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의 자세와 사명
정승석 / 불교대학 교수

불교 사전들에서는 5종 법사란 수지(受持), 독(讀), 송(誦), 해설, 서사(書寫)라는 5종의 수행을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면서 법화경의 법사품을 그 출처로 제시한다. 이는 물론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나 묘법연화경 뿐만 아니라 이의 원전에도 5종 법사라는 말이 아예 없음은 물론이고, 5종 법사를 암시하는 문맥도 양쪽에서 발견할 수 없다. 사실 묘법연화경의 곳곳에서 법화경의 수지, 독송, 해설 등을 강조하는 구절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열거하는 내용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법화경 법사품의 서두에서 5종 법사를 언급한 것으로 지목되는 대목이 범본의 원문에서는 “이 법문으로부터 겨우 하나의 게송이라도 잘 간직하고(수지), 독송하고(독, 송), 설명하고(해설), 체득하고, 베껴 쓰고(서사), 베껴 써서 기억하고, 때때로 주의 깊게 음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여기서 열거하고 있는 것은 결코 5종 법사가 아니라 법화경을 신앙하는 자세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에 계속하여 열거하는 것이 스승인 여래를 공경하고 공양하는 경건한 태도, 꽃이나 향이나 음악 등으로 법화경을 공양하고 경배하는 태도인 점으로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대목들의 취지는 이른바 법화경 신앙을 고취하는 것이다. 즉 여기서는 법화경 자체를 중시하고 홍보하라고 주문하면서 법화경 신자가 견지해야 할 기본 자세를 제시한다. 범본에서 번역한 아래의 경문은 이와 관련된 법사품의 다른 대목이다. 여기서도 법화경의 수지, 독송, 서사 등을 강조하는 취지가 법화경 신앙을 고취하는 데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약왕이여, 열반에 들어간 여래의 이 법문을 믿고, 독송하고, 베껴 쓰고, 공경하고, 숭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 줄 양가의 아들들이나 양가의 딸들은 여래의 옷으로 감싸인 자들이라고 알아야 한다. 다른 세계의 국토에 머무는 여래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가호한다고도 알아야 한다. 또 그들에게는 저마다 믿음의 힘과 착한 근성의 힘과 서원의 힘이 있을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또 약왕이여, 그 양가의 아들들이나 양가의 딸들은 여래의 안식처 중에서 한 장소에 머물게 될 것이며, 여래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자들이 될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이처럼 법사품에는 법사를 역할에 따라 구분하는 관념이 드러나 있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법사란 여래 즉 부처님이 열반한 후에 법화경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널리 퍼뜨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묘법연화경에 의거하여 흔히 말하는 5종 법사는 그러한 사람의 대표적인 자세를 5종으로 발췌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를 확고하게 갖추어 법사의 전형이 될 만한 사람을 여래사, 즉 부처의 심부름꾼이라고 부른다.

특히 아래의 경문에서 주문하는 사명 의식에 고취되어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보살인 여래사이다.

 

약왕이여, 위대한 뜻을 지닌 자인 보살로서 어느 누구라도 여래가 열반에 들어가고 난 나중의 시대, 나중의 시절에 이 법문을 네 부류의 청중에게 설명하고자 한다면, 약왕이여, 위대한 뜻을 지닌 자인 그 보살은 여래의 방으로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 이 법문을 네 부류의 청중에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약왕이여, 여래의 방이란 무엇인가? 약왕이여, 모든 중생을 위한 자비의 안식처야말로 여래의 방이다. 그 곳은 저 양가의 아들이 들어가야 할 곳이다.

약왕이여, 여래의 옷이란 무엇인가? 약왕이여, 위대한 인내의 기쁨이야말로 여래의 옷이다. 그것은 저 양가의 아들이나 양가의 딸이 입어야 할 것이다.

약왕이여, 여래의 법의 자리란 무엇인가? 약왕이여, 모든 법의 공성(空性)에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여래의 법의 자리이다. 그 곳은 저 양가의 아들이 앉아야 할 곳이다. 그는 그 곳에 앉아 이 법문을 네 부류의 청중에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문이란 법화경을 가리킨다. 경문의 설명에 의하면 여래의 방은 자비, 여래의 옷은 인내, 여래의 자리는 공성이다. 따라서 자비와 인내와 공성에 입각하여 법화경을 홍보하는 보살이 곧 여래사이다.

자비란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돌보는 것이고, 인내란 세상을 원망하지 않으며 참고 견디는 것이고, 공성이란 어떠한 집착도 없이 광대무변의 세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이 중에서 ‘모든 법의 공성에 들어가는 것’이란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고 깨달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자비와 인내와 공성은 보살의 길을 걷는 자가 인생에 대처할 태도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후세에 ‘홍경(弘經)의 삼궤(三軌)’, 즉 대승의 가르침을 널리 펴는 데 필수적인 세 원칙으로서 중시되기에 이르렀다.

소승 불교의 일부에서는 자비와 공성을 서로 다른 차원의 것으로 생각했다. 이에 의하면 자비는 현실과 관계되는 행위이고, 공성은 현실을 초월한 경지이다. 따라서 공성을 앞세울 때, 자비는 버려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 법사품에서는 자비와 공성이 하나임을 천명하여, 공성을 현실에서 자비와 함께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규범으로 중시한다. 그리고 이 실천의 기반이 인내이다. 이 점에서 여래사의 사명에는 대승 불교의 실천 이념이 집약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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