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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와 행인

윤석성 / 국어국문학과 교수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읍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알 수 없어요」에서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등불로 표상된 ‘나’의 보살심은  「나룻배와 행인」에 와서는 적극적 보살행으로 나타난다. 화자인 ‘나’는 흙발로 자신을 짓밟는 ‘행인’을 건네주기 위해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긴 세월을 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러는 ‘나’(나룻배)를 님(당신)인 ‘행인’은 물만 건너면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린다. 그러나 ‘나’는 ‘행인’을 원망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욕의 보살행이 가능한 것은 〈나는 곧 당신〉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나’와 ‘당신’은 하나이다. 곧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관계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행인’들이 무명을 벗고 정토구현에 동참할 수 있도록 고난의 보살행을 계속한다. 이러한 보살행에 의해 ‘나’는 보살의 단계에서 부처의 단계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곧 ‘행인’을 건네주는 이타행(利他行)은 자신의 성불을 위한 자리행(自利行)이기도 한 것이다.

이 시의 표현의 묘미로 ‘밤에서 낮까지’를 들 수 있다. 일반적인 어법인 ‘낮에서 밤까지’를 가볍게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러한 뒤집기에 의하여 밤을 꼬박 새우며 ‘행인’을 기다리는 ‘나’의 간절한 보살심이 선명히 부각되는 것이다. 만해 시가 평범한 듯 하면서도 비범한 것은 이러한 언어구사 능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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