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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정각도량 / 5월호 / 통권 15호 / 불기 2539(1995)년 5월 1일 발행

 

 

이사장
봉축법어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오녹원 스님

 

총장
봉축법어

동국 중흥의 초석이 되길/송석구

 

정각도량

부정념 수행의 실천/ 이도업 스님

 

고승법어

정념 수행의 실천/ 틱낫한 스님

 

정각논단

일심청정/ 윤석성

 

교리 강좌

종자와 습기/ 편집위원

 

경전의 세계

금광명경/편집위원

 

불심의 창

믿음의 길/ 허천택

 

불자탐방

염준근 총무처장/ 편집부

 

가람의 향기

오어사/ 편집부

 

일주문

주체적인 가치 인식/ 이봉춘

 

동국과 불교

혜전 문학과 일제말의 학원/ 편집위원

 

비유와 설화

월광의 부모 구제/ 편집위원

 

나의 신행담

보이지 않는 힘/ 권민희

 

신행단체

경주캠퍼스/ 편집부

 

 

 

 

부처님 오신날 봉축사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 오녹원 이사장

친애하는 동국 가족 여러분,

그리고 부처님을 예결하는 사부대중 여러분!

오늘은 찬연한 진리의 등불로 無明을 밝히신, 그리고 인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은 王子로서의 영화마저도 떨쳐버리시고 무애자재한 해탈의 경지에서 正覺하신 분이기에 그 거룩한 眞如의 몸짓은 온 누리 생명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소위 국가경쟁시대라 하여 국가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고, 모든 인류는 산업화, 과학화와 더불어 물질적 풍요는 누릴지언정 도덕적, 윤리적 타락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극에 달하여 혼탁과 절망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동국인 여러분! 이러한 혼돈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은 섬광 같은 지혜로 절대무한의 탁 트인 대자유의 세계를 일깨워 주신 분입니다. 이 대자유의 세계는 곧 만유의 생명을 존중하고 자신이 생명의 주인이 되며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지혜입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만이 자아를 상실하고 황폐해져 가는 인간의 마음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는 곧 대부분의 인간이 탐착하는 육체적 생명관을 벗어나 자신의 자각을 바탕으로 하는 정신적 생명관을 체득하는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육체와 시간 그리고 관념에 얽매인 중생심을 버리고 우주자연의 질서와 일체가 되어 바로 알고 순리대로 사는 참다운 佛'陵을 찾는 길입니다.

 불교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 였습니다. 우리의 @@속에 1600년 동안 면면히 흐르고 있는 불교의 역사와 사상은 이 땅에 위대한 불교문화를 창조하였고 민족 정통종교로서 우리 민족의 정신적 토양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얼' 이 살아있는 한 한국불교의 앞날은 결코 어둡지 않을 것입니다.

 한때 우리 불교계가 그 변화와 정화의 과정에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바도 있었지만 이는 곧 개혁과 혁신을 통하여 거듭나기 위한 일시적 진통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나은 불교계의 미래 창조를 위해서도 새로운 자각과 정진이 더욱 절실한 때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실천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한 예로 불교는 받는 종교에서 베푸는 종교로 달라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남을 잘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복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자라면 먼저 복과 지혜 이 두 가지를 닦아야 합니다. 남에게 복의 씨앗을 뿌릴 줄 아는 '보시공덕'의 지혜부터 실천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

동국가족 여러분!

부처님의 은혜는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가 잊고 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웃과 남과 더불어 모가 나지 않고 서로 도와주며 착하게 사는 일부터 실천해 나갈 때 이 세계는 자비와 화합의 기쁨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佛國土요 극락의 세계입니다.

다시 한번 부처님 오신 날의 큰 뜻이 동국인 여러분의 가슴에 환희심으로 넘치기를 기대하면서, 동국인 여러분의 가정은 물론 온 누리에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가득하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불기 2539년 부처님 오신 날 아침

 

 

 

부처님 오신날 봉축사
동국 중흥의 초석이 되길 /  송석구 총장

 

올해도 어김없이 지혜와 자비의 빛으로 부처님은 오셨습니다. 우리 전 동국인은 이 뜻 깊은 날을 맞이하여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온 누리에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학교는 불교계의 선각들이 이 땅에 불국정토를 이룩하기 위한 큰 이상을 품고, 먼저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의 목표 아래 개교한 불교 종립대학교입니다. 따라서 우리 동국인 모두는 우리 대학의 건학이념에 비추어 누구보다도 부처님의 태어나심을 봉축하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불교는 이 땅에 전래하여 찬란한 문화를 창달하면서 예지를 열어가는 등불이 되었으며, 난국에 처했을 때에는 이를 극복하는 반려가 됨으로써 천육백 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 빛나는 전통을 세웠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불교는 민족정신의 중추적 자양으로서 그 창의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왔습니다. 앞으로도 불교의 지혜는 영원한 진리이며,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광명 등으로서 그 소임을 다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우리들은 늘 고통의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을 비판하는 데에는 익숙하면서도 스스로의 허물을 뉘우치는데에는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번뇌와 고통의 원인 이 우리들 내면세계에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나아가 탐진치삼독의 멍에를 스스로 극복할 때 새로운 창조의 경지가 열린다는 것을 고구정녕히 이르셨습니다.

유마경에서도 '心淸淨이 佛國土' 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여 새로운 지평이 열릴 때 하루하루를 지혜 광명 속에 사는 常樂我爭의 경지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자리를 無師 謎吾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도 누구나 평등하게 이 자리를 증득할 수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샛별을 보시고 견 성하신 순간 이미 진리와 하나가 되신 것입니다. 진리이면서 인간 석가모니 부처님이시고, 인간 석가모니 부처님이면서 진리였던 것입니다 마음의 바탕은 제불 보살님이나 중생이 차별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청정할 때 자신의 안에서 부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동국인 가족 여러분! 머지않아 우리는 대망의 21세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국내외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무한경쟁의 시대에 돌입하였습니다. 밝고 희망찬 도약의 내일을 가꾸느냐 아니면 실의의 나락으로 떨어지느냐 하는 중대한 순간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 동국인 모두는 동국중흥의 첨병으로서 선도적 역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한마음한뜻이 되어 동국발전을 위해 총력을 기울입시다.

 오늘 이 기쁨이 일시적인 축제로 끝나서는 안되리라고 봅니다.

 생명의 참다운 가치를 누리는 일, 그리고 그 확신에 찬 발걸음을 현실 속에 옮겨놓는 것이 부처님 오신 뜻을 구현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큰스님, 내빈 여러분 그리고 교직원 및 학생 여러분에게 부처님의 크신 자비원력으로 항상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불기 2539년 부처님 오신 날 아침

 

 

 

정각도량
부처님 오신 뜻 / 이도업

 

우리 모두 기쁜 날.

만 생명이 환희에 춤추는 날.

그래서 거룩한 날. 부처님 오신날!

永遠劫 전에 이미 成佛해 계셨던 부처님께서 중생의 몸을 나투시어 이 사바에 오셨으니 그뜻은 무엇일까요. 삼계의 모든 생명체를 올바른 길로 @導해 주시는 큰 스승으로 四生의 자비로운 어버이로 많은 사람이 추앙하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바르게 살 수 있는 길과 참 잘사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바르게 가르쳐 주신 위대한 인간 교육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태어나시어 길에서 입멸하신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三事를 가르쳐 주셨으니, 그 세가지 길이 참 진리기에 우리는 그 분을 우러러 존경하는 것입니다.

三事의 첫 번째는 지식만 습득하지 말고 지혜의 눈을 뜨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식은 강을 건네주는 뗏목과 같습니다. 깊고 넓은 강을 건너는 데 뗏목은 절대 필요한 것이지만 강을 건넜으면 그 뗏목은 곧 버리고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지 뗏목에 매달려 집착하고 있으면 다음 목적지에는 결코 갈 수 없습니다. 지식도 그와 같아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며 진리를 깨닫기 위한 길잡이에 불과한 데 인간들은 쥐꼬리만한 지식을 가지고 잘났다 뽐내며 지식경쟁이라도 하듯 떠들어 대니 이 사회가 미일게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반야 지혜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지식이나 정보에 관한 해결책으로서는 이 난국이 풀릴 것 같지 않습니다. 이 마음이 청정해야(心淸淨) 생활환경이 좋아지지 (國土淸淨) 생활환경만 좋아진다고 해서 사회가 안정되거나 心性이 순화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부처님 말씀이 새삼 마음에 크게 와닿는 지금입니다.

부처님 오신 두 번째 뜻은 우리는 모두 하나며 평등하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 인도 사회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습니다. 司祭, 王族, 平民, 奴隸의 4등급으로 사람을 나누어 교육, 직업, 결혼 등에 엄청난 차별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제계급의 사람들은 저 높은 곳에 범천이 있어 천지 만물을 창조했으며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오직 梵天의 뜻에 달렸다. 督天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제사와 기도뿐인데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은 사제들이니 자기들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강요했습니다.

그런 때에 부처님께서 등장하시어 ''인간의 품격은 출신 계급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行爲여하에 따라 정해진다.''고 사자 후 하셨습니다. 직업, 종족, 사는 방식, 지적 수준 등등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고귀함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평등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은 인간뿐만 아니라 짐승이나 미물의 경우도 인간과 똑같이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과 똑같이 미물의 생명도 존엄한 데 어찌 산목숨을 함부로 죽일 수 있느냐 살생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불자가 지켜야 할 윤리 덕목의 첫 번째가 平殺不戒인 것입니다. 모든 생명의 평등성 을 주장하셨고 거기서 남의 생명을 내 목숨같이 어여삐 여기는 자비사상이 나왔습니다.

 이념의 차이로, 빈부의 차이로, 지역의 차이로 우리 사회는 지금 큰 갈등 속에 빠져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는 분명히 우리는 차별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본성은 모두 하나며 평등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돈 몇 푼에 남의 목숨을 빼앗고 사소한 시비로 이웃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요즈음의 세태입니다. 어느 때보다도 모든 생명체의 평등에 입각한 자비사상이 요청됩니다.

부처님께서 오시어 가르쳐 주신 큰 뜻의 세 번째 것은 利他行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사랑이 아닌 이웃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자기 사랑의 自利行에서보다 이웃 사랑의 利他行에서 오는 기쁨이 참으로 큰 희열임을 가르쳤습니다. 자기만 잘 살겠다고 아우성 칠 때 그 사회는 지옥이며 남을 편안하게 해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 때 진정 자기도 구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옥과 극락은 따로 떨어진 별개의 세계가 아닙니다.

