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재가 보살의 공양주 수행
최법혜 스님 / 경주캠퍼스 정각원장

대승불교의 경전 가운데에는 재가의 거사와 여인들에 대한 수행담이 많이 들어 있다. 유마거사, 승만부인, 위제희 부인 등을 비롯하여 많은 재가 신도들의 수행의 경지는 오랜 기간 동안 수행을 쌓아온 출가 스님들 보다 오히려 더 높은 차원에서 설교되기도 한다.

사실 출가한 스님들도 모두가 재가 신도님들의 집안에서 태어나 양육되어졌으며 또한 재가 신도님들의 4사공양(의복 음식 방사 약)의 은혜를 입고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출가수행이라고 하여도 결코 재가와의 관계는 분리될 수 없다. 즉 세간, 출세간의 차이는 수행의 내용에서 구분되는 것이라고 이해 할 수 있다.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20여년 전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을 때 대구에 있는 한 노보살님의 보살핌을 많이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보살님 역시 천식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주로 대구 근교의 산사에서 지내게 되었다. 경북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에는 최정산(最頂山)이 있고 거기에는 신라 말의 고찰인 운흥사(雲興寺)가 있다. 마침 잘 아는 스님이 이곳에 주지로 계셨기 때문에 부담 없이 쉬어 오곤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특별한 공양주 보살님이 계셨다. 노보살님의 설명을 들으면 이 공양주 보살님은 3년을 기한으로 정하고 무보수로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들어 왔다고 하였다. 물론 이 약속은 주지스님이 결정한 것이 아니고 그 공양주 보살님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그 보살님을 뵈었을 때 첫 인상은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한 60세 정도의 연세인데 단정한 몸매에 비녀 머리를 하고 다정한 모습에서 무척 친근감이 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근엄한 모습이 많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도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이 공양주 보살님의 일과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스님들과 함께 예불을 모시고 그리고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하루 세 차례의 예불과 불공에 참석을 하고 그리고 스님들과 거주 대중들의 공양과 세탁을 모두 맡아 하였다. 그리고 잠시도 쉬지 않고 부엌을 청소하고 그릇들을 닦고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마당에 풀을 뽑고 청소를 하였다. 또한 사찰에 찾아오는 불공손님을 비롯하여 여러 관광객에게까지도 항상 친절하였다. 그러나 함께 어울려 세상사를 이야기하거나 큰소리로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특히 시내에 살고 있는 며느리나 따님이 휴일에 찾아오면 오기가 바쁘게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일들을 도와드렸다.

주지스님의 말씀은 조금이라도 용돈을 드리면 마음이라도 편할 것인데 오로지 봉사만 하고 아무것도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하시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3년 기도이기 때문에 도울 수밖에 없다고 하시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여러 조건의 환경 속에서 그리고 마음속에서 의지와 갈등으로 번민하고 있다. 여기에서 고와 낙 그리고 행 불행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혜를 배우는 보살들은 이러한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안다. 그 근원을 찾아 잘못된 견해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자기 자신과 싸우게된다. 간경, 염불, 참선, 주력, 기도, 봉사 등등이 모두 정견(正見)을 얻기 위한 방편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아니 아마 일생동안 나의 수행에 충격을 준 이 운흥사 공양주 보살님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 공양주 보살님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 보살님을 3년 동안 그 고달픈 공양주의 기도를 하도록 하였을까? 3년의 공양주 기도가 끝나는 회향일에는 그 공양주보살님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사위와 따님이 오셨다. 모두가 한복으로 깨끗하게 차려입고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스님들께 작별의 인사를 드렸다. 노보살님은 저에게 큰방의 벽에 걸려있는 벽시계를 보라고 하였다. 공양주 보살님이 기도 회향기념으로 올리는 것이라 하였다.

“공양주 3년 기도회향 기념”이라는 글씨를 보며 필자는 내 자신의 수행이 너무 부끄럽게 생각되어졌다. 속가에 있는 보살님도 자신의 수행을 위하여 이렇게 철저한 기도를 드리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반성해 보았다. 출가라는 이름 아래 엄벙덤벙 아니 그럭저럭 적당하게 시주의 공양물만 허비하고 출가의 본지를 망각하고 세월만 낭비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자책감에 사로 잡혔다. 혹 어떤 독자는 이 글을 읽고 필자의 수행을 한심하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출가한 스님이 더 높은 수행의 경지를 논하지 않고 왜 하필 사원의 한 공양주 보살님의 기도에 그렇게 감동하느냐고. 그렇습니다. 저는 저의 주변에 있는 모든 분들이 저의 스승인 선지식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승속을 막론하고 또한 빈부 귀천 내지 유무식의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가 소중한 선지식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그 공양주 보살님도 거룩하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가족인 아들 내외분과 따님 내외분도 너무 존경하고 싶었습니다. 요즈음처럼 부모의 은혜를 모르고 또한 가정의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져 은혜를 원망이나 원수로 갚는 험악한 세상에 어머니의 뜻을 헤아려 그 3년 간의 어머님의 기도를 마음을 함께 하는 가족들의 정성은 너무 아름답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이러한 가정을 우리는 화목한 가정이라고 부르고 또한 불보살님도 환희하시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날 운흥사의 오후가 생각납니다. 3년 간 같이 생활했던 그 공양주보살님이 떠나게 되어 대중들은 모두 고맙고 서운한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양주보살님을 비롯하여 그의 가족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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