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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눔, 큰기쁨

이도업 스님 / 경주캠퍼스 정각원장

 


『화엄경』 「명법품」에 열 가지의 바라밀(波羅蜜)이 나온다. 바라밀이란 도피안(到彼岸)이라 번역되고 있는 바와 같이 중생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이 사바의 세계에서 저 열반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십바라밀이란 저 열반의 세계에 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열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종교에서는 성불(成佛)이나 해탈, 또는 천당이나 구원을 입이 아프게 말하고 있지만 막상 그 실천 방법론에 들어가면 애매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명법품」에서는 그 실천 방법을 아주 분명하게 열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나눔의 실천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말한다. “가지고 있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용수보살이나 법장스님은 세 가지의 나눔(布施)을 말하고 있다. 물질적인 나눔, 진리의 말을 전해주는 나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무외(無畏)의 나눔이다.

이 나눔의 보시행이 구경 성불의 길이며, 해탈 열반의 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주기보다는 받기를 좋아하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기보다는 그 위에 군림함으로써 만족하려 한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만족이 있을 수 있다.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느끼는 만족이 있고, 욕망을 비움으로써 얻어지는 기쁨이 있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더 갈구하게 되는 속성이 있다. 부처님께서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으니 저기 보이는 저 히말라야산을 온통 황금으로 만들고, 그것을 두 배로 해서 준다 해도 충족되지 않는다.”

고 하신 말씀에 욕망의 속성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욕망을 비움으로써 얻어지는 기쁨은 그와 정반대이다. 비우면 비울수록 기쁨은 비례해서 커간다.

자기 것을, 물질적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이웃과 나누면 나눌수록 기쁨은 두 배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요즘 새삼 알게 되었다.

작은 나눔에서 큰 기쁨을 알게 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해인가 음력 4월 8일 연등행사로 밤 12시가 넘도록 분주하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생활상의 오랜 습관 때문이었을까. 새벽 4시가 되자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깨어났다. 눈은 떴으나 몸이 무거웠다. 목욕을 가기로 했다. 해운대는 예로부터 온천수로 유명한 곳이다. 해운대의 온천수 중에서도 금호탕의 수질은 내가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그 날 이후 새벽예불 후 목욕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나눔이 시작되었다. 목욕탕 창구에 있는 보살님이 일회용 비누 한 개를 건네 주었다. “그냥 쓰세요.” 하면서!

얼마 후 그 보살님은 늘 손에 책을 들고 있음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서점에서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를 보다가 그 보살님 몫으로 한 권을 더 사게 되었다.

그런 후 장산의 산색이 몇 번이나 바뀐 어느 날 그 보살님은 “그냥 쓰세요.”하면서 거스름돈에 일회용 면도기를 언져 주기 시작했다.

그 후 어느 가을날 현각(미국인)스님이 우리 대학에서 특강을 하게 되었다. 내 연구실에 온 그에게서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받아 읽게 되었다. 참으로 묘한(?) 인연으로 해서 그 책에는 나에 관한 이야기가 두 번 나오고 있다. 그런 점도 있고 해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부분에는 붉은 줄을 그어가며 읽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읽어서 인지 표지는 이미 헤어져 있었다. 헌책이 되었지만 그분께 보시를 했다. 그 후 “잘 읽었습니다.”라는 그 보살님의 말 한마디에 나는 큰 기쁨을 느꼈다. 작은 나눔으로 해서 그때 이후 새벽 목욕을 가는 내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졌다. 마음에 솟는 기쁨도 커져만 갔다.

또 동백섬의 나뭇잎이 몇 번이나 그 색깔을 바꿔 입던 어느 날 그 보살님은 요금을 깎아 주기 시작했다. 대중탕 요금이니 다 깎아 준다 해도 나에게 금액상으로는 별 의미가 없었지만, 스님이니까 깎아 주겠지 하는 그 마음의 보시에서 나는 큰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나눔의 보시가 진정한 보시 바라밀이 되려면 세 가지가 청정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 「이세간품」에서 열 가지의 나눔(10種布施)에 관해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 마지막이 삼종원만청정보시(三種圓滿淸淨布施)다. 세 가지가 원만하고 깨끗할 때 그것이 진정한 보시가 된다는 뜻이다. 세 가지란 무엇인가. 나누어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과 나누어주는 물건을 말한다. 원만하고 깨끗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주면서 아까워하지 않고, 받으면서 부담스럽지 않음을 뜻한다. 주면서 조건이 없고 받으면서 달리 목적을 두지 않음을 뜻한다. 나누어주면서도 조건이 없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고, 받으면서도 특별한 목적을 두지 않기에 진정 감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세 가지가 원만하고 청정할 때 우리는 작은 나눔에서도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나눔의 실천행이 저 열반의 세계에 갈 수 있는 첫 번째 길이라고 부처님께서는 『화엄경』에서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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