마음을 허공과 같이
텅 비워서 마음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말라는 뜻이다. 인도의 대승불교에서 주장하고
있는 공(空)의 실천을 중국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악이 나쁘다고
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추구하게 되면
그 선이 마음에 남아서 또한 자신을 구속하는
구속물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깨달음이
불자가 도달해야 할 구경의 목표이기는
하지만 그 깨달음에 또 집착을 해 버린다면
자신은 깨달음에 구애를 받는 사람밖에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선과 악을 비롯한
일체의 모든 분별적이고 대립적인 망상을
동시에 떨쳐 버려야 한다. 이렇게 되면
마치 새가 허공을 날아갈 때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이 완전히
비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
털끝 만한 흔적이라도 남게 되면 그 흔적이
다음에 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씨앗이
되기 때문에 마음을 허공처럼 비워 버려야
한다.
텅 비워
버린 빈 그릇에 만물을 다시 담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구조는 분별심인
망념을 비워 버렸을 때 그 곳에 다시 만물의
참된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이 되살아나게
된다. 만물의 참된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은 다름 아닌 지혜이다. 이러한
지혜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날마다 창조적이고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지혜는 솟아오르는 샘물과 같이 다
함이 없어서 아무리 써도 한도 끝도 없으며,
쓰면 쓸수록 새로워지는 것이 마음에서
나오는 지혜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마음이 비워지고, 비워진
그 자리에서 지혜가 나올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망념이 일어날 때 망념이 일어난
사실을 자각하면 망념은 사라지고 자기의
본래 마음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 때가
바로 마음이 허공처럼 텅 비워진 때이고,
텅 비워진 그곳에서 지혜가 나오는 때이다.
그러나 만약 망념이 일어난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게 되면 망념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는데 이를 생사윤회(生死輪廻)라고 한다.
망념이
일어난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 다음에 망념이
이어지는 것을 끊어주기 때문에 망념은
단절되고 본래심에서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기가 책을 읽고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밖에서 부르는 노래소리에
마음이 흘러가 버리면 본래의 자기 마음(책을
읽고 있었던 마음)은 없어지고 노래소리에
집착된 마음만 남게 된다. 이러한 경우
‘내가 책을 읽다가 왜 다른 생각을 하지?(망념이
일어난 사실을 자각하는 것)’라고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다시 본래 읽던 책으로
마음이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때
눈으로 읽는 글자의 의미를 아는 것은
지혜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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