주거 환경이 쾌적해지고 문화 공간이 넓어지고 경제적인 풍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지상낙원은 생활환경의 개선에만 의해서는 결코 이룩될 수 없습니다. 외적인 생활환경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더욱 문제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나그네가 비명에 죽어 염라대왕 앞에 불려 갔는데 재심 청구를 한 결과 지옥사자가 잘못 잡아온 것이 판명이 되어 生還하게 되었더랍니다. 비명에 갔던 기념으로 지옥과 극락 행 티켓을 한 장씩 얻어 돌아오는 길에 지옥관에 들어가 보니 산해진미가 방마다 차려져 있고 풍악소리가 은은히 울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 꼬챙이 저럼 말라있더랍니다. 연유를 알아보니 지옥에는 지옥의 규칙이 있는데 그 하나는 어느 음식이나 자유로 먹을 수는 있으나 1m가 넘는 젓가락의 끝을 잡고 집어 먹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옥 사람들은 자기만 먹으려고 아우성을 치며 야단들이었지만 젓가락이 길어 고기 한점도 자기 입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욕하며 치고 할퀴고 박이 터지게 싸움질만 하더랍니다. 한 5분쯤 구경하고 있노라니 나그네까지 화가나고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서 그 곳을 나와 곧 극락 관으로 들어갔더랍니다. 그 곳에도 역시 지옥관과 같이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져 있고 은은한 풍악소리가 들려오는 데 사람들의 표정은 온화하며 화기가 있고 적당히 살이 쪄서 그야말로 극락세계더랍니다. 깜짝 놀란 나그네가 가만히 살펴보니 그 곳도 역시 지옥과 길이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게 되어 있었는데 그 곳의 사람들은 서로 얼마나 시장하십니까. 먼저 드시지요 하고 웃으면서 서로 집어 먹여 주더랍니다. 아무리 젓가락 길이가 길어도 서로기 서로를 먹여주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도 없더랍니다.

 지옥과 극락은 생활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에 달려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自利가 아닌 利他를 가르치신 것은 利他不予을 함으로써 참으로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극락의 모습에서와 같이 利他가 곧 自利임을 일깨워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우리 모두 마음의 등불을 밝혀 지혜의 눈을 뜹시다. 그리고 온 생명이 평등함을 인식해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비 행을 실천합시다.

 나만을 위한 自利行이 아닌 당신을 위한 利他行을 하여 나와 당신이 같이 해탈하는 自他一時 成佛道 합시다.

 

나무석가모니불

 

 

 

고승 법어
정념 수형의 실천 / 틱낫한

스님! 그리고 동국대학교 교수, 직원, 학생 및 불자여러분!

본인은 30년 전 반한(萬行)대학을 설립했는데 ''반한''이란 만 가지 행위, 또는 베트남의 유명한 스님의 법명이기도 합니다. 반한스님은 7C 초 베트남을 외침(外侵)으로부터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던 분입니다 30년 전 토반들과 함께 대학을 설립할 때 도반들이 저에게  '불교대학과 비불교 대학의 차이점'에 대해 묻곧 했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일반대학을 졸업한 사람들과 달라야 하는데 그 다른 점은 무엇일까? 바로 이러한 생각들이 불법(佛法)을 배우고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래세의 부처님은 잘 알고 있듯이 자비의 미륵불입니다. 미륵불은 남자로, 도는 여자로 화현될 수도 있지만 본인의 생각으로는 "지역공동체"의 모습과 같은 형태로 놀 것이라고 봅니다.

 반한대학은 수만 개의 팔을 가진 부처님의 형상을 의미하는 이름입니다. 즉 관세음보살은 많은 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고통받는 많은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한대학은 바로 미륵부처님의 화현으로 오신 모습을 실현시킨 곳입니다. 이 대학을 졸업하는 모든 학생들이 자비스러운 행동을 하게 될 때 실제적으로 자비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대학의 모습으로 화현되었을 경우 그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 답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부처님의 핵심은 자비와 실천수행입니다. 교수와 학생은 항상 자비와 수행을 실천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학이 자비를 실천하는 공동체로서의 미륵불이 되는 것입니다. 동국대학의 구성원 모두가 자비를 실천할 때 사람들은 동국대학을 자비를 배우고 실천하는 도량으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사랑을 가르치고 있는데 특히, 불교에서는 자비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50여 년간의 수행을 통해 터득한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이해할 수 있어야하며, 다른 사람을 최대한 배려해주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잘 보살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화가 났을 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부모와 반목하고 있을 때,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습니까? 이러한 주제들은 소학교, 중 . 고등학교, 심지어는 대학에서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동국대학 만큼은 이러한 문제들을 가르쳐서 자신과 세상사랑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스승과 제자는 대화를 통해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 속에 내재한 최상의 것은 학문 같은 기술적인 것이 아닙니다.

스승이 학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오랜 전통 속에서 내려온 가치 있는 유산들일 것입니다. 전통은 조상을 통해서 전증되며, 가족전통, 사회전통 등이 있는데 정신적인 스승을 통해서 이어져 내려온 전통도 있습니다. 불교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정신적 유산입니다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현재 이 순간을 값지고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전해주셨습니다 즉 자비를 통해 자신과 세상 사람들을 아끼고 보살피는 방법을 일러주셨습니다. 그래서 스승은 제자에게 이러한 소중한 전통을 잘 가르치고 익혀서 후세에 전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됩니다. 또한 교수는 학생들에게 '서로 사랑하고 이해해야 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지혜가 모든 것의 근본이 됩니다.

상대방을 진실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행동을 하고 있지만,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불교수행법은 내면을 깊이 관찰함으로써 바른 이해가 생기고 그 이후에는 모든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방법입니다.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의 욕망이나 좌절 등을 알지 못하여 진실로 그들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바로 불교의 수행은 지혜에서 나온 이해를 바탕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비와 지혜는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리우지만 실제로는 하나입니다. 참된 자비는 진실로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서 사랑해야 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동국대학에서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지혜를 통한 이해를 증징시키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을 잘 이해하고 보살필 때 세상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만개의 팔을 가진 부처님의 화현이 됩니다. 절에 가셔서 천수관음을 볼 때 마음을 가지런히 모으고 그 각각의 손들을 잘 응시해 보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자비를 행할 때는 자기 내면의 깊은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잘 이해해야 다른 사람을 이해하여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어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법을 한 뒤에 자신이 거기에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정념으로 호흡수행을 해야 진실한 이해와 진실한 말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서로 너무나 바빠서 상대방과 대화할 기회조차 상실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대화가 부족하여 서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들이 누적되면 결국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정신과 의사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는 분이 관세음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자비스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 옆에 앉아 우리의 얘기를 들어주십니다. 여러분이 불자라면 바로 관세음보살의 이런 듣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깊이 있게 얘기를 들어줌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줍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부분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등지 못합니다.

좋지 않은 말을 들으면 화를 내고 그 화낸 마음을 상대방에게 되돌려 주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너무 많은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듣고 받아줄 여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안에는 상대방을 포용할 그런 공간이 없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이야 말로 내부에 무한한 여유와 공간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저는 17살에 출가하여 관세음보살님에 관한 시를 즐겨 구송(口誦)했습니다.

 

저 달과 같이 신선함 주는 관세음보살님은 무한한 공(空)의

하늘에 계시네.

우리의 마음이 평온할 때

저 달의 모습도 아름답게 비추리.

 

여러분은 마음속에 여유가 있을 때 조용히 앉아서 상대방의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동국대학의 교수님들은 관세음보살님처럼 조용히 앉아서 세상 사람들의 이런 고통스러운 소리들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본인이 유럽과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들을 위한 수련회에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정신과 의사들도 불교를 통해 듣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포옹하는 수행법을 가르쳐 부자(父子) 간에 대화의 길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아시아계에서는 유교적인 전통 때문에 포옹한다는 것이 일상적인 관습은 아니지만 여러분의 자식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항상 여러분의 애정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동양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애정을 표현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자식들은 부모들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자식과 대화에 문제가 있다면, 오늘밤 집에 돌아가셔서 자식을 품에 꼭 안아보시기 바랍니다. 내일은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법을 세번한 후에 자신이 현재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물을 마실 때나, 음식을 먹을 때나, 걸어갈 때나,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나,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깨어 있는 것이 정념 수행입니다. 동국대학의 구성원은 항상 정념 수행을 해야 합니다. 정념으로 살아갈 때 지혜와 자비가 성취됩니다. 정념 수행은 바로 이해와 집중, 자비를 증득하는 불교의 요체입니다.

 동국대학은 부처님의 법신이 되어야 합니다.

 정념을 생활화함으로써 모든 학생들이 관세음보살님의 하나하나의 팔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이야말로 한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동국대학에 있는 여러분에게 부처님의 축복이 항상 여여 (如如)하기를 축원합니다.

 

 

 

정각논단
일심청정(一心淸定) / 윤석성

범인들이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오염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 허용된 소중한 시간이 자신을 오염시키는 노릇밖에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밝아지고 맑아지고 넓어지고 높아져야 할 터인데, 날이 갈수록 혼란스럽고 더러워지다니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이 死路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맑고 향기롭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그러나 이러한 생각도 잠시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왕성한 의욕으로 즐겁게 입장을 쌓고 있다. 재물로 권세로 명예로 보상받으면서, 어쩌다 스쳐가는 범인들 이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그 만큼 오염되었다는 반성은 양념감일 뿐, 심각한 문제는 되지 않는다 하는 일 잘 되고 남들이 알아주고 몸 건강하니 도대체 불편할 게 없는 것이다. 이 세상 이대로 살다가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세에서 이 정도의 행운이라도 누리는 이는 극소수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입장으로 잠 못 이루며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욕심에 눈멀어 화내고 증오하며 싸우다가 죽이기까지 한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스스로 쌓은 악업이 현세에서 악보를 부른 것이다. 이러한 악보는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이어진다. 가해자의 욕심이 빚어낸 음해와 살상은 피해자에게 억제할 수 없는 증오와 저주를 심어 준다. 이러한 증오와 저주는 다시 음해와 살상을 낳으면서 끝없이 순환하게 마련이다 자연히 사람들의 심성은 악독해지고 본래의 청정심을 잃게 된다.

수미산보다도 높은 먹구름이 우리의 본성의 발현을 가로막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본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필자 자신을 생각해 본다.

