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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정각도량 / 3월호 / 통권 29호 / 불기 2541(1997)년 3월 1일 발행

 

 

고승법어

수계의 의미/녹원 큰스님

 

정각도량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도업 스님

 

정각논단

관자재/ 윤주억

 

교리강좌

윤회와 업/ 정승석

 

경전의 세계

사십이장경/이만

 

동국과 불교

학과증설과 단과대의 확장/ 이봉춘

 

일주문

정신 좀 차립시다/ 법산 스님

 

생활 속의
불교어

기도 / 편집부

 

전등이야기

청원행은과 석두희망/ 성본 스님

 

불자탐방

황영수 비서실장/ 편집부

 

불심의 창

부처님이 도와주신 금연/ 이금석

 

가람의 향기

해남 대흥사/ 편집부

 

비유와 설화

불심의 큰 위력/ 조용길

 

열린마당

자아와 명상의 공덕 / 김현규

 

신행 상담

무명/ 계환 스님

 

불교 건강법

저리십니까/ 김장현

 

 

 

 

고승법어
수계의 의미 /  녹원 큰스님

 

풍요와 넉넉함이 우리들의 가슴에 사무치게 하는 좋은 때를 맞이해서 우리 전 동국인 여러분을 위해서재가불 자 오계(五戒)를 설하게 된 것을 더 할 수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고 또한 부처님의 크나큰 은혜로생각합니다.

원래 수계(受戒)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 비고 . 비구니의 출가 이부대중을 위해서 계명을 주는 엄숙한 수계 식이 있고, 그 외에 여러분과 같이 사회생활을 하는 선남선녀인 재가불자 이부대중을 위해서 하는 수계 식이 있습니다.

이 계(戒)라고 하는 것은 우리 불교에서만 주어진 것이 아니고, 모든 종교에서 그 종교가 갖는 교리(敎理)의 도덕적인 핵심을 담은 계가 개신교의 십계명 같은 것입니다.

우리 불교에도 계가 있는데, 그것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매우 다양하고 또한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바른 깨달음을 얻으신 후에 우리 중생들에게 가장 먼저 이익되게 한 것이 바로 계명(戒名)입니다,

이 계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과 45년 동안 설한 내용을 성문화시킨 것은 팔만대장경이고, 그 후에 그 경 전 의원본을 사람마다 수준과 근기에 알맞게 종힁무진으로논리정연하게 부가설명한 것이 논(讖侖)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생활에서 가장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도덕적인 방면으로 우리에게 설시(說示)해 주신 내용이 바로 계명입니다. 그래서 계는 출가 이부대중은 250계.348계 내지 500계가 있어 자세하고 엄중합니다. 그런데 재가불자 이부대중은 이와 같이 많은 계명은 필요하지 않고 또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용기와 바른 생각과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계를 주신 것이 있는데, 그것이 재가불자가 불,법 .승 삼보(三寶)에게 귀의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엄수하면서 인간답게 남에게 이익을 끼칠 수 있는 하나의 빛이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설시해 주신 것이 재가불자의 오계입니다.

많은 계명이 있지만, 모든 계명도 이 오계에서 가지가 뻗어 나가고 또 자세하게 분석해 놓았기 때문에 자세한 것만 다를 뿐, 기본적인 뿌리는 오계에서 뻗어 나갑니다.그래서 이 계는 오늘과 같이 일정한 공간과 시간에서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아서 우리 생활에 십분 활용하는 지혜가 더 중요합니다.

만약에 이 계를 받아 가지고 우리 생활에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보배 산에 가서 보배를 얻어 가지고 집에 가지고 가서 아무데나 던져 놓고 활용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계받은 의의가 없습니다.

전기는 스위치만 누르면 광명을 함께 받을 수 있습니다. 어둠은 가시고 밝은 공간을 볼 수 있지만, 충전된 전기가 있는데도 여러분이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방치해 두면 전기는 무용지물이(無用之物) 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계명을 받아서 바르게 활용하는 일도 그와 같아서 전기를 가까이 두고 어두운 방에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안 되는 전제위에서, 저는 이 계를 설해야 되겠고 여러분들은 이 계명을 엄숙하게 받아 지녀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종교나 학문, 사업 등의 자기와 이익이 직결되지 않는 일은 할 필요도 없고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는 우리 인간 뿐만 아니라 의식을 가지고 움직이는 동물도 마찬가지로 무관심합니다. 일단 무관심하게 되면 자기하고 이익을 교류할 수 있는 채널이 단절되었을 때, 인간은 가장 고독하고 가장 허약해 집니다. 따라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선(善)을 얼마만큼 좋은 경계로 당겨와서 자기 생활에 직결시켜 나가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더해 지고 덜해 지기도 할니다.

그렇게 하려면 지혜(智慧)가 필요합니다.그런 경계를 많이 끌어 오는 사람은 지혜가수 승한 사람이고 지혜가 게으르지 않습니다.오랜 역사와 전통의 동국대학교는 중립학교인 까닭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형식적으로 무조건 불교신도를 많이 늘리기 위해서 교세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강제적으로 수계를 하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 대학은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끼칠 수 있는 최고의 인간을 만들어 내는 데 기본 이념을두고, 대학생활과 교육에 오계가 무관하지않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수계 식을 거행하게 되었음을 양지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계를 받아야되는가.

계는 어두운 밤에 환하게 불을 밝히는 광명과 같다고 했습니다. 어두운 밤에 광명은 얼마나 절실한 것입니까. 뿐만 아니라 계는 아득한 바다를 건너가게 하는 배와 같다고 했습니다. 만약 배가 없다면, 아무리 수영을 잘하더라도 얼마 가지 못해서 좌절하고 말겠지요. 그러면 거기엔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또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나 수송한 높은 경지로 향상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런 욕망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계는 그 높고 수송한 곳으로 가는 데 좋은 사다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계단이 아니면 2층 3층도 못 올라 같니 다.

그와 같이 전부 계를 이용해서 그 목적지에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는 부끄러움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무유공포(마음속에 아무런 공포를 느끼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러한 좋은 용기백배를 우리에게 주는 양약이라고 했습니다)' 즉 좋은 약입니다.

여러분들은 큰 일을 하려 하더라도 용기가 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착수가 안 되고 실천이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그 자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같습니다. 교수나 박사나 학생, 다만 그 용기와 노력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약이 바로 계입니다.

뉴스마다 듣게 되는 살인행위나 성폭행 등의 각종 범죄들이 모두 부처님이 설시한계의 정신만이라도 알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는 가장 낮은 곳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높은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발 밑에 8만 4천 법문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자기 발 밑은 내려다 보지 않고 모두 허공을 쳐다보고 거기에 뭐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는 얻어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는 자기 가까이 있고, 바로 자신이 진리입니다.

여러분들은 부처님의 오계를 받고 나면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알고, 마음씀도 다르고 생활도 달라질 것입니다. 용기도 백배로 충전될 것입니다. 이 말을 끝으로 맺음할까 합니다.

 

 

 

정각도량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 도업스님 / 경주 정각원장

요근래 선진국 진입을 운운하던 우리로서는,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스런 일들이 많았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대구 가스폭발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한보(韓寶)의 비리 등등..,. 그 뿐인가, 전직 대통령이 둘 싹이나 구속되어 지금도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있고,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를 없앤다는 이름으로 소중한 민족 문화유산을 보존할 장소도 마련하지 않은 채 중앙청을 조각내 버렸다.

여기서 나는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나 중앙청 철거의 시야(是也), 비야(非也)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역사 바로 세우기의 순서에 문제가 있는 듯해서 고언(苦首)을 하고자 할 뿐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첫 번째 일은, 단군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단군의 역사는 참으로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은 얼마나 민주적인 사상이며, 500년의 세월은 얼마나 긴긴 역사인가. 1962년에 단군 연호를 폐지함으로 해서 공공문서에서 단기가 사라지고 서기만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가 왜 예수 탄생 연호를 사용해야만 하는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첫 번째 일은 서기 연호를 단기 연호로 바꾸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세계화다 개방화다 하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다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웃나라의 예에서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이나 중국은 지금도 자기들의 고유 연호를 사용하면서 선진화.세계화를 잘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두 번째 일은 단군성전을 세우는 일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나 이념을 초월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국조(國祖) 단군의 사직단을 세우는 일은 결코 소홀히 할 일이 아니다. 특정 종교단체의 반대로 해서 사직단의 건립이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하면서 이스라엘의 국조(國祖) 이름은 달달 외우면서 이 나라의 국조(國祖) 단군을 배척한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튼튼한 집을 세우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하고 튼튼한 기초는 주춧돌을 바르게 놓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그 다음은 줄줄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단군역사의 주춧돌부터 바르게 놓아야 한다.

