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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아잔타 석굴

이자랑 / 불교대학 강사

 


아잔타 석굴은 인도의 중서부 마하라슈트라 주(洲) 아우랑가바드의 북동쪽 약 10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불교 석굴 사원이다. 주위를 흐르고 있는 와고라 강의 침식에 의해 형성된 반원형의 단애(斷崖)에 동서로 크고 작은 30개의 굴원이 조성되어 있다.

천 수백년에 이르는 긴 세월을 정글속에 묻혀 있던 이 석굴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19년의 일이다. 존 스미스(John Smith)라고 하는 영국인 장교는 어느 날, 데칸 고원 일대에서 호랑이 사냥을 하고 있었다. 호랑이 발자국을 뒤 쫓아 정글속을 헤메던 중, 그는 와고라 강 부근에 있는 언덕에 이르렀다. 그런데 자신이 서 있는 맞은 편 언덕의 숲속에서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며 나오는 것이 아닌가. 스미스는 재빨리 강으로 내려가 호랑이가 나왔던 맞은 편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마침 거대한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그는 호랑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두근거리며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내부를 살피던 스미스는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너무나도 놀라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 곳에는 거대한 불상과 함께 찬란한 색채의 벽화가 석굴 벽면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아잔타 석굴이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순간이었다.

이 석굴 사원은 미완성 굴을 포함하여 전부 30개의 굴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와고라 강의 하류에서 상류를 향하여 편의상 각각의 석굴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 즉, 제1굴에서 제28굴까지는 순서대로 놓여 있고, 제29굴은 제20굴과 제21굴 사이의 약간 높은 위치에 있으며, 제30굴은 제16굴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중에서 제9, 10, 19, 26, 29의 다섯 굴이 예배 공간인 차이티야 굴이며, 나머지는 스님들의 거주 공간인 비하라 굴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시기에 조영된 것은 아니다.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에 걸쳐 조영된 제1기 굴과, 그 후 잠시 중단되었다가 5세기 말기부터 7세기까지 다시 만들어진 제2기 굴이 있다. 따라서 조영 시기에 따라 석굴의 구조나 내부 장식에도 많은 차이가 보인다. 제1기 굴에 속하는 석굴들은 구조도 간단하며 조각에 의한 장식도 거의 없고, 벽화의 색채도 단조롭다. 제8굴부터 제13굴까지가 이 시기에 조영되었다고 한다. 특히 제10굴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추정되며, 그 다음으로 제9굴, 그리고 8, 12, 13, 15A굴이 이어진다.

한편, 5세기 말에서 7세기에 걸쳐 조영된 제2기 굴은 석굴의 구조도 정비되고 조각이나 벽화도 화려하게 장식된다. 이들은 주로 바카타카 왕조의 원조 아래 제작된 것 같다. 제16, 17굴에는 바카타카 왕조의 하리세나(5세기 말경) 왕의 통치하에 그 신하가 조영했음을 나타내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왕조는 4∼5세기에 인도 고전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던 굽타조와 인척 관계를 맺은 적도 있으며, 따라서 이 시기에 이루어진 조각이나 벽화에는 다채롭고 화려한 굽타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아잔타는 암벽을 파서 만든 거대한 석굴과 그 안에 새겨진 불상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 보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석굴 내부를 가득히 메우고 있는 벽화이다. 이들 벽화는 먼저 소의 똥과 점토, 그리고 모래 등을 섞어 만든 재료로 암면을 칠하고, 그 표면에 흰색의 석회를 발라서 그림을 그릴 바탕을 마련한다. 그리고 적갈색이나 검은색으로 인물등의 윤곽선을 그린 후, 그 위에 돌에서 채취한 자연 물감을 가지고 채색해 가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기원 후 5세기 말경에 조영된 제16, 17굴과 6세기 초에 조영된 제1, 2굴은 아름다운 벽화를 풍부하게 남기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벽화는 붓다의 전생 이야기인 자타카를 내용으로 하는 전생도(前生圖)와,  붓다의 금생에서의 사건을 묘사한 불전도(佛傳圖)가 중심을 이루며, 그 외에 붓다와 보살등의 존상(尊像) 및 동식물을 주제로 한 장식 문양도 보인다.   

이 중에서 제1굴 벽에 그려져 있는 연화수보살상(蓮華手菩薩像)이라 불리는 벽화는 아름다운 색채와 뛰어난 기법으로 아잔타 벽화의 정점에 선 작품으로 평가된다. 오른쪽 손에 연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보살의 표정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생동감이 느껴진다.

석굴은 말할 것도 없이 출가자가 거주하며 수행에 힘쓰는 곳이다. 그것은 아잔타에 남아 있는 수 많은 비하라 굴로부터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과 함께 아잔타는 힘든 여정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평온함을 안겨 주고 그들에게 공덕을 쌓게 해 주는 성스러운 장소였음에 틀림없다.  

아잔타 석굴은 건축과 조각, 그리고 벽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인도 불교 미술의 보고(寶庫)로서 후세에 남겨야 할 귀중한 문화 유산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관상의 아름다움과 함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거대한 바위 벽을 한 조각 한 조각 깨어 가며 동굴을 만들고 또 그 안에 불상을 조각하고 벽화를 그린 수 많은 장인들과 화공들의 숨겨진 노고와 땀이다. 또한 굴원의 조영에 아낌없는 기진을 행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신앙심과 바람이다.

아잔타 석굴은 이러한 사람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완성된 경건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우리가 이러한 정신을 저버리지 않는 한 아잔타 석굴은 영원히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언제나 바쁜 현대 생활에 지친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휴식처가 될 것이다.  

2천년 전에 오랜 여행에 지친 대상인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어루만져 주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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