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생각해보니 “불자의 길”이라는 법제가
애매하여, 오늘 이 자리에서는 『초발심자경문』
안에 실려있는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선 원효스님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원효스님은
617년에 신라시대 육두품출신으로 태어나셨는데,
그 분에 대해서는 「원효학연구원」이라는
곳에 제가 작년에 원장직을 맡으면서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중국(당나라)의 불교가 크게 발전했는지라
원효스님은 650년에 중국으로 떠나려했으나
고구려군사에게 붙잡혀 실패하고, 661년에
다시 중국으로의 유학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큰 깨달음을 얻어 그냥 다시 돌아왔다고
하는 얘기는 다 아실 겁니다. 당항성(唐項城)에
이르러 한 무덤가에서 잠을 자다가 밤중에
목이 말라서 시원하게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보니 그 물이 해골에 고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세상만사가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임을 깨달으시고
또한, 잘만 살펴보면 진리나 학문이 외국이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셨습니다.
그 길로 신라로 돌아오신 원효스님은 아무런
걸림 없이 불교의 대중화에 힘쓰시게 됩니다.
그
당시 원효스님은 당나라에 같이 유학을
가고자 했던 의상(義湘)스님과 참으로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의상스님
같은 경우에는 당나라에서 공부하실 때
잠시 머물렀던 집주인 딸인 선묘라는 아가씨가
스님을 지극히 사모하였으나 스님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선묘는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는 의상스님을 쫓아
바다에 빠져 스님을 지키는 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원효스님은 거리로 나아가 누가 하늘을
받칠 만한 자루 없는 도끼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그것으로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원효스님은 이미
세상의 규칙이나 틀에 벗어난 사람이었기에
그런 말씀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무열왕이
이 노래를 듣고 자기의 딸(요석공주)과
혼인을 시켜서 설총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설총은 신라시대에 큰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그때는
무척 개방적인 이성관이었다는 것을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이라는 스님의 일화에서 엿볼
수도 있습니다. 두 스님이 서로 약속한
것이 있었는데 먼저 깨달음을 얻어 서방극락세계에
갈 때 남은 이에게 알려주기로 하였습니다.
어느 날 엄장이 광덕의 집에 빛이 나서
광덕이 먼저 떠남을 보게 되었습니다.
광덕의 입적 후 엄장은 광덕의 아내와
장례를 치른 후 두 사람이 같이 살기로
하였는데 그날 밤 엄장은 부인에게 함께
잠자리를 제의했으나, 부인이 말하길 광덕은
10여 년 동안 동침한 일이 없었고 항상
저녁 밤으로 서방에 왕생하기만을 기원하며
수도를 했기 때문에 서방정토에 갈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엄장은 부끄러워 그 길로 원효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고 열심히 수도하였다고 합니다.
이 일화에서 당시 시대상 이외에도 중요한
것은 진정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을
살펴봅시다.
無防天堂에
少往至者는 三毒煩惱로 爲自家財요
無誘惡道에
多往入者는 四蛇五欲으로 爲妄心寶니라.
무방천당에
소왕지자는 삼독번뇌로 위자가재요
무유악도에
다왕입자는 사사오욕으로 위망심보니라.
무릇
천당이라는 말은 가장 편하고 좋은 곳으로
불교에서의 극락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천당에 가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없는데,
그곳에 가는 사람이 지극히 적은 것은
삼독과 번뇌를 집안의 가보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구도 가자고 유혹하고
권유하는 이 없는데 악도 즉 지옥으로
가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사오욕으로 망녕되게
마음의 보배를 삼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삼독이란 탐·진·치(貪·瞋·癡)
즉 탐욕, 화냄, 어리석음을 가리키며,
사사오욕이라는 것은 우리의 몸을 이루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말하며 오욕(五慾)이라는
것은 돈(財)·색(色)·먹는
것·명예·수면(睡眠) 등입니다.
自樂을
能捨하면 信敬如聖이요, 難行을 能行하면
尊重如佛이니라.
葛貪於物은
是魔眷屬이요, 慈悲布施는 是法王子니라.
자락을
능사하면 신경여성이요, 난행을 능행하면
존중여불이니라.
간탐어물은
시마권속이요, 자비보시는 시법왕자니라.
자기의
즐거움을 능히 남에게 돌릴 수 있다면
성인과 같이 신뢰받고 존경받을 수 있으며,
하기 어려운 행동을 능히 실천한다면 부처님과
같이 존중받느니라. 여기서 하기 어려운
일, 난행이란 육바라밀을 말합니다. 바로
육바라밀은 어리석은 중생이 업장을 녹여
부처가 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물질에 탐하는 것은 곧 마군의 권속이요,
자비를 베푸는 것이 곧 진리의 왕자니라
하셨습니다.
世樂은
後苦어늘 何貪着哉며, 一忍은 長樂이어늘,
何不修哉인가.
세락은
후고어늘 하탐착재며 일인은 장락이어늘,
하불수재인가.
세상의
즐거움이란 마치 술을 마실 때처럼 술
마실 때는 지극히 즐겁다가 술 마시고
난 뒤 몸이 괴로워지는 것처럼 나중에
괴로워지거늘 왜 집착하며, 한번 참으면
오래 오래 즐거움인 것을 어찌 수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했습니다.
時時移移하야
速經日夜하고 日日移移하야 速經月晦하며,月月移移하야
忽來年至하고, 年年移移하야 暫到死門하나니라.
시시이이하야
속경일야하고 일일이이하야 속경월회하며,월월이이하야
홀래년지하고, 연년이이하야 잠도사문하나니라.
시간
시간이 가고 가서 금새 하루가 지나가고,
하루 하루가 가서 금새 한 달이 지나가고,
한달 한 달이 가서 홀연 한해가 지나가고,
한해 한해가 가서 잠깐사이에 죽음의 문에
도달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破車不行이요,
老人不修라. 臥生懈怠하고 坐起亂識이니라.
身必有終하리니
後身을 何乎아. 莫速急乎며, 莫速急乎인가.
파거불행이요,
노인불수라. 와생해태하고 좌기란식이니라.
신필유종하리니
후신을 하호아. 막속급호며, 막속급호인가.
고장난
차는 가지 못하고, 늙은이는 닦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누워서는 게으른 생각이 나기
쉽고 앉아서는 산란하고 잡된 생각만 일으키게
되느니라. 우리의 몸이란 반드시 죽음,
마침이 있으니 죽은 다음에는 어찌 하겠느냐.
아주 급하고 급한 것이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끝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서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에 담긴 스님의 가르침처럼
마음에 걸림 없이 바른 깨달음을 향하여
늘 수행하는 자세를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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