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Home  정각도량   

 

아버님의 불심

곽대경 / 경찰행정학과 교수

 


여름방학이 막바지에 접어든 팔월의 어느 토요일, 필자는 여자형제들과 조카들을 데리고 승보사찰인 순천의 송광사를 찾아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섰다.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그저 정신없이 바쁜 일상의 도시생활에 찌든 필자에게 있어 조용한 산속에 자리잡고 있는 대사찰을 방문하는 것은 분명 그간의 어지러운 마음을 바로잡고 무질서한 삶을 반성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곳에서 불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실천하고 계신 아버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는 새벽부터 몸을 움직여 준비하는 수고스러움과 여러 시간이 걸리는 여행길의 피곤함을 누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날 필자는 조계총림 송광사에서 불일회 사무총장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계신 아버님을 뵈려간 것이었다.

필자의 아버님이 불교와 인연을 맺은 뒤 본격적인 신행활동에 동참한 것은 약 30년 전 송광사를 후원하는 진주불일회 사무국장직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아버님은 진주지역의 200여명의 회원장부를 정리하였고, 그 이후에 송광사에서 범종을 조성하는 불사를 위한 권선책이 나왔을 때 다른 회원들의 집을 방문하여 동참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또한 해마다 있는 삼월불사(보조국사봉재일)에 보살들과 동참하게 되었고, 제8차 중창불사때에는 경운기를 시주한 바가 있다.  이러한 활동을 계기로 당시 송광사의 방장이셨던 구산(九山)스님을 여러 차례 친견할 수 있었고 진주지역의 다른 불자들과 함께 큰스님께 높은 법문을 청해 들을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아버님은 또한 직장포교에도 상당히 심혈을 기울이셨다.  1984년 4월에 아버님이 재직하셨던 대학교의 교수님들 중에서 불교에 관심이 있고 즐거운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이들로 구성된 경상대학교 교수불자회가 시작되었는데, 아버님은 이 모임에서 초대 회장직을 맡은 후 다섯 번 중임되어 무려 12년 동안이라는 긴 시간동안 심부름꾼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셨다.  그 당시 아버님은 교수불자회의 회장으로서 인근 사찰 주지스님과 사전 교섭을 하여 법회를 개최하고 계절에 따라 유명한 사찰에 가서 성지순례도 하면서 회원들의 자발적인 신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하셨다.  또한 1988년에 발족한 전국교수불자회에 동참하여 초대 부회장직을 맡아 활동을 하시면서 전국 불자교수들과의 유대를 돈독히 하고, 여러 사찰에서 개최하는 수련회에 많은 신도들이 참석하여 불교의 교리와 수행방법을 바르게 이해하고 익히도록 참여를 권유하는 일을 하시고 수련회에서 솔선수범하는 수행모습을 보이셨다.

지난 1999년 2월말에 40여년 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시고 명예로운 퇴임을 하셨던 아버님에게 송광사에서 절에서 생활하며 전국 불일회 관리를 위하여 활동해 달라는 권유를 해왔다.  아무리 수십년 동안 불교공부를 해왔다고 하더라도 단단한 결심을 하고 속세를 떠나 엄격한 수행생활을 하고 있는 스님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보통의 유발거사에게 있어 쉬운 일은 아니라는 주위의 염려도 있었지만 아버님은 불자로서 마지막으로 봉사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셨다.  조계총림 불일회라고 하는 것은 1969년 9월 당시 방장이셨던 구산수련대선사(九山受蓮大禪師)께서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를 위시하여 십육국사(十六國師)가 계계승승한 대성역으로 국내 유일의 선불장인 승보사찰 송광사에 도인을 양성하는 종합수도원인 총림을 발족함에 있어 재정적인 후원을 맡을 전국적인 조직으로 결성한 것이다.  아버님은 전국 각 지역의 불일회에서 마련한 기금을 은행에 예치하여 정기적으로 나오는 이자수입으로 송광사를 지원하고, 각 불일회에서 정기법회가 원활하게 개최되도록 지원하며 대중공양의 실시촉진, 삼월불사시 수계 동참 촉진, 대소 행사시 동참촉진, 여름 수련회 참가 촉진과 주선, 매년 춘추에 실시하는 임원 수련회 개최 주선 등 불일회 활성화에 애쓰고 있다.  또한 아버님은 송광사를 찾아오는 국내외의 관광객들에게 불교문화재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활동도 하고 계신데, 특히 유창한 일본어로 일본관광객을 상대로 불교와 송광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줄 때면 신이 나신다고 한다.

어머님은 아버님과 혼인을 한 이후에 아버님과 함께 불교 신자로서의 길을 걸으며 서로의 신행 생활을 격려해 주는 동반자의 역할에 충실하셨다. 사경(寫經)에 전념하시다가 지난해 말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독실한 불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 많아, 다음 기회로 미룬다.

부모님의 모범적이고 정성스런 수행생활을 지켜본 행운을 가진 필자는, 부모님의 공덕 덕분에 불교가 건학이념인 동국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인연을 얻게 된 것으로 믿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불교대학에서 학자로 활동하게 된 것을 이 세상 어느 자리보다 높게 생각하셨던 어머님의 명복을 빌며, 비록 아직은 불교교리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고 수행생활에 서툰 점이 많지만 앞으로 부모님과 같은 훌륭한 불자가 되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Copyright(c) 1997-2001 Jungga
kwon All Right Reserved.
junggakwon@hanm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