 

 

 

정각논단
관자재(觀自在) /  윤주억 / 식품공학과 교수

 

반야바라밀다심경 (嬪受若波羅齋多毛,經)은 갑자기 ''관자재보살''로 시작된다. 이는 이상하다면 이상스럽고, 신선미를 준다면 정말 그렇다. 왜냐하면 불경은 반드시 ''여시아문일시불주왕사성(如是我聞一時佛住王舍城)....''과 같은 표현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뜻은 이렇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 성에서 지나고 계실 때...'' 그런데 반야심경은 이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관자재보살은 여기에서 주어이다. 그런데도 부처님 쪽에서 ''관자재보살''하고 부르시는 것 같다,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관자재이니라''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불경은 정확하게 그 뜻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필링(feeling)이 중요하다, 소리 높여 암송하고 있을 때 가슴에 와닿거나, 배속 깊이에서 쿵하고 울려와야 되는 것이다. 가슴에도 배속에서도 아무런 울림이 없는 불경이라면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관자재보살! 아 이것은 나를부르심이다'' 하고 받아드릴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관자재보살이니까.

그런데 ''관자재''란 무슨 뜻일까. 관 자재라고 하지 관 자유라고는 하지 않는다,자유 뒤에는 언제나 부자유가 있다. 아니 우리 인간은 부자유하기 때문에 자유를찾는다. 그러므로 ''자유''에는 언제나 ''부자유''라고 하는 반대 개념이 붙어 다닌다. 반대 개념이 붙어 가지고는 절 대어가 되지 못한다.

''자재''에는 반대 개념이 없다. 부자재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자재는 어디까지나 자재일 뿐이다. 절대적으로 자재인 것이다.

어째서 절대적으로 자재인가 하면, 그것은 인간 자신에 의한 작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렇게 하자고 마음 먹은 일에는 반드시 장애가 따른다. 인간 자신이 생각해서 하는 일에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다. 반드시 가다가 막힌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일에는 한계가없고, 장애도 없다. 언제나 막힘 없이 나아간다. 그런 것을 ''임운자재(任運自在)''라 한다. 부처님께서 하시는 일이나 자연이 하는 일은 언제나 ''자재''이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일부러 생각해서 암송하는 염불은 힘이없다. 저절로 입 밖으로 흘러 나오는 염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 여기에 인지(人智)를 초월한 신비스러움을 느낀다.

인간의 대뇌피질(大腦皮質)의 작용을 생각해 본다. 한복판에 있는 피질(뇌간부분)에서 신경섬유의 다발(척수)이 내려와있고(그림 참조), 이 신경섬유는 온 몸에 퍼져 있다. 여기에 예를 들어 보자. 손등에 불을 가까이 뎠다면, 손등의 표피에 있는 감각세포에서 ''자극(또는 충격)''이라 부르는 전기적 신호가 생 져나 신경세포로 보내진다(그림의  표). 이 ''자극''은 신경섬유를 타고 이동하여 뇌간(腦幹)에 이르는데, 뇌간에는 전달되어 오는 신호에 대하여 어떤 행동을 하라고 지령할 것인가 하는 ''프로그램''이 미리 짜져 있으므로 그 프로그램대로 손등의 근육세포에게 불에서 떨어지라는 명령 ''자극''을보내게 된다(그림의  표).

이와 같은 운동은 자동적으로 행해지는 것으로서 생각해 보고 난 다음에 그렇게하는 것이 아니다.

한편, 대뇌에는 ''새김''이라고 하는 특정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조류(鳥矣賈) 이후부터 한가지 특별한 기능을 쭉 맡아 왔다. 그 기능이란 동물이 자기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룰(rule)을익히는 일이다. 새들의 새끼는 어미새로부터 먹이를 쫓는 법, 경계하는 방법, 적이 오면 피하는 방범을 배워 그대로 해본다. 그리하여 새김 뇌에 빈틈없이 새겨둔다. 이것은 의식 이전의 ''잠재의식''이다. 인간인 경우 이 새김은 세살 정도에서 완성된다고 한다.

동물들은 이것만으로 각각 자기사회에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좀더 멋있게 살아가려면 자기가 경험한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이 경험을 쓸모 있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새롭게 ''기억의 뇌''가 등장하게된다. 이 기억을 맡은 주역은 대뇌의 오른쪽반(右半球)과 왼쪽반(左半球)으로서 우뇌에서는''image''를,좌뇌에서는 그 image를 나타내는 언어를 기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image와 언어를 이어주는 신호계는 뇌량(腦梁)이라고 한다.

1996년 말에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MIT대학의 도네가와 스스무 교수, 그리고 매트 윌슨 교수, 콜롬비아 대학의 에릭 캔들 교수팀이 이 기억의 정체를, 생쥐를 사용한 실험으로 밝혀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인간이나 동물이 이전에 가본 적이 있는 장소나본 일이 있는 사물을 기억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그 방법이란 뇌의 작은 공간에 기억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단백질을 간직하고 있다가 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작용의 메커니즘은 아직 미궁에 싸여 있다.

생각해 보면 동물이 하등 한 것에서 고등한 것으로 ''진화''하는 것은 그 동물이 보다 나은 쪽으로 자기 목숨을 보존해 가려고 하는 ''자연의 지혜''라고 볼 수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산다''는 것은 ''선''이며, 선을 위한 지혜이므로 선=지혜;목숨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목숨''은 무의식적인 것이므로 이 ''지혜'' 또한 무의식적인 작용에 의한 것이다, 동물이 어떤 자극을 받으면 ''목숨''이 자동적으로''image기억'' 속을 뛰어 다니며 과거의 경험 속에서 그것을 막는데 가장적합한 기억을 찾아내고 곧 그대로 행동하게끔 이끌어 준다. 이러한 일은''자동적''으로 일어나며, ''언어기억''과는 무관계이므로 ''직관''이라고 한다.''image기억'' 속에서 직(直)접 찾아내보(羲屋)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image 기억'' 속의 'image배열''은 ''목숨''이 그것을 가장 찾기 쉬운 쪽으로 배열하고 있다. 말하자면 ''스스로 있는 그대로''배열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자재( 自在)''라고 한다.

법화경의 방편품(方便品)에 시법주법위 (是法主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말이 바로 이러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생 각된다.

인간이 어떤 궁지에 몰려서 미처 아무 생각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사실은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목숨''이 자동적으로 ''image 기억'' 속을 뒤져서 사태해결에 가장 좋은 기억을 끌어내어 자기로 하여금 그대로 행동하게 하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관자재''라고 한다.

새나 짐승들은 언제나 관자재이다. 직관의 지혜가 필요하면 자연의 프로그램 속에서 언제나 끌어내고 있다. 그들은 인간처럼 생각하면서 괴로워하지도 않고, 병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인간은 언어라는 편리한 의사 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으나 그로 인해서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탈없이 잘 쓰면 좋지만,잘못 써서 ''목숨''을 잃는 수도 있다.새나 짐승들도 서로 싸우지만, 상대편이 도망치면 그것으로 싸움은 끝난다.그러나 인간은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놈이 또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에 후환을 없애야지'' 하고 죽일 생각마저 한다. 목숨=선이므로 이러한 행위는 분명히 악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유쾌하지 않다. 이런 것만 생각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병이 될지도 모른다. 목숨이 상처를 입게 되므로 image 기억의 주사력(走査力)은 둔해지고 좋은 지혜도울어나지 않게 된다.

여기에서 관저재의 ''관(觀)''에 대해서 살펴본다. 보통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종교가나 예술가는 볼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관''이다. ''관''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본질적인 것을 보는 것이다.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마음으로 보는 것을 ''내관(內蓼訊)''이라고 하는데,이 또한 ''관''이다, 이에 대하여 견(見)은 표면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거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 뒤편에는 보이지않는 것, 들리지 않는것, 느낄 수 없는 것이 항상 함께 존재한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관자재''라는 작용이다.이제 ''관자재''란 ''목숨''이 자재로''image 기억'' 속을 뛰어다니며, ''목숨''을 이어가는 데 가장 좋은 과거의 경험을 끌어내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한 ''목숨''이 우리들 안에 있으면서 우리들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어가고 있음도 알았다,

이 ''목숨''을 ''불성(佛性)'', ''영원한지성'', 또는 ''반야바라밀다''라고 한다.

