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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대장경의 발원에서 완간까지

최철환 / 역경원 편집부장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성도하신 이후 입멸하실 때까지의 45년간 많은 가르침을 우리에게 남기셨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다양한 교설은 부처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문자로 정착된 일이 없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시자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할 필요를 느껴 몇 차례의 결집(結集)을 거쳐 삼장(三藏)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대장경은 기나긴 세월 동안 여러 나라에서 여러 문자로 만들어졌고, 이들이 없어지기도 하고 또 그 내용이 첨가되기도 하였다.

현재 해인사에 판목이 소장 중인 고려대장경은 고려 현종(顯宗) 때 만들어진 소위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거란 군의 침입으로 불타 버리자, 고종(高宗) 3년(1236)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판각하기 시작하여 고종 38년(1251)에 완성한 것이다.

고려대장경은 불교를 더욱 크게 일으키려는 목적에서뿐만 아니라, 문화국으로서의 위신력을 내외에 선양하고 몽고의 침입을 불법의 힘으로 몰아내려는 국가적인 염원으로 조성한 데 그 중요성이 있다. 모두 639함(函) 1,514부(部) 6,805권(卷)에 이르는 방대한 고려대장경은 현존하는 한역 대장경 가운데 최고(最古)일 뿐만 아니라, 정치한 교정을 거친 세계가 공인하는 가장 정확한 대장경인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고려대장경은 한문으로 이루어져 일반인으로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일반인들이 쉽게 불전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에야 가능하였던 일이다.

1941년(세조 7) 국가 사업으로 간경도감(刊經都監)이 설치되어 불경을 간행하였고 여러 사찰에서 불전을 한글로 번역하였으나, 이는 전체 대장경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분량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1921년 용성(龍城) 스님이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하여 『화엄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을 국역하였지만,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기는 불운을 맞이했다.

8·15 광복을 맞아 주권을 되찾은 후 불교계에서는 불전의 한글화 작업이 시급하고, 이는 불교 대중화에 기여하고 불교학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는 인식이 싹트게 되었다. 이에 1945년 12월 17일 해동역경원(海東譯經院)의 창립을 위한 모임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이 모임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지 못한 채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후 몇몇 불전을 번역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으나 재정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6·25 전란으로 그 맥들이 사라지고 만다.

조계종은 1962년 한국 불교 중흥을 위하여 종단의 사업으로 도제양성(徒弟養成)과 포교와 역경의 3대 사업을 책정한다. 이에 역경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종정 직속기관으로 역경위원회를 두기로 한 역경위원회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1963년 2월 13일에 제1차로 사계의 권위자 17명을 역경위원에 임명하고, 역경위원회 위원장에 운허 스님, 역경부장에 석주 스님, 사업부장에 석정 스님을 임명하여 역경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64년 2월에는 역경위원회가 추천한 21명의 역경위원을 당시의 종정 효봉 스님이 추가로 위촉하여 역경위원회를 강화하였다.

종단은 역경사업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동국대학교 김법린 총장은 역경기관을 동국대학교에 설립하여 국고 보조를 받는 방법을 제의했고, 역경위원회 위원장 운허 스님과 김법린 총장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해서 총무원의 양해 아래 동국대학교 부설기관으로 설립된 것이 ‘동국역경원’이다.

1963년 9월 26일 운허 스님과 김법린 총장 사이에 동국역경원 설립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진 후, 이듬해 3월 1일에야 역경위원회 위원장이 역경원장을 겸임한다는 결의에 따라 운허 스님이 역경원장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3월 14일 김법린 총장이 갑자기 타계하여 역경원은 11월 21일에야 대학선원에서 출범식을 갖고 공식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이에 역경원은 1965년에 우리말 대장경의 첫 권인 한글대장경 제1집 『장아함경』을 간행하기에 이른다. 1966년에는 역경원에 국고가 보조되어, 이로써 역경원은 매년 8책씩 1970년까지 한글대장경을 간행하여 이후 1973년까지 총 67책을 간행하였다.

평생 역경에 몸바치신 운허 스님께서 1980년 11월 열반하시자, 이후 역경사업은 활성화되지 못하고 거의 명맥만 유지하는 데 그치고 만다.

그러다 1993년 11월 운허 스님의 상족인 월운 스님이 역경원장에 취임하시어, 94년부터 97까지 4년간 13억 원에 달하는 국고 지원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그 동안 침체되었던 역경사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국고 지원 재개 이후 94년에 26책의 한글대장경이 간행된 것을 비롯해 95년에 28책, 96년에 32책, 97년에 30책 등 4년간 총 116책이 간행되었다. 그래도 고려대장경을 완역하지 못하여 98년과 99년의 추가 지원으로 98년에 33책, 99년과 2000년에 걸쳐 35책을 발간하여, 1965년에 출발한 대장경 번역사업이 36년간의 대장정을 걸쳐 318책으로 완간되었다. 이 기간 동안 국고 지원 19억여 원, 동국대학교 및 후원회 지원, 자체 자금 등 31억여 원을 투자하여 한글대장경 184책이 발간된 것이다. 이와 같은 불사가 이룩될 수 있었던 것은 노령에도 불구하고 역경원 후원회를 이끌며 지원해 주신 석주 스님과 대장경이 완간될 수 있도록 가까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동국대학교 이사장이신 녹원 큰스님과 송석구 총장님의 원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국역경원은 고려대장경의 1차 번역 사업을 마무리하고, 금년부터 향후 10년간 국고의 지원을 받아 한글대장경의 개편 및 개역 작업과 함께 동국대 전자불전연구소(소장 보광 스님)와 함께 대장경의 전산화 사업을 펼쳐 나갈 계획이다. 이 전산화 사업은 자료의 검색과 활용이 쉽도록 하고, 또한 색인 작업을 통해서 대장경의 효용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아직 번역되지 않은 불전도 순차적으로 번역 간행하는 작업도 병행해 나갈 계획이다.

이상으로 한글대장경의 완간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대장경이 완역되었지만 대장경의 체제, 번역상의 제문제, 활용 방안 등 무수한 문제가 활발히 논의되어야만 보다 나은 우리말 대장경이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 1천6백 년이 지난 지금에야 우리 민족이 진정한 우리말 대장경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를 계기로 불교의 대중화를 가속화시키고,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종교가 되게 하여야 할 것이다.

고려인들이 대장경을 조성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고자 염원하였듯이 한글대장경이 민족통일을 앞당기고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만을 부처님께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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