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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부분도 함께 생각하라

 채인환 큰스님/ 전 선학과 교수

 


여러분 무착 보살을 아십니까? 무착 보살은 대승 대보살들의 뒤를 이어 대승불교 가운데서도 근본적이고 대표적인 대승불교 사상의 하나로 꼽히는 유가유식사상을 성립, 발전시킨 분이십니다. 즉 무착보살에 의해 지금까지 인도나 모든 나라에 유가유식사상이 널리 퍼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무착보살에 대한 소개와 함께 유가유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부처님께서 계실 때와 열반하신 후 1백년 동안을 ‘원시불교시대’라고 합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설하신 원문을 모은 것을 ‘아함경 계통의 경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열반 후 1백년 쯤에 교단이 불교교리에 대한 견해차이로 둘이 나누어졌는데 이것을 ‘근본분열’이라 합니다. 바로 여기서 ‘상좌부 계통’과 ‘대중부 계통’으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나누어졌다고 해서 싸웠다는 것이 아니고 다만 견해를 달리하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다는 말입니다.

거기서부터 또 다시 3백80년 간 보수파인 상좌부 계통에서 11개파가 나누어지고, 진보파인 대중부에서 9개파가 갈라져서 3백80년 동안에 20개부파가 생겼습니다. 이때를 ‘부파불교시대’라 하고, 이때의 불교를 ‘아비달마 불교’라 합니다. 말하자면 부처님 시대에는 부처님 가르침이 교리적이고 체계가 안서고 조금 거칠었습니다. 그런데 3백80년 동안에 스님들이 아주 열심히 불교를 연구하고 주해를 해서 이때 불교의 체계를 세우고 교의를 완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불교 교리를 배우는 기본적인 것은 모두 그때의 아비달마 불교시대에 체계적으로 완성시킨 것입니다.

부처님 열반 후 400∼500년 쯤에 진보파 그룹의 대중부 계통의 스님이나 신자들에 의해 ‘대승불교사상’이 성립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불교 교리의 기본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내려오면서도 많은 제자들이 교리에 의지하여 더욱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가장 획기적인 때가 부처님 열반 후 5백년 쯤입니다. 바로 대승불교 사상이 일어난 것이 가장 큰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마명보살’이라는 분이 나왔습니다. 기신론이라고 하는 불교교리를 연구하는데 핵심인 ‘대승기신론’을 지었습니다. 거기에서는 인류의 오랜 역사를 창조하고 문화문명을 성립·발전시킨 주체는 바로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인간들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냐? 바로 여러분들이 나를 분명히 보고 있고 내 얘기를 듣고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 바로 ‘마음’입니다. 이름은 여러가지 이지만 근본은 하나입니다. 마명보살은 대승기신론에서 우리를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이 마음의 근본은 ‘진과 망’ 즉 ‘참된 것과 거짓된 것,’ 이 둘이 합해진 것이라 했습니다.