 

 

 

교리 강좌
윤회와 업 /  정승석 / 불교대학 교수

미국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라는 정신과 의사는 죽음과 임종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유명한 여류 학자이다, 의학적으로는 완전히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체험을 연구한 로스 박사는 많은 방증 자료와 간접적인 증거로써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로스 박사는 확신하는 사후 세계의 존재가 곧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를 의미하지는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최종 결론은 윤회설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즉 그 결론은 사후에 인간은 판결을 내리는 신에 의해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해 왔던 모든 행동과말, 모든 생각들을 되돌려 보게 됨으로써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기회를 맞게 되며,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따라 스스로 지옥을 만들거나 천국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사업 자득의 인과를 말하는 것이다.윤회는 모든 행위에는 반드시 상응하는 결과가 뒤따른다는 업의 인과 논리를 과거 .현재 .미래의 3세에 적용함으로써 성립되는 귀결이다. 이 같은 업에 의한 윤회는 불교 고유의 발상이 아니라. 고대 인도의 종교와 철학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있었던 통념이다. 업을 먼저 거론하지 않고서는 윤회를 설명할 수 없다,

업이란 곧 인간의 행위를 가리키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체적 행동과 말과 생각을 포함한다. 그러나 윤회를 설명할 때의업은 그 행위 자체로 그치지 않고, 생전의 행위로부터 생기는 일종의 여력(餘力)을뜻한다, 불교 이외의 인도 종교 일반에서는 이 업이 영혼에 부착한다고 생각했다. 업이 장래의 고통이나 즐거움이라는 결과의 원인으로 작용하며, 모든 업이 그 효력을 다하게 될 때 영혼은 본래의 순수상태가 되는데, 이것을 해탈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일상 생활은 생각이나 말을 포함한 행위로 이루어지므로, 인간은 항상새로운업을 짓는다. 이 때문에 업의 영향을 받온 영혼은 하나의 삶에서 또 다른 삶으로 생사의 유전(流轉)을 반복해 간다.이 같은 삶이 바로 윤회이다. 다만 불교의 윤회설에서는 영혼을 거론하지 않는다. 『밀린다 판하』에서는 윤회를 다음과 같이 쉽게 설명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자는 이 세상에서 죽고, 이 세상에서 죽은 자는 저 세상에서 태어나며, 저 세상에서 태어난 자는 저 세상에서 죽고, 저 세상에서 죽은 자는 다시 딴 세상에서 태어납니다. 윤회가 뜻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잘 익은 망고를 먹.귤 씨를 땅에 심었다고 합시다. 그 씨로부터 망고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나무에 열린 망고를 따먹고 씨를 땅에 심으면, 다시 나무로 자랄 것입니다. 망고나무는 끝없이 이어갈 것입니다. 윤회도 이와 같습니다.''

거의 맹목적인 고정 관념으로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영혼과 같은 불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윤회를 신뢰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영혼을 인정함으로써 윤회한다는 사실은 신뢰할 만한가? 이 경우에는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고 설명하는 데 곤란함이 있을 뿐만아니라, 어쩔 수 없이 영혼의 성격이나 종류에 대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영혼의 유무 또는 그 개념 자체는 철학적 난제로서 항상 논의되어 온 것이지만,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영혼의 존재 여부가 윤회설의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의의를 훼손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난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통해 윤회설의 의의는 더욱 고양된다.

어쨌든 불교에서는 업 자체, 그것은 비유로써 설명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하나의 등(燈)에서 다른 등으로 불을 붙일 경우에 한 등이 딴 등으로 옮아가는 것이아니라, 양쪽 등은 그대로 있으나 불만 옮아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윤회의 주체도 한 몸에서 딴 몸으로 옮아감이 없이 다시 태어난다고 설명한다.

이 비유에서 '불'은 '업'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비유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통용되어 있는 것이 사십구재라는 장례 의식으로써 천도하는 중음신(中陰身)이다. 이것은 죽은 사람의 5온을 뜻한다. 이 5온은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이며, 죽기 전에 지은 업의 덩어리이다. 중음신부다 낯설은 비유는 간다르바인데, 이 경우의 간다르바는 '향을 먹는 자' (食香)라는 뜻이다. 여기서 향은 업을 가리킨다.불교에서는 이상과 같이 인간은 그 자신의 행위 즉 업에 의해 윤회한다고 가르친다. 이렇게 윤회를 담당하는 주체가 업이라는 사실만 수긍한다면 그 업을 영혼 등의 다른 어떠한 명칭으로 불러도 상관없다. 윤회의 세계란 범부들이 스스로 지은 업의 과 보로서 전전하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세속의 세속의 차원에서는 그 업을 영혼이라는 대명사로 지칭하는 것도 인정할 수 있다.

영혼을 윤회의 필수 전제로 생각하는 힌두교에서도 윤회를 담당하는 것은 업이라는 여력이 부착해 있는 영혼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혼이 육체를 형성하므로, 윤회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영혼의 변화'가 아니라 '육체의 변화'이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업의 덩어리인 5온의 변화이다. 결국 힌두교에서도 윤회를 이끄는 실질적인 원인은 업이라고 생각한다.

윤회의 본래 의미는 '흘러 감', 즉 유전(流轉)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로 시달리는 인간의 무상한 삶이 그와 같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윤회는 흔히 생존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생존하는 인간은 뭔가 활동하며 살아간다. 이 활동이 곧 업을형성한다. 그러므로 윤회와 업은 인간의 생존과 활동, 즉 생활이다. 이 점에서 윤회와업을 무작정 부인할 수 있겠는가.

 

 

 

경전의 세계

사십이장경 /  이만 / 불교문화대학 교수

이 세상의 모든 것에 관하여 자연의 이치대로 설파하신 부처님의 말씀은 그 내용에 따라서 주제가 수 만 가지에 달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들이 일상생활 가운데서 요긴하게 필요한 짤막한 덕목들을 42가지로 나누어서 이들에 관한 내용들을 여러 경전에서 인용한 금언(金言)적인 성격을 띈 경전이 사십이장경(四十三章經)이다.

그리하여 이 경전의 내용이 일상의 수행에서 극히 중요한 덕목들을 갖추고 있71 때문에 수행을 중요시하는 선가(禪家)에서는 일찍부터 이를 애지중지하여 유교경(遺敎系墾) 및 위산경책(僞山警策)과 함께 이 경전을 불조샅경(佛祖三經)으로 여겨서 애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전이 중국에 전역 된 것은 후한시대인 1세기경으로서 낙양의 백마사에서 가섭마등(迦葉摩謄)과 축법란(竺法蘭)에 의해서 공역 된 것이고 시초라고 한다. 한편으로 고려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이 경전의 서문에 의하면, 후한의 효명제(댓一75년 재위)가 어느날 꿈을 꾸었더니 몸에 금 옷을 입은 금인(金人:부처님)이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궁정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는금인강정설(金六降庭說)을 펴기도 하는데, 이 때에 왕이 사자를 대월지국에 보내어서 부처님의경 전을 베껴 오도록 한 것이 이 경전이 중국에 전래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마도 이 사십이장경이 중국불교 전래 상 최초의 전래경전이 되는 셈이며, 또한 곧 번역된 것으로 보아서 최초의 한역경전으로도 여겨지는것이다.

