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성찰이고 정치는 비전이다
김경호 / 불교문화정보네트워크 상임이사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올해 초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막을 내림으로써 공식적으로 불교와 관련한 큰 정치일정은 막을 내린 듯 싶다. 이러한 정치적 격동기에는 그간 숨죽이고 있던 사회 제 세력의 이해와 요구가 폭발적으로 돌출하게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관계와 변화가 모색된다. 그렇다면 이 두 선거의 결과로 인해 한국사회와 조계종단에는 어떤 변화와 관계가 일어나게 될까? 기대해도 좋을까?

불교는 출세간의 종교다. 일주문을 들어서며 세속과 결별한다. 출가 전 일을 전생(前生)이라고 하는 스님도 많다. 세속적인 문제를 입에 담는 것이 금기시된다. 그래서 세속과 무관계하면 할수록 도인(道人)으로 존경받는 종교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고상한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한 숨쉬고 밥 먹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세속을 초탈한 구도자도 예외는 없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 또한 정치행위의 한 일면이기 때문이다. 그 조차도 현실의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된다. 더구나 사회 속의 한 구성원일 뿐만 아니라 한 집단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불교로서 정치는 강 건너 불일 수 없다.

지금 불교계에서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는 북한산 관통도로, 천성산 고속철도 통과 문제등은 절대적으로 정치적 현안일 수밖에 없다. 선거공간 속에서 이 문제를 불교계에 유리하게 해결하기 위해 후보자에게 불교계의 요구를 전달했고, 당선을 위해 후보자는 그 요구를 수용했다. 그렇다면 그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정치인이 불교계만 신경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문제에 관련한 기존의 정부 정책과, 사업과 관련한 이해당사자들 또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불교와 대립하는 쪽의 로비력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다. 결국 이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것이 맞다. 그나마 묵살당하지 않고 공공의 의제로 상정되고 있다는 것이 희망이랄까?

이러한 정치적 요구를 달성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참여, 혹은 세력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어쩌면 이것은 그간 정치에 무관심한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온갖 어리석음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른다. 권력자의 뜻에 따라 대중적 정서와는 무관하게 동원되고 성명서나 발표해온 과거의 불교종단의 행태는 어떤 면에서 가장 천박한 정치적 행태이기 때문이다.

불교계의 이해를 정치공간에서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보다 노골적인 선거 과정에의 개입,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낙선 운동, 혹은 직접적인 참여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과거 불교조직 출신의 인사가 불교계를 대표한다며 기존 정당의 공천을 받아 의회진출을 시도한 경험처럼 아직도 많은 이들이 불교를 정치적 기반으로 정계 진출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다른 종교는 개인적 진출을 넘어서서 아예 정당 건설을 도모하기도 한다. 얼마 전 문선명씨의 통일교에서 정당 창당을 선언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 5가 운동권으로 불리는 기독교 세력에도 오래 전부터 가칭 기독교민주당 창당 논의가 잠복해 있다. 축적된 인적 물적 기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할 대표를 정치무대에 진출시키겠다는 꿈을 지닌 것이다. 서구에서도 종교의 이름을 앞에 붙인 정당이 적지 않다. 이웃 일본에서는 일련정종 계통의 창가학회가 공명당이라는 이름으로 정계에 진출해서 활동해온 경험도 있다. 한국사회 최대 종교인구를 자랑하는 불교에서 정당 건설은 아니더라도 불교를 기반으로 한 정치인 몇 명쯤이야 배출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생각해보자. 종교와 정치가 서로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종교와 정치가 같은 것은 아니다. 아니 달라야 한다.

정치는 비전(Vision)이다. 사회 제 세력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는 기술일 뿐 아니라, 대중의 희망을 조직화하여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정치이고, 그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로 정치인이 나서는 것이다. 그것이 서로 맞을 때 정치인은 표를 얻어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획득한 정치권력은 비전을 실현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하지만 종교는 성찰(省察)이다. 근원적 가치에 근거해서 존재와 삶을 되새겨보고 완성을 위해 수양한다. 이 세상의 재물과 권력이 궁극의 완성을 위해 도움이 되기는커녕 행복도 가져다주지 못함을 안다. 너도나도 물질과 권력을 위해 질주할 때 멈추어 서서 우리가 사는 방식이 옳은 것인가 되돌이켜 반성해 보는 이가 종교인이다.

종교의 바른 성찰이야말로 역으로 정치적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일 수 있다. 성찰할 수 있는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건강해진다. 정치공간에의 직접참여만큼이나 이러한 종교 본연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정치영역과 무관할 수 없는 것처럼, 정치행위 또한 선거와 의회라는 정치공간에서만이 아니라 중생이 사는 모든 공간과 시간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종교는 종교의 영역에 있을 때 아름답다. 영향력이 있다. 정치를 꿈꾸는 이들 또한 내면에는 종교적 가치관과 정서를 간직할지라도 종교와 정치를 분리해서 사고할 수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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