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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를 깨우쳐준 대우

정유진 스님 /  불교문화대학 선학과 교수

 


캄캄한 밤길을 갈 때 그 어두움을 밝혀 주는 사람의 고마움은 다 말할 수 없겠지만 이 보다 더한 고마움은 어두운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는 스승의 고마움이라고 생각한다. 황벽이 임제를 대우와 만나게 하여 대우의 한 방망이에 의해 임제가 깨닫게 되는 세 사람의 인연을 소개하려고 한다.

황벽희운(黃檗希運)이 언제 출생했는지는 알 수 없고, 850년에 시적(示寂)한 것으로 되어 있다. 황벽은 남악(南嶽)문하의 스님으로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의 제자가 되어 그의 현지를 이어 받았다. 희운의 제자에는 임제종의 시조인 임제의현이 있다.

고안대우(高安大愚)는 생몰년대가 분명하지 않은 당대(唐代)의 스님으로서 마조도일의 제자이자 귀종지상(歸宗智常)의 법사(法嗣)이다. 그는 임제의현과의 문답으로 임제를 깨닫게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세상에 알려졌지만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임제의현(臨濟義玄)은 출생한 해는 알 수 없고, 입적한 해는 866년이다. 당대(唐代)스님으로 임제종의 개조이다. 처음에 그는 율이나 화엄에 뜻을 두어 공부했으나 이 공부가 불법의 진실을 체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고 이를 모두 포기하였다. 그는 곧 바로 황벽희운을 찾아가 참학함으로서 깊은 선지(禪旨)에 이르게 되었지만, 희운은 다시 그를 대우의 회하로 인도하게 되는데 이 만남의 인연이 계기가 되어 임제는 크게 깨닫게 된다.

황벽의 안내에 의하여 대우를 찾아간 임제가 대우의 한 방망이에 깨달음을 얻고 난 후 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글이 『조당집』에 실려 있다.

“임제는 다시 황벽에게 돌아와 말하기를, 「이번에도 다시 돌아 왔으나 헛되이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황벽이 물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가? 「저는 (대우의) 한 방망이에 부처의 경지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설사 백겁동안 뼈를 갈고 몸이 가루가 되도록 수미산을 머리에 이고 한없이 돈다해도 스승의 이 깊은 은혜를 보답하기 어렵습니다.”

라고 자신의 심안(心眼)을 밝혀준 스승의 은혜는 너무나 넓고 깊어서 갚을 길이 없음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이 글을 볼 때 임제가 자기의 어두운 마음의 눈을 뜨게 해 준 대우에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마 이런 감사의 말은 몸소 체험를 해 보지 못한 사람은 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감도 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의 눈을 뜨게 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당대에 마조로부터 비롯되는 조사선의 사상을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최극단까지 발전시킨 임제도 대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불법의 진실을 체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임제의 기량이 뛰어났기 때문에 대우의 방망이 한 방에 깨달음을 얻기는 했지만 지혜의 보검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직접적인 계기를 마련한 스님은 대우이다. 우리는 당대 거승(巨僧)인 임제의 그늘에 가려 대우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임제와 같은 훌륭한 스님이 세상에 출현하기까지는 그 이면에 많은 인연들이 숨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법화경』에 ‘선지식은 불법과의 인연을 맺어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황벽은 임제의 선지식이 되는 셈이다. 황벽이 임제를 대우와 만나게 해 줌으로써 임제는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능력의 세계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잠재능력을 스스로 개발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교육을 받고, 또 훌륭한 지도자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다. 『열반경』에 “도솔천에서 한 알의 겨자씨를 던져 염부제의 바늘 끝에 적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훌륭한 선지식을 만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혜와 덕성을 갖추고 있는 잠재능력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잠재능력을 일상생활에 실제 필요한 실현 가능한 능력의 세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훌륭한 지도자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다.

당대의 거승인 임제도 태어나면서부터 큰스님이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피나는 구도정신과 황벽과 대우와 같은 훌륭한 선지식의 도움으로 자신의 종교관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한 평생을 살면서 수많은 인연들이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스승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인연을 만나면 임제와 같은 훌륭한 인격의 완성자가 되겠지만 나쁜 인연을 만나면 인생을 망치게 되기 때문이다.

스승에게 감화를 받는 것도 자기 자신이 감화를 받을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스승이 감화를 준들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향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주는 하향성의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밑에서 받는 것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임제는 백겁동안 갚아도 다 못 갚을 은혜를 자신의 깨달음으로 보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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