나 자신이 이러한 악순환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남에게 하지 못할 짓은 하지 않았던가?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던가? 틈틈이 거짓말을 하고, 마음으로 죄를 짓지는 않았던가? 남을 시새워 하고 미워하지는 않았던가? 나보다 약한 사람을 무시하고 우쭐대지는 않았던가? 이런 물음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 자기가 인식하고 반성할 수 있는 잘못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가 옳고 바르다는 아집일 것이다.

아집에 빠지면 반성이 따를 수가 없다. 반성이 없으면 실상이 보이지 않고, 실상이 보이지 않으면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사바세계에 살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연을 맺는다. 선연도 있고 악연도 있다 도저히 피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악연을 만나기도 한다. 나는 옳고 선하다. 그는 추하고 악하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저주하지만, 그 저주의 화살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보다 알지 못한다.

불교의 唯識論은 마음이 짓는 업은 마음에 쌓여 우리의 근원적 입장이 된다는 것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학설이라고 생각된다. 유식론은 번뇌 속에서 선악에 윤회하는 중생을 설명하는 학설이며, 청정 무궁한 불성과 친여성을 설명하는 학설이라 한다.

유식론에 의하면 오관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적 관계의 대상을 인식하는 眼, 耳, 鼻, 舌, 身識이 前五識이라 하고, 전 오식에 의하여 식별되는 대상을 다시 확인해서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마음을 의식(또는 六識)이라고 한다.

 의식은 정화되어 청정심일 때는 마음과 물질계가 하나를 이루는 절대경지 (唯戱無境)에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을 산란케 하는 것이 말나식이라 한다. 말나식은 근원적인 번뇌를 일으키는 心識,으로 이에 의해 야기되는 네 가지 근본번뇌는 아치, 아견, 아만, 아예 이다 아치는 진아로서의 나에 대한 무지이며, 이견은 아치로 말미암은 망건으로 나라는 집념이 강화된 상태이고, 아 만은 이견이 더욱 객관화된 것으로 자기만이 존귀하다는 태도이며, 아애는 자아에 대한 집착으로 진아를 망각하고 기아를 설정하여 고정적으로 탐심과 애착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이러한 말나식은 아라야식을 인식대상으로 하여 恩考하고 번뇌하게 된다고 한다. 유식론에 의하면 아라야식은 만물의 근본이 되고 창조자가 되는 것으로, 아라야식 안의 撫漏種子는 청정수행에 의해 熏習(조성해서아라야식 안에 보존시킴)될 때까지 아라야식의 實'陸인 친여성에 고요히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아라야식에 보존된 종자가 서로 인과 연이 되어 먼저의 종자가 다른 종자로 변화되는 것을 種子生種子라고 한다. 아라야식에 보존된 입력이 새로운 연을 만나 즉시 七寧聘識의 활동과 육체의 새로운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種子生現行이라고 한다.

또, 인간의 정신생활과 육체의 행위는 결과임과 동시에 자신의 아라야식 안에 다시 종자를 보존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를 現行熏種子라고 한다.

이처럼 유식론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진여성, 불성이었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모두가 이러한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취생몽사로 일생을 보내고 있다. 끝을 모르게 두꺼운 무명의 먹구름에 가린 이 보물을 다시 찾아 자기 것으로 하는 길은 일심으로 청정 행을 닦는 것밖에 또 있을까?

1978년 여름에 나는 송광사와 화엄사 일대를 떠돌아다닌 적이 있다. 뙤약볕 속에서 흙 기운을 마시고 길섶이나 산자락에서 자기도 하면서 문학수업 비슷한 것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쑥스러운 일이지만, 또 한편에서 그때가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그때 나는 유치한 대로 조금 살아있었던 것 같다. 지식의 망에 갇히지 않고 한 생명체로 대상에게 직 핍해 갔던 것 같다. 눈 푸른 노스님을 만난 것은 바로 이때였다 화엄사 문 밖 개울가에 앉아 계시는 모습이 너무나 편안하고 정갈해서 다가가 무어라고 말을 붙였던 것 같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안 떠오르지만 그분의 형형한 눈빛과 여든 아홉 살의 나이, 그리고 ''너 나를 따라 오너라.'' 하는 말씀만이 또렷이 남아 있다. 산이 쩌렁 울렸다.

 속인의 호기심이 달아나고 무섬기가 들었다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생각이 안 나고 우물우물 그 자리를 빠져나왔던 것 같다.

 그때 그 스님을 따라갔더라면 나는 어찌 되었을까? 지금의 비동사동으로 사는 것은 면할 수 있었을까? 아니, 어렵고도 어려운 그 길을 내가 계속 갈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나에게는 벅찬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노스님을 생각할 때마다 이 부박한 중생에게도 생명의 본향에 대한 향수와 일심청정 한마디가 어릴 적 외갓집 가던 길의 맑고도 긴 솔바람 소리로 들려온다 간간이 들려와 심층의 골골에 낀 묵은 때를 청청한 참빗으로 벗겨주곤 한다.

 

 

 

교리강좌
종자와 습기/ 편집위원

근래에 인류가 우려하고 있는 자연의 이상 현상은 종말론자들의 확신에 찬 불길한 예언에 내키지 않는 심정적인 동조를 자아내기도 한다. 그래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싹을 틔워 내어 죽은 듯한 만물을 소생시킴으로써 종말의 호적을 일시에 일소하는 것을 보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종자의 인과와 위력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종자의 이 인과와 위력이 유지되는 한, 종말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종자란 식물의 씨앗을 의미하는 말이다. 땅속에 덮여 보이지 않는 씨앗에는 언젠가 싹을 틔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종자가 인간의 정신 영역에 도사리고 있으면서 인간의 정신 활동은 물론이고 외계의 모든 현상을 현출하거나 수용한다고 생각하는 사상은 대승불교의 유식 설에서 핵심을 이룬다. 이 점을 『유식30송』에서는 ''종자는 모든 현상을 낳고, 모든 현상은 종자에 그 관습이나 성질을 기운으로 남긴다.''라고 설한다. 자연 현상에서 발휘하는 종자의 기능을 정신 현상에 응용하여, 모든 존재를 산출하는 가능력이 인간의 심층 심리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서 그것을 종자라고 불렀던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 사물이 존재 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불교에는 사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자기의 마음의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하는 가르침이 있다. 유식설은 바로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서, 마음속에서 현상들이 전개될 때 그중 심적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을 종자로 간주했던 것이다.

유식설의 정립된 교리에서는 ''종자란 알라 야식 속에 있으면서 몸소 자기의 과부를 낳는 특수한 힘이다.''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종자란 알라 야식 속에 있으면서 자신의 결과를 낳는 특수한 정신적 힘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알라 야식이란 한역 불전에서 흔히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는 음역으로 표현되는 심층 의식인데, 인간의 모든 업, 즉 표층적인 의식과 행위를 하나의 세력으로 수용하여 저장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장식 (藏識)이라고도 번역된다.

 종자는 우리의 일상적인 모든 신체적 행위와 말과 생각, 즉 업을 통해 알라 야식 속에 이식된다. 이렇게 이식된 것은 실제로는 업이 남긴 보이지 않는 세력 또는 기운이다. 종자가 업이 남긴 기운으로서 알라 야식에 저장되거나 그로부터 의식의 표층으로 발동한다는 점을 강조하여, 종자를 습기(習氣)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습기가 종자의 별명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종자라는 말로 생겨날 수 있는 오해를 불식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비유적으로 종자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실제 자연계의 씨앗과 같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현상이 그 관습이나 성질의 결과로서 알라 야식에 남긴 기운이다. 그래서 습기라고 칭하는 것이다. 더 쉬운 말로 바꾸면 잠세력이다 또 인간의 행위에 한정해서 말하면 그것은 업력이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과거의 입력에 의해 형성되듯이, 인간이 경험하는 외부 세계까지도 심층 의식인 알라야식에 남기진 잠세력이 발동하여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종자를 내세우는 유식설의 난해함과 특성이 있다. 여기서는 종자를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이나 외계 현상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자가 그와 같은 기능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의 조건이나 성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위 '종자의 6의(義)'라는 것이다.

 첫째는 '찰나멸'이라고 하여, 무상의 법칙에 따른다는 것이다. 생멸 변화하지 않고 상주 불변하는 것은 제법(諸法) 즉 온갖 현상을 산출하는 원인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종자는 반드시 찰나에 생명 할 뿐만 아니라 상속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둘째는 과구유(果俱有)라고 하여, 종자는 온갖 현상과 분리되지 않고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종자로부터 온갖 현상이라는 결과가 현출될 때, 원인(종자)과 결과(諸法)는 반드시 동시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셋째는 항수전(恒隨轉)이라 하여, 항상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종자는 어느 시간에 존재하지 않다가 나중에 다시 존재한다는 식의 것이 아니라, 항상 알라 야식에 따라 동일한 종류를 보존하면서 존재함을 의미한다.

넷째는 성결정(性決定)이라 하여, 종자에 그 기운을 남기는 세 가지 성질에 따라 그 종자로부터 생기는 현상들의 성질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세 가지 성질이란 선, 악, 무기(선도 악도 아닌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에 지은 선한 업(원인)에 의해 그 기운이 스며든 종자는 미래에 반드시 선한 업(결과)을 낳는다.

이처럼 종자는 원인과 같은 성질의 결과를 낳는 힘을 지닌다.

다섯째는 대중연(待褙衆)이라 하여, 반드시 여러 가지의 부차적인 원인이 결합하여 물질이나 정신 등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즉 종자는 온갖 현상을 낳는 바른 인연이긴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다양한 조건을 맞아서야 비로소 구체적으로 온갖 현상을 낳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섯째는 인자과(引自果)라 하여, 자기의 결과를 낳을 뿐이지 남의 결과를 낳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질적 현상의 종자로부터는 물질적인 현상이 현출됨을 의미한다.

이상의 설명을 자연계의 현상과 비교하면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씨앗에 햇볕과 물과 비료 등의 여러 조건이 부가되어 비로소 초목이 형성된다. 이는 앞의 다섯째 대중연예 부합한다. 또 사과의 씨앗에서는 사과가 생길 뿐, 배가 생길 수는 없다. 이는 앞의 여섯째 인사과에 부합한다.

 그리고 같은 종류의 사과라도 홍옥의 씨앗에서는 홍옥이 생겨나듯이, 그 품종이 결정되어있다. 이는 앞의 넷째 성결정에 부합한다.