그러나 양나라 때에 승우(僧祐)가 쓴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과 수나라의 비장방(費長房몌지은 역대삼보기(歷代三寶記) 등에 의하면, 축법란과 가섭마등이 함께 공역했다는 설 외에도 축법란 혼자서 단독으로 번역했다는 기록 외에 가섭마등 역시 혼자서 번역했다는 내용 등이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이들이 이 경전의 번역에 참여한 사실만은 숨길 수없는 일인 것 같다

 그러면 그 시기는 정확하게 어느 때인가 하면, 고금역경도기(古今譯經圖記)와 광홍명집(廣弘明集)등의 기록을 보면 양평 10년(67)과 그 18년(75)에 각각 백마사에서 번역되었다고 전하고있지만, 가섭마등이 후한에 온 후로 곧 죽었다는 기록 등에 의할 것 같으면, 아마도 이 사십이장경은 양평 10년(67)에 중국에서 최초로 번역하게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경전이 미등과 축법란등에 의하여 번역되자 효명제를 비롯한 당시의 지식인들은 앞을 다투어 위의 내용에 관한 연구와 함께 독송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황제는 이를 황실의 서고인 난대(蘭台)석실에 보관케 했는가하면, 양해(讓楷)라는 사신이 후한의 환제(桓帝)에게 상표 문을 올린 일이 있었는데, 그 상표 문에서 이 경전의 내용들을 여러 군데에서 인용하여 문안을 작성했을 정도로 일반인들에게 급속도로보급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송나라의 진종제(眞宗帝)는 이 경전을 각별히 좋아해서 항상 숭거(崇矩)스님을 내전에 모셔다가 독송케 하는 한편으로 직접 자신도 이경 전에 관하여 주석서를 지었다는 것이다. 또한 지원(智圓 : 976一1022)이라는 스님이 이 사십이장경에 관한 주석서 1권과 정의(定義) i권을 각각 지은 일이 있으며, 인악(仁岳)도 통원기(오甬象原記) 2권과 과(科) 1권을 지었다고 의전스님이 전하고 있다. 더욱이나 송나라의 중기에 조동종을중창한 수대(守遂)는 불조살경의 하나로 이 경전을 늘 독송하는 한편 그가 지은 불설사십이장경주(佛說四十二章經注)i권은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송 및 원나라 때에는 그 유포가 일반인들에게 보편화한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그 유행만큼이나 이본(異本)도 많아서10여 종류에 달하는데, 그 중에서도 본문 자체의 증 광과 개작의 흔적에 준해서 이를 세 가지로 분류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①우리나라의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는 것인데, 그 내용과 형태로 보아서 가섭마등과 축법란이 번역한 원형에 가장 가까운 고형분이 있고, ②명나라의 대장경에 수록된 것으로 권두와 권말에 서 분과 유통분이있고, 본문 자체도 고려대장경 계통에 비하여 증 광과 개작의 흔적이 뚜렷하다. 특히 종의 진 종제가 지은 주사십이장경(注四十二章經)은 이를 저 본으로 해서 서술되었다고 한다. ③송나라 이후선가(禪家)에서 유행된 것으로 서 분이 있는 명장본(明蒸本)과 비슷하나 권말의 유통분이 없고,본문의 문구도 앞의 두 계통에 비하여 현격하게 다르므로 아마도 최후로 그 내용이 보정(補訂)된 것 등이 그것이다.

그 내용으로는 여러 경전에서 요긴한 덕목만을 뽑아서 집록한 경전이기 때문에 평이하고 간명한 내용이어서 위경(僞經몌라는 오해도 있지만, 대체로 이 경전은 불교의 윤리적인 내용들을 아 함경전류 등에서 주로 많이 발췌해서 42장으로 나누어서 싣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고.무상.무아에 관한 근본교설 및 애욕의 단절, 자비심의 발휘, 보시의 덕행 등이 그 교설 내용과 함께 적절한 비유로써 설해지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먼저 수행을 할 때는 극단으로 흐르지 말고 신중을 기하여 어디까지나 중도를 지켜야 한다고 설하면서 탄금(彈琴)과 무쇠의 달굼에 관한 예를 들어서 교설하고 있으며, 각 장마다 그 내용과 함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즉 애욕이란 어린 아이가 단맛에 취하여 혀가 잘릴 줄을 모르고 날카로운 칼에 묻은 꿀을 탐하는 것과 같으며, 활활 타는 불방망이를 들고 바람을 거슬러 달려가면 자기 손에 화상을 입게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빠지면 빠질수록 자신을 망치게 하는 무서운 마음의 병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여인을 보기를 늙은 어머니와 같이 보거나 혹은 나이 많은 누님이나 어린 누이 동생과 같이 마음을 바꾸어 볼 것을 강조하며, 이것이 사람을 어리석게만드는 가장 무서운 요인임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애욕을 단절하는 방법으로는 마음을 항상 긴장해서 업을 짓지 않도록 단속하며, 뜻을 바르게 갖고 욕망을 끊어 고요함을 지키면 도를 보게되는데, 그 경지는 마치 거울에 낀 때를 닦으면 밝음이 나타나고, 밝음이 나타나면 거기에 형체가 저절로 뚜렷이 비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십이장경의 내용을 조용한 분위기에서 누구라도 정독한다면 그 여운은 전에 느끼지 못한 편안함의 경지로 이끌 것이 분명한 경전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동국과 불교

학과증설과 단과대의 확장 /  이봉춘 / 불교문화대학 교수

대학본부의 건축공사가 진행되고 있던1957년 3월 18일, 또 한편에서는 석조본관뒷편에 과학관 건축이 착공되었다. 같은 해 11월말을 준공 목표 일로 정하고 공사를 서두르고 있던 이 과학관은 총 공사비2억환을 계상하였던 것이며, 명실공히 우리 대학 이학부 및 농과대의 양양한 내일을 약속하는 巨步 였다. 그 내역을 보면 지하실이 95.2평, 1층이 362.i5평, 2층 402.7평, 밴더하우가 18.75평으로 그 규모와 각종 설비는 당시로서는 다른 어느 대학에서도 볼 수없 는현 대식 설계에 의한 것이 었다.

건평 2,260.03평에 총 공사비 452,006,00)0圓이 소요된 대학본부가 1958년 1월 30일에 준공되고, 실제 건축비 총액175,268,000圓이 소요된 과학관은 준공 목표일 보다 약 반년이 지연되어 동년 5월15일에 준공되었다. 이 두 건물이 갖추어짐으로써 제2차의 교사확장 계획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대학본부의 준공과 때를 같이한 1958년5월 1일에는 석조본관 돔측으로 장충단공원을 뒤로하고 또 다른 거대한 건축공사가 시작되었다. 건평 4,331.88평의 중앙도서관및 대학원 건물의 신축공사가 1년 반의기일을 준공 목표로 착공된 것이다. 영세한 시설이 6.25전쟁을 겪으면서 그나마 폐허로 되어 있던 남산 자락의 우리대학 캠퍼스가 이처럼 쉴새 없는 신축공사로 변모해 가는 것과 때를 함께하여, 대학기구와 일부 변경에 따르는 인사이동도 단행되었다. 즉 1957년 4월에는 서무처.교무처.학생처의 3處로 나뉘어졌던 기구를 교무 . 학생 양처를 통합하여 서무처와.교무처의 2처로 한 것이다. '종합대학으로서의 복잡한 사무질서유지 및 일원화를위한 방침에 의한(동대시보 제 55호)조치였다. 이 통합된 교무처장에는 불교대학장 조명기 교수가 겸무하게 되었고, 교무처장이던 조은택교수는 복구도 상에 있던 도서관장의 중책을, 그리고 대학원장은 부총장 진규홍박사가 겸임케 되었다.

학내의 인사는 다시 이듬해 9월에 박승만교수가 제2대 농림대학장에 취임하는등 대폭 이동이 있었지만, 교사신축 및 각 단과대학의 발전계획 또한 충실하게진행되어 갔다.

문과대학이 이학부를 신설하여 문리과대학으로 개편한 뒤를 이어, 1959년 1월20일 「文高 제37호」로 본교 법정대학에 새로이 상학과.경영학과의 설치가 인가되어 동 학년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였다.이로써 법정대학은 법학정치학. 경영학.상학.경제학과의 5개 학과를 갖춘 단과대학으로 새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종합교육의 실효를 거두기에는 미흡한 점도 없지 않았다.

한편 본교로서의 단과대학의 중과에 앞서 과 증설에 따르는 교육내용에 충실을 기하여 모든 설비를 서둘러왔던 것으로,그 중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은 과학관과 실험농장의 설비였다.

먼저 1958년 5월에 준공된 과학관에는 이미 준공 전년도에 서독.미국 등지에 발주한 처방용箱形天枰, 精密爐를 비롯한79종의 실험기구가 1958년 5월말에 도착,과학관에 비치됨으로써 최신시설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이 과학관의 시설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농림대학의 연습팀과 실습농장이었다. 이들 시설을 갖추는 일은 장기성을 띤 사업이었던만큼, 그 계획의 수립과 검토는 본관 건축공사가 진행 중이던 1956년 5월 초부터 시작되었다.즉 동년 4월 30일 이승우학장의 안내로 성동구 묵동 소재 부속농장을 시찰한 백성욱총장은 농장 장 김희곤교수의 설명을 듣고 곧 연습팀 및 실습농장의 시설확장을 구상, 농림대학 교수회에서 의견을 모았다.

