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불교의
4대성산 가운데 하나인 사천성의 아미산
등정은 총고 71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樂山大佛을 참배한 다음 날이었다. 이는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중심으로 하는 동악미술사학회의
중국 문화유적답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지난 2월 4일의 장정이었다.
산 아래는
아열대 식물이 군락을 이룬 가운데도 봄기운이
완연한데 해발 3099m의 萬佛頂 최고봉을
향하여 오를수록 온 산은 백색의 눈으로
뒤덮여 별천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바람과
눈보라가 거세고 안개에 가려 좀처럼 해를
볼 수 없다는 아미산이지만 천만다행으로
햇볕이 밝게 빛나 은빛의 산색은 더할
나위 없는 신비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산을 오르면서 눈꽃이 만발한 나무들은
모두 여름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이것이
또한 장관이었다. 산은 평평한가 하면
어느 듯 뾰족하고, 높이 솟았는가 하면
어느새 완만한 구릉이다.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곳은 최고봉 만불정은 불과 22m
높이에 둔 해발 3077m의 金頂인데 이곳에는
웅장한 華藏寺가 그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에 이르는 길은 중간의 최고 험지에서부터
케이블카의 도움을 받고서 점차 가빠지는
숨을 제어하면서 겨우 도착하는 곳이다.
오대산의
문수보살 성적을 참배하는 것도 이처럼
힘들지는 않았는데 역시 대행보현보살의
행원을 상징함인지 이 산에 접근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산상이 넓은 대지로
형성된 것도 신비하지만 발아래는 산봉우리에
걸린 雲海의 연속이고 하늘에는 작렬하는
태양이 눈부시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와
같은 영하의 날씨인 눈 속에서도 사람들이
먹이 주기를 기다리며 주위를 맴도는 잣나비
가족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 산이 세계의
자연 유산이며, 동시에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것도 그 유명한
팬더 곰을 비롯한 불교의 문화재 자원에
연유한 것이지만 자연 풍광을 비롯하여
군락을 이룬 식물군 때문일 것이다.
당나라의
시인인 李白은 “촉나라에는 신선이 사는
산도 많은데 오로지 아미산은 짝할 수
없다”(蜀國多仙山 蛾眉邈離匹)고 한 것만
보더라도 이 산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이해된다.
뿐만 아니라 아미산의 풍경지구내에서
생장하는 고등식물만 3200여 종인데 이는
중국 식물의 10%로써 이 가운데 아미산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이 100여 종에 달하는 것만
보더라도 이 산이 지닌 자원이 얼마나
방대한가를 알게 한다. 여기에 동물 자원이나
지하 자원을 합친다면, 이 산은 놀랄만한
자연 유산을 지닌 보고이다. 그러므로
이 산을 일러 仙山佛國이요, 동식물의
왕국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한 이 산을 가리켜 보현보살의 도량이라
하는 것도 곧 무진 법계의 일체중생이
어우러져 하나의 불국을 이루는 화엄의
도리가 이 산을 중심으로 연출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보현보살의 만행이나 행원이
모두 산천의 절묘한 풍광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도 아미산만이 지닌 특색 가운데
하나라 할 것이다.
아미산이
보현보살의 住處信仰으로 정해진 것은
이 산이 지닌 무궁한 다양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마치 보현보살의
광대무변한 행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듯한
운해, 그 속에 전개되는 수많은 자원과
풍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른 성산과는
이질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미산의 불교
도량은 약 10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광대한
산악에 30여 중요 사찰만이 현존하는 것이
중국 불교의 현실이지만 이는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이곳에서
느끼는 사원의 환경이 북경 근처에서 경험하였던
사찰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사찰은 비교적 정결하고 정돈되어 있고,
불사는 계속 진행중이다.
또한 佛光化現으로
유명한 金頂의 봉우리에 위치한 화장사
불전의 중층 건물은 비록 청대의 건물이긴
하나 웅장한 중국 불교 건축의 단면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해발 3000m가 넘는
금정의 산상에 자재를 운반하여 이처럼
웅장한 건물을 완성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난공사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러한
악조건의 난행이 바로 보현의 만행으로
점철되어 이 산 전체가 보현보살의 주처신앙으로
정착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이는 보현의
만행을 통하여 완성된 인공의 자취이지만
그 보다는 시시각각 무한히 펼쳐지는 산상의
비경은 신비 그 자체이다. 작열하는 태양과
운무에 뒤엉켜 무지개빛 속에서 형성된
부처님의 두광이 암벽에 둥글게 피어나기도
한다. 이 원광은 불상의 조각이나 불화에
자주 등장되는 것이지만 자연 암벽에 원광이
서리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살의 화현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듯 하다. 발아래
산 중턱에 걸린 구름은 아미의 자태를
더욱 고요하게 하지만 이 찬란한 원광은
아미의 교태인지 아니면 불보살의 현신
등공인지 참으로 분간하기 어렵다.
금정의
화장사 불전에는 젊은 사미승이 매우 능숙한
솜씨로 붓글을 써서 연신 몰려드는 참배객들에게
나누어준다. 손수건 만한 노란 천조각의
중앙에는 “佛”이라 쓰고 좌우에 佛光普照
萬事如意라고 적었는데 일종의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하는 듯 하다. 어쩌면 이
보다 더 좋은 구절은 없지 않나 생각된다.
佛光普照가 곧 아미의 운해 속에 고히
간직된 보현보살의 행원 그 자체라 한다면
이 행원은 자재한 것이므로 그 행원이
중생의 가슴속에서 피어날 때 만사는 뜻과
같아지리라는 생각이다.
지금 나는
아미산 산상에서 얻은 이 작은 부적을
펼쳐놓고 그날의 감동을 되새기며 중국
불교의 앞날을 생각해 본다. 그것은 차가운
어름옷을 입은 채 인고의 세월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아미산의 모습이 바로 중국 불교의
현주소라는 생각이다. 개오의 한 순간을
위하여 각고의 세월을 녹이는 선사의 모습이
봄을 기다리는 초목의 냉엄한 자태와 어우러져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며 꿈틀대는 것이
곧 대륙의 불교라는 생각이다. 이는 해발
3099m의 아미산 등정에서 얻을 수 있었던
중국 불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 그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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