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전통 건축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건축물 속에 깃들인 사상이다. 옛 선조들은
집을 지으면서 그 속에 생각을 집어넣었다.
생각이 들어 있다는 것은 사람에게 신경과
감각이 있듯이 집도 살아있는 유기물로
여기고 그 생각을 담도록 지었다는 뜻이다.
현대 건축물에는 어느 정도의 생각이 들어있는지
의심스럽다.
사사로운
살림집이라도 집을 위하는 성주, 터주가
있다. 이 성주와 터주는 집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그 안에 살고 있는 가족의 화평과
건강, 그리고 성공을 기원하는 대상물로
존재한다. 그래서 늘 성주, 터주를 신성시하고
때가 되면 고사를 지낸다. 현대인들에게는
미신으로 여기지지만 고사 속에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으려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것이 옛 선조들의
정신 세계였다.
전통건축물
중에는 도깨비 얼굴의 철와 등 건축의
기능과는 동떨어진 장식물로 치장하고
있는 것들도 다수 있다. 그것은 모두 인간의
안녕을 기원하고 집을 영원히 보존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같은 의식은
건축물의 장식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건축구조에서, 그리고 건물 평면자체에도
많이 나타난다.
서울의
상당수 궁궐 건물에는 지붕의 용마루가
없다. 얼핏보아 미완성의 지붕처럼 보인다.
창덕궁의 대조전, 경북궁의 교태전·강녕전,
창경궁의 통명전 등은 용마루가 없는 이상한
형태다. 우리 나라의 많은 건물 가운데
이들 건물만 용마루가 없다. 그러나 이
건물의 지붕은 미완성이 아니다.
이처럼
용마루가 없는 집은 중국에서는 일반 민가에서도
자주 눈에 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궁궐 건축에만, 그것도 일부 제한된 건물에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것은 이 건축물의
용도를 읽고 거기에 생각을 불어 넣었기
때문이다.
이들
건물은 모두 궁궐의 침전 구역 안에 있고
특히 왕과 왕비가 잠자는 전용 침전 건물이다.
즉 모두 왕자가 잉태되고 태어나는 곳이다.
따라서 건물 정상에 있는 용마루가 천기(天氣)를
받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 때문에 무량가(無樑家),
즉 용마루가 없는 집을 지었다.
경복궁의
경회루도 이 같은 건축 정신을 잘 보여준다.
2년 전 경회루의 연못을 준설하는 과정에서
구리로 만들어진 용이 발견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그 용이 왜 연못 속에
있었을까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
경회루를
중참하면서 의도적으로 넣었다는 것이
뒤에 밝혀졌다.
불(火)과
같은 색깔인 구리로 만든 용이 화재를
예방한다는 생각에서 이를 연못 속에 넣었음을
1865년 정학순이 쓴 경회루 36궁지도라는
책은 밝히고 있다.
이
책에는 이와 함께 경회루의 평면 구성에도
자연의 이치가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경회루의 평면은 정면
7칸, 측면 5칸으로 건물을 48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으며 전체 기둥 가운데 절반인
24개는 바깥쪽에, 24개는 안쪽에 세워져
있다.
바깥쪽
기둥 24개는 바로 24절기를 나타낸다는
것. 북쪽 중앙 칸의 서쪽 기둥이 동지를
의미하는 기둥이고 이 기둥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안쪽
기둥들로 구성된 정면 5칸과 측면 3칸은
그 전체의 칸수가 12칸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1년 12개월을 의미한다고 한다. 동북쪽
모서리 칸이 정월로 시계방향을 따라 2·3…12월로
이어진다. 그리고 건물의 중심부는 정면
3칸, 측면 1칸인데 이는 삼재(三才),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처럼
집을 지으면서도 그 속에 우주의 진리와
철학을 담으려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건물 속에 사상을 불어넣어 그 건물에
생명력을 부여함으로써 그 건물 속에 사는
인간이 자연과 하나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옛
선조들은 건물을 짓거나 연못을 파면서도
그저 짓고 만들지 않았다.
건축
이전에 그 건물과 연못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에 먼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옛 선조들이 남긴 사소한
건축물 하나라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 유산 속에는 옛 선조들의 사상과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