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말씀 하나하나가 가슴 속 빗장을
풀고 마음의 때를 벗기는 金言임은 時·空을
초월하여 동·서양 할것없이 찬미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라는
말씀을 죄우명으로 잊지 않고 있다. 즉,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이대로이고,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다.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 소식은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지금까지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노력하여 왔느냐에 따라서 나의
모든 과거의 결집체인 현재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고, 死後世界는 모른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1년후 10년후 그 이후의 나의 새로운
모습이 그려지는 것으로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自業自得이 아득한 미래가 아닌 現生에서도
이렇게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볼 때, 부처님은 과거 미래보다도 현재의
한 생각, 이 한 생각을 가장 중시 하셨다.
그런데, 이 한 생각이 지옥과 천당을 하루에도
수 십 번 왕래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業力, 이 用心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과거의 악업도 무너지고 새로운
선업이 형성되지만 그렇지못하면 그 業力에
끌려가서 다람쥐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보편적인 삶이다. 생각할수록
부처님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衆生이다.
나는
출퇴근을 지하철로 한다. 병원에 근무하면서
좁은 주차공간을 돕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삶의
생생한 현장을 체험하면서 이게바로 하루에
겪는 6도윤회의 한 모습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작은 성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사이인데도 내린 역에서
전달하지 못하게 되니 다른 사람에게 인계되어
전해지는 경우, 노약자석이 아님에도 자기보다
힘들어보이는 사람에게는 앉으시라고 자리를
양보하고 미소짓는 얼굴, 방향을 모르는
사람에게 같이 내려 친절하게 안내하여
주는 젊은이, 발 디딜 틈이 없는 통로에서
질서 정연하게 이동하는 시민들의 밝은
표정, 계단을 힘들어 하는 이에게 짐을
들어주고 부축하여 함께 가는 여유로움
등 다 적을 수가 없다. 이게 바로 도솔천의
경계가 아니겠는가.
반대로
노약자 석에 버젓이 앉아서 팔십이 다
되어보이는 노인이 자리를 양보 할 수
없느냐고 했음에도 못들은 척 눈을 감고
버티는 젊은이, 그 많은 승객을 옆에 두고도
탐욕에 빠져 해괴한 짓을 해대는 천방지축
남녀,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쪽박깰려고
시비하는 사람, 길 모르는 사람의 진지한
물음에도 귀찮아 고개 돌리는 사람, 어쩌다
전원이 끊어져 무더위에 지하철 냉방은
멈추고 기약없이 기다리게 되면 동시에
터져나오는 아우성과 기물파괴, 땀냄새,
찌든냄새, 욕설 등등… 이 또한 지옥·축생도가
아닐런지.
어디를
가든 술 취한 시비꾼이 있는데 큰 대자로
자리를 차지하고는 옆에 사람에게 공연히
싸움을 걸고 세상의 모든 잘못은 모두
네탓이라며 고성시비에 멱살잡이도 일년에
한번이상 목격된다. IMF이후 급증한 실업자
가운데 지하철 통로에서 잠자고 연명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끼의 식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우쳐 주기도
하지만 그 모습 그 배고픔, 반대로 뇌물을
먹어도 먹어도 배부를 줄 모르는 탐관오리와
돈과 권력의 해바라기가 된 소위 잘나간다는
위선적 지도자들을 묶어 아귀와 축생의
경계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즐거움과
고통이 반반이라는 우리 人間, 그 사람이
사는 人道에서 하루에도 수 십 번 인간
이상과 미만을 왕래하며 가는 끝이 어디인줄도
모르고, 그것도 돈과 권력과 명예를 위하여
한몸 던질 각오가 되었다면 차라리 인간
사표를 내야 주위 사람이 편안하다. 나보다
좀 못한 사람이라도 함께 갈 수 있도록
위로하고 안아주며, 위도 보고 아래도
보면서 필경에는 함께 성불하자고 다짐하며
願行을 키우는 것이 佛子의 삶이 아니겠는가.
佛子,
부처님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거룩한 사람들,
이름만 들어도 환희심이요. 보현보살의
行願이 떠 오른다. 그러나, 佛子가 바로
서지 못한다면 希望이 없다.
부처님
말씀 어디에도 今別心을 통한 편가르기는
없다. 건학이념이 불교정신의 거룩함에
있다면 그 뜻을 따르도록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한다. 개교 100년을 바라보는 울창한
부처님의 그늘에서 과거만을 바라보고
안주하지는 말자. 지금, 나의 한 생각을
휘어잡고 지혜로운 판단 속에 모두가 함께하는
용맹으로 10년후 20년 후 「세계 제일
동국」으로 우뚝 서도록 노력하자.
한
생각이 業이되어 지옥과 천당을 왕래하듯
나의 한 생각이 동국의 미래를 운명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