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엄경』
「보살설계품」에 다음과 같은 4구의 게송이
나온다.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일
삼세의 모든 붓다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本性)을 관(觀)해서 일체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유명한 『화엄경』의 4구게(四句偈)다.
과거·현재·미래의 붓다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관(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일체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붓다나 중생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마음 작용에 의해서 생겨난
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볼 수 있으면 그 사람은 곧 참붓다(眞佛)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간단한 듯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는데,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말로서 그렇게
할 수 있고 머리로도 그렇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몸과 마음으로 확실하게 깨달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60화엄경』에서는
응당여시관 심조제여래(應當如是觀 心造諸如來)라
한 것을, 『80화엄경』의 역자(譯者)는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로
표현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같은 것임은 곧 알 수 있다.
『60화엄경』에
나오는 이 4구게(四句偈)는 옛날부터 지옥까지도
깨버릴 수 있는 파지옥게(破地獄偈)로
유명하다.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이 4구게(四句偈)를 염송한 공덕으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인연설화를
법장(法藏)스님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당(唐)나라
문명원년(文明元年)인 648년에 수도 장안(長安)에
왕(王)이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살아 생전에 크게 선한 일을 한 바도 없고
계율을 잘 지킨 일도 없었다. 그럭저럭
살다가 병이 들어 죽었다. 두 사람의 지옥사자에게
이끌려 지옥문 앞에 당도하니, 그곳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있었다. 지장보살은
왕씨에게 부지런히 염송(念頌)하라며 게송(偈頌)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60화엄경』에 나오는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당여시관(應當如是觀)
심조제여래(心造諸如來)
라는
여래림보살의 게송이었다. 지장보살은
왕씨에게 이 게송을 가르쳐 주면서 이
게송을 열심히 외우면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왕씨는 지옥에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서 이 게송을
밤낮 없이 열심히 외웠다. 며칠 후 염라대왕
앞에 끌려 나아가게 되었는데, 왕씨를
본 염라대왕은
그런
게송을 염송해서 도대체 무슨 공덕이 있는가?
하고
묻더라는 것이다. 왕씨는 예, 저는 그저
일념으로 염송할 뿐입니다.하고 대답했더니
염라대왕은 왕씨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고
한다.
3일
후 소생한 왕씨는 그 게송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왕씨는 절에 가서 스님들에게
그게 도대체 무슨 게송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것은 『화엄경』에 나오는 게송이라고
가르쳐 주더란다.
그
후 왕씨는 자기의 경험담을 공관사(空觀寺)의
승정법사(僧定法師)에게 자세하게 얘기해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설화에 의해서 이 4구게(四句偈)는
파지옥게(破地獄偈)라 불리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 게송을 외우기만 하면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요즈음
실직자가 100만이 넘는다고 한다.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자리를 잃고 거리를 헤매야
하는가.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무엇에
의해서 좌우되는가. 신의 뜻인가, 남의
탓인가, 우리 자신의 업보 탓인가, 아니면
이 시대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 탓인가. 공업 때문이라면 그
공업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생각할수록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일체유심조의 참뜻을
깊이 생각하면 해답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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