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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삶을 위하여

이만 / 불교문화대학장

 


근래에 어느 종교학자가 그가 소속한 종교단체의 청년들을 상대로 그들이 왜 종교를 떠나는가를 분석한 내용 중에서 맨 처음에 나오는 말이, “그 종교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존재를 신봉해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고통이나 재난 등을 당하므로 현실적인 면에서 모임에 나갈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낀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내용 외에도, “내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당장 해결해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가기 싫다.”거나, “평소에 좋지 못한 행동을 많이 했고, 또한 현재에도 하고 있어서 두렵기 때문에 가기가 싫다.”, “나름대로 모범적이고 진실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갈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 등 내면적인 문제점들이 많이 거론되고 있어서 관심을 끌었다.

본래 인간들이 종교를 갖게 되는 동기는 일부 종교에서와 같이 피조물로서 당연히 창조주인 절대자를 존경하고 믿고 따라서 그의 뜻대로 임하는 것이 강조되지만, 일반적인 개념으로는 개인이 어떤 절대자나 교의 등을 항상 가까이 하여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얻고, 더 나아가서 육신을 천명(天命) 등에 맡겨서 생사에 태연함을 갖게 한다는 안심입명(安心立命)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도에서 종교에 입문한 청년들이 그 종교의 본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이유나 환경 때문에 종교를 떠나는 것도 문제이지만, 종교 자체 내의 선교나 포교 상에서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서 현장에서 차질 없이 해결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과 인간적인 접촉 등의 대비책을 세우는데 있어서 소홀했거나 방관한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물질적인 혜택을 얻는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그 종교에 진심으로 귀의하지 못하면,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여 자연히 집회 등에 등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 일반인들의 심리상태임을 알았어야 했다.

불교의 전체적인 교의는 인식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하기 위한 종교이다. 이것이 때로는 마음의 종교, 남을 위한 서원이 있어야 하는 종교, 인본주의의 종교, 자비의 종교 및 지혜를 개발키 위한 종교 등으로 불러지고 있는 것처럼, 거의 모든 교의가 정신적인 문제들을 위한 가르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수 없이 겪게 되는 번뇌와 어려운 문제에 관한 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옛날에는 주위의 나쁜 환경 때문에 전염병에 걸려서 죽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보다는 주의로부터 강압 받는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근원이 되고 있으므로 이에 관한 치료가 바로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과도 부합되는 것이다.

현재도 일부의 회사나 관공서에서 도입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모든 산업체나 기관에서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 연봉제 등의 능력에 따른 급여제도는 우리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줄 것으로 생각된다. 일테면 봉급이 많이 책정된 사람은 내년에는 더 안 줄어들기 위해서 배가의 노력을 할 것이고, 중간 정도의 금액을 받는 사람은 더 많은 금액을 받기 위하여 분발할 것이며, 낮은 금액을 받는 사람은 강한 압박감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과 함께 자존심 때문에도 다음에는 이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어쩌면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노력할 것인데, 아무튼 어느 위치에 놓여 있든지 간에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는 강한 심장을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심장이 튼튼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어느 처지에 놓여 있든지 간에 만병의 근원인 심한 억압을 받아서 정신과 육체가 피폐하여 결국에는 병을 얻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장에 좋다는 붉은 채소인 수박이나 당근 등을 상시로 복용하는 것이 좋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강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자제력이 부족하면 순간적으로는 어려움을 견딜 수 있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는 다시 부상하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때문에 영원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지혜롭게 처신하는 것뿐이다. 지혜(智慧)란 지식(知識)과 달라서 지식이 환한 해(日)와 같이 밝은 것을 말한다. 지식은 많이 쌓일수록 복잡하고 번거롭지만, 지혜는 단순하고 샘물과 같아서 지식이 오히려 줄어들 때에 나타난다. 말하자면 지식은 우리가 오관을 통해 보고 듣고 한 것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인식을 가리키지만, 지혜란 이러한 지식과는 정반대로 자꾸 지식을 덜어내어서 마음이 상큼하고 신선했을 때에 생긴다. 지식은 때가 되면 흰 고니처럼 날아 가버리지만, 지혜는 충직한 시종처럼 항상 자기를 지켜준다고 한다. 그래서 지혜 있는 사람은 언제 무슨 일이나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이성과 냉정함을 잃지 않는데, 마치 그러한 모습이 돌「石」과 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전「雜寶藏經」에 보면 다음과 같이 교설되어 있다.  

         惡言善語苦樂事

         智者能忍亦如石

좋고 나쁜 말이나 괴롭고 즐거운 일을

지혜로운 사람은 마치 돌처럼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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