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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세계

"범 망 경"

이 만/불교문화대학 교수

 

부처님 당시의 인도 사상계는 많은 사상들이 난립되어 있었다. 불교에서는 이를 62견(見)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당시 바라문교 이외의 새로운 사상의 대표적인 것만을 추려서 6사외도라 하기도 했다. 불교경전 중에서 이러한 비불교적인 사상만을 언급한 것으로는 사문과경(沙門果經)과 범망경(梵網經)이 있다. 사문과경이 6사외도를 소개한 데에 비하여, 범망경은 외도의 62견을 설명한 것이 그 특징이다.

그러나 범망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경전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초기 경전에 속하는 것으로 팔리어로 적힌 남방 상좌부의 경장인 5니카아야 중의 장부(長部)의 제1경으로서, 한역으로는 장아함 제14경인 범동경(梵動經)과 범망육십이견경(梵網六十二見經)이 이에 해당된다.

이 아함에 속하는 범망경은 외도의 62견을 기록하여 그것을 논파함으로써 불교의 우수성을 천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사문과경과 마찬가지로 석가세존 당시 사상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 경전은 내용상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세인들이 여래를 찬탄할 때에 단지 계만으로 하는데, 그러한 것은 당시의 바라문 사문들이 행하던 것이라고 지적하고 소계·중계·대계로 나누어 설한다. 제2부에서는 여래가 스스로 깨달아 체현(體現)하여 설하는 매우 어렵고 미묘한 제법이 있는데, 이를 통해서만 사람들은 진실로 여래를 찬탄할 수 있다고 설한다. 이 법을 설명하여 우선 62견의 제1론, 즉 상주론의 4견을 소개한 다음, 여래를 여실하게 참된 의미로 찬탄할 수 있는 길을 설한다. 62견은 정통 바라문 철학의 모든 학설과 일반 사상계의 여러 주장 등 당시 유포되던 비불교적인 여러 견해들을 망라한 것으로서 2류 8론으로 분류된다.

다른 하나의 범망경은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대승 불교권에서 널리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서 구마라집이 번역한 범망경이다.

이 경전은 보통 범망보살계경 혹은 보살계본으로 불리지만, 정확한 제명은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梵網經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 제10이다. 이러한 제명이 붙은 이유는 “범망경의 광본에서 보살의 계위와 계율에 관한 제10 보살심지(菩薩心地)의 1품만을 송출한 것이 이 경전이다.”라는 구마라집 역의 범망경 서문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경전의 이름을 범망이라고 한 것은 여러 부처님들의 설법이 듣는 이의 근기에 따라 베풀어짐이 마치 병에 따라서 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새지도 않게 하는 것이 대범천왕의 인다라망(因陀羅網)과 같다는 뜻에서 연유된 것이다.

이 경전의 이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경록(經錄)인 승우의 출삼장기집 권11에 수록된 작자 미상의 보살바라제목차후기(菩薩波羅提木叉後記)에서 발견되는데, 거기에는 천축의 구마라집 법사가 이 계본을 송출한 점, 그리고 이것이 범망경 중에 수록되어 있음을 구마라집 자신이 말한 점, 또한 이것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대소승 경전 50여부 중의 하나로서 최후의 송출이라는 점 등을 기록하고 있다. 여하튼 구마라집역의 범망경은 대승보살계를 설한 경전으로서 대장경 중에는 대승율부에 속하며, 상하 2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에서는 10발취(十發趣)·10장양(十長養)·10금강(十金剛)·10지(十地) 등 보살 수도의 40위를 설하고 있으며, 하권에서는 10중(重) 48경계(輕戒)를 설하고 있다.

이 경전의 교주는 노사나불이고, 화신불인 석가모니불이 다시 중설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교판상 이 경전의 위치에 관해서는 예로부터 여러 가지의 이론이 있어 왔지만, 전체적으로 화엄경에서 설하는 것과 상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화엄경의 사상을 마무리한 것으로 단정하는 천태대사의 주장이 정설로 되어 있다.

특히 하권에서 설하고 있는 대승계의 작법과 보살의 집회작법(集會作法) 등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10중 48경계이다. 법장이나 천태 등이 모두 이 하권만을 인용하여 주석서를 지은 것도 이 경전의 주된 취지가 바로 여기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10중계는 살생하지 말 것, 남의 것을 빼앗거나 훔치지 말 것 등 10조로서 보살선계경의 8중계, 우바새계경의 6중계에서 채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범망계는 단지 잘못을 막고 악업을 그치게 하는 면만을 볼 때는 소극적인 자리행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작선(作善)을 포함하고 타인을 가르쳐 인도한다는 대방편의 참뜻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보면 이 경전은 바로 부처님의 자비의 극치로서 모든 대승계의 진면목인 섭율의계(攝律儀戒), 섭선법계(攝善法戒), 섭요익중생계(攝饒益衆生戒)라는 3취정계(三聚淨戒)의 본의를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구마라집 번역본에 대한 주석서로는 우선 중국에서 수 나라 지의의 범망경의소 2권, 당 나라 법장의 범망경보살계본소 6권, 승장의 범망경술기 4권, 명광의 천태보살계소산보 3권 외에도 현장, 지주, 비욱 등의 주석서가 있고, 신라에서는 원효의 범망경사기 2권, 태현의 범망경고적기 3권과 범망경종요, 의적의 범망경본소 3권 등이 있는데, 지의, 법장, 태현의 주석서가 후세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고, 명광의 것은 천태 지의의 범망경의소를 다시 주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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