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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와 영화●

불교영화속의 여성

정재형/ 영화영상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불교 영화 속에서 여성은 세 가지 입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하나는 여성이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주체로 등장하는 영화이다. <우담바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같은 영화가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여성이 수동적이며 객체로 등장하는 영화이다. <꿈>, <만다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세 번째 유형은 영화 자체가 우화적이어서 남녀의 구도를 읽을 필요가 없으며 강조하는 대상도 관련이 없는 경우이다. <화엄경>, <산산히 부서진 이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담바라>는 비구니 소재로서 바로 여성 소재로 직결되며, 그런 점에서 <우담바라>는 여성작가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여성 내면의 세계가 그려진다. 이 영화에서 현지라는 주인공 여성이 만나는 세 명의 남자가 어떻게 그려져 있는가에서 여성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또, 이 영화에서는 소도구가 여성 내면의 변화를 나타내기 위해 상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인공 현지의 립스틱이 세 번 반복되는데, 처음에는 속세에서 남자 애인 동하와 연애하던 시절에 받은 것이고, 두 번째는 출가한 이후 뒤늦게 미련을 갖고 다시 나타난 동하와 만나면서 꺼내게 된다. 세 번째는 동하와 헤어지면서 그것을 땅에 일부러 떨어뜨리고 간다. 립스틱은 여성미의 상징이다. 그건 곧 여성을 세속으로 끌어당기는 끈과 같은 것이며, 결국 그 끈을 끊음으로써 불도의 길을 가는 여성 구도자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엄밀히 말하면 비구니에만 초점을 맞춘 작품이 아니라, 보편적인 불교 구도자의 입장을 서술하는 영화라 볼 수 있다. 영화 속의 두 인물인 순녀와 진성은 <만다라>에서 익히 보아왔던 두 인물 지산과 법운의 대비된 모습과 흡사하다. 순녀와 진성은 불도를 이루기 위한 구도자의 서로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데, 순녀는 세속에서 절로 옮기기를 두 번이나 반복하다가 마지막엔 다시 세속으로 나가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반면 진성은 절에서 승복을 입은 채 잠시 세속을 접하긴 하지만 결국은 절로 귀착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는 이 두 명의 인물을 대비시킴으로써 어떤 우열 관념을 만들어내려는 의도보다는, 불교의 두 가지 자세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더 해석된다.

순녀는 한사람의 특이한 삶의 역정을 보여주는 개인으로서 보다는 복합된 여러 요소들의 결정체처럼 보인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인간관계는 그야말로 우리 사회와 역사의 어느 굴곡된 지점이며 중생의 삶 자체이다. 고등학교시절의 짝사랑 대상이었던 현종 선생은 80년의 광주항쟁과 살육을 연결시키며, 절에서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결국 그녀가 절에서 쫓겨나는 원인을 제공했던 남자는 빨치산을 둘러싼 가슴아픈 분단 이데올로기의 상처를, 아버지의 친구이며 그녀를 불교로 인도했던 스님은 월남전과 연관된 아버지 세대의 아픔을 암시한다. 무의촌의 간호원 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어 살림을 차린 남자는 평범하고 힘없는 서민이며 소외된 우리 이웃을 상징한다.

반면 진성은 승려로서의 자세를 끝까지 견지하며 세상이 혼탁하면 할수록 더욱더 용맹정진해야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두 구도자는 처음엔 반목하다가 나중엔 서로의 길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세속의 온갖 괴로움을 몸으로 겪으면서 순녀가 그리워 한 것은 절이며, 절에서 구도자로서 항상 염두에 두었던 것은 고통받는 중생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자성의 깨침과 중생제도라는 불교의 두 측면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영화임을 알수 있다.

이러한 영화들은 여성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으로 긍정적으로 묘사된데 반해, 두 번째 유형의 영화들에서 여성은 극히 수동적이며 깨달음과 불도 수행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만다라>에서 구도자 이야기의 상당부분은 애욕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지산에게는 젊은 여자와의 갈등을, 법운에게는 어머니의 외도와 어머니와의 정을 끊을수 밖에 없는 그의 갈등을 담고 있다. 영화 <꿈>은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으로서 조신이 달례와의 사랑을 실현시키기 위해 절에서 탈출하며, 달례와의 행복한 생활과 그것을 방해하는 평목 스님과의 갈등. 결국 평목 스님을 죽이고, 이어서 달례의 정혼자였던 모례의 등장. 사냥을 나온 모례가 조신을 발견하고 그를 체포하여 교수형에 처하려는 순간 놀라서 깨는 장면. 마침내 그 모든 것이 한바탕 봄날의 꿈이었으며 인간 세계 욕망의 무상함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로 되어있다. 신상옥 감독은 같은 소재를 두 번이나 만들 정도로 애착을 갖고있었던 작품이며 배창호 감독도 영화화한바 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봄날에서 시작하여 봄날로 끝난다. 인간의 봄날의 백일몽은 애정의 욕망을 상징하는데, 영화에서는 그것을 경계하는 식의 교훈성을 부여한다. 여성은 남성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며 그건 불도 수행에서 당연히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교훈성이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는 아예 여성이 등장하지 않음으로서 불교적 깨달음의 과정에 여성은 개입조차 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외에 세 번째 유형으로는 우화적인 불교영화인 이유로 여성 역시 우화 속의 인물로 그려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화엄경>에는 선재동자의 구도행각 가운데 여러 여성을 만나게 된다. 이련이라는 소녀는 나중에 선재와 다시 만나고 결혼하게 되는데 남녀의 조화로운 삶을 암시하는 존재로 등장하며, 눈먼 거지 여인은 참회와 용서의 미덕을 가르쳐주는 부처와 같은 존재로, 마니라는 여인은 상상과 환상 속에 존재하는 애욕과 유혹의 상징체로 등장한다. <산산히 부서진 이름>에서는 사미승 침해와 사미니 묘혼과의 애틋한 사랑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불교가 지향하는 중생제도에 대한 커다란 주제를 잔잔하게 전달한 소품이다. 묘혼을 우연히 보게된 침해가 가슴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지만, 묘혼은 결국 침해를 멀리하고 불도에 정진하며, 침해는 절을 떠나 속세로 내려오게 된다는 단순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유형 속에서 여성은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고, 그 각각의 묘사는 영화의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글은 「여성불교」에 게재한 것임을 밝혀드립니다.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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