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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佛心

윤석성 / 인문과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비 밀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나는 당신에게 대하여 비밀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마는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으로 들어갔습니다나의 비밀은 한숨을 거쳐서 당신의 청각으로 들어갔습니다나의 비밀은 떨리는 가슴을 거쳐서 당신의 촉각으로 들어갔습니다그 밖의 비밀은 한 조각 붉은 마음이 되어서 당신의 꿈으로 들어갔습니다그러고 마지막 비밀은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소리 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님의 침묵』을 읽어나가다 보면 썩 해명되지 않는 시편들을 만나게 된다.

「잠 없는 꿈」, 「비밀」, 「사랑의 존재」, 「비」, 「최초의 님」, 「수의 비밀」 등이 그 예인데, 그 중 「비밀」과 「수의 비밀」의 해명이 명료하지 않은 것은 유식학적 접근이 시도되지 않은 때문이라고 보고, 필자는 이런 관점에서 이 두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비밀」에 대해 살펴보자. ‘나’에게는 비밀이 있지만 그 비밀은 낱낱이 ‘당신’에게 들키고 만다. ‘나’의 눈물과 한숨, 떨리는 가슴과 깊은 속마음은 ‘당신’의 시각과 청각, 촉각과 ‘붉은 마음’에 의해 간파되고 만다. 곧 ‘당신’의 안이비설신의  전5식과 제6의식(6식, 의식)에 의해 ‘나’의 전 감각반응과 의식작용은 파악되고 만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 ‘마지막 비밀’이 하나 있다. 그 비밀은 ‘소리 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마지막 비밀’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그 비밀이 불교의 심층의식에 해당하는 제7말나식과 제8알라야식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이 심층의식 세계는 ‘당신’이 간파할 수 없는 것이고, ‘나’도 아직 ‘표현’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세계는 우리에게 비밀이 되는 것이다. 이 7식과 8식의 세계가 환히 밝혀지는 날 ‘나’는 무명을 벗고 매임 없는 대자유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이 시는 그러한 유식학적 수행태도를 피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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