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Home  정각도량   

 

무상속에서의 영원한 삶

정유진 스님/ 불교문화대학 선학과 교수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가는 시간을 우주의 전(全)역사에 비교해 보면 극히 짧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을 잘 활용하여 자기의 지혜롭고 창조적인 살림살이로 가꾸어 가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현대인의 합리적인 삶은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자기 자신의 향상적인 삶으로 전환하는데 있다. 시간을 좋은 삶의 에너지로 활성화하려면 자신은 물론이고 이웃과 인류를 위하여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의 존재와 시간의 본질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우리 개개인은 원인도 없이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원인과 주위의 환경 등 수많은 인연들이 합쳐서 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 하나 성스럽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즉 각 개인은 남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 유일한 개성을 각자 소유하고 출생한 것이다. 그러나 개성은 남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비교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값어치를 떨어뜨리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각 개인이 본유(本有)하고 있는 자성(自性)은 어떠한 능력이라도 발휘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 생활에 실제로 활용될 수 있는 능력으로 발휘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나무 속에 불이 붙을 수 있는 불성(火性)이 있지만 나무를 있는 그대로 방치해 두면 불이 붙을 수 있는 가능성은 죽어 버리고 결국 그 능력은 발휘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 인간을 비롯한 일체의 만물은 다수의 인(因)과 연(緣)에 의하여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를 무상(無常)하다고 한다. 즉 무상하다는 말은 변화한다는 말과 똑같다. 변화하는 이유는 어떤 고정 불변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것도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상한 변화선상에 인간들이 편의상 정해 놓은 단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고서 그 시간에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시간 그 자체가 어떤 힘이 있어서 인간의 삶을 구속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구속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잘못 활용함으로써 인간 스스로 구속을 자초(自招)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의 흐름, 즉 변화하는 무상 속에서 자기 존재의 영원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다시 말해서 각자 본구(本具)하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어떻게 현실의 생활에 필요한 능력으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화제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각자 지혜와 자비를 갖춘 인격자로서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지혜와 복덕을 구족한 인격체로서 삶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립해야 한다.

우리가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자각(自覺)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 자신의 가장 확실한 존재는 현재 지금의 자각적인 자기뿐인 것이다. 자기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상하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체, 자신의 인생이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허무하게 지나가고 마는 것이다. 지혜의 창출은 자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자각을 통해서 체득한 직관적인 지혜는 자기 창조의 원천이자, 자기 향상의 터전이 된다. 지금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상한 이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깨달음의 지혜로 만들어간다는 것은 무상 속에서 영원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깨어있는 살림살이는 시간에 구속된 삶이 아니라, 지혜로써 전개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는 시간까지도 초월된 절대적인 삶인 것이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나 다가올 미래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과거를 추억하거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현재 지금의 자기 존재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 자기의 진실 된 삶을 살고 있는 행위 속에서 지금이라는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며, 현재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성공도 실패도 없다.

성공과 실패라는 것은 결과에 기준을 둔 가치판단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올바른 삶은 현재의 성실성에 기준을 두고 판단해야지 과정을 무시한 지나친 결과주의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화엄경』 「이세간품」에 “무량겁(無量劫)이 일념(一念)이고, 일념이 곧 무량겁”이라고 했다. 한 생각의 자각이 있으면 무상 속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고, 일념을 놓치면 자신을 망각할 뿐만 아니라 무량겁의 생사 속에 헤매고 마는 것이다.

원효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끝에 “한 시간 한 시간이 흘러 하루가 홀연히 지나가고, 하루하루가 흘러 한 달이 홀연히 지나가고, 한 달 한 달이 흘러 한 해가 홀연히 지나가고, 한 해 한 해가 흘러 잠깐 사이에 죽음의 문 앞에 이른다.”고 했다. 이와 같이 시간이란 실체가 없는 것이지만 인간을 죽음의 문 앞으로 내모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또 『마하지관(摩訶止觀)』 7에 “무상(無常)한 살귀(殺鬼)는 영웅호걸과 성현들도 가리지 않는다.”고 한 말이 있다. 이 무상의 살귀는 어느 누구 어떤 사물을 가리지 않고 찾아 들기 때문에, 찰나 찰나에 자각이 없으면 찰나 찰나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무상이라는 악귀에 끌려가면서 일생을 무의미하게 마치고 마는 것이다.

 


Copyright(c) 1997-2001 Jungga
kwon All Right Reserved.
junggakwon@hanm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