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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

“산신기도"

이법산 스님/ 서울캠퍼스 정각원장

 


불교에서 산신(山神)을 섬기는 마음은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정신에서다. 산은 많은 생명들의 의지의 체(體)이다. 산은 많은 생명들을 감싸주고, 생명의 원동력을 제공해 주고, 생명이 태어나고, 생성(生成) 변화(變化)하여 돌아갈 가장 편안한 안식처(安息處)다. 산은 수행자들의 은신(隱身)처로서 산에서 수도하여 깨달음을 얻고 비로소 위대한 성자가 된다. 입산수도(入山修道)라는 말은 산이 곧 진리의 원천이며, 깨달음의 보배 장소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산신각(山神閣)에 가서 문을 열면 하얀 머리를 상투로 잡아 메고 하얀 수염을 길게 드리우고 주장자를 세워 집고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모셔져 있으며, 그 옆에 호랑이가 앉아 있다. 할아버지는 인간의 마음에 무언가 자기와 닮은 모습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자비의 표상으로 나타낸 인물이며, 호랑이는 짐승 중에 가장 영특한 영물이므로 산을 지키는 상징으로 삼고 있다.

부처님의 모습이 나라에 따라서 그 모양과 표상을 다르게 모시고 있으며, 그 신선함에서 자기 자신의 의지처를 삼아 자신의 심기(心氣)를 양생(養生)하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산신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 신을 나투신 성자(聖者)로 섬기고 있다. 산신청(山神請)의 거목(擧木)에서,

‘만가가 덕이 높고 수승하시며 성품은 모두가 고요한 산왕대신(萬德高勝 性皆閒寂 山王大神)’께 귀의한다고 하며, ‘이 산에서 항상 머물러 계시는 큰 성인인 산왕대신(比山局內 恒住大聖 山王大神)’께 귀의하고, ‘시방법계에 지극히 신령스럽고 지극히 성스러운 산왕대신(十方法界 至靈至聖 山王大神)’에게 귀의합니다.

하고 공경히 청원한다.

그리고 모시는 말씀(由致)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간절히 바라건대 산왕대성(山王大聖)께서는 가장 신통스런 영감으로 위의와 용맹을 갖추셨네. 용맹을 들어내는 곳에서 삿된 것을 꺾고 마근을 항복 받으며, 신령스러울 때는 재앙을 소멸하고 복덕을 내려주시니 구한 것이 있으면 다 따라주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쫓아 주지 않음이 없네.”

하며 산왕대신을 칭송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호랑이는 용맹을 상징하며 할아버지는 신령함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산신기도를 할 때는 산신각에 모셔진 호랑이와 할아버지를 우러러보면서 기도하는 자신의 용맹과 신령함을 양생하는 것이다.

산신기도는 다른 어느 기도보다 더 까다롭다. 기도하는 날을 받아 3일이나 7일, 길게는 21일 정도로 그 기간을 정하고 비린내 나는 음식을 가능한 한 금하고, 채식을 하는 것이 좋으며, 기도할 때는 산신단에 올리는 공양물은 모두 곡물이나 싱싱한 채소로 장만하여 진설한다.

기도 스님께서 마지 올릴 때 의식을 집전해 주면 좋으나 부득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스스로 의식을 집전하는데, 천수경을 외고 마지 공양 올리고 나서, “나무만덕 고승 성개한적 산왕대신”을 부르며 마음으로 용맹과 신령스런 덕성을 갖추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기도 시간은 근기에 따라 하루 3∼4시간 정도 하면 된다.

산신기도를 하면 용맹으로 신심을 다지고, 신령스러운 지혜를 갖추고, 덕성스러움으로 교화할 수 있는 힘을 양성하게 된다. 그래서 산신기도는 잘하면 무엇인가 하나는 속히 성취할 수 있지만, 만약 기도 중에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곧 스스로 어딘가에서 괴로움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산신청의 가영(歌詠)에서 이렇게 공덕을 노래한다.

영축산 회상에서 옛날 부처님께서 부촉하시니,

위엄을 온 강산에 떨쳐 중생 제도하시네.

만리의 흰 구름 푸른 산봉우리 싸고도니,

구름수레 학 가마 한가히 오고가네.

靈山昔日如來囑   威鎭江山度衆生

萬里白雲靑唵裡   雲車鶴駕任閒情

이 가송에 의지해 보면 불교에서는 산신을 부처님께서 부촉한 중생제도를 위한 보살이나 성문·연각승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본래 불교에서 산신이니 칠성이니 하는 잡된 신앙을 하도록 다신론(多神論)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나 한국에서 민속 정통의 토속신앙을 포용하여 깨달음의 자아완성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이를 수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불교 교리에서 보면 어느 한 물건도 깨달음의 계기를 줄 수 없는 것이 없다. 중생의 마음은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부처님의 대승사상에 입각해서 본다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은 중생의 숫자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천병만약(千病萬藥)이라고 했듯이 중생의 병을 고치는 약의 숫자도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토속신앙을 불교로 습합하여 깨달음으로 이끄는 의미를 부여하여 기도하면서 마음을 고요히 하고 밝혀갈 수 있는 일이라면 이 또한 좋은 불교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절에서는 산신각이 대부분 대웅전 뒤에 있다. 대부분 조그마한 전각으로 세워져 있지만, 어떤 절에는 법당 안에 산신을 모신 곳도 있다. 어찌되었든 산이 많은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산신을 믿는 것이 당연한 전통신앙이었을 것으로 볼 때, 불교에서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는 본연의 인간성을 개발하여 참된 삶의 미래를 정토세계로 승화시키는 의지로 본다면, 산신 신앙을 단순히 미신적 토속신앙이라고 치부해 버려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기도든지 일심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고 지혜를 밝게 빛내어 참된 깨달음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반드시 인간에게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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