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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門普門으로 향하는 걸음

박지호 스님/ 불교문화대학 강사

 

우리들은 모든 현상을 분별(分別)해서 생각하려한다. 생과사, 선과악, 다행과불행, 미와 추함 등이 그 분별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안다.라는 말은 곧 분별, 분석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여진다. 이는 인간이 만물의 합일성(合一性)을 깨닫지 못하고, 우주의 본질을 그대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無明을 떨쳐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自然을 체험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언어로는 절대로 표현 할 수 없는 우주의 궁극적 진실 속에 숨어있는 佛性을 直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향하여 들어가야 할 곳이 〈일문보문(一門普門)〉인 것이다.

일문이란 능엄경에 시방여래께서 일문에서 나오셨으니 그것이 묘장엄로인까닭이라하였고(十方如來一門超出妙莊嚴路), 열반에 들어가는 문(入涅槃之門也)이라 하였다. 또 일문은 곧 보문이라하니 一法에 통한즉 일체법의 도리에 達한다.는 의미이다. 즉 일문으로 쫓아 법계에 들어감을 얻으니 곧, 이는 널리 일체법에 들어가는 門인까닭이다.(從此一門得入法界. 卽是普入一切法門也)라 하였다.

시간과 인생면에 있어서 불교사상은 일반적으로 염세적으로 보여진다. 그것은 특히, 시간에 대한 불교의 사고방식 속에서 나타난다. 무한 속에 반복되는 生과 死, 이것이 사람을 어찌할 수 없는 생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 특징적 사상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단위와 생활상의 시간에 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단위를 보면 찰나(刹那)는 念念, 瞬間으로 75분의 1초, 수유(須臾)는 48분, 주야는 30수유인데, 이 찰나는 諸緣이 화합할 때 法 그 자체를 얻는 기간 즉,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서 어떤 존재가 생길 때의 시간이다. 그 다음에 劫이라는 시간은 어떠한가. 겁(kalpa)은 겁파(劫波)라고도 하였으니 영겁, 아승기겁, 조재영겁 등 광원한 시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의역하면 大時가 된다. 불교에서 찰나와 겁(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관계는 無常卽佛性 生死卽涅槃이 설해지는 면에서 볼 때, 無常 生死의 시간이 空의 입장에서 常住 不滅의 영원으로 전환되고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주하는 이 세계를 다섯 가지의 깨끗지 못함이 가득한 시기라는 뜻으로 오탁악세(五濁惡世)라 한다.

첫째는 사람들의 수명이 짧아지고(壽命濁), 둘째는 자연환경이 악화되어 주겁(住劫;안정의 시대)이 줄어들고(劫濁), 셋째는 사람들이 탐 진 치 등의 번뇌가 많아지며(煩惱濁), 넷째는 사람들이 잘못된 사상 견해를 갖게 되며(見濁), 다섯째는 사람들의 심신이 약해지고 괴로움이 많아진다(衆生濁) 등이다.

그러면 오탁악세를 피해 가고자 할 것인가?

우리의 참다운 모습도 분명 이 오탁악세라 일컬어지는 이 사바세계에서 찾아야할 本分事이다. 물과 파도가 다른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것을 굳이 나누려는 것은 우리 인간의 부질없는 분별심일 뿐이다. 현상적인 모습에만 집착하지 말고 本體를 보아야 할 것이다. 손가락이 길고 짧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듯이 만물은 한 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향기를 머금을 때 그 모습이 참다운 것이라 할 것인가? 그것은 일문보문안에서 오분법신(五分法身)을 이룰 때이다.

오분법신이란, 五種의 功德法成佛身인 연고로 오분법신이라 하였는데 계법신(戒法身), 정법신(定法身), 혜법신(慧法身), 해탈법신(解脫法身), 해탈지견법신(解脫知見法身) 등 이 다섯 가지는 차제(次第)로 生하고 얻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모두 다 오온을 초출(超出)하게 하는 것이라 하여, 모든 괴로움을 여의게 하는 향기로운 법신(五分香法身)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法은 이 궤칙(軌則)의 뜻이니 오종성신(五種成身)이 궤인 연고로 이름하여 법이라 하였고, 身은 이 責이니 이 五佛의  責인 연고로 신이라 이름하였다.(大乘義章20) 복덕과 지혜의 자량(資糧)을 쌓아서 불신을 이룬다는 것이니 즉, 복덕의 자량을 쌓아서는 색신을 얻고, 지혜의 자량을 쌓아서는 법신(自性身)을 얻는다는 것이다.

불신설(佛身說)은 우리들의 인식을 초월하고 있음이니, 곧 진리라는 것은 분별에 얽힌 개념의 훈습이 있는 인식이나 언어를 넘어선 곳에 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일문보문 즉 열반에 들어가는 문은, 시간을 초월한 禪門에 있어서의 직관을 의미한다.

명상상태에 자신을 두고, 그 관찰에 의한 직관에 의해 시간이 흐르지 않는 時空에 있어서의 영원한 현재로의 자기 전숙명(全宿命)을 단번에 체험하게 하는 수행이다.

그 직관이란 오종의 집착요소(五蘊)에서 비롯되는 일체의 괴로움(四苦八苦)을 직시하는 것으로, 그 괴로움의 원인은 제행무상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실이 아닌 지적개념에 얽매인 無明 때문이다. 즉, 향락적 욕망을 구하는 망집(妄執)과 개체의 생존을 욕심내고, 생존의 영원함을 바라는 망집 때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제법무아임을 직관하여 괴로움의 소멸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여, 만물은 상호가 관계 속에 있고 독립자존의 것은 그 아무 것도 없다라는 것을 깨닫고, 위의 모든 괴로움의 망집과 미망이 사라진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하여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길(八正道)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불타께서 삶을 직시하신 것(生死觀)인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등의 法印을 배워 열반적정에 이르는 길로서 일문보문으로 향하는 걸음을 행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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