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5일 장충체육관에서 한글대장경 완간
회향법회가 열렸다. 동국역경원이 한국불교계의
원력을 모아 37년 간 꾸준히 추진하여
왔던 역경사업이 마무리 된 것이다. 고려
고종 38년(1251) 대장도감에서 1천516종
6천815권의 경전을 8만1천258매의 경판에
새겨 해인사에 보존하여온 한문대장경에
한국 스님들의 뛰어난 저술들을 추가하여
이를 한글로 번역한 모두 318권의 한글대장경이
새로 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새 천년을
맞는 21세기의 벽두에 한민족과 세계인류의
큰 경사로서 기리 기록될 일이다. 범어
경전이 중국에서 한문경전으로 바뀌어지는데
9백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런
한문경전이 한글로 다시 탄생하는데 37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번
우리의 한글대장경의 탄생도 6백년이 걸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이
15세기 전반기에 이미 완성되었으며 세조7년(1461)에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많은 불경을 언해하였기
때문이다. 범어경전이 중국에서 한문경전으로
바뀌어지는 과정에서 불교는 새로운 표현논리로
그 체계화가 한층 더 보강되었다. 뜻글자인
한자의 특성은 불교의 내용을 응축하여
담아내는데 아주 적절한 문자였다. 가령
고(苦)·집(集)·멸(滅)·도(道)를
순수한 우리말과 우리글로 표현한다고
할 때 이처럼 명료한 의미망을 가진 한
낱말들로 쉽게 구현해 낼 수 있겠는가.
불교는 한자의 특성을 타고 논리적 체계화가
가속화되어 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한자는
불교의 체계화를 통해서 학술용어와 문화용어로
다듬어지면서 세련미를 더하여 갔다. 이렇게
하여 정련된 중국의 말과 글은 그들의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을 구현하고 체계화하는데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중국인의
생각하기와 말하기, 글 쓰기와 행동하기에까지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한역불경은
중국의 표현문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으며
중국의 어문을 한층 높은 품격을 갖춘
문화어문으로 격상시키는데 기여하였다.
그러한 과정을 살펴보면 거국적인 원력과
철저한 조직관리, 다양한 전문가집단의
안배와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국가가 역경을 전담하는 번경원을 설치하여
역경을 추진하고, 거기에서 불경과 어학에
정통한 삼장법사들이 범어나 호어 불경을
한역하였다. 그리고 그런 각종의 불경은
역주(譯主-범문을 있는 그대로 소리내
읽는 이)·증의(證義-범문을 비판적
안목으로 살피는 이)·증문(證文-범문에
잘못이 없는가를 살펴 범문을 확정하는
이)·서사(書寫-범문을 발음대로
한자로 쓰는 이)·필수(筆受-범문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이)·철문(綴文-한문으로
번역한 것을 한문 어법에 잘 맞도록 깔끔하게
정리하는 이)·참역(參譯-범문과
한문으로 번역하여 정리한 것이 서로 일치하는지를
검토하여 확정하는 이)·간정(刊定-이완된
표현을 다시 함축성 있는 표현으로 가다듬는
이)·윤문(潤文-한문으로 번역한
내용을 민족 정서에 맞도록 더 곱게 가다듬는
이) 등 9단계의 엄정하고 정치한 여과의
관문을 거쳐서 마침내 한 권의 한역불경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단 1회로
마무리된 것도 아니며, 당나라 현종 이전의
구역과 그 이후의 신역에서 각기 꾸준히
반복되는 중역(重譯)이 거듭되어 오늘날의
한역불경이 된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한역불경의 간행사업은 거국적인 큰 불사였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중국문화사에서
중국인의 표현문화를 격상시켜 바꾸어놓은
큰 문화사업이었다. 그리고 불경의 한역은
특유한 중국식의 번역문체와 외래어의
수용방식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중국의 외래어 표기방식도 이러한 전통의
맥락선상에서 발상 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한글대장경
318권을 완성시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많은 대중들이 이 사업의 성취를 위해서
원력을 보태고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지구촌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제나라의
고유한 말과 제나라의 독창적인 글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한글대장경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불교와 한글은 숙세의
인연이 있다. 불교가 한국으로 왔을 때
우리의 고유한 말은 있었으나, 우리의
고유한 글자가 없었다. 불교를 한국인의
가슴에 심기 위해서는 우리 식의 글자가
필요하였다. 설총이 이두를 생각해 낸
것은 그러한 요청에 의해서였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반포한 다음
맨 처음 한글 산문체로 석보상절을 짓도록
하고, 한글 운문체로 월인천강지곡을 지어
세상에 내놓은 것도 한글 창제가 불교
널리 알리기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번의 한글대장경은 그러한 역사적인
맥락선상에서 탄생한 것이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이 지난 5백여 년 동안 한글
서사문학과 한글 서정문학의 새로운 전형으로서
우리의 표현문화를 순화하고 선도하여
온 것처럼 이번의 한글대장경도 우리의
자본주의 편향적 생각하기와 무잡하여진
표현문화를 크게 변화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한글대장경 완간 회향법회를 가지면서
동국대학교는 금년부터 향후 10년 간 한글대장경의
개역·개편 작업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산화 작업을 펴나갈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두 가지의 큰 불사가 모두
원만하게 성취되기를 합장하고 발원한다.
그 동안 단편적으로 읽어 왔던 한글대장경과
이번에 한글대장경 찾아보기를 보면서
위의 두 가지 불사에 바라고 싶은 소박한
원이 있어 여기 몇 가지만 적어본다. 첫째는
개역과 개편에 관한 것이다. 우리말 어휘
선택의 적확성과 통일성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제 번역문의 어휘검색을 통해
그런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문으로 의미 전달에 혼미를 초래하는
문장을 모두 올바른 문장으로 바로잡아
누구나 모두 한글대장경의 문장을 올바른
문장의 전범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주기를 바란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문장이 한글 산문과 한글 운문의 전범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이다.
이제 한글대장경의 편제도 이 시대의 독자
성향에 맞추어 쉽고 편리하게 개편하여
주기를 바란다. 둘째는 한글대장경 찾아보기에
관한 것이다. 어휘, 어구, 어절, 문장과
편제, 예시, 예화 등 모든 검색이 자유로워
한글대장경의 활용환경을 극대화 시켜
줄 수 있도록 하였으면 좋겠다. 이렇게
하여 전 국민의 불교신심을 촉발시키면서
우리의 표현문화를 격상시켜 문화민족으로
거듭나는데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발원한다. 중국 한역경전의 자취를 거울삼아
그보다 더 훌륭한 한글경전이 태어날 수
있기를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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