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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허상

이법산스님/서울 캠 정각원장

 

현대 세계는 과연 공동체 사회인가. 19세기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적 공동체가 모두 허물어지고 새로운 21세기라는 과학의 시대에 접어들었는데도 세상은 더 골 깊은 편가르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세계가 최고의 과학문명과 정보통신을 개발 활용하여 인간의 행복을 위한, 평화를 위한 진정한 사랑을 하겠다는 사탕발림 같은 구호가 난무하지만 사실 살상과 파괴로 하루하루 불안과 공포는 전 세계를 초토화과정으로 내몰고 있는 것 같다.

평화를 부르짖는 평화파괴주의자의 허구성에 인간들은 남의 목을 맨다는 것이 도리어 자기 목을 조르고 있는 어리석음은, 인류 발전의 공동체가 아닌 현재의 개인주의는 차라리 문명의 미개척지인 원시사회가 더욱 그리워지게 만들어가고 있다.

차라리 어떤 상대의 개성이나 문화를 인식하는 경쟁·대립·비판을 하는 것은 건전한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자기를 인정하기 보다 남이 자기를 인정해줄 때 자기 자신은 참으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하나의 공동체도 하나의 개인적인 존재로 인정될 때 진정한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고 공생의 묘수를 찾아야 전 인류가 공동체적 평화를 누릴 수 있고 우주 자연이 아름다운 낙원을 이룰 수 있다.

현 21세기의 지구에는 여러 공동체가 있다. 아시아·EU·아프리카·남미·나토·크리스천·카톨릭·정당사회단체·이슬람·불교·생활공동체 등 크고 작은 수없이 많은 공동체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또 작게는 내 가족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의 의미는 상의상존(相依相存)으로 서로 의지하며 아름다운 평화의 꿈을 실현하자는 것이 그 목적일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순수한 인류를 위한 봉사정신의 공동체도 있지만, 내 가족 곁에, 현실적으로 우리 눈에 무섭게 나타난 테러의 공동체는 누가 과연 적이고, 누가 인류 공동체가 원하는 평화를 가장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그 어리석음의 허구성의 실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백유경(白楡經)』에 있는 비유를 하나 들어 보자.

옛날에 몹시 낡은 집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악귀(惡鬼)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아 누구나 무서워해서 감히 그 집에 들어가서 자려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담함을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나 하룻밤 자고 가겠다고 큰소리 치면서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사람보다도 더 대담하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있었는바, 남으로부터 이 집에 귀신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오는 길이었다. 그리하여 그 집에 들어가고자 하여 문을 밀치고 나아가려 했으나 먼저 들어가 있던 자는 귀신이 들어오는 줄만 알고 자기도 문을 밀고 길을 막아 못 들어오게 했다. 뒤에 들어오던 자도 먼저 사람이 와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 사람을 귀신으로 착각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두 사람은 정신 없이 엎치락뒤치락 싸웠고, 날이 밝아서야 서로 바라보고 상대가 귀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온갖 세속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인연(因緣)이 잠시 모인 것뿐, 실체(實體)란 어디에도 없거나, 하나하나 잘 고찰해 볼 때 과연 무엇이 나(我)란 말인가? 모든 중생들이 시비를 그릇 되이 헤아리고 분쟁을 억지로 일으킴이 저 두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 공동체도 본래 실체가 없다. 인연 따라 모였다가 인연이 다하면 헤어지면 그만이다. 나고 죽음도, 지역과 인종과 편갈라 나누고자 하는 그 많은 모두가 중생들의 시비 속에 하나의 꼭두각시 노름일 따름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우리는 왜 편가르기 공동체로서 나누어 과연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남의 인격과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할 때의 그 순간 시비는 무엇 때문에 오고, 남의 목을 쥔 내 손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

불안하고 초조한 과장의 너울을 쓸 때, 나눔이 없는 독선의 허울을 가졌을 때 인간은 포악해 지고 남을 향해 시비하고 파괴한다. 반대로 당하는 자는 분하기 때문에 더한 포악으로 버티고 급기야 덤비게 된다. 가까이에 개를 봐도 자기가 불안할 때만 짖는다. 자기가 반갑고 기쁠 때는 말 없이 꼬리만 칠 뿐 성냄은 없다.

부처님께서 『출요경(出曜經)』에 말씀하셨다.

상하(上下)를 분별해서 남의 자리를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남이 곧 내가 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사고만이라도 갖고 있다면, 불안과 초조한 과장이나 독선의 허울이 뱉은 침처럼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안다면, 결코 남의 목을 쉽게 옭매지는 못할 것이다.

나와 내 주변과 넓게는 우주와 나, 곧 내면의 전쟁은 더욱 나의 생명을 위협하고 목을 죄는 갈등의 반복일 뿐, 과연 내게 무엇이 되돌아올 것인가?

이 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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