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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교연극이 나아갈 길

정상철/ 국립극단 단장

 


사실 종교란, 또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내면의 믿음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어느 종교나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면의 믿음보다 외적인 형식에 많이 얽매여 있는 것 같다. 불교계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쉬운 예로, 으리으리한 큰절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그것이 꼭 신심과 정비례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외적으로 그럴듯한 것에 사람들이 혹하는 측면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런 현상, 즉 내면보다 형식에 치우치는 것은 우리 종교계,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라 볼 수 있을 것일진대 이는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한국 불교 연극의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아직까지 우리 나라 불교 연극들은 소재만 불교에서 취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불교를 소재로 하는 연극은 불교 연극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식은 이런 류의 불교 연극이 현재의 우리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에서 발생한다. 왜냐, 사실 세계적으로 대단한 평가를 받은 불교 소재의 우리 예술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는 겉모습이 불교적이다 하여 평가되는 부분이 많은 듯하다. 정작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불교 연극은 만나보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서 소재를 차용하는 것만으로 불교적인 깨달음과 연극적인 감동을 주기에는 부족하지 않은가? 오히려 직접적으로 불교적인 소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불교의 이념을 일반인들에게 전파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국립극단의 우수 레 파토리로서 5월에 공연 예정인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의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불교적인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인 늙은 도굴범들의 이름이 승려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에서 따온 이름일 뿐이다. 혜초라는 여자가 신라시대 당시의 스님의 무덤을 파면 신라 유물이 나온다며 ‘왕오’, ‘천축’, ‘국전’이라는 도굴범들을 고용하여 땅굴을 파게 한다. 그 무덤은 군사기지 옆에 위치하고 있어 지상으로는 접근하지 못하고, 조금 떨어진 곳의 허름한 집을 사들여 마당에서부터 매일매일 조금씩 땅굴로 접근한다. 남들의 눈을 속이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이들은 서로서로 헐뜯기도 하면서 아옹다옹 지낸다. 어느덧 3년이 지나자 이들은 이번 일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가지면서 유물에 대한 회의를 하게된다. 어쨌든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한 ‘왕오’와 ‘천축’, ‘국전’이 세 사람이 이제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지나간 일들을 반성, 후회하며 서로를 보듬어 안고 다가올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불교의 내세관이나 윤회설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반면 소재를 불교에서 취하더라도 그 내용은 전혀 불교의 이념과 관계없는 경우도 있다. 이광수의 소설 『꿈』을 각색한 김효경 연출의 <조신의 꿈>은 배경이 절이고, 수도승 조신이 주인공이지만 그가 꾸는 내용은 보통 사람들의 꿈과 전혀 다름이 없는 것이며 그것이 극의 전부를 이룬다. 이처럼 장소와 주인공이 절과 스님이라 해도 이 연극을 불교 연극이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불교 연극은 불교 소재극의 틀 안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일차적으로는 연극적으로 가치가 있고 세계적으로도 우리의 것을 알릴 수 있는 불교 소재를 차용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한국 불교 연극의 발전을 위해서는 단순히 소재의 차용에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더 이상 불교 연극은 일반 관객들이나 더 나아가 불자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기에는 힘이 벅찰 것이다. 불교에서 소재를 차용하건 안 하건 간에 불교의 가르침과 연극적 깨달음을 줄 수 있도록 한국의 불교 연극은 우리네의 삶의 모습에 더 밀접하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연극은 우리네의 삶이고, 연극이 우리의 삶을 밑바탕에 두고 있을 때야 만이 우리가 감동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예술은 시대의 아들이라는 말을 했다. 앞으로의 불교 연극은 교전의 내용이나 부처님의 언행을 극화시킨 연극으로만, 불교적인 음악이나 춤 등으로만 범위를 제한하지 말고 현실적인 사회 문제에 좀 더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는 불자 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이 불교 연극에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며 더 나아가 불교 연극의 궁극적인 목표 즉, 신앙심의 심화나 포교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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