총장 임석하에 열린 농대교수회에서는연습림 및 실습농장의 시설확장 계획이수립되었다. 이 계획에 따라 1957년 10월에는 착공 1년 반만에 '드리쿼터'식 온실이 준공되고, 현지 강의실과 각종 농기구사의 건축은 이듬해 7월에 준공되어 그해 2학기부터 현장 강의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편 연습팀의 조림계획도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1958년 4월 14일부터는 3일간 양주군 외부면 본교 연습팀 가운데 최고봉인 운길산에 임학과생이 총동원되어 조림 4차년 계획으로서 7정보에 2만그루의 나무를 심기로 하였다.

1959년 3월 9일 白총장, 全부총장을 비롯하여 학처장 참석하에 I.C.A자금으로도입된 트력터의 소음이 4만평의 청량리제1농장의 고요를 진동시키고 있는 그 순간에도 본교 캠퍼스 내 과학관 후면에 새로 지어진 40평의 제 2온실 건축공사의 햄 머 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이와 같이 학내의 시설확장과 병행하여, 기술자뿐 아니라 우수한 농림기업가의 양성을 목적으로 농대 내의 농림경제학과의 문리 과대에는 국내 최초의 연극영화학과를, 그리고 법정 대에는 불교정신을 이해하는 폭넓은 행정가를 양성하기 위하여 행정학과를 설치키로 결정하였다,

1959년 12월 10일에 그 인가신청을 교육부에 제출한 바, 이듬해 2월 20일에는 이 3개학과의 증설이 인가되어 신학년도부터 학생을 모집하였다.

이로써 농림대학은 농학과. 임학과. 농림경제학과의 3학과를 같추어면목이 일신되었으며, 새로 인가된 3학과를 합하면 우리 대학은 대학원과 대학 19개 학과의 大學院으로 성장하였다. 우리 대학이 학원으로서는 국내 최대의 산림을 소유하고 있는 특수사정에 비추어, 특히 농림대학의 육성은 뜻있는 사회인사들로부터도 적지않은 성원을 얻었다.

한편 1958년 4월에 착공한 도서관 및 대학원이 준공되면 부속건물을 합하여1만평이 넘는 본 대학의 설비를 충분히 활용하여 국가에 유용한 인재를 양성하자는 염원에서, 다시 증설한 학과의 선택에는 매우 신중을 기하였다. 그런 가운데 제시된 것이 신문학과의 신설이었다. 현대생활에 있어서 매스컴의 중대성에 비추어, 학내 일부에서 신문학과 신설의 요망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59년 2월부터였다(동대사보 제99호 참조).

실제에 있어서 신문학과의 신설은 당시로서의 우리 대학만큼 조건이 갖추어진 학원은 없었다. 본교가 보유하고 있던 인쇄시설과 기능이 그것이다. 즉 대학출판사업과 고학생의 취업을 목적으로, 석 조관 신축에 의해 헐린 옛관음사터 제16 . 17강의실 80평에는 字로부터 인쇄 . 제본에 이르는 일관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3대의 인쇄기와 70여명의 종업원을 두고 매일 3백관 정도의 활자가 만들어지고 있던 이 인쇄공장은 i959년 2월에는 다시 서독제 화판윤전기를 비롯 최신시설들을 모두 구비한만큼, 신문학과의 증설은 우선 시설면에서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제한된 시설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전제는. 국내 초유의 식품공학과를 농림대 내에 증설하여야 한다는 방향으로 학내의 중론을 모으게 했다. 국민 전체의 영양관리와 과학적인 식생활의 연구가 매우 중요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일주문
정신 좀 차립시다 /  법산스님 / 정각원장

 『법구경』에 이런 말이 있다.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세상은 쉬지 않고 불타고 있네.

그대들 어둠 속에 덮여있구나.

어찌 등불을 찾지 않는가.

목숨을 다해 정신이 떠나면

가을철에 버려진 표주박처럼

살은 썩고 앙상한 백골만 뒹굴 것을

무엇을 탐하고 즐길 것인가.

 

사람들이 온통 아우성이다. 문민정부(?) 들어서 계속되는 대형사고에 눈을 돌릴 틈이 없고 마음 편할 겨를 조차도 없다. 근래에 들어서만도 대선주자들의 분별없는 행동이 국민의 눈을 어지럽게 만들고, 안기부법과 노동법이 이른 새벽에 기습적으로 날치기 처리되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혼을 빼더니, 한보사태가 정계.재계.행정.금융계를 강타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를, 헤어나기도 어려운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고,국민 모두가 얼이 빠져 있는 동안 이번에는 황장엽 비서까지 북풍을 몰고 와 도대체 신한국이 어디로 가는 배인지 알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도달하였다.

힘없는 서민들은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언제 정리해고 될지도 모르는 불안에 떨면서 허리띠를솔라가며 생활하고 있는 마당에, 문민정부(?)라고 자랑하던 대통령의 측근인사들이 이권에 개입하여 떡값으로 몇 억씩을 받았다고 하니, 국민들은 분노하다 못해 허탈하고 배신감으로 절망하고있다. 이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모든 검찰의 발표에도 어느 누구 하나 귀도 기울이지 않는다.이것이 다 누구의 책임인가

이세 상에 죽지 않을 자가 어디 있고, 썩지 않는 물건이 어디 있는가.

부처님께서는 '모든 자연의 법칙은 덧없이 변화하고(諸行無常), 이 세상의 그 어느 것을 내 것이라고 집착하리오(諸法無我)' 라고 말쓸하셨으니, 중생들이 이 도리를 알지 못하고 괜스레 욕심만 내고, 제 욕심대로 안 되면 행패나 부리고,어리석음으로 병들어 스스로 안전한 길을 가지못하고 갈 길을 몰라 헤매고 있으니, 오호 통재라, 참으로 슬프고 애달픈 일이다

 대중의 지도자는 권한(진력) 못지 않게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권력을 남용하여 재물을 축적하려는 탐욕은 결국 자기 파멸은 물론이요,다른 사람까지도 구렁텅이로 끌어들여 큰 죄를 저지르게 된다. 단지 몇 년도 못 누릴 권세를 가지고 어리석게 천년만년 누릴 권세로 착각하고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항상 자기의 허물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초등학생들도 줄줄 외우는 「釜身家治國平天下」라는 성인의 말씀을 높은 자리의 어르신들께서도 마음 깊이 새기어 한 마음 맑고 거룩한 본심으로 돌아가자.

 

 

 

전등이야기
靑原行思와 石頭希遷 /  성본스님 / 불교문화대학 교수

당대 조사선의 禪佛敎는 사실 石頭肴遷과 馬祖道一 이 두 선사의 활약과 그의 문하에 뛰어난 傑 曾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宋高僧傳』 제9권 석두전에 「혼T西의 주인은 마조화상, 潮南의 주인은 석두화상. 이 두 선사 문하의 왕래가 끊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당시 이 두 선사를 참 문하지 않은 사람은 禪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으로 취급하였다」라고 평하고 있다. 江湖라는 말은 천하라는 의미인데, 사실 이 말은 마주와 석두가 활약한 지명에서 유래한 말이다

 마 조와 쌍벽을 이룬 석두회천선사(700-7卯)는 육조러'능의 제자인 靑原行屆,의 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혜능의 문하에 출가하여 사미승 때에 이미 六祖慧能의 가르침을 익혔다. 따라서 그는 사실 혜능과 청원행사의 가르침을 모두 받았다.『祖堂集』 제4권 석두화상전에 의하면 그가 어려서 六祖慧能을 친견하니 화상은 처음 보자마자 기뻐하며 머리를 만지면서 '네가 나의 참 법을 잇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밥상을 같이하면서 출가할 것을 권하여 이에 혜능의 문하에서 출가하게 되었다.

開元16년(728)에 羅淨山에서 구족계를 받고 율장을 연구한 뒤 '자기 성품 청정함이 계의 본체이다 諸佛은 지음(作)도없거늘 어찌 法(허물)이 남(生)이 있으랴. 라고 하며, 어디에도 구0쨍받지 않고 문자도 숭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승조(僧肇)의 『涅槃無名論』을 읽다가 「萬象을 망라해서 자기를 삼는 것은 성인 뿐이시다」라는 말을 보고 다음과 같이 찬탄했다. '성인은 자기가 없기에 자기 아닌 것이 없고, 法身은 한량 없거니 누가 나와 남이라 말하랴, 둥근 거울이 그 사이에 비치면 상은 본체가 현묘함이 저절로 나타난다. 경계와 지혜가 진실로 하나이거니 어찌 가고 옴이 있으랴! 참으로 장하도다 이말씀이여'

어느날 산골 초막에서 잠시 졸았는데, 꿈에서 자기 자신이 육조혜능선사와 한 마리의 거북을 타고 좋은 연못 위를 오갔었다. 꿈에서 깨어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북은 신령한 지혜요, 연못은 성품의 바다이니, 나와 우리 스님은 성품의 바다에서 왕래한 지가 오래 되었다'

이처럼 석도 화천은 사실 육조혜능의 불법을 그대로 계승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법계상으로 그가 헤능의 제자인 靑行의 법을 계승하게 된 것도 혜능의 지시이기 때문이다. 즉 혜능의 臨綠時에 석두가 혜능선사에게 질문했다

'화상께서 입적하신 뒤에 저는 누구를 의지할까요?'