 종자를 통해 현상 세계의 전개와 변화를 설명하는 유식설의 교의는 쉽게 수긍되지 않는 난해한 이론으로 간주되기 일쑤이다. 그러나 수목의 생성에 종자가 직접 관계하듯이, 인간의 생존에서 과거에 지은 업의 결과가 종자라는 형태로 원인으로서 관계하고 있다는 점은 이해하기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경전의 세계
금광명경 (金光明經) / 편집위원

여러 가지의 대승경전 중에서 이 금광거울도 우리에게는 약간 생소한 느낌을 주는 경전이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기사굴산에 계시면서 신상(信相)보살과 견로지신(堅牟地神) , 사천왕(四天王), 대변천신(耳乙辯天神) 및 공덕천(功堊念天) 등 에게 이르시기를, 부처의 수명은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한량이 없음을 설하고, 이 경전에서 설파된 내용은 미묘하기가 그지없어서 여러 경전 중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이를 최승왕경(最存王經)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경전은 그 빛나고 찬란한 내용이 마치 금(金)이 그러한 것과 같으므로 이를 또한 금광거울 (金光明經)이라고도 했다는 것으로써.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의미를 함축해서 금광명최승왕경이라고 한 것은 다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전에 관한 주석서를 우리나라의 불교관계 찬술문헌에서 보면 이를 금고경(金截系配)이라고도 한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의정(義浮)이 번역한 금광명최승왕경 중의 제 4 몽견금고참회품(夢見金鼓儺區品)에서 그 이름을 차용해서 그렇게도 불렀다는 것이다.

 이 경전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 다섯 차례에 걸쳐서인데, 그 첫 번째는 북량(沁京) 때에 담무참(曇無讖 385一433)이 4권본으로 번역한 금광명경이고, 그 뒤로 진(陳)의 진제(眞啼 : 499~596)와 후주(後周)의 사나굴다(區那力願炙523~600)등이 또한 이를 한역했으며, 네 번째로는 수(隋)나라 때에 대홍선사(大興肴寺) 출신인 보귀(寶貴)가 여러 가지의 번역본을 모아서 이를 편찬한 8권본의 합부(合곯阿)금광명경이 그것이고, 다섯 번째는 당나라의 의정(義淨 : 635~713)이 번역한 10권본의 금광명최증왕경이 그것이다. 이 밖에도 일부분만을 번역한 것에 5종이 있으며, 4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는 범본(贊本)은 담무참의 것과 거의 그 내용이 같으나 점차 후대로 내려오면서 이에 더 내용이 첨가되어 의정이 번역한 것과 같은 분량으로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려대장경에도 이 경전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은 보면 부귀와 언종(彦琮 : 557~610) 및 비장방(費長房) 등이 엮은 합부금광명경과 의정의 금광명최승왕경이 그것이다.

 이 금광거울의 구조를 보면 권분의 차이에 따라서 이에 설해진 각 품의 숫자도 다른데, 담 무참의 것은 전체가 19품으로 되어 있고, 부귀가 엮은 것은 24품이며, 의정이 번역한 것은 총 31품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서는 왕 사성의 신상보살이 부처님의 수량이 80세라는 점에 대하여 의심을 갖자 사방에서 부처들이 출현하여 부처의 수명은 영원함을 설했으며, 분별삼신품(分別三身品)에서는 이래의 세 가지 몸, 즉 법신(法身)과 보신(報身)과 화신(化身)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하고 있다. 말하자면 석존을 점차로 역사적인 인물에서 발전시켜 거의 영원불멸하는 진리 그 자체로 인식하는 법신으로 여기거나 한량없는 원력과 수행의 결과로 나타난 원만한 보신으로 보거나 뭇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그의 몸을 일시로 다투시는 화신 등이 바로 그것으로써, 이 가운데서 주체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법신이며, 이는 또한 진실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금고참회품과 시방보살찬탄품(十方菩薩讚歎品) 등에서는 금고 광명의 가르침과 금광명 참법의 공덕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하고 있으며, 중현공성품(重顯空性品)에서는 우리 중생의 몸은 허망하기가 마치 빈 마을과 같으며,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 즉 6근은 번뇌의 도둑이 따로 있어서 제각기 하는 일을 서로 모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망 된 몸에서 나온 모든 번뇌를 끊고 제법의 진실한 자리를 알아서 걸림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사천왕호국품(四天工言蓼國品)에서는 만일에 이 경을 호 지하거나 독송하는 사람이나 국가에 대해서는 사천왕이 그를 철저하게 보호하여 주고, 또한 모든 공포로부터 구제해 주며, 침략자들을 물리쳐 주고, 흉년이 들었을 때에는 이를 면케 하여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질병에 걸렸을 적에도 조속하게 그를 낫게 하여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으로 말미암아 호국경전인 인왕경(仁王經)과 함께 사천왕의 구제를 받고자하는 신앙심의 발로에서, 거의 모든 대승국가 즉 서역이나 중국 및 일본 등에서는 개인이나 국가들이 이 경전을 호지 독송하고서 의례나 법회 등을 갖는 의식 등이 활발하게 행하여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신라시대부터 일부의 국왕들이나 고승들이 이러한 경전의 사상에 착안하여 사천왕의 가호를 빌기 위하여 사찰을 짓거나 아니면 가뭄 때에 비가 오기를 기원하기 위한 강설(講說) 등을 베풀었던 것이다 즉 문무왕 때에는 당나라가 드디어 침략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당시 경주 낭산(芩盛山)의 남동쪽에 사천왕사를 지어서 수호신인 사천왕의 기피력을 기원했던 것이며, 경덕왕(景德王) 12년(753)의 여름에는 전국에 심한 가뭄이 들자 이내 궁전에서 당시의 고승이었던 태현(太賢) 스님이 이 금광거울을 강의하는 자리를 마련하여 비를 오게 하였다는 기록 등이 그것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어디까지나 국가 비보 사상과 현세이익적인 신앙심의 염원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에도 이와 같은 금광거울에 관한 강석(講席)이나 도량(道場) 등은 국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자주 실행되었던 것인데, 그러한 예를 찾아보면 문종 때에 정현(鼎賢) 스님은 이경을 읽어 기우(祈雨)를 하였으며, 정종 때에도 역시 비를 빌기 위하여 문득 전에 금 광명도량을 설치하거나 예종 때에 덕창(念昌)이 기우했던 것이 그것이고, 중기에 와서는 법상종의 승려들이 주로 이 금광거울을 학습하거나 주석서 등을 쓴 기록이 문헌상에 보이는 것은 아마도 신라시대 승려들의 관행을 본받아서 그러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금광거울이 그 특수한 교설 내용 때문에 쉽게 우리나라와 같은 환경에 적응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수지퇴거나 독송하게 된 것은 한국불교의 또 한 가지의 특색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불심의 창
믿음의 길 / 허천택(영문과 교수, 이부대 학장)

사람의 정신적 안식처는 종교의 세계가 으뜸이다. 인류가 이 지구촌에 삶의 흔적을 새겨오면서 일구어 낸 모든 문화의 양태도 바로 종교의 역사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종교심리학이라는 이름을 빌어 도덕이나 종교와 관계되는 사람의 모습에 그 나름의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사람의 문화환경이 종교적 행위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면, 요즘처럼 우리의 생활환경이 뒤틀리고 있는 때일수록 종교의 소중함은 더욱 더 절실해질 법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종교도 성숙한 종교 환경에 이르게 되면 자기수련을 추구하게 되고 주관적 행위보다는 객관적 자비행위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발전이나, 민주화, 그리고 갖가지 경험을 통해 저마다 현세적 기대에 마음이 들떠, 정치인은 물론, 관리, 교수, 학생 모두가 헛바퀴 돌아가듯 제멋대로 돌아갔다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모든 사회나 문화환경이 마냥 집단의 물리적 형태에 시달려 왔다. 그동안 우리는 과격한 행동과 높은 목소리 보다는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잊고 살아온 것 같다. 스스로의 소중함이 누구에게나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삶의 실체는 인간이해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불교에서 인간의 윤회의 길은 각자 지은 압인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육도, 즉 여섯 개의 길 중에서 인간의 자리는 다섯 번째의 인간도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상위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迷界의 상태에서 인간은 수행을 통해 悟界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가 된다. 육신을 갖고 있는 恩考者로서 인간은 끝없는 정진에 의해 悟界의 경지에 이를 수도 있고, 과욕으로 또 하나의 業因을 지을 수도 있다. 인간의 고뇌도 양육의 갈등도 이에 연유한다.

 여타의 종교 중에서도 無明의 인간을 @界의 경지에 이르게 하여 각자(覺者)의 모습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 불교의 중심과제다 生死綸廻의 고통도 깨달음에 의해 극복된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 연기(緣走邑)로 극복되고, 결국 이 세상에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존재치 않는다. 그럼에도 인생을 살다 보면 분명 기쁨과 좌절이 있고, 늙고 병들어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면 여태까지 살아온 모든 삶의 양태는 끝내 회의의 대상으로 다가선다. 이 어쩔 수없는 인간의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종교적 덕목이며 불교적 믿음의 길이다. 믿음의 대상으로, 초월적인 인격신음 전제하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달리 불교, 힌두교, 도교는 인격신음 전제치 않는 것 같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신을 궁극적 존재로 보는 기독교에서는 일체의 모든 것은 신의 의지의 결과일 뿐이다. 절대, 불멸, 완성, 능력, 초월 등과 같은 어휘만이 수식어로서 적절할 뿐인 인격신(人格神)은 현실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상징하기에 지극히 二元的이고, 철저한 순종만이 강요되지만, 불교는 우리의 현실세계가 바로 초월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一原論적 종교의 성격이다.

 불교에서 우리 인간이 불행한 것은 인격적 초월 신과의 관계에서 볼 수 있다. 原罪의 굴레를 뒤집어 쓴 죄인으로서의 인간의 조건이 선행되지 않는다. 인간이 고통을 겪고 불행한 것은 무명(無)에 연유할 뿐이다. 오직 어둡고 어리석은 인간의 착각에 기인한다. 이 착각의 근원을 밝혀 인간은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깨달음의 세계(佛)와 인간(f屯)의 관계는 위 아래의 관계가 아니라 평등하고 대등한 一原的 관계다. 평등의 관계는 과욕이 극복된 관계다. 과욕의 극복은 모든 인간에는 불성 (佛性)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파쟁을 일삼는 것도 無明에 가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무명의 상태에서는 아집과 독선이 절대적인 진리로 보인다. 자신의 주의 주장만이 고정불변의 실체처럼 보인다.

