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의 의미
유덕봉/ 불교문화대학 선학과 3학년

초등학교 시절은 초등학교 시절대로, 중 고등학교 시절은 중 고등학교 시절대로 항상 매 순간을 남들이 말하는 정답에 쫓겨 바쁘게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해결해야겠다싶은 문제들이 있더라도 그냥 묻어둔 채 흘려버리곤 했다. 그게 버릇이 들었나보다. 12년을 따라쟁이로 공부하다보니 대학이란 곳에서 주는 자유 속에서도 자유롭기보다는 또 다른 무언가를 따라가지 못해 허둥거리게 되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나”인데 마치 자기 목소리가 어떤지 자기가 가장 잘 모르는 것처럼, 롤러코스터를 타고 돌 때 나도 함께 돌아가듯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쉽게 주위의 것들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그 상태로 내달리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우선 쉬어보자였다. 그러나 휴학을 하고도 새로운 환경에서 잠시 잠깐 여유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쫓기는 마음은 다를 게 없었다. 내가 갈증을 느끼는 원인은 표면적인 무엇이 아니라 내면의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바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바람이 어디서 생긴 것인 지부터 생각해야했다. 그리고 긴 시간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나는 내내 그 생각을 품고 살았던 것 같다.

 

공기를 가르며 부는 바람이 생기는 것은 꽉 막힌 상자 속이 아니라 사방이 뚫린 공터이다. 빈 터전에서 바람을 느끼고 벌판에서 바람이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의 바람 역시 그 빈 공간에서 불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부족하거나 허전한 부분일 수도 있고 허전하거나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나에게는 뭔가를 빨리 빨리 해내서 나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한다는 듯, 모자란 것을 더 보충해야 한다는 듯, 못난 모습을 바꿔 더 잘 해보려는 행동이 오히려 조급해 보이기만 할 뿐 실속 없는 녀석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자주 쓰는 말도 ‘잘’, ‘멋지게’, ‘예쁘게’, ‘조금만 더’라는 말. 더 해서 뭘 하자는 건지…. 내가 편안해지면 그 다음은 자동으로 이루어지곤 했는데도 매번 미리 다음을 예상하고 그대로 되길 애써 끼워 맞추곤 했다.

휴학을 하고 사회생활을 조금 접하면서 누구에게나 각각의 특성이 있고 위치와 역할이 명확히 주어져 있는 것을 보고 새삼 놀랐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위치가 있다. 나를 부정하고 다른 이상적인 나를 앞세워 그러한 방향으로 쫓아가기만 할 때 얼마나 무기력해지며 삶이 허무해지는지 느끼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 내가 가지고 있던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인정하지 않고서 내가 뭔가를 해 내기만을 바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불가능을 바탕에 깔고 있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쫓기는 듯한 생활 속에서 힘들어졌을 테고 말이다. 이제껏 내가 가지고 있던 것만이라도 내 것으로 정리 할 수 있는 것, 나를 비롯하여 모든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바로 쉼이라 느껴졌다.

 

내가 가는 걸음걸음이 마냥 힘들기만 해서도 안 되지만 쉼 역시 도피여서도 안 되고 무기력이어서도 안 된다. 그래선 무엇도 해결 될 수 없기에 말이다. 자신에게 맞는 설계를 짜는 준비의 시간이며 바탕이 되는 시간이고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쉼이다. 자신의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인지 그 바탕 위에서 우리는 각자에게 알맞은 역할들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일을 해가면서 하게 하는 바탕을 알지 못하는 것은 땅을 바탕으로 건물들을 지을 수 있지만 건물은 생각하면서 정작 땅은 잊고 지내는 것과 같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드러난 모습들은 살피지만 그것이 어째서 그럴 수 있었던 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누구나 휴학을 해봐야 한다.’거나 ‘반드시 휴가를 떠나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일을 떠난 어떤 쉼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놓고 멍청히 있으라는 것도 아니다. 쉬는 것과 생활하는 것을 따로 생각할 수는 없는 듯하다. 갑갑한 마음이 들 때 한 숨 쉬는 쉼처럼 놓고 작용하는 것이 바로 쉼休이 아닌가.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쓰는 것이나 흔들리고 불안할 때 법당을 찾고 잠시 앉아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나에게 있어 휴학은 배움을 쉬는 것이 아니라 쉬는 것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쉼을 바탕으로 조금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나에게 맞는 길을 간다. 나의 내면에 어떤 바탕생각이 있고 내게 어떤 조건이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상황 속에서 편안하게 알아 가는 시간을 얻은 셈이다. 쉼도 결국에는 삶의 한 선상에 있는 것. 제대로 쉴 때 나를 지켜볼 수 있고 제대로 걸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학교로 돌아온 지금, 주어진 여건은 그 전과 그리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 가운데 이 세 가지는 잊지 않고 지낸다. 긴 시간을 투자해서 얻었던 나 나름대로는 무척 소중한 “가기 위해 쉬는 법”, 첫 번째, 나의 하나부터 열 가지 모두를 인정하는 것과 두 번째,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반성하며 살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자 한 것을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나는 걸음걸음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때로는 어려울 때도 있고 부딪힐 때도 당연히 있지만 그럴 때가 진정 쉼을 실행해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따로 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그 속에서 숨쉬듯 쉬어가며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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