육조께서는 '屆,를 찾아가라(尋,빱)'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석두는 육조혜능이 입적하신 뒤에 곧바로 靖居寺의 行思,사를 찾아가 절을 하고 곁에서 모시고 서있으니 行,巴,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조계에서 왔습니다.'

'그대가 주계에서 무엇을 얻어가자고 왔는가?' '조계에 가기 전에도 잃은 적이 없습니다. '불법은 어디서 구해오고 새운 것을 얻어와서 다시 첨가하는 것이 아니다. 본래 자기에게 구속된 불성을 깨닫고 지혜와 덕성(인격)을 개발하는 것이다 때문에 석두가 주계에 가기 전에도 자기의 불성은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행사선사의법을 계승하게 되었는데, 행사는 다음과 같이 부촉하였다. '나의 법문은 옛 성인이 차례로 전하고 이어받아 전래한 것이니 그대는 끊이지 않게 하라. 조사께서 그대에게 이미 授記(예언)하셨으니, 그대는 잘 보존해 가지고 가거라'

청원행사의 법을 이은 석두화상은 형악(衡岳)으로 가서 남 악사의 동쪽 반석 위에 암자를 짓고 머무니 사람들이 石翟頭화상이라고 불렀다. 석두화상의 작품으로는 山居修道를 노래한 「草唵歌」와 「參同」 등이 전하고 있다 그의 문하에 뛰어난 선승들이 배출되어 마주와 더불어 중국 선종의 兩大山脈을 이루었다.

 -불기 2541년 2월11일 慶州 自安禪室에서

 

 

 

불자탐방
황영수 비서실장 /  편집부

3월을 맞이하여 개나리, 진달래, 철쭉의 새싹들이 살짝 고개를 내미는 교정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신입생들을 새로 맞이하여 더욱 활기가 느껴지는 교정의 곳곳에서 방학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선후배 사이에 나누는 이야기꽃은 정답기만하다. 새해의 희망을 품고 바쁘게 움직이는 학생들의 발걸음에서 겨울의 무거운 그림자는 벌써 그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올해는 정축년으로 소의 해이다. 예로부터 소는 심성이 착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동물의 상징이다. 정축년 들어 처음인 불자 탐방에서 찾아간 분이 부지런한 소에 딱 어울리는 황영수 비서실장님이다. 총장님을 그림자처럼 보필해야 하는 비서실장으로서 좀처럼 틈을 내기가 쉽지 않으실 텐데 기자가 찾아가자 차를 권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동국대학교에 몸을 담으신 지는 얼마나되셨습니까? ''제가 1970년 본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바로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했으니까 벌써 26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무과 . 학생과 . 총무과,관재과.의료원 등을 두루거쳐 지금의 비서실에서 총장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송총장님이 취임하신 이후로 학교에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졸업생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하는 첫 마디도 학교분위기가 많이 밝아지고 생기가 느껴진다고 합니다. 총장님이 워낙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는 분이라 비서실장으로서 개인적인 생활이나 시간을 많이 희생하시리라 짐작되는데, 총장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어려운 점도 많고 보람된 점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모교에서 26년간 근무하면서 여러 부서를 두루 거쳤지만 비서실 근무는 처음이라서 능력이 부족한 제가 총장님을 제대로 모실 수 있을지 많은 긴장과 걱정 속에서 시작하였으나, 여러 교직원 선생님들의 아낌없는 조언과 협조로 어렵게나마 총장님을 모실 수가 있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학교발전을 위하여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휴일도 없이 하루에 16시간 정도의 일정을 강행군하고계십니다. 지난 해 총장님을 중심으로진 동국가족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우리 학교가 '교육개혁 최우수대학'으로평가받았을 때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총장님을 잘 보필하는 것이 우리 학교가 발전하는것이고, 동국대학교의 발전이 곧 불교의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와는 언제 어떻게 인연을 맺게되셨습니까? ''초등학교 시절에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진주 근교에 조그마한 암자에 불공을 드리러 간 적이 있는데,그 때가 아마도 불교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학교 일로 바쁘셔서 시간이 별로 나지 않으실 텐데 평소에는 어떻게 신행활동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광주군에 있는 백련사와 안양에 있는 한 미사를 원찰로 하고 있는데, 진주고등학교 32회 고교동창들과 부부부자모임을 조직하였고, 또 비봉법 우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회원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전국에 있는 사찰을 두루 참배하여 큰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108배로 신심을 다지고 있습니다. 물론 정각원에서 매월 열리는 고승초빙법회도 빼놓을 수없지요. 이 때 만큼은 번거로운 세속임을 모두 잊어 버리고 큰스님들의 말씀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불교를 신행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가슴속에 절실히 와 닿는 적이 있다고 합니다. 비서실장님께서 괴롭고 힘들 때마다 떠올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특별히 애송하는 경전이 있으십니까?

''제가 좋아하는 불경은 법구경입니다.법구경은 짧은 경구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성활 속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혜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 중에서는 자신의 어리석은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겸허하게 낮추라는 下,已,을 늘 마음 속에 새기고 있습니 다.''

앞으로 멀지 않아 206년에 개교 10주년을 맞는 우리 학교가 일류대학.세계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전 동국인에게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평소에 생각해 오시던 점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요.

''무엇보다도 먼저 전 동국가족이 모교의 발전을 위하여 적극적인 관심과 능동적이고도 헌신적인 동참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재단.동창회 .학교가 삼위일체가 되어 학교발전의 장단기 비전을 실천해야 합니다.''작년 한해 우리 동국가족은 모두가 열심히 뛰었다. 지난해의 성과에 자만하지 말고 올해도 우리는 소처럼 묵북히내실있게 우리의 목표를 향하여 한걸음한걸음씩 전진한다면 우리 동국가족에게는 밝고 희망찬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불심의 창
부처님이 도와주신 금연 /  이금석 / 공과대학 컴퓨터공학과

오년전, 1992년 정월달은 몹시 추웠다.집안에 우환이 있어서 환자를 모시고 충청도 논산 어느 절에 요양차 기거한일이 있었다. 논산이 분지인 탓인지, 훈련소가 있어서 인지 또는 내 마음이 시려웠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서울보다 훨씬 추운 것 같았다. 우리는 주지 스님의 배려로 따뜻한 방 하나를 마련하여질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 그 절은 아픈 사람들을 위한 약사여래 기도도량으로 소문이 나서 우리 외에도 몇 분이 같이 생활하였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 따라서 자주 절을 다녔지만 성인이 되고서는 기껏해야 초파일에 등 하나 다는 정도였던 내게 있어서는 절 생활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었다.

