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되는
사회와 불교 그리고 정치 서동석(현묵) / 전
민중불교운동연합 회장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세대는, 어떤 연대를 나눈
층으로서 보통 30년을 그 주기로 잡는다.
하지만 요즘에는 특정한 문화적 징후가
나타나는 연령대로 그 세대를 나눈다.
이제는 거의 고유한 명사가 된 이른바
‘386세대’라는 낱말도 그렇고 인터넷을
생활의 주요한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세대를
일컫는 ‘엔(n)세대’도 그렇다. 그런데
이들 두 세대의 간격은 길게 잡아도 고작
10년 정도로 1980년대와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을 통칭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들 세대에 의해 상당한 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 해 말에 치뤄진 대통령선거는
그런 변화의 일단이면서 또 다른 변화의
시발이 되었다.
새로운
세대의 강한 변화의 욕구와 그 흐름을
타고 노무현정부가 들어섰고 노무현정부는
각료 인선에서 파격이라고 불리우기에
충분한 인사로 답하였다. 청와대 비서진을
비롯하여 정부부처의 책임자를 상대적으로
젊은 학자와 전문인에게 맡겼다. 정권이
바뀌어도 늘 입에 오르내리던 이들이 고위직을
차지하던 우리 정치가 돌연 ‘물갈이’에
들어갔다. 이런 인사정책으로 정치권은
10년 이상 축약되었다. 관료 조직의 대표기관인
검찰이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검찰파동을
겪고 마침내 대통령과 일선 평검사간의
설전을 불러일으킨 요인도 인사문제였다.
노무현정부의
변화는 세대의 축약에서 나타났거니와
아울러 과거의 세대와는 달리 이념에서
유연한 세대들이 우리 사회의 중심축이
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사회는 반공이라는 이념이 절대적인
위력을 갖고 있었다. 반세기 동안 울궈
왔던 그 반공이념은 이제 철 지난 유행옷이
되고 말았다. 더불어 반공의 한 축이었던
친미도 설 곳을 잃고 말았다. 과거에는
미국을 반대하던 세력이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미군철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일부에 그치고 있다. 외형상
한국사회는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변화와 한국불교계의 관계는 어떠한가?
사회 변화에 더디게 조응하는 그간의 불교계
모습과 비교하면 근래 불교계는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는데 상당히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1994년 봄의 개혁불사에 이어
비록 98년 겨울 일시적으로 분규를 겪기는
했으나 이후 고질적인 분규가 거의 사라진
상태에서 오는 안정성이 사회변화의 전향적
수용에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분석은 불교계의 사회
참여 현황을 보더라도 과거와는 다른 점을
확연히 볼 수 있다.
80년대만
하여도 불교계의 사회운동 조직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그것도 지역적으로 서울에
치중되어 있어 숫적으로 공간적으로 극히
제한된 소수였다. 또한 그 내용을 보더라도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부각되어 있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시민적 권리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 확실히 자리 잡아가면서
불교계도 다양한 사회운동이 펼쳐졌다.
인권, 환경, 국제구호 등 사회 문제에
적극 대처하려는 노력이 전에 없이 두드러졌다.
그 중에도 특히 환경문제에 있어서 불교계의
모습은 오히려 지나친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 확실한 자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좀 과도하게 말해 단순히 사회변화를 수용하는
정도를 넘어 특정한 사회 부분에서는 불교계가
주도하고 있다 하여도 무방하다. 이번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결과도 그런 불교계의
흐름이 반영되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참여의 노력과 성과가 과거에
비해 확연하게 제고되었다 하여도 정치적
참여는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보여진다. 여기서 정치적 참여라 함은
무슨 정당이나 정치적 조직을 통해 정치에
직접 관여하는 것을 이르지 않는다. 사실
외형상 정치와 종교는 각기 고유한 영역이
있으므로 함부로 관계를 맺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다. 그렇긴 하지만 정치와 종교는
결국 사회적 공리를 실현하는데 그 존립기반이
있으므로 상호 작용을 거부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러한 상호작용을 어느 정도 적절하게
유지하는가에 따라 정치와 종교의 상호발전이
있을 것이다.
불교의
초기경전에 해당하는 아함부의 여러 경전을
보면 석가모니부처님은 늘 정치가, 국왕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어느 경우에는 당시 부족국가간의
전쟁 현장에서 평화와 바른 정치에 대해
일갈하기도 하였다. 바로 이런 점이 오늘
날, 한국사회에서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모범이겠다.
한국불교의
주류는 출가사문과 재가신도라는 구성원으로
성립된다. 출가사문은 석가모니부처님처럼
세속의 정치에 대해 ‘신하들의 간언을
경청하고, 백성들과 동락하며, 법에 의거하여
백성을 다스려서 끝내 굽힘이 없도록’(증일아함경)
지도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정치자문의 위상을 가져야 한다. 법의를
입은 사문이 직접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는
것은 아무래도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에 반해 출가사문의 국정 자문을 더욱
힘있게 뒷받침하는 것은 재가불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재가불자들은
이미 부처님 재세시부터 교단을 외호하는
세력이었다. 교단의 물질적 기반을 책임지고
있었으며 다른 세력으로부터 교단이 침해받지
않도록 지켜내어야 했다. 이런 외호의
노력에 현실 정치의 영향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재가불자들이
현실 정치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영향력을
제고하도록 교단은 직 간접적으로 지원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 각 부문에서 불제자들의
활발한 진출과 활동은 한시도 머물지 않고
변화 발전하는 사회에 불교를 보다 생동감
있도록 할 것이다.
돌아보면
조선시대 이래 600년 가까이 한국불교는
한국사회에서 그 역사적 전통이나 대중적
장악력에도 불구하고 부차적 지위에 머물러
왔다. 물론 이런 현상의 원인은 불교 그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한국사회의 성격에
기인한 것이었다. 특히 분단이 고착된
이후 60년 가까이 남한 사회에서 불교의
지위는 참으로 초라하였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사회적
요인이면서 다시 그런 폐해는 불교가 사회변화를
미처 따르지 못하도록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였다.
이제
한국불교는 서서히 그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고 있다. 실로 간난신고의 험한
길을 헤쳐나오면서 얻어낸 성과다. 바로
그렇기에 그 성과를 더욱 발전하기 위해
현실 정치의 참여는 당면한 현안이다.
지난 10년간의 사회참여운동으로 얻어진
성과가 정치라는 공간에서도 활짝 피도록
가편을 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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