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10살이었던 해 겨울방학이었습니다. 저와
저의 형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낯선
경상북도 상주의 산중에 있는 갑장사라는
절에서 방학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생업이 바쁘시다 보니 방학동안 이나마
잠시 저희가 지내야 할 곳이 필요했었습니다.
마침 부모님이 불교신자이시고 또 갑장사라는
절이 부모님과는 인연이 있던 터라 그리
어렵지 않게 절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와 갑장사와의 본격적인 인연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갑장사는
상당히 역사가 깊은 절이었습니다. 고려
공민왕 22년(1373년)에 창건했다고 하니
꽤나 오래된 절이지요. 이 절은 상주의
연악산(보통 갑장산이라고 부른다)의 정상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데 산자락이 절을
둘러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절을 볼 수 없습니다. 또 아침에 안개라도
생긴 날이면 절 오른편의 상사바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본 풍경이 마치 하늘 위에서
신선이 속세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합니다. 이곳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더렵혀지지 않은 자연의 고요하고 깨끗한
풍경(風景)의 그윽한 소리에 있습니다.
그
절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 그곳에는 두
명의 젊은 스님이 절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세분의 공양주 보살님과 두 분의
절 바깥 살림을 맡아 보시는 처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 두 처사님 중의 납루한
작업복 차림의 한 분인 늙고 절 일을 많이
하는 분이 이상하게도 일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된 사실인데 그 늙은 처사님이 바로
갑장사의 주지스님 이시라는 점과 평소
작업복 차림을 하신다는 겁니다.
절에
머물게 되면서 저의 거처는 주지스님께서
사용하시는 방 옆의 자그마한 방이었습니다.
옆방이긴 했지만 미닫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옆방의 인기척이 고스란히
들려 올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에 스님의
연세는 상당히 높으셨고 저는 워낙에 어렸던지라
잠버릇이 좋지 않았던 저 때문에 스님이
많이 놀라셨다고 합니다. 절에서 지낸
시간이 늘어갈수록 노스님에 대한 친밀감도
더해갔습니다.
어느날에는
스님하고 시내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이 워낙 깊은 산중에 있고 교통편도
좋지 않기 때문에 길을 한 번 나서기가
그리 쉽지 않은 곳입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느새 해질녘이
되었고 아직도 절에 도착하려면 한참이나
가야 했습니다. 그곳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그야말로 두메 산골이었고 캄캄한
밤 산행을 하려니 어린 나는 무척이나
무서웠습니다. 이때 스님의 포근하고 여유로운
모습은 내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또 스님은 항상 요술주머니를
차고 다니셨습니다. 어느 때고 잠시 쉴
기회만 생기면 어린 저에게 맛있는 과자를
꺼내 주시면서 이번엔 뭐가 좋을까?하시며
그 요술주머니를 뒤적이곤 했습니다. 정말이지
어린 나의 마음에 따뜻하고 인정많은 할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노스님은
특별히 잘 하시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배드민턴과 스케이트 그리고 유도, 검도에
몇 가지 악기도 다루신 답니다. 연세 높으신
어른이지만 아마도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셨던가
봅니다. 특히 스케이트의 경우는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대구의 한 아이스링크에
스케이트를 타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저도 상당히 힘이 들었는데
일흔을 넘기신 노스님이 네 시간 가량을
거의 쉬지 않고 타시는 것 아닙니까!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정정한 모습이
매우 보기 좋았습니다.
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젠 방학을 갑장사에서
지내고 오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한해가 지날 때마다 조금씩 굽어가는 노스님의
등허리를 볼 때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지난 11월에도 얼마간 갑장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노스님은 항상 절
수리며 안팎으로 살림을 돌보셨습니다.
뭐 그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
날도 역시 일에 열심히신 스님의 모습을
보고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하고 여쭈었습니다.
웬만해서는 다른 손을 빌리지 않으시는
스님이 그 날은 달랐습니다. 이 핼애비가
이젠 늙고 힘이 없어서 좀 도와주면 좋겠구나.하고
말씀을 건네신 것입니다. 나는 처음으로
스님이 나에게 핼애비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그건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으로
불러오던 스님에 대한 호칭이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스님에게 헤아릴 수 없이 따뜻한
감동을 받았다.
내
마음속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노스님도
이제는 어느덧 여든을 눈앞에 두고 계십니다.
스님의 얼굴에도 어느새 세월의 흔적들이
늘어나고 그런 스님을 바라보는 나는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사람이 나고 자라고 늙고
언젠가는 돌아가는 것이 이치입니다. 하지만
내 마음의 고향이 점차 시들어 간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님,
할아버지, 이 어린 손자가 이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합니다.
제가 어른이 되고 장가가는 모습도 보셔야
됩니다. 스님이 제게 들려주신 따뜻한
음성, 제게 베풀어주신 한없는 은혜에
보답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건강하셔야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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