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정각도량 / 5월호 / 통권 55호 / 불기 2544(2000)년 5월 1일 발행
1 2

부처님 탄생의 종교사적 의미/ 김용표 불교대학 교수

칼 야스퍼스는 인류의 정신문화사의 획기적 변화의 시기로 축(軸)의 시기 (Axial Period)론을 제안한 바 있다.  축의 시기는 대략 B.C.E 800년-200년 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이 시기에  부처님을 비롯한 마하비라, 노자, 공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조로아스터, 엘레미야, 이사야 등 위대한 성인들이 나타나 이기적인 종족 중심주의에만 빠져있던 인류에게 보편적 사랑과 무한히 확대된 우주적 진리를 밝혀주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현자들은 도(道)의 개념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였으며 천명( 天命)을 인간의 윤리로 규범화하였다. 우파니샤드 시기의 인도인들은 아트만의 발견을 통해 해탈의 길을 찾았다.  서양의 그리이스인은 궁극적 실재의 인식 방법으로 로고스를 발견하였으며, 이스라엘인은 인격적 절대신에 대한 신앙을 통한  구원의 길을 찾았다.  이와 같이 축의 시기는 인류 종교사에서 보편적 고등 종교 철학사상이 정립된 시대라고 할 것이다.

고오타마 붓다도 이 시기에 카필라성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여 35세에 성도한 후 45년간 설법하였다. 그의 설법 양식은 기존의 예언자적 진리 선포와는 판연히 달랐으며, 설법의 내용도 형이상학적 진리가 아닌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붓다는 교권주의는 물론 도그마적 진리 주장,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 계급 제도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한 성인이었다.  그러면 붓다의 종교는 인류의 정신사에 있어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첫째, 붓다는 무엇보다도 신으로부터의 자유와 인간의 위대함을 선언하였다.  세계의 중요한 종교들의 중심 개념이었던 창조신이나 주재신 등의 실재성을 부정하면서, 여래는 이러한 신의 개념에서 자유로워졌다〔장부경전: 브라흐마자라경(梵網經)〕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붓다는 인간은 신의 의지에 복종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은 진리에 의지해야 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불교를 제외한 대다수 종교의 가르침은 신적 실재나 궁극적 실재에 대한 신앙에 기초해 있다. 이에 반하여 불교는 궁극적 실재의 개념 자체의 해체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실체론적 사유와 연기론적 사유의 패러다임의 차이라 할 것이다.  붓다는 이 세계는 연기의 법칙에 따라 운행되고 있음을 설파하였다.  여래가 이 세상에 나타나든 출현하지 않든 간에 연기법은 존재하는 것이며, 여래는 다만 이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드러내 보이고 가르쳤을 뿐이다.    

둘째, 붓다는 지혜의 깨달음을 통한 해탈의 길을 제시했다.  붓다는 여래의 깨달음에 대한 믿음(Tatagata bodhi saddha)을 강조하였다. 열반이란 믿는 것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가 없는 믿음은 맹목적인 길로 잘못 인도될 수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믿음은 필요하나 충분치 않다고 보는 것이다.  바른 이해와 실천과 균형이 될 때 바른 깨달음이라는 목표에 도달 할 수 있는 것이다. 붓다는 깨달음은 누구나 가능한 것임을 보여 주었으며, 누구나 초월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고도 자기 내면의 빛을 투시함으로써 완전한 자아를 실현할 수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셋째, 붓다는 이성적 신앙의 길을 제시하였다. 그의 제자들이 자신에 대한 맹신을 갖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스승의 인격에 대한 완전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스승인 부처 자신의 행동도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한다고 설했던 것이다. 이러한 교권주의적 카리스마의 배격에 대해 프랑스의 불교학자 마담 데이비드 닐은 위대한 세계종교의 창시자중에서 부처님만이 오직 그 스승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한 성인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칼라마경에는 거듭 들어서 얻은 지식이나 소문이라 해서, 전통이나 종교적 권위를 지닌 성전 때문에, 추측이나 그럴듯한 논리 때문이나, 이것은 우리 스승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어떤 교설에 이끌리지 말라라고 설함으로써 불교가 이성적 비판정신과 자유로운 진리 탐구의 태도를 가르치는 종교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넷째, 붓다는 인간의 평등과 자유, 다른 존재에 대한 관용과 평화의 덕을 가르쳤다. 이러한 의미에서 불교에는 현대 민주주의 이념이 이미 모두 내포되어  있는 종교라 할 수 있다.  불교는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자유와 평등과 박애, 그리고 평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사상과 탐구의 자유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 인종적 계급주의나 성차별 등에 반대하여 만인의 평등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이와 같이 고오타마 붓다는 세계종교사에 있어서 다른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가르침과 이에 따른 교단 전통을 형성하였으며 이천 오백여년 동안 인류 정신사를 인도해 온 등불이 되어 왔다.  비록 부처님 당시의 세계와 현대의 세계는 큰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붓다의 가르침이 지닌 보편성과 역동적인 힘은 미래문명 세계에도 인류에게 생명의 빛을 주는 무진등(無盡燈)이 될 것이다.  

 
webmaster
서울캠퍼스: (02)260-3015 3016 (Fax) 268-2314
경주캠퍼스: (0561)770-2016 (Fax) 770-2015
동국대학교 정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