이 농악의 언덕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언 40여년이 된다. 험한 세상 살아오는 동안 부처님 기피로 행복한 날들만 누려왔다. 식솔들도 다 건강하고 자식 놈들도 별탈없이 제 갈 길 가고 있다. 네놈 중 두 놈은 동국가족이다. 등단 시인으로 조금은 우쭐대는 딸 녀석은 또 평론으로 등단을 한 모양이다. 이과대학을 나온 머슴아도 LG에 공채입사를 했다. 동국이 자랑스럽고, 부처님의 가피에 감사드릴 뿐이다. 동국의 역사는 위대하며, 그 위대한 저력의 자긍심은 우리의 가슴속에 불교적 건학이념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동국이 불교를 건학이념으로 하지 않았다면 이 삼보의 언덕에서 만해의 '님'이 어떻게 도래될 수 있었으며, 지훈의 승무와 미 당의 시가 어떻게 꽃필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언제부터인지 일찍 등교하는 습성이 생겼다. 혼잡한 교통환경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어서 좋고, 어쩌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 정각도량에서 부처님 앞에 무릎이라도 끓어보면, 내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초라해지는 중에도 마음은 맑아진다.

40년 동안 이 농악의 언덕을 오르내릴 수 있음이 눈물겹다.

 허다한 정변과 정치적 암흑기에도 내 인생의 씨앗이 움트고, 보잘 것 없는 내 학문의 세계도 모두 부처님의 기피 덕택이다 동국의 가족됨이 감사스럽고, 부처님의 기피에 감사스럽다. 한국의 역시와 문화가 살아 숨쉬고, 불교를 건학이념으로 한 이 대학에 감사한다. 동국의 정각도량은 마음이 무거울 때 그 무게를 덜어 주고, 마음이 혼탁할 때 그 업인을 밝혀 마음을 맑게 한다. 이는 동국가족 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비록, 진실을 추구하는 탁발 자는 되지 못했어도 스스로의 양식을 빚어보는 소망은 갖고 사는 듯싶다 삶의 실상과 인간의 가치가 지위나 재산, 명예나 권력에 있지 않고, 진리의 깨달음에 있음을 이 삼보의 언덕은 가르쳐 준다. 비록 모든 것은 구름에 그 빛 가려져 무명에 허덕이고 있다 해도, 검은 구름 걷히면 맑은 모습 드러나리라 용맹, 정진, 구름에 가린 본래의 빛나는 달을 찾아나서야 한다.

진(眞)과 속(俗), 참과 거짓이 둘이면서 둘이 아님은 수행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고, 깨달음의 의미 또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불자탐방
염준근 총무처장 / 편집부

정각도량 15호에서는 금년에 총무처장으로 부임한 회계학과 염준근 교수를 '불자탐방'을 위해 래방하였다.

기자 : 늦었지만 총무처장에 부임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또한 새로이 바쁘신 업무 중에 정각도량의 '불자탐방' 에 응해주시고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처음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염준근 총무처장 : 물론 어렸을 적에 절에 안 가본 것은 아니지만 그땐 그냥 구경삼아 가 본 것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실제로 불교를 접하게 된 것은 본교 통계학과에 입학하여 불교학개론을 배우게 된 것이 처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대학생활을 통해서 불교를 접하기는 했지만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땐 단지 학점취득을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후 다시 본교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좀더 불교에 관심을 두긴 했습니다만 특별히 정기적으로 다니는 사찰도 없었고 경전을 읽어볼 기회도 갖지 못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권유로 안양에 있는 한마음선원의 법회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때가 교환교수를 마치고 귀국하던 다음해였으니까 6년 전이 되네요. 그 당시 한마음선원장이시던 대행스님께서 거의 매일 신도들에게 법문을 해주셨고 일요일이면 정기적으로 법문을 해주셨는데 그 내용이 경전 중심이 아니고 몸소 체득하신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생활해가면서 마음을 닦으며 수행하는 방법을 말씀해주시는데 아주 마음에 닿더라고요 그때부터 선원에 가는 시간이 많아졌고 매주 일요일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선원에 가서 법문을 듣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불교를 알게 되었고 나를 불교와 관련지으면서 이제는 생활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대행스님이 매월 첫째 일요일(남자신도만을 위한 법문)과 셋째 일요일 두 번 법문을 하십니다.

기자 : 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에 대해서 들려주시지요.

염준근 총무처장 : 제가 대학에 들어올 때는 통계학이 신학문으로써 본교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통계학과가 개설된 지 4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학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진학을 하게 되었어요. 대학에 다닐 때부터 교수가 되겠다고 간곡한 마음을 가졌습니다만 여러 사정에 의해 졸업 후 바로 진학을 못하고 군에서 제대한 후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학원에서 위탁교육을 마쳤고 본교 대학원에 다녔지요 그 후 은사님들의 추천으로 본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학교와는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어요.

기자 : 교수불자회에서 열심히 신행생활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그간 불자 교수회에서의 활동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염준근 총무처장 : 제가 교환교수를 마치고 1988년에 귀국하니까 그 해에 본교 불자 교수회가 창립되었다고 하더군요. 마침 지금 정각원장이신 법산스님과의 인연으로 회원이 되었는데 매월 도심을 벗어나 산사를 방문하여 법회를 가지면서 불심도 다지고 심신도 단련하면서 교수들 간의 친목도 도모하는 모임으로 동국대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접할 수 없는 모임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가끔 기회가 주어지는 산사에서의 극진한 잠식 공양은 잊을 수 없는 즐거움이 되었고 법회 날이 되면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기도 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이 불심아니겠어요. 또한 불자 교수회 지도법사이신 법산스님의 한 말씀은 감로수이며 귀로 버스 속에서의 가창솜씨는 묵은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좀 아쉬운 점은 이렇게 좋은 산사 법회에 좀더 많은 교수님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점입니다.

다들 바쁘시겠지만 신사법회가 너무나 좋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어 자랑하고 싶고 동료교수들에게 적극 권유할 생각입니다.

기자 : 평소의 신앙생활은 어떠신지요.

염준근 총무처장 : 특별히 내세울 것은 없지만 '생활이 불교다.' 라고 하신 말씀을 늘 염두에 두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보통 새벽 4시경에 일어나는데 특별한 격식 없이 30~40분간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고 나면 온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상쾌해지거든요 하루하루 생활도주이진 일을 그냥 열심히 할 뿐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결과에 매달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괜히 마음만 상하게 되지요. 지금 당장 나쁜 결과도 나중에 좋은 결과로 바뀌기도 하거든요. 좋다 나쁘다 하는 것도 다 자기기준이 아니겠어요? 노력한 만큼 돌아오겠지요. 저는 학생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면 얘기를 하는데 '세상에는 절대로 공짜가 없다. 공짜로 받으면 상대에게 빚을지는 것이다. 그 빚은 살아서 못 가지면 다음 생에서도 갚아야 된다. 그러니까 여유가 있을 때 친구 점심도 사주고 남도 도와주어라 도와주는 게 물질로만 도와주는게 아니고 마음으로의 도움도 물질 못지않은 큰 도움이다. 그게 바로 은행에 저축하는 것이며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라고요 이렇게 많은 학생들에게 얘기해 줄 수 있는 선생의 위치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보통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10시경 인데 30분 정도 마음을 정리합니다. 하루의 일을 생각해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지요.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까 체질도 좀 바뀌는 것 같아요 전에는 소화도 잘 안되고 그랬는데 최근 23년간은 소화제나 감기약 한번 안 먹었어요. 소화가 좀 안 되는 듯하다가도 금방 괜찮아 지곤 하더라구요. 그러니 얼마나 마음이 중요합니까. 우리 애들도 몸이 아프거나 하면 스스로 마음으로 해결해 보도록 합니다.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마음이 있으니까 마음끼리 협조를 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얘기를 해주지요.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 괜찮아지곤 해요. 그래서 저는 마음을 다스리는 종교인 불교를 접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기자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염준근 총무처장 : 세상에서 아무리 잘난 사람도 혼자 살 수는 없지 않겠어요. 더불어 한마음이 되어 함께 사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해요. 그런 마음을 가지면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또 모든 일이 잘 풀어지고요 마침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입장이니까 강의 중간 중간이거나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서 마음법도 얘기해주고 체험담도 들려주면서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이 맛을 볼 수 있도록 전하고 싶어요. 수박이 아무리 시원하고 맛있다한들 먹어보지 않고는 그 맛을 모르지 않겠어요?

기자 : 학교 일로 바쁘실 텐데 귀중한 얘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가람의 향기
오이사 / 편집부

경주는 봄이 짧다. 봄인가 싶으면 이내 여름으로 접어든다. 분지라는 특성이 작용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봄 . 여름의 구분이 모호해서 조금은 아쉽다. 따스한 봄의 정취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서 ....

기자가 오어사(吾魚寺)에 가던 날은 이른 봄이었지만 늦봄의 정취 아니, 초여름의 싱그러움까지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오랜만에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사찰을 돌아보게 되어 무엇보다.

 좋았던 오이사 답사는 '다솜 독서회' 회원들과 함께 했다. '다솜'은 불교에 관심이 있는 직장인들로 이루어진, 책을 통하여 서로의 가치관이나 종교관, 일상생활에서의 견해 등을 서로 주고받는 토론회 형식의 모임이다. 거의 모든 회원이 학창시절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거나 다른 경로를 통해 불교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다들 기자와는 처음 만나는데도 따스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경주터미널에서 모여 포항으로 갔다. 오어사는 포항에서 조금 떨어진 오천읍 항사리라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포항에서 다시 요천가는 버스를 타고 오천읍에 내려서 다시 오어사행 버스를 타야 한다. 오천에서 오이사에 가는 버스는 오전 7시 30분, 10시 10분, 12시 순으로 하루에 6대 밖에 없다. 또 오이사에서 오천읍으로 나오는 버스 또한 하루에 4대 밖에 없으므로 갈 때에 들어가는 차 시간과 나오는 차 시간에 유의하길 바란다.

 오어사는 포항시 오천읍 항사리 운제산(雰,隣山)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운제산은 표고 471m의 낮은 산이나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이름 있는 산이다 삼국유사(三國호貴事)의 남해왕조(南海王條)에 보면 남해왕의 妃는 ''雲帝夫人인데 혹은 雲梯라고도 한다. 영일현 서쪽에 雲梯山聖母가 있어서 가뭄에 빌면 감응이 있다''고 나와 있다

 

 유래

 

창건은 신라 제 26대 진평왕(眞平王 579一632) 때라 전하며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라 하였다. 오이사로 바뀐 데 대해서 삼국유사에서는 원효(元曉)와 혜공(惠空)의 일화를 전한다. 갖가지 이적(異蹟)을 보였던 혜공스님은 만년에 항 사사에 옮겨 살았다 이때 원효는 많은佛經의 疏를 잔술하고 있었는데 항상 혜공스님에게 질의하고 또는 서로 희롱도 하곤 했다.