스님의 가르침대로 아침 저녁 예불은 물론이고 시간 나는 대로 참선도 하고 환자의 쾌유를 비는 염불기도도 드리고하였다. 스님의 말씀대로 처음에는 참회기도를 열심히 올렸다. 먼저 그동안 태어나서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업을 진심으로 참회하오니 앞으로 다시는 업을 짓지 않도록 도와 주시고 또한 이 환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도록 도와 주집사하고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기도 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 펑 쏟아지면서 정말 많이 울었고 그에 비례하여 마음은 조금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 겨울 추운 날씨에다 생활환경이 바뀐 탓인지 어느날 감기가 들어 버렸다, 게다가 그때까지 몇 차례의 시도 끝에도 끊지 못한 담배 때문에 심한 목감기로 발전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절 생활이 점차 싫증나기 시작하면서 마음도 몸도 게을러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바깥에 있는 해우 소를 찾아가 담배 피우는 횟수가 늘어난 때문에 점점 증세가 심해진 것 같다. 아픈 목에 담배연기가 들어가니 기침과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말하기 조차 어려워지면서 이제는 정말 담배를 끊어야 겠다는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차일 피일 미루고 있던 어느날 밤 자정 무렵, 기도 중에 문득 부처님께 부탁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일 부티는 다시는 담배를 안 피울 것을 부처님께 약속드리니 부처님도 저를 도와 주십사 빌고, 또 마음 속으로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그 다음날 아침 공양을 마친 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나는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들고 해우 소로 향하고 있었다. 간밤의 부처님과의 약속과 다짐은 까맣게 잊고 오로지 그 한 모금 생각에 걸음을 빨리 하던 중, 갑자기 이마가 깨지는 것 같은 심한 충격을 당했다. 그 절에서 빨래 등을 널기 위해 설치해 놓은 굵은 철봉에 이마를 가져가 부딪친 것이었다.그 절에 들어 온 지 보름이나 지난시점이었고, 또 평소에는 받히려야 받힐 수 없는 위치에 있던 철봉이 그날 아침에만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순간 하도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것과 동시에 아차 어젯밤 부처님과의 금연 약속이 불현듯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가지고 있던 담배와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고 날부터 금연한 것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특이한 것은 다른 사람들은 갑자기 금연하면 금단 현상이니 해서 약간의 부작용도 있다고 하지만 내 경우는 그런 현상이 없이 아주 편안하게 끊어진 것이다. 그 이후에 연례 행사처럼 환절기 때마다 찾아오던 기관지염도 사라지게 되어 모시고 갔던 환자보다 내가 더 부처님의 기피를 받은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날 이 이야기를 주지 스님께 드렸더니 ''부처님과의 약속은 지킬 자신이었을 때에만 해야 하고, 한 번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꼭 벌을 주신다''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다른 사람의 소원은 부처님께 기도 드리고 또 쉽게 부탁도 드리지만 내 자신의 문제는 부처님께 말씀드리기 겁이 난다. 그러면서 소박한 마음에 이게 바로 ''일체유심조''가 아닌가 하고 무식하게 생각해 본다. 이 일을 계기로 법당이 사랑방처럼 느껴지고 우리 학교 정각원 법당도 수시로 찾게 되었으며, 정각원에서 이끌어주시는 수요일의 참선 수련과 봄 가을의 사찰 순례에도 동참하게 되었다. 또한, 주위에 좋은 토반들을 만나게 되어 송광사 사박오일 출가와 해인사 불경전산화세미나 등 여러 뜻 깊은 자리에도 참가할 수 있었으니 모든 게 부처님과의 약속 덕분으로 항상 감사하고 있다.

 

 

 

비유와 설화
불심의 큰 위력 /  조용길 / 불교대학 교수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기다림 밖7리쯤 되는 곳에 술을 잘 마시는 어떤 노인이 살고 있었다.

부처님의 제자 아 난이 가서 충고하고 달래었다.

''지금 부처님이 여기 계십니다. 가서 뵈옵는 것이 좋습니다.''

노인은 ''나도 부처님이 여기 계시다는 말을 듣고 가서 뵈옵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다섯 가지 계율을 주시면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십니다. 내가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는 것은 마치 어린애가 젖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곧 죽고 말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하고 또 가서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하여 해거름에 돌아오다가 다리가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땅에 쓰러졌다 마치 큰 산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온몸이 모두 아팠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 아픔이 얼마나 유쾌한가. 그러나 아 난이 항상 말하기를 '부처님께 가라'고 하였으나 그 말을 듣지 않았더니, 지금 당하는 이 고통이야말로 말할 수 없이 크구나.'' 하고, 집안의 노조들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부처님께 가고 싶다''

집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가 놀라면서 ''당신은 처음부터 부처님께 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무엇 때문에 가려고 하십니까?''

그런 말을 듣고 곧 집을 떠나 기원 정사의 문 밖에 가서 서 있었다. 이때 아 난은 그 노인이 온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기타림 밖 7리쯤에 사는 노인이 와서 문 밖에 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그 노인은 혼자 올 수 없다. 5백마리의 코끼리로 애써 온 것이다.'''' 5백 마리의 코끼리가 없이 혼자 왔습니다''

'5백 마리의 코끼리는 그의 몸 속에 있다.''

이때 아 난은 그 노인을 불렀다. 그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아뢰었다. ''저는 오래전부터 부처님께서 여기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소치로 일찍 와서 뵙지 못하였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저의 죄를 없애주소서.''

부처님은 그에게 물으셨다. '5백 대 수레의 섶나무를 땅에 쌓아놓고 모두 태워버리려고 하는데 몇 수레의 불이라야 다 태울 수 있겠는가?''

그는 아뢰었다. ''많은 불이 필요 없습니다. 콩알만한 불로 태우면 잠깐 사이에 다 없어 질 것입니다''

부처님은 또 물었습니다. ''그대는 그 옷을 얼마 동안이나 입었는가?'' ''제가 이 옷을 입는 지는 1년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또 물으셨다. ''그 옷의 때를 빨려면 몇 달이나 걸리겠는가?''

''잿물 한 말로 빨면 잠깐 동안에 깨끗해질 것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대가 쌓은 죄는 5백 대 수레의 섶나무와 같고 또 i년 동안 입은 옷의 때와 같은 것이다''노인은 그 자리에서 진심으로 참회하고 부처님으로부터 다섯 가지 계율을 받아 지녔다.

그리고 부처님은 갖가지의 법을 말씀하셨다. 그는 곧 마음의 눈이 열리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열린마당
자아와 명상의 공덕 /  김현규 / 불교문화대학 수업조교

교문을 들어서면 항상 나의 시선은 정각원으로 향한다. 저기 호젓한 곳에 홀로 서 있는정각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 곳 종소리를 들으면서 나의 학교 생활은 시작된다. '자아와 명상'수업이 1교시에 없는 날이면 원효 관으로 걸음을 재촉하지만, 1교시에 수업이 바로 있으면 정각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멀리서 바라 보는 정각원은 날씨가 화창한 날엔 숲의 푸르름과 어우러져 더욱 단아하게보이고, 구름이 잔뜩 내려 앉아 있는 날엔 구름 사이에 묻혀 보일 듯 말듯 한 모습은 신비롭기만 하다, 또 안개가 자욱한 날 아침, 그 속을 헤치면서 걸어가면 내 자신은 마치 신선이 된 듯한 착각을 하곤 한다.

정각원으로 가는 길은 두 갈림길이 있다.한 곳은 흙먼지 풀풀 날리며 야구에 열중하는 학생들이 뛰고 있는 소운동장을 가로 질러가는 곳이다 이 곳으로 정각원을 갈 때면 왠지 걸음이 빨라진다. 소운동장을 가득 매운 고함소리와 소란스러움을 조금이라도 덜 묻혀서 정각원으로 가고 싶은 나의 바보같은욕심때문이다,

다른 한 곳은 소운동장과 진흥관 가는 길에서 중간쯤 되는 곳에서 시작되는 오솔길이있다. 처음 그 길을 접어들면 옆의 주차장과소각장, 그리고 듬성듬성 서있는 나무들로 인해 조금만 더 걸어가면 멋진 숲이 나타난다는 걸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요즘은 매일 다니니까 눈에 익지만, 1.2학년 때엔 그 곳에 실이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었다. 이따금씩 그 곳에서 걸어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길도 없는 곳에서 무얼 하다가 나오는 걸까? 길이 없어서 돌아 나오는 걸까? 이 상한사람들이구나 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었다, 주차장을 지나 조금만 걸으면 주위가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나지막한 내리막 길의 오솔길이 나타난다, 예전에는 소나무도 꿀밤나무도 밤나무도 빽빽이 있었는데, 몇 해 전 유물발굴로 길 오른쪽에는 나무가 제법 많이 잘려나갔고 흙도 많이 파헤쳐졌다. 그 사이로 학생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만 들려 오고, 가끔씩은 노랫소리도 들려와 조금은 아쉽지만 난 이곳을 참 좋아한다,

부처님을 뵈러 가는 길이라 좋고, 산길을 걸으면 절에 가는 기분이라서 좋고,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에서 생활하다가 자연 속으로 오니까 좋다,

난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길을 오르내린다,간혹 소운동장으로 다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 길로 다닌다. 어떤 날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정신없이 뛰기도 하고, 좋은 길동무가 있는 날엔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떤 날은 혼자 발걸음을 옮기기도 하고.어떤 날은 혼자 발걸음을 늦춰서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사각거리는 나무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길가에 펴어 있는 노란 민들레, 자그마한 모양새를 한껏 뽐낸 제비꽃,무리를 지어 주위를 하얗게 만들어 버린 망 어초에 정신을 빼앗기기도 하고, 가을엔 꿀밤을 줍는다고 그 숲길에서 1시간 동안이나 헤매댔고, 나무 사이를 푸드덕 이며 나는 새를 보면서 나 자신이 자연의 한 가운데에 서 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여름날엔 뜨거운 햇볕 아래로 나가기가 싫어서 그 곳에서 서성거렸고, 비가 오는 날엔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조심조심해서 한 걸음씩 물웅덩이를 피해서 발을 내딛지만 정각원에 도착해서 보면 바지 뒷부분은 흙투성이로 변해 있어서 지저분해 지기도 했지만, 이런 날에도 정각원 가는 길은 즐겁기만 한다.얕은 언덕을 두 세 번 오르내린 후 가파른 내리막길에 이르면 그 아래로 보이는 자그마한 연못에 탄성을 지를 것이다. 내가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을정도니까.

