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꽃과 현실
지창규/ 불교대학 교수

그것이 허공꽃인 줄 알면

곧 유전(流轉)을 면할 것이며,

또 꿈 속의 사람도

깰 때에 얻을 수 없음과 같느니라.

 

현실이 꿈이라는 얘기이다. 전쟁의 광기와 살육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오늘의 비극적 현실을 너무나 쉽게 허공꽃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처참한 비극이라도 꿈에서 깨어나면 그만이란 말인가. 그러나 현실을 꿈으로 돌릴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현실로 따져 보는 것에도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문제의 열쇠는 누구한테도 주어져 있지 않다. 적당한 타협점에서 문제가 해결된 듯 보이나 또 다른 부위가 끊임없이 터질 뿐이다.

현실적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해결책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마치 죽음의 문제와 같이. 그렇다면 본질적인 방법을 다시금 되돌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환(幻)을 멀리 여의면

모든 환(幻)을 다 여의리니

나무에서 불이 일어남에 나무가 다하면

불도 멸함과 같으니라.

 

일체 중생들의

몸과 마음이 다 환(幻)과 같아서

몸의 모습은 사대(四大)에 속하고

마음의 성품은 육진(六塵)으로 돌아가나니

 

모든 부처님 세계들이

마치 허공꽃과 같아서

삼세가 다 평등하여

필경에 오고 감이 없느니라.

 

생사와 열반

범부와 모든 부처님께서

한가지로 공화상(空花相)이라.

 

모든 것을 허공꽃으로 보는 여유는 부처님에게서나 가능할 듯하다. 더구나 생사와 열반을 하나로 보고 중생과 부처를 하나로 보는 이치는 우리에게서 더욱 멀다. 그렇다면 돌아볼 곳은 무엇인가. 문제의 열쇠를 우리 내부에서 찾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리라.

 

일체 중생들이

대해탈을 얻지 못함은

모두 탐욕을 말미암아

생사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미움과 사랑

탐진치를 끊으면

차별된 성품에 인하지 않고

다 불도를 이루리라.

 

모든 인간의 대립과 갈등은 본시 우리들 각자의 이기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인간의 비극은 자기라는 집착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 것만이 옳다하고 나와 다른 이들의 생각은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나의 기분에 따르는 것은 좋은 것이고 나의 기분에 거스리는 것은 나쁜 것일 따름이다. 내 감정만이 중요하고 다른 이의 느낌은 경시한다. 옳고 옳지 못하다는 기준은 인간의 잣대일 뿐이다. 한 때의 기분으로, 한 때의 계산으로, 나 이외의 모든 것을 부정하려 한다.

사랑과 미움. 미움과 사랑. 인간의 영원한 주제에 걸맞게 오늘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의 사랑, 나의 미움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나의 사랑과 미움은 결코 놓지 못한다. 오히려 이것을 붙잡는  가운데 삶의 의미를 느끼려 한다.

 

시방의 보살들이

모두 대비의 원으로써

생사에 들어가니

현재 수행하는 이와

말세의 중생들이

모든 애견(愛見)을 부지런히 끊으면

문득 대원각에 돌아가리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현실에서 살아가고 또 사랑하고 미워해야 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중심에 내가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한 사랑은 무엇인가. 여기서 자비(慈悲)와 애견(愛見)에 대해서 따져보자. 자기를 중심으로 한 사랑은 중생들의 애견(愛見)이오 자기를 버린 사랑은 보살님의 자비(慈悲)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살님의 사랑과 우리 중생들의 사랑의 차이는 결국 자기애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일 뿐이다.

 

원만한 보리의 성품은

취할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으며

보살도 중생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중생이라도 모든 것을 다 버릴 필요는 없다. 보살도 중생도 없으므로 더 이상 버릴 것도 구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세계에 번뇌와 고통이 있다는 것은 결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랑과 미움이 마음에서 생기고

아첨과 왜곡이 생각 속에 있으니

그 까닭에 답답함이 많아서

능히  각성(覺城)에 들지 못하느니라.

 

만일  깨달음의 세계에 돌아가서

탐, 진, 치를 버리고

법애(法愛)도 마음에 두지 아니하면

점차로 성취할 수 있으리라.

 

나의 몸도 본래 있지 아니한데

미움과 사랑이 어디서 생기리오.

 왜 나만이 옳고 다른 이들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단지 내 생각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랑과 미움으로 비롯되는 모든 아픔들. 사랑과 미움 결국 나라는 집착에 억매어 이루어지는 비극, 사실 그것은 있지도 않은 허상의 비극일지라도,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현실임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십만년 간 되풀이 해 온 전쟁에서 우리는 아직도 진정한 반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힘이 정의임을 다시금 절감할 따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대립과 갈등은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일 수 밖에 없다. 남는 것은 오직 비극일 뿐이다. 이제라도 남아도는 정력을 다함께 공존하는 지구촌을 만들어 가는데 쏟아 부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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