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정각도량 / 5월호 / 통권 55호 / 불기 2544(2000)년 5월 1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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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의 현대적 의의 / 채인환 스님 전 불교대학 교수

이 세상 모든 것이 홀로만 있을 수가 없고 여러 갖가지 인연이 모여서 생겨나고 또 있게 된다. 따라서 사람도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해 있는 것도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땅에서 솟은 것 아니며, 나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고, 그 아버지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으며, 그와같이 약 10대만 위로 거슬러 올라가도 그 수는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어떠한 관계로든지 서로 연분이 걸리지 않는 데가 없다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그만한 수많은 인연들이 쌓이고 모여서 내가 이 세상에 탄생할 수가 있었다는 것이며, 또한 내가 지금 먹고 입고 쓰고 있는 그 모든 것들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니며, 땀 흘려 농사를 지었고,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주었고 또는 유통과정에서의 여러 많은 손을 거치는 등의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은공에 힘입어서 먹고 입고 쓰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니 다시 말해서 내가 잘나서 혼자 힘으로 태어나 살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많은 사람들의 은혜에 의하여 살려지고 있다고 함이 옳을 것이다.

한문의 <人間>이라는 글자가 보여주고 있듯이 우리는 모두가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있으면서 살고 있고, 사회 속에 있으면서 여러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남을 믿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믿을 수가 없어서 그야말로 인간 부재라고 할만한 상태를 만들어 놓고 살고 있다. 특히 현대인은 애써 이웃 사람에 대하여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려 하기가 일쑤이고, 혹은 그 반대로 관심을 보일적에는 도리여 어느 누군가에 대한 경계의 감정으로 대하며 끊임없이 어떤 적을 의식하면서 거기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김으로써 자기들만의 단결을 도모하려는 방식으로 사는 삶이 오늘날에 너무나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현대사회 속의 생활 가운데서 사람들은 갈수록 개인주의적으로 독선적으로 나아가면서 올바른 인간관계를 귀찮은 것으로 외면하려 든다. 자기에게 이익되는 사람은 좋아하나 이해가 엇갈리는 사람에게는 미움으로 대립한다. 즉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만을 중심 삼아서 사랑과 미움의 관계가 쉴새없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 현대인들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라 하겠다.

그런 때 부처님은 이렇게 가르치신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가장 존귀한 생명을 받아 만나기 어려운 단 한번의 지금의 이 귀중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찌 남을 미워함을 살아가는 힘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 마음 돌려 자비를 의지할 바로 삼아야 한다고. 만약 한 사람을 진실로 믿고 살 수가 있다면, 만인을 그리고 일체중생을 믿고 사는 길이 열릴 것이며, 만인을 그리고 일체중생을 믿고 사는 일이 또한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을 더욱 깊게 할 것이다. 그러니 미움도 고움도 넘어서면 모두가 다 같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되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야 진정한 인생을 살다가 갈 수가 있을 것인가. 이것을 바로 깨달아 아시고 그것을 남김없이 모두에게 그 길을 열어주시고 보여주시고 바로 알게 하시고 행하도록 가르치신 거룩하신 큰 스승님, 그분이야말로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그 분은 그 일을 하시기 위하여 부처님 오신 날 우리들 곁에 오신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살아가면서 참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어렵다기 보다는 나와 남을 비교해 봄으로써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갖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욕구불만을 터뜨리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게 된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항상 외형적인 모양새를 세우거나 물질적인 욕망을 채워서 만족함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물질은 어디까지나 물질이지 그것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허황한 이름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도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적절히 만족할 줄도 모르고, 참고 견딜 줄도 모르고, 기회가 오는 것을 기다릴 줄도 모르고, 근기와 시절인연이 익어지는 것을 바랄 줄도 모르는 그런 현대인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그런 때 부처님은 이렇게 가르치신다. 산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지 물질이 그리고 명예 등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명리 즉 명예나 물질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에 지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이나 물질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것만을 오로지 쫓아다니며, 거기에 끌려 다닌다. 그래서 스스로 내면적인 진정한 만족을 얻을 줄을 모른다. 그것은 항상 나만 나만, 내 것 내 것 하면서 나만을 위하던 그 내가 깨어져 없어지는 데서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것은 생멸변화하는 것, 즉 생겼다 없어졌다 또 없어졌다 생겼다 하면서 시시 각각으로 변천해서 그대로 있지 못하는 것이니 따라서 그것은 임시로 있는 것이요, 염원하지 못하고 오래 가지도 못하는 것이요, 가짜임으로 진실하지 못한 것이요,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허망하여 무상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 실체가 무상한 존재인 이 몸을 내 것이라 하고, 그것을 의지하여 작용하던 갖가지 생각을 나라고 착각하고 집착해서 나만을 내세우고, 내 것만을 주장하고, 나만을 위해 돈과 물질로 가득 채우려는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데에 현대인들의 고민이 있고, 현대사회가 병드는 원인이 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진실한 자기를 확립하고 있는 사람은 공연히 외면적인 명예나 물질만을 구하는 데에 허덕이거나, 거기에 끌려다니는 일이 없다. 진실한 나를 바로 깨달아 아시고 확립하시어 그것이 누구에게나 본래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임을 밝혀서 그것을 아낌없이 남김없이 모두에게 열어 보여주시고 바로 알아 행하도록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오신 거룩하신 큰 스승님, 그분이야말로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그 분은 그것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부처님 오신 날 우리들 앞에 오신 것이다.