어느 날 두 스님은 시내를 따라가며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바위 위에다 방변(放便)을 하였더니 고기 두 마리가 나와서 한 마리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한 마리는 아래로 내려갔는데, 올라가는 고기를 보고 혜공스님이 그것을 가리키며 희롱하기를 '네 똥은 내 고기다.' 라고 했다 그로인 해서 절 이름이 吾魚寺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네가 눈 똥은 내가 잡은 고기다.' 라는 말이다.(@糞吾魚) 아쉽게도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래하지 않고 있다. 다만, 유적에 의하면 자장(慈藏)과 혜공 . 원효 . 의상(義湘)의 네 조사(祖師)가 이 절과 큰 인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절의 북쪽에 자장암과 혜공암이, 남쪽에 원효암, 서쪽에 의상암 등의 수행처가 있었으므로 이들 네 조사의 행적과 연관짓고 있다. 현존하는 당으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한전(羅漢殿) . 설선당(說禪堂) .칠성각 산령각등이 있다 이 중대웅전을 제외한 당무들은 모두 최근에 건립된 것이다.

이 절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대웅전 안에 보관되어 있는 원효대사의 삿갓이다. '다솜독서회'회원 중의 한 분이 마침 그 곳 오이사에서 공부하고 계셨던 관계로 주지스님의 허락 아래 원효대사의 삿갓을 직접 받아서 볼 수 있었다. 주지스님의 말씀을 빌면 가까운 시일 내에 보물로 지정받아서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삿갓은 요즘 여름철에 볼 수 있는 가장 섬세하고 값진 발(簾)보다 약 10배나 더 정교하게 짜이진 발로 만들어졌으며 삿갓의 높이는 1척이고, 밑의 직경은 약 1.5척이다. 뒷부분은 거의 삭아 버렸지만, 겹겹으로 붙인 한지에는 붓글씨가 쓰여 있다. 그 글씨가 1천여 년의 시공(時空)을 눈앞에 휘저어 주는 듯하다. 이 삿갓은 마치 실오라기 같은 풀뿌리(草長)를 소재로 하여 짠 보기 드문 것이다. 이 밖에도 절 내에는 불계비문(佛樸碑文) . 염불계비문(念佛換碑文). 운제산단월발원비문(雲梯山桓越發願碑文) 등과 부도가 있다.

 현존하는 부속 암자로는 지장암과 원효암이 있다.

원효. 혜공. 자장. 의상 등 네 분의 기승이 기거했었던 곳으로 이름나 있는 것에 호응하듯, 이 곳은 내륙지방에서 보기 힘든 곳에 사찰이 위치한다. 오이사 바로 앞과 주변에는 운제산속에 만들어진 깊은 저수지가 있어서 바닷가 관음을 현신했던 의상이 좋아 머물렀음직한 水와(옛날에는吾魚湖였다) 수양버들, 산세 등이 신비로운 곳이다.

대웅전, 나한전 등의 건물과 홍계폭포, 오이저수지의 어우러진 풍치는 일품이다. 오어사와 관계있는 네 분의 조사 중 설화의 주인공인 혜공스님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혜공스님은 신라 선덕왕 때의 기승(葫曾)이다.

천진공(天眞公) 집에 심부름하는 할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이름은 우조(憂助)라 했다. 어려서부터 천진공의 매독을 완쾌시킨다든지, 앞날을 예견한다든지 하여 천진공을 놀래켜, 천 진공이 깨달은 바가 있어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이에 본색이 드러나 승려가 되므로 혜공(惠空)이라 이름하였다.

작은 암자에 있으면서 삼태기를 지고 취해 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으므로 사람들이 負賓和尙이라 이름하고, 그의 암자를 부개사(夫蓋寺)라 불렀다. 만년에는 항 사사에 있었으며, 원효가 經疏를 지을 때에 의심나는 것은 이 스님에게 물었으며, 앞에 말한 설화로 인하여 항 사사가 오이사로 개칭되었다. 흥륜사 금당에 신라 십성(十聖)의 탑상(喬象)이 있는데 해공도 그 가운데에 들었으며 그때 사람들이 승조(僧肇)의 후신이라 하였다.

 

 

 

일주문
주체적인 가치의 인식 / 이봉춘

중국 선종의 실질적인 개창자인 6조 혜능(慧能)에 관한 선가의 찬사는 절대적이다 그는 보잘 것 없는 나무꾼 출신으로 글도 못 읽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5조 홍안의 문하에 들어왔지만 머리도 깎지 못한 채 노행자(盧行者)로 불리오며 방아나 찧어야 했다 이러했던 그가 5조의 법을 잇게 된다. 남에게 부탁하여 써 붙인 그의 게송이 홍안에 의해 인정받은 것이 그 계기였다. 이런 혜능의 등장으로 참패를 당한 것은 5조 문하에서 대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오던 신수(神秀)였다. 그때 나란히 써 붙였다는 두 사람의 게송은 이러하다.

 

* 신수

이 몸은 보리의 나무이며

(身是斟是樹)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다.

(心如明鏡臺)

때때로 떨고 부지런히 닦아

(時時斅瘠弗拭)

때와 먼지 안 끼게 하리.

(勿使惹塵埃)

 

* 혜능

보리의 나무란 도대체 없다.

(啓提本無樹)

마음 또한 거울이 아니다.

(明鏡亦非臺)

본래 일물(一物)도 없는 법

(本來無一物)

어디에 때 끼고 먼지 앉으랴

(何處薏塵埃)

 

이 두 게송은지금도 곧잘 회자하지만 사람들은 신수에 비해 혜능의 견처(見,處)가 탁월함을 입증하는 자료로서만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신수의 견해에 나타나는 가치성에 대해서는 일별도 주지 않는 것이다. 신문의 가풍을 감안할 때 당연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신수의 견해는 그렇게도 전혀 무가치한 것인가? 아니다. 일단, 선문 밖에서 본다면 혜능보다 신수의 그것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고 유용한 가치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인정하고 그의 견해에 따르는 사람도 많았던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만의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지금 무서운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살아남으려면 경쟁해야 한다고 하고, 이겨야만 할 것을 세뇌 당하고 강요받고 있다. 그래서 일등이 아니면 역사는 아예 기억조차 해주지 않는다는 상업광고의 긴박한 논평이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치열한 경쟁에서의 승리, 최고가 되는 것,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들은 장하고 훌륭하다. 그런 삶을 이루어낸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찬탄과 존경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모두가 승리자가 되고 최고를 얻고, 모두가 역사에 기록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이 엄연한 사실 앞에, 패배자와 최고에 오르지 못한 자 그리고 역사의 기억에서 누락된 자는 어떻게 되어야하는 것인가?

역사는 결코 일등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일등으로만 채워진 역사 또한 존재할 수 없다 불교의 연기론적(緣起論的) 사고대로 라면 일등이 중요한 만큼 이등도 삼등도 똑같이 중요하다. 가장 높은 것은 가장 낮은 것과 더불어 존재하며 그 가치가 인정될 수 있다. 사회와 역사 그리고 인간의 삶은 본래 그러한 모습을 띠어 왔고 그렇게 전개되어 간다.

 우리의 모든 삶이 뜨거운 경쟁의 불길에 휩싸여 있지만, 이쯤에서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잠시 마음의 열기를 식히고 정신없이 질주해온 자신을 되돌아 보고 주위의 사람들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꼴찌에게 따뜻한 박수로 격려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는 경제 기술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국제화. 세계화의 필요성을 외면하려는 뜻도 아니다. 그것은 의지와 노력의 포기를 종용하는 것이 아니라 차원을 달리한 주제적인 가치인식에 관한 문제를 말함이다.

승리, 최고, 역사 속에 빛나는 기록을 향해 뛰더라도 뒤처진 사람이나 일들에 대한 가치도 함께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선문에서 최고로 찬양되는 혜능의 견처에 못지않게 신수의 견해 또한 분명 그것대로의 가치를 지닌다. 주체적인 가치의 인식과 판단은, 결코 2등에 대한 변명이나 패배자를 위한 위로용 언사는 아닌 것이다.

 

 

 

동국과 불교
혜전 문학과 일제말의 학원 / 편집위원

 

혜전의 출발과 함께 일본인 교장이 취임하여 한국인 교 .강사들이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과는 달리, 2대 교장 때부터는 다시 한국인 교수들이 다수 임명되고 있다 1941년 4월 高橋亭 교장이 물러나고 渡庫言治가 제2대 교장으로 취임했는데 그 이후의 교수진과 담당과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교장 : 衢帛言治(수신)

  교수 :金斗憲(수신 윤리학, 철학, 심리학, 논리학)

鄭瑪螟(영어)

東田大@(불전개설 . 吝肅岡要 . 종교학 . 지나불교사 . 일본불교사 . 인도철학)

大@@眞(동양사)

@@@(사회학 . 응용사회학)

@@泰舜(불교대의 . 화엄학)

  전임강사 : @@老(조계종 강요 불교강독 . 조선불교사 개설 선학)

李東@(법학통론 . 경제원론 . 영어)

高@@@@(일본어)

金東華(구사학 . 유식학 불교강독 . 친태학 . 인도불교자 불교윤리학)

金盲皓(한문 동양윤리학)

車不滸(지나어)

貴島三德 육군대위(체조 . 교련)

@@ 壬明宰(校洞病院民)

  교무과 주임 김두헌

  생도과 주임 김동화

  도서과 주임 김두헌

한편 당시 한국 불교계의 사정을 보면, 강력한 중앙기관의 출현이 크게 요청되고 있던 때였다. 무엇보다도 한국불교를 병탄하려는 일제 및 일증(日僧)들의 흉계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투쟁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 중앙기관의 역할을 해오던 조선불교선교양종 중앙교무원은 단지 귀 본사의 연합기관에 불과했던 것이다.

1941년 한국불교의 강력한 중앙기관인 총본산이 탄생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불교계에서는 1941년 4월 23일부로 '조선불교 조계종 총본사 태고사법'의 인가를 얻어 태고사를 수송동으로 이건(移建)하여 총본산을 삼고 초대종정에 방한암(方漢巖)을 추대하는 한편 총회법 . 승규법 등을 차례로 제정 . 공포함으로써 새롭고 강력한 한국불교의 자세를 가다듬은 것이다.