갈대와 자그마한 나무로 둘러싸인 연못,그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는 희고 붉은 빛의연꽃들.

몇 해전만 해도 이 곳에는 맑은 물이 가득했는데, 가뭄으로 인하여 연못의 가장자리는 밑바닥을 앙상하게 드러내 보기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연꽃만은 가득가득 피어 있다.내가 학생일 때에는 이 연못에 참으로 자주도 왔었다. 친구와 다투었을 때, 이유없이화가날때,뵘가잘되지 않을 때 이곳에 와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리하곤 했다.

연못을 돌아서면 바로 동국의 종과 정각원이 나타난다. 얼른 2층 법당에 올라가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양초에 불을 밝히고 향을 하나 피운다. 그리고 내려와서 학생들을 기다린다.

지난 학기부터 신입생들의 '자아와 명상'이라는 수업이 정각원에서 있어서 수업을 핑계삼아 정각원에도 자주 와서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의 뜻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가치의 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자칫하면 혼란과 방종에 빠지기 쉬운 신입생들의 인격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들에겐 퍽 다행스러운 일이고 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하여 내심 그들이 부러워졌다. 그러나 학생들이 강의실과 거리가 너무 멀어서 오기가 힘들다며 핑계 아닌 핑계를 대기도 하고, 원 효관 . 진흥관과 다름없는 강의실이라 생각하는지 목소리를 높이고 합창도 잘 하지 않아서 속이 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법당의 촛불도 밝히고, 부처님께 살 배를 올리는 학생도 많아졌다.

비단 학생들 뿐만 아니라 정각원에서의 생활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동국의 종' 타종 식과 '부처님 오신 날'행사 준비를 도와드리면서 여름에는 조교들과 백팔 배를 드린다고 정각원과 교학과를 다리를 절며 오르내리면서, 나이 드신 보살님들과 함께 있는 조교와 여러 곳의 절을 다녀오면서 여러 스님들의 좋은 말씀 속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었다.또 절에 자주 간다고 하면 나이 드신 보살님들만 생각할 만큼 이상한 편견에 사로 잡혀 있고, 불교라고 하면 그저 나의 종교라는 추상적인 생각만을 했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불교가 나의 생활 속으로 자리잡고 있음을느낀다.

 

 

 

신행상담
무명 /  계환스님 / 불교대학 교수

우리 인간은 자기가 모르는 세례에 대해서는 무가치하게 생각해버리는 졍향이있는데 특히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형기 군의 불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군요.

불교가 믿음의 종교가 아닌 깨달음의 종교라는 사실 속에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사상적 특성이 내재하여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모든 권위와 도그마를 배격하고 보편적인 진리 그 자제를 중시하는. 이른 바 진리 지향적인 종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불교의 모든 교리는 부처님의 깨달으신 연기설을 근저로 하여 형립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이연기설(十二豚步邑訛)도 우리들의 상존이 영 두 가지의 조건에 의하여 성림되는 과정을 설정한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모든 사물(事物)과 사상(爭賑)은 서로서로기 의존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상호의존 관계를 설명한 불교의 근본교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어떠한 존재도 다른 사물이나 사상과 연관관계가 없이, 그 자체만으로 독립 존재하고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기설을 우리 인간의 나고 죽음에 비유하여 설한 십이 연기의 첫 번째가 바로 무명(無名)입니다.이때의 무명이란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를 말하는데,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어리여음이지요 동시에 갈애(客喝愛)와 표리(表裏)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무명으로 말미암아 그 다음의 행(行)이 생기고 결국 노사(老殆)가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질문한 대로 십이 연지의 시작인 무결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 평에는 어떠한 원인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명은 어둠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둠 그 자체에 어떤 원인이 있습니까? 어둠은 단지 빛이 결여된 상태를 가리킬 뿐입니다 즉 빛만 나타나면 그 순간어둠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둠에는 어떤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빛이 결여된 상태일 뿐이지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혜만 있다면 무명은 자연히 사라집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혜가 없으니까 무명이 있고, 그 무명은 바로 지혜가 결여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요컨대 지혜가 생기면 무명은 저절로 없어지고, 또한 무명 때문에 행이 생겼으니까 그 무명이 없어지면 행도 없고, 이어서 노사(老死)라는 고(苦)도 결국 없어지는 이치입니다.

 

 

 

불교건강법
저리십니까? /  김장현 / 서울캠퍼스 보건소장

 흔히 팔다리의 뼈마디 또는 근육이 저리거나 쑤시고 아픈 것을 한의학적으로 비(痺)증이라고 하는데, 심하면 관절이 변형되고 팔다리의 운동장애까지 나타난다.

일반적인 증상으로 바람에 노출되거나 차거나 습한 것 등의 기후변화 자극에 적절한 적응이 되지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한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놀람 등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후에도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식생활의 습관이 좋지 않아서 폭음 폭식 과도한 흡연, 편식, 냉음료, 인스턴트 음식 등도 요인이 되며 운동부족으로 인하여 발생되기도 한다. 여성의 경우 갱년기에 나타나는 골다공증의 한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저리고 쑤시는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은 대개 근본적으로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허약한 소인을 많이 보인다.

발병의 동기를 살펴보면 선풍기나 에어컨 밑에서 자고 일어났거나, 장마 뒤끝이나 습한 곳에서 오래 머물거나 일을 한 후에 많이 호소하는데, 특히 주부들이나 노인 분들께서 큰 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도 느끼는 경우가 많아 일상생활이 짜증스럽고 일의 능률이나 삶의 의욕이 떨어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대개 근육이 뻣뻣해지는 증상을 동반하는 것은 혈액순환장애, 신진대사저하, 신경통 등으로 비증의대부분은 여기에 해당하고 뼈나 관절의 증상으로 퇴행성 관절염, 류머티즘 관절염 등에서도 이러한증상을 보인다.

통증이 심하지 않으면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풍비(風痺)라 하며, 통증이 극심하면서 추우면 심해지는 것을 한비(寒痺), 온몸이 무겁고 시리며 붓고 비가 오면 습해지는 경우를 습비(濕痺)라 하며 머리가 아프고 예민하여 잠을 잘 못 자는 증세가 있으면서 신경을 많이 쓰면 더 심해지는 것을칠정비(七情痺)라고 분류하고 있다.

치료는 근본적으로 기혈의 허약을 보충하는데 체질적으로 소화기가 약하여 의욕이 없는 사람과 간장이나 신장이 허약하여 피로를 잘 느끼는 사람은, 소화기 질환을 치료하고 간장이나 신장을 튼튼히 하는 방법을 잘 사용하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몸을 따뜻하게 하여 약간의 땀을 흘리게 하고 대소변을 잘 통하게 하여 노폐물의 배설을 촉진시키는 약물, 침구치료, 또한 가벼운 맨손체조, 보행, 테니스, 수영 같은 운동, 쑥탕, 냉온탕, 족탕 등의 목욕요법 및 식이요법을 병행하여 시행한다.

식이요법에는 검은콩으로 강정을 만들어 복용하거나 마늘, 양파, 생강 등과 약간 신맛이 나는 모과,오미자 등으로 주스나 차를 만들어 복용하면 좋다.

어느 병과 마찬가지로 예방이 중요한데 평소 부지런하게 생활하며 규칙적인 운동 등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방한 보온에 유의하며 장시간 습하고 찬 곳에 있지 않아야 하며 땀을 흘린 뒤 찬물로 목욕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고 풋과일이나 찬 음료 및 맥주를 금하고 규칙적이고 적당한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습관을 들이며 욕심을 버리고 취미생활을 가져 사는 재미를 느끼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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