우리들은 교육을 받아서 여러 가지 학식과 지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사람에게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지에 가깝도록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즉 어째서 살고 있는가. 어떤 것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하게 심각하게 생각하며 고민하는 사람을 현대사회에서 보기가 매우 드물다. 지금 우리의 주변에는 마음과 몸이 제 각기 놀면서 신체만 비대하여 정신적 성장과 성숙이 뒤따르지 못하거나, 물질적 감각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면에만 쏠려서 정신적 충족감을 잊고 있거나, 대립적인 것을 상대하는 데에만 마음이 사로잡혀서 안목이 좁아진 나머지 사회전체나 인류와 세계 모두의 평화와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이 닫혀져 있는 것이 현대인들의 맹점이다.

그런 때 부처님은 이렇게 가르치신다. 이른바 합리주의가 도리어 인간을 불안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세계의 상황이다. 우리들은 자기의 의지에 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헤아릴 수도 없고 무어라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커다란 근원적인 것의 힘에 의하여 이 생명을 받아 나온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근원적 생명이다. 법신이다. 무량수불·무량광불이다. 또는 자성·본성·법성·불성이다. 진여·여래장이다. 진리다 신이다 하는 등 여러 가지 이름 붙여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요컨데 그러한 우리들의 생명의 근원이며 영원한 힘의 원천을 바로 보고 깨달아 할 수 있는 지혜광명을 개발하여 대자유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집만이 발달하고 한없는 욕구만이 치성한 동물적인 인간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서 벗어나 육체와 정신의 균형이 잡히고 사상과 행동이 조화를 이루어서 그것이 인간의 평화와 행복과 결부되어지는 그런 삶이야말로 바람직한 인생이요 살맛나는 사회를 이루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시기 위하여 깊은 선정에서 분명하게 살펴 보시며 알뜰이 사색하시어 그것을 바로 그대로 남음없이 몸소 실행하여 가르쳐 보이신 거룩하신 큰 스승님, 그 분이야말로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그분은 그것을 보이시기 위하여 부처님 오신 날 이 세상에 출현하신 것이다.

우리들은 사회의 거대한 조직속에 끼어서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되었고, 대중가운데 섞여서 다수 속의 고독과 풍요 속의 권태를 느끼면서 자기가 처해 있는 가정에서나 직장 속에서나 교우관계에서나 대인관계에서나 그저 그 날 그 날을 지내면 그뿐이라는 식의 안이한 기분 속에 젖어들어 있는 것이 현대인들의 생활방식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물질생활의 풍부함과 절박한 위기감이 별로 없는 사회에서 겉보기만의 행복에 빠져 있는 것이 현대인들의 타성이다.

그런 때 부처님은 이렇게 가르치신다. 우리들은 결코 기계의 일부분으로 톱니바퀴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커다란 힘에 밀려서 인형처럼 움직이고 있다가 보면 어느새 밀려나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밀려난 것 같아도 결국은 부처님 세계 속에, 부처님의 커다란 생명 가운데에 밀려나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인생의 길을 걸어서 진실한 행복을 얻으라는 부처님의 커다란 자비원력 속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그대로 자기 발견이며, 자기 자신의 구원이며 나아가 중생제도이다. 그러한 부처님의 위대한 참 생명과 대자대비한 원력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며, 그러한 우리들이 또한 이 생명이 다하도록 하여야할 막중의 사명이 있다. 즉 부처님의 사홍서원을 바로 나의 원으로 삼을 때, 비로소 일 개인의 생명에 진정한 사명감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어느 곳에 사는 누구에게라도 변함없는 현대인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이다. 언제나 조화가 이루어지고 균형있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진정으로 행복한 생활을 이루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여 정진하시고, 그것을 모자람 없이 이루시고 아낌없이 가르쳐 남겨주신 거룩하신 큰 스승님 그 분이야말로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그 분은 우리에게도 그것을 이루게 하시기 위하여 부처님 오신 날 중생의 인연따라 오신 것이다. 이번 불기 2544년의 부처님 오신 날을 다시 맞이하여 깊이 있게 부처님 오신 날의 현대적 의의를 짚어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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