거기서 다음에 나온 용수보살은 반야 지혜를 주장했습니다. 바로 우리 중생이 지금 어두워, 예를 들어 1분 뒤, 한시간 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짐직을 못하고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생도 부처님의 마음과 똑같아서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중생은 누구든지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본래부터 가지고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부처가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처가 되는 방법을 일러주는 것이 각 경전의 가르침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인간’이라는 근본은 다 같지만, 남녀로 갈라지고 거기에서도 지식이 높고 낮고 성격이 다르고 얼굴모습이 다르듯 한결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사람이라도 교육을 받을 때 초·중·고·대학교 순으로 차근 차근 공부하듯이, 우리 중생들도 결국은 차차 끈기를 길러 올라가되 그 가르치는 방법도 각자 성격·모습에 맞추어 여러 가지 방법을 일러주셨습니다. 그런 방법 가운데서 용수보살이 의지한 반야지혜는 부처님이나 우리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반야지혜이며 불성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떻게 반야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분명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우리는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는 무명, 욕심, 성내고, 어리석은 것이 뿌리가 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중생들이 반야지혜를 부처님과 같이 얻어 마음대로 쓸 수 있으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 수행방법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온갖 것을 한 번 놓아라”는 것입니다. 즉 “마음을 비워라”는 겁니다. 반야심경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무(無)! 무(無)! 무(無)! 한번 놓아라. 놓아라. 놓아라! 한번 놓을 때 조금도 남기지 말고 싹 놓아라! 싹 놓아질 때에 그걸로 가리워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던 ‘반야지혜’가 그대로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그 자리가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요, 그 자리가 부처님 세계요, 시방삼세 모든 부처님이 그렇게 해서 불도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용수보살이 주장하고 행하는 공관(空觀)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모든 것, 모양 있는 것은 생겼다 소멸됐다 하는 것이고 시시각각 변해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짜가 아니고 가짜요, 임시적인 것이요, 따라서 영원한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을 보게 될 때 집착하지 않고 모든 것을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쓰면서도 거기에 매이지 않고, 끌리지 않고, 집착하지 않을 때에는 그 속에 모자람이 있어도 하나도 나를 방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보살의 전두주자인 무착보살은 이제까지 내려오는 공관(空觀)에 대해서 반대되는 입장을 냅니다. 이것도 대승은 대승입니다. 공관(空觀)에 대응되는 불교사상은 유가유식사상입니다. 그렇다면 유가유식사상은 어떻게 성립됐고, 그것을 성립시킨 무착보살은 어떤 보살이고, 그가 성립시켜 오늘날까지도 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사상으로 연구되고 있는 ‘유가유식사상’은 무엇일까요.

무착 보살은 간다라 지방에서 태어난 바라문 집안의 자제였습니다. 첫 아들은 무착, 둘째 아들은 세친, 셋째 아들은 사자각이었습니다. 이 삼형제가 모두 출가해 대승불교를 널리 알리는 대보살이 되었습니다. 무착보살과 세친 보살은 같이 출가를 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상좌부 계통의 불교, 즉 소승불교에서 11개부파중 설일체유부파로 출가했습니다. 가장 세력있는 부파에서 출가한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아비달마 불교’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대승불교’ 사상을 알게 된 것입니다. 무착보살은 지금까지 공부한 ‘소승불교’ 보다 한 차원 높은 불교사상이 ‘대승불교’ 라는 것을 알고, 설일체유부에서 떠나 대승불교사상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거기서 스승을 만나 선배인 용수보살이나 가나제바 보살의 공관(空觀)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무착보살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생멸하고 무상하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것이다”, “머리로만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닌 관(觀)을 한다는 것을 마음으로 익혀 나중에는 흔들림이 없는 이해가 성립된다”는 내용을 열심히 익혔습니다. 그러다 중년쯤 무착보살은 간다라를 떠나 인도 중부 아유사국에서 공관을 익혀 4개월 동안 선정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선정에 들어있는 무착보살앞에 도솔천에 계신 미륵보살님이 모습을 나타내서 무착보살을 위해서 법문을 설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4개월 동안 미륵보살님에게 직접 강의를 들은 내용을 무착보살은 자신이 기억하고 아는 대로 기록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1백 권으로 구성된 《유가사지론》 입니다. 이것이 유가유식사상의 근원입니다. 유가유식이란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공관(空觀)에서는 “반야지혜를 찾으려면 이 세상에 모양 물질로 된 것은 다 실체가 없다” “공한 것이다” “모두 비워야 반야지혜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가유식론에서는 이 세상에는 근본원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즉 이것은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경계선인 것입니다. 불교도 교리적으로 크게 둘로 나누면 실상론과 인식론이 있습니다. 실상론은 모든 것의 근본 진리, 그 자체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얘기하는 부분을 말합니다. 그것은 본체론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체만 가지고 이 세상이 조직돼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 모양 없는 본체 가운데서, 온갖 인연에 따라 모양 있고 물질적인 것, 들을 수 있는 것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곧 현실세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식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여러분, 저 바다에 큰 물 자체는 본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항시 물표면에 흔들려 일어나는 파도를 보고 우리는 바다라고 합니다. 그렇듯 본체가 인연에 따라서 나오는 것이 모든 모양있는 이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니깐 둘이 어울려야 올바른 것이라는게 유가유식론인 것입니다. 공(空)한 것만 내세워도, 모양 있는 것만 내세워도 바른 것이 못됩니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무착보살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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