이러한 불교계의 움직임에 따라 본교의 설립자인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 원도 자치적으로 새로운 한국불교의 중앙기구로 계승되어 1942년 5월 18일부로 재단법인 조개학원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한국불교가 보다 강력한 자세를 가다듬어 나가던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에 일제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 몸부림 쳤다. 1943년의 징병제 실시에 이어 이듬해 1월에는 다시 학병제를 실시하여 우리의 젊은 학도들을 학원에서 전장으로 끌고 갔다. 동시에 그들은 전역에 걸쳐 소개령을 내리고 2월에는 결전비상조치 요강을 발하여 마지막 안간힘을 썼다. 이에 따라 각전문학교는 폐쇄 또는 전쟁 수행에 필요한 학교로 변경되었다.

본교 또한 이 전체적인 숙명 앞엔 어쩔 수 없었다. 1944년 5월 30일 전시교육 임시특례법이란 것에 의해 본교는 강제폐쇄 당해야 했다. 물론 전쟁에 대비한 최후의 발악으로서 국민 총동원이란 이유에서였다.

 학병과 강제노력 등 학구에 전념할 수 없는 시대 사정으로 그렇지 않아도 학교에 나오는 학생이 거의 없는 형편이었는데 폐쇄되어 쓸쓸해진 학원에는 학생들 대신 일본 헌병들이 주둔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이듬해 일제가 항복할 때까지 혜화의 교사는 주인을 잃은 폐허가 되었고 일병(日兵)은 마치 폐가의 박쥐 떼처럼 그 폐허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혜화전문학교는 일제 말 가장 서러움이 많았던 시대에 존재하며 폐교에 이르기까지 문자 그대로 암흑기에 숨쉬어 왔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운의 시대에도 젊은 학생들의 각종 활동은 꾸준했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문학 활동은 단연 빛나는 것이었다. 여기서 해방 전까지의 해전 학생들의 문학 활동의 조각을 살펴본다.

1941년 3월에 졸업한 혜전 1회생들 가운데는 쟁쟁한 학생문인들이 많았다. 조동탁. 홍영의 .장성진 .김용태 .김해진 .김석준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동인지『白紙』를 간행하여 학생문학의 승자(勝者)로 군림했다. 학생복 왼쪽 깃에 펜을 달고 다녔던 이들 중에 홍영의는 『백지』 동인은 아니었으나 학생 문사로서 필명을 白態이라 하였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다. 또 조동탁(지훈)은 이미 『문장』지에 「古屬,衣裳」, r僧舞」로 추천되어 문단에 올랐다.

다음 해의 2회 졸업생으로는 이동희 등이 있고 3회에는 박호진 . 조민행 등 『백지』 동인과 박일연 .정태용. 조연현 . 윤길구 등 『詩林』 동인이었고 이 밖에도 김봉룡. 송돈식 등이 있다.

이 때에는 일경의 학원 간섭이 심하여 활발한 활동은 할 수 없었으나 가끔 매일신보 학생 문단에 작품이 실리곤 하였다. 이외에도 유명 무명의 문학도들이 많았는데 당시 전교생의 5분의 4가 문학청년이었던 것이다.

특히 혜전 3회생들의 재학 중 문학활동은 일단의 항일적 성격까지 드러내고 있어 주목된다. 당시 학생들은 일본인 교수 高橋龍四朗이 지도하는 일본문학연구회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문학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그런데 일인교수가 지도하는 일본문학연구회에는 학생들이 모이지 않고 조선문학연구회에 전교의 학생 거위가 가담한 것을 보면 당시 학생들 대부분은 문학을 위한 문학도라기보다는 민족의 울분을 발산하고 달래기 위해 문학을 한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교수라는 이름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 있었다. 그는 조선문학연구회 간부들에게 일본문학연구회보에 작품을 실어 주겠으니 꼭 제출하라고 했다. 이에 학생들은 다른 속셈이 있는 줄도 모르고 무심코 시를 써냈는데, 高橋는 그들의 작품 내용이 불온하다고 하여 동대문 경찰서에 밀고하여 작품을 낸 학생들을 검거토록 했던 것이다.

학생들이 검거되어 곤혹을 치르고 조선문학연구회의 주동자였던 조연현은 이 때문에 결국 퇴학까지 당해야 했다.

실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이와 같이 조국이 까맣게 잊혀질 정도로 학원마저 제 위치를 못 찾던 일제 말에도 붓대를 휘두르던 해전 학생 문11들의 활동은 줄기찬 것이었다.

어제와 오늘의 동국문학의 빛나는 전통은 바로 이러한 해전시대의 문학으로부터 싹 터온 것이다.

 

 

 

비유와 설화
월광의 부모 구제 / 편집위원

 

''부처님은 하나의 음성으로 법을 연설하시지마는 중생은 그 종류에 따라 저마다 이해하게 되나니, 세존의 그 말씀은 모두 똑같되 중생은 저마다 이해에 따라 널리 얻고 받고 행하여 그 이익을 얻는다. 혹은 두려워하기도 하고 혹은 기뻐하기도 하며 혹은 싫증을 내어 여의기도 하고 혹은 의심을 끊기도 하는 이것은 바로 신통력의 특수한 법이이다''라고 유미경에서 설해지고 있다.

''부처님은 하나의 말씀으로써 온갖 법을 말씀하시면서, 대천세계의 중생들이 한량없는 음성으로 일시에 질문하되 모두가 각기 같지 않아도 한 생각 안에서 하나의 음성으로 대답하여 모두가 깨우쳐 알게 하신다.''고 화임에서 설하시고 계신다. 또 ''모든 부처님께서는 8종의 미묘한 음성이었고 그 낱낱의 음성에는 모두 5백의 미묘한 음성의 권속이 있어서 셀 수 없는 백천의 음성으로 장엄하신다. 한량없고 그지없는 묘한 소리의 음악은 모두 청정하고 모든 부처님의 정법의 뜻을 두루 잘 연설하며 모든 공포를 여의고 두려움이 없는데서 편히 머물러 사자처럼 외치면서 모든 법계의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다 듣게 하고 그 본행(本行)의 갖가지 선군에 따라 모두 깨닫게 되나니, 이것을 모든 부처님의 가장 훌륭하고 위 없는 구업(口業)의 장엄이라고 한다.''고 설하시기도 하였다.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그 성안에 어떤 바라문이 농사로 업을 삼아오면서 계집종을 아내로 맞아 열 달 만에 한 남자 아이를 낳고 이름을 월광(月光)이라고 했다 그 아들이 장성한 뒤에 수달(須達)의 아들과 함께 성문 밖을 나가 유람하다가 어떤 승방(僧坊)에 도착하여 비고들이 경전을 독송하는 것을 보았다.

이때 바라문의 아들은 게송 네 구절을 듣고 곧 신심과 공경심을 내었는데 집에 돌아온 지 7일만에 갑자기 목숨을 마치고 도리천( 利天)에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아들의 죽은 시체를 안고 무덤 사이로 가서 몹시 슬피 울부짖으며 말했다.

''이제 외아들을 잃었으니, 누가 우리를 돌보아주겠느냐? 이 아픈 마음은 말로 할 수 없구나. 차라리 자식을 따라 죽을지언정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때 여러 친척들이 달려와서 갖가지로 위로하고 타일렀으나 그의 부모는 끝내 돌아갈 줄 모르고 슬피 울고만 있었다. 그때 부모의 슬퍼하는 몸부림에 천상의 궁전이 흔들렸으므로 천상에 태어난 그의 아들은 가만히 관찰했다.

'내가 인간세상으로부터 천상에 태어났구나. 지금 부모가 무덤 사이에서 나의 시체를 안고 목이 메도록 슬피 울고 있으므로 이 천상의 궁전을 감응시켜 이렇게 흔들리게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그 부모를 가엾이 여겨 곧 천상에서 내려와 그 몸을 선인(仙人)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부모 옆에 나타나 그의 온 몸을 불로 지지고 있었다.

그때 바라문이 선인에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무엇 때문에 온 몸을 불로 지지고 있습니까? 무엇을 구하려고 그러십니까?''

선인은 대답했다.

''지금 나의 희망은 한나라의 왕이 되어서 금으로 수레를 만들어 뭇 보배를 섞어 장식한 뒤에 일천자(日天子) 월천자(月天子)를 좌우에 두고 사천왕으로 하여금 수레를 끌게 하면서 온 사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려는 것이요 이러면 얼마나 통쾌한 일이겠습니까?'' 바라문은 말했다.

''선인이여, 그대가 가령 지금으로부터 백 년 동안 밤낮으로 온 몸을 불로 지진다 해도 끝내 그러한 보배 수레를 구해 여러 천자들로 하여금 좌우에서 그대를 모시게 할 수는 없을 것이요.''

선인은 다시 바라문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이 죽은 시체를 안고서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바라문은 대답했다. ''나는 지금 하나 밖에 없던 사랑하는 외아들을 잃었으므로 너무도 슬퍼서 다시 살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선인은 바라문에게 말했다.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당신이 죽은 이 시체를 안고 가령 백년동안 밤낮으로 울부짖는다 해도 마침내 죽은 아들을 다시 살아오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때 바라문은 이 선인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부끄럽게 여기면서, 다시는 더 울지 않고 잠자코 서 있었다. 아들이었던 그 천자는 선인의 형상을 버리고 본래의 몸이 되어서 그 부모에게 아뢰었다.

''제가 바로 과거 세상에 부모님의 외아들입니다. 제가 어느 때 승방에 갔다가 게 송 네 구절을 듣고 환 회심을 내고 선심을 내었는데 목숨을 마치고는 그 인연으로 천상에 태어났습니다. 이제 부모님의 근심과 괴로움을 풀어드리기 위해 선인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여기에 와서 이와 같은 말씀을 올린 것입니다.''

