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비가 갠 뒷날의 하늘은 더욱 맑고 산색
또한 훨씬 푸르다. 허공에 구름도 없고
매연도 없이 맑게 갠 날이면 마음이 어두운
사람들마저 모두 다 좋아한다. 하지만
흐린 날, 침침한 날은 기분도 찜찜하고
어깨도 찌뿌듯 무겁고 마음까지 무겁다.
날씨는 인간의 분위기를 밝게도 어둡게도
만든다. 사람들은 날씨는 밝고 맑은 것을
좋아하면서 자기 마음은 어둡게 만들어
온갖 어리석은 짓을 마구 한다. 욕심내고
성질부리며 자기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만
잘못된 것은 자신의 마음인 줄도 모르고,
남에게 성질을 부리며 깨고 부수어 모든
이의 기분까지 상하게 한다.
사람에게
가장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은 탐욕이다.
이 탐욕이 맑은 눈을 가리고 밝은 귀를
막아 마음을 어둡게 한다. 탐욕은 성냄과
어리석음과 함께 마음의 세 가지 독(毒)이라고
한다. 세 가지 독 가운데 탐욕이 가장
무서운 독성이 있다. 욕심대로 안되면
먼저 성질부터 부리고 화를 내며 화가
치솟아 심장에 열이 받치고 이성적 판단능력을
잃어 눈이 충혈되면서 보이는 것이 없게
되면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 이렇게
탐욕으로 어리석어진 마음은 자기 분수를
모르고 억지로 취하고 소유하려는 망상을
부리고 온갖 악업을 짖게 된다.
가질
것은 가지고 버릴 것은 그 즉시 버려야
한다. 탐욕으로 인한 집착은 또 다른 병통을
만들어 자신을 병들게 하고, 남까지 썩게
만든다. 탐욕의 집착을 버리면 고통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고, 탐욕을 버리면
곧 도(道)를 얻고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처처경(處處經)』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예전에
한 사미가 그 스승과 함께 길을 가다가
땅에 금덩이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자
말없이 이를 주워가졌다. 그리고 스승에게
‘빨리 가십시다. 여기는 무인지경이라
매우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라고 하니,
스승은 즉각 말하기를 ‘네가 금덩이를
가졌기 때문에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이니
그 금덩이를 버려라. 그러면 다시는 무서울
것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스승의 말씀을
듣고 사미는 금덩이를 버리고 나서 스승에게
절을 하고 ‘제가 어리석어 아는 것이
없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제 그 금덩이를
버렸더니 무서운 생각이 안 납니다’ 하였다.
제자들이여,
학인(學人)이 도(道)를 탐하기를 이 사미의
금덩이 탐함과 같이 한다면 어찌 도(道)
못 얻음을 걱정할까보냐?”
금덩이는
재물이다. 재물은 권력을 만들 수 있고,
권력 또한 재물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재물과 권력은 인간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이지만 이 방편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멸시 당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과 멸시에서 벗어나려고
몇몇 사람들은 재물과 권력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고 있다.
『처처경(處處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은 재물과 권력은
무서운 고통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덩이를 탐하는 그 욕망으로 진리를
구한다면 누구나 도(道)를 이룰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금의
세상을 말세(末世)에 비유할 때 말세는
투쟁뇌고(鬪爭腦苦)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배고픈 아귀(餓鬼)들이 서로
물고 뜯으며 피를 흘리고 스스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어느 집단 어떤 계층을 막론하고 이전투구(泥田鬪狗)나
다름없다. 이 모두가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흔적 없는 욕심의 소산임을 알아야 한다.
서로
먼저 양보하면 잘될 것을 서로 치고 받는
것부터 하고 있으니 불안과 초조, 원한과
보복만이 오고갈 뿐이며, 그 욕망으로
인한 무서움은 각종 현대 병을 낳고 단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가
고통스러울 때 먼저 내가 남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내가 남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고, 남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내가 즐거울 때
남에게 고마운 생각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를 찾아보자.
남이 즐거울 때 내가 편안하고 사회가
평화로울 때 나의 가정도 행복해 질 수
있다.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鏡峯)노스님의 곁에 있을
때 신도들이 오면 노스님께서는 “정당하게
돈을 많이 벌어서 국가와 민족과 사회를
위하여 멋지게 쓰라”고 당부하시는 말씀을
자주 들었다. 인간이 가장 멋지게 사는
방법은 남을 위해 베풀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아낌없이 다하는 것이다.
내가
어느 위치에 있든지 남을 위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내 마음에 숨어들어 웅크리고 있는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만 없애버리면
아만도 의심도 없어져 누구와도 더불어
할 수 있고,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불교에서의
회향(回向)정신은 남을 위하여 권력과
재산의 공덕을 모두 되돌려 주는 것이다.
준다는 개념까지도 모두 주었을 때, 권력과
재산도 모두 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은사의 말에 쉽게 금덩이를 던질 수 있었던
사미의 그 순간의 마음이 서로 통했다면
비로소 회향인 것이다.
한번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뒤돌아보자.
과연 주운 금덩이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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