이때 그의 부모는 천자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천자는 곧 하늘 갓을 쓰고 보배 영락을 걸고 온몸을 장엄한 빼 꽃과 향을 가지고 부모에게 전하여 함께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부처님께 공양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부처님은 곧 그들을 위해 네 가지 진리(四聖諦)를 설해 주시니, 그들은 마음과 뜻이 열리어 한꺼번에 모두수다원의 과위를 얻었다. 이때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지금 저 천자는 전생(前生)에 어떤 복을 심었었기에 부모의 근심과 괴로움을 풀어 다시 울지 않게 하였고 아울러 또 도의 과위를 얻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저 천자는 다만 오늘만 그 부모의 근심과 괴로움을 풀어드린 것이 아니요, 과거 세상에서도 그러한 일이 있었느니라.'' 비구들이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과거 세상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해설해 주십시오.'' 부처님은 비고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이제 분별하여 말하리니, 자세히 들어라. 과거 한량없는 오랜 옛적에 이 바라나국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도적이 되어 항상 남을 해치고 속이고 시음하기를 좋아하다가 체포되어 바로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때 그에게는 찬성이 인자하고 현명한 한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은 온 나라에 이름이 나 있던 훌륭한 이였으므로 그의 아버지를 위하여 국왕에게 가서 구제해 줄 것을 세 번이나 청하자 국왕도 어기지 못해 그의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 놓아 주었다. 비구들아, 알아야 한다. 그때 남을 해치던 어리석은 사람은 바로 지금 저 천자의 아버지요 아들은 바로 지금의 저 천자이다. 한때 가섭부처님으로부터 삼귀의 계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또 나를 만나 도를 얻은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천자의 인연을 말씀하시자 그 모임에 있었던 많은 대중들은 혹은 수다원의 과위를 얻기도 하고 혹은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내는 이도 있었다.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

 

 

 

나의 신행담
보이지 않는 큰 힘 / 권 민 희 (월간 九龍 편집기자)

지난겨울은 목마름을 동반한 가뭄이 무던히도 많은 사람들의 애를 태우며 아직까지 감로 같은 빗줄기를 뿌려 주지 않아 한탄의 한숨을 쉬게 한다. 그러나 봄은 중생들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오겠다는 약속을 어기지 않고 성큼 우리 곁에 와 있다. 그렇게 야속하던 강한 햇살은 연약한 꽃잎에 자극을 주고, 양분을 주어 노모란 개나리, 진달래를 재촉하며 세상 밖으로 끌어낸다.

온 대지는 푸르름을 준비하기 위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 내일의 찬란함을 꿈꾸는데 모든 힘을 쏟고 있다.

그 화려한 외출은 꽁꽁 얼어 있는 땅 밑 겨울의 얼음 속에서 보이지 않는 몸짓으로 무던히 아픔을 검으며 봄의 역사를 열었으리라. 그런 역사는 인간의 내부에서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특히 역동의 봄에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움추려 있던 봄에서, 그리고 의식속에서......

불교도 작년 '종단개혁' 이라는 아픔을 딛고 여기까지 왔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과 고통을 주었던 사건이었다.

눈 속에 숨어 있는 푸르름이 더 찬란한 것은 혹독한 추위와 꿈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이 땅에 불교가 뿌리 내린 이후 영롱한 문화의 꽃을 피웠으면서도 그 영광에 못지않는 법난을 겪었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삼보(三寶)로 존경 받아 수행에 정진해야 할 스님들이 절에서 쫓겨나고, 부정 부리에 연약한 비구니스님들이 무장한 전경들과 맨 몸으로 싸워야 했고, 신성하게 부처님이 모셔져 있던 대흥전이 군홧발로 밟히는 치욕을 두 눈으로 보며 울분에 눈물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불교가 이렇게 굳건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불자들의 깨끗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부처님을 가슴 속에 모시고 있는데 하찮은 외부상황들이 그 거대한 힘을 꺾을 수 있을까? 그것을 자비라 해도 좋고, 인욕이라 해도 좋고, 사랑이라 해도 좋다. 도심 속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을 달아 놓아도 산사를 생각하고,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 호젓하게 법당에 앉아 부처님과 대화하고, 108배를 하며 희열을 느낀다. 그것이 부처님을 마음속에 모셔둔 불자들의 마음이다. 찬란한 혁명은 이런 작고, 여여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작금의 사람들은 그런 아름다운 혁명을 많은 무게로 가치를 정하려고 애를 쓴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므로 해서 그 중요함을 인식 못하는 공기와 물 같은 그런 작은 혁명을 알지 못한다.

허리가 90' 정도 구부러져서 거동조차도 불편한 노보살님이 절에 찾아 오셔서 몇 만원씩 초파일 등을 접수하는 젊은 보살들을 비집고, 입고 온 월남치마를 뒤집어 속 고쟁이 바지에서 꼬깃꼬깃 숨겨 놓았던 5,000원짜리 지폐를 꺼내며, 타종교를 믿는 며느리가 절에 오는 것을 싫어해서 자주는 못 오시지만 그것에 대한 불평은 없고 다만 가정의 안녕을 부처님 전에 공 드리는 노보살님, 그 주름진 얼굴 속에는 자비의 부처님이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기 시작해 지금은 대학생이 된 젊은 청년 불자가 백 개는 족히 되는 꽉 찬 저금통을 낑낑거리며 절까지 가져와 부처님의 불사(佛事)로 뜻 깊게 써달라는 말을 했다. 어린 고사리 손이 로보트 장난감도 사고 싶었을 것이고, 맛나는 과자도 사 먹고 싶었을텐데,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부처님 전에 드리는 모습에서 보시의 부처님을 보았다.

무엇이 그리 서러웠는지 아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음인지 어슴푸레 저녁 예불에 말 못하고 몸 불편한 불자가 부처님 전에 머리 조아리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반야심경 (般若心涇)을 독송하며 108대참을 하던 그 회한의 땀 속에는 인욕의 부처님이 어려있다.

그런 작은 부처님들이 천불 부처님이 되고, 만불 부처님이 되고.......

헤아릴 수 없는 큰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되는 것이다. 그런 아름답고 순수한 빛 덩어리들이 물질로 환산될 수 있을까? 이렇게 많은 부처님들이 있는데도 가끔씩 매스컴은 비도덕적인 일들을 크게 부각하여 보도한다. '세상이 말세야~' , '세상은 인간다운 인간이 없어' , '무서운 세상이다' 라는 말들을 책임 없이 내뱉게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부처님의 마음이 더 많은 빛을 사람 속에 심어주고 있다고 믿고 싶다. 눈을 크게 뜨고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부처님은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다. 그 부처님은 같이 공부하는 토반의 얼굴에서도 나타나고 시장 한구석의 동냥하는 할아버지의 순수한 모습에서도 나타나고, 거드름을 피우는 고위층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은 아니 나부터 얼마만큼의 순수함으로 그들을 보고 있을까? 그런 모든 몸짓들이 어마어마한 일을 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자꾸 망각한다. 그런 소소한 일들이, 생각들이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찬란한 혁명을 유발시키는데....

화려함의 계절 5월. 부처님 오시는 날이 있는 5월.

2539년전 룸비니 동산에서 부처님이 오셨을 때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큰 뜻은 갓 태어난 아기 부처님의 일곱 발자국이라는 작은 몸짓에서 시작된 것이다.

작년 부처님 오신 날의 제등행렬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그러나 많은 비에도 불구하고 모든 불자들의 염원 속에 타오르는 정성의 등, 지혜의 등, 통일의 등, 소원의 등, 자바의 등....... 이 모든 연등이 꺼지지 않는 불이 되어 빗속에서도 찬란히 발하는 것을 보았다.

그 꺼지지 않는 한사람, 한 사람의 염원들이 모인 빗속에서 부처님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었다.

마알간 부처님의 미소.......

작은 몸짓으로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불자들의 모습.......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자비 광명으로 우리들 속에 보이지 않는 큰 힘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기에 더더욱 정진수행에 매진하여 나 자신의 불성을 깨우는데 최선을 다 하여야겠다.

 

 

 

신행단체
경주 캠퍼스 불교학생회 / 편집부

 

동국대학교 불교학생회는 사고(思考)와 지성(知性)의 광장인 대학에서 종교를 통한 서로의 인격 함양과 신앙에의 정열, 참여의식의 증대를 지향하고, 진리를 찾아 탐구 . 수행하는 의지처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가르침을 신앙화하고 생활화하여 현대 속에서 왜곡되어 있는 우리의 가치관을 재확립함으로써 진정한 우리의 사상을 갖고자 정진하고 있다.

참된 불제자의 양성과 교육에 제일의 목표를 두고 체계적인 조직 구성과 진실한 신앙생활을 바탕으로 학술 및 친목활동 등 기타 불교적 행사를 주관하고 참여함으로써 불법을 포교함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 활동사항으로 법우들간의 대화와 법사님들의 법문을 통해 바른 불교 가치관을 심어주어 확고한 불교관 정립을 도모하기 위한 정진의 자리인 산사의 밤, 사경법회, 한량없는 죄의 수렁과 잘못된 길에서 헤매며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해탈의 법을 들려 주는 초청법회, 또한 한국 불교의 원류를 찾는 일환으로 신라문화유적답사를 실시하여 성지인 남산과 경주 부근의 불교유적을 찾아보며 산 법문을 듣고,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며 모든 중생의 성불을 통해 바른 땅, 참 세상 건설을 위해 노력하신 원효대사의 거룩한 가르침을 실천하는 행사인 포교대회, 찬불가 경연대회 등 많은 일들을 행해 왔다.

95학년도에는 정각원장님이신 도업 스님을 지도법사로, 지역개발대학원장님이신 김병기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하여 새로운 불교학생회를 추구하고자 전 회원의 간부화로, 모든 회원들이 골고루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해의 계획으로 우선 첫 번째로 새내기 포교를 포교지 '녹야원' 의 제발간과 건학이념 구현 목적의 일환으로 대학에 첫발을 딛는 새내기들에게 올바른 불교관 정립과 중립대의 위상을 바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3월 16일부터 4월 6일까지 매주 목요일에 새내기를 위한 '불교교양강좌' 틀 主청법사님들을 모시고 했으며, 월별로는 4월 산사의 밤, 5월 부처님 오신 날 행사 및 포교대회 그리고 6월에는 '여보게 저 승갈 때.'의 저자로 유명한 석 용산스님 초청법회 등 크고 굵직한 것을 상반기 활동계획으로 잡고 있다. 언뜻 보기에 너무 큰 행사만을 계획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획한 대로 한발 한발 나갈 수 있다고 자신있게 임원단은 말한다. 작년에 다소 주춤한 행보를 했기에 올해는 불교학생회의 힘을 부처님의 후광으로, 하나 된 모습으로 더욱 큰 행보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므로 그 기량을 마음껏 펼쳐 나갈 것이라 자신에 차 있는 그 모습을 보니 앞으로 불교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든든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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