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정각도량 / 6월호 / 통권 56호 / 불기 2544(2000)년 6월 1일 발행

낙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화초처럼 / 김영수 인사관리팀장

20여 년 전부터 나는 많은 사람들이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에 젖을 때 송구영신의 참다운 의미를 생각한다는 거창한 과대 포장위에 한 해의 마지막 날과 다가오는 새해 아침을 고즈늑한 산사에서 맞이하고 있다. 그 가운데 법보종찰 해인사에서의 아련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그 때에는 성철 큰스님께서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으로 취임하셔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란 종정 취임법회의 법어로 인하여 세속의 뭇 중생들이 불교의 깊은 진리요, 인간의 본성을 되찾는 일대의 사건으로 회자되어 각종 언론매체에 쉴새없이 오르내리고 있었고 큰 스님을 친견하고자 많은 불자를 비롯하여 사회의 지도층 인사까지도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3000배라는 큰 장애물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나 역시 이 시류에 편성하여 같이 불교 활동을 하던 몇몇 법우들과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자 의기 투합하여 평소 안면이 있던 스님의 덕분으로 방사를 배정받아 여정을 풀었다. 사찰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향긋한 내음의 저녁을 마치고 새해의 첫새벽에 성철 큰 스님을 친견하리라는 부푼 기대감으로 해인사 큰 법당인 대적광전에서의 3000배 철야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차거운 법당 바닥과 밖에는 살을 에이는 듯한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는 악조건 속이었지만 그 누구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는 듯 했다. 일배일배 진행되면서 온갖 상념이 뇌리속으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육체적 고통 또한 나를 무던히도 괴롭혔다. 그 후 어느 순간에인가 그 많던 상념과 육체적 고통이 사라지고 그저 기계처럼 불보살을 염원하며 시간을 흘러보내고 있을 때 문득 같이 갔던 법우중 한 사람이 3000배의 마침을 알리는 죽비소리에 화달짝 놀라 밖을 바라보니 아! 창밖은 그 어느 천상 조각가의 작품인가. 여명과 함께 온 대지에 은백색의 눈가루를 뿌려놓은 모습이야말로 바로 불보살의 세계요, 극락세계 그 자체의 장엄이 아닌가. 아홉시간 동안에 이루어 놓은 최고의 걸작이리라. 우리는 서둘러 간단한 여장을 준비하여 성철 큰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시는 백련암에 올랐다. 뜬눈으로 지새운 고통과 번뇌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충만된 환희심으로 사물을 대하니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하고 신기하고 그 무엇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백련암에 오르는 길목에는 그 어떤 범인의 접근도 쉽게 용인하지 않으려는 듯 미끄러운 눈길과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산길에 소나무의 등걸이 길가에 엎드려 발길을 잡았다. 어렵사리 스님이 계신 곳에 다다랐을 때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스님께서 출타하시고 아니계시다는 실망스런 이야기였다. 아쉬운 마음에 쉽게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으니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오라신다. 비록 스님을 친견하지는 못했지만 새해를 맞이하면서 나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위안을 가지고 우리는 내려와 아침 공양을 서둘러 마치고 또 다른 암자 순례를 위하여 방문을 나서는데 바로 아침에 친견하고자 했던 성철 큰스님께서 서 계시지 않는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가 삼배를 올리고 오늘에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니 다음에 인연이 닿으면 다시 한 번 오라신다. 스님께서는 우리를 만나려고 이곳에 오신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더 스님을 뵈었으니 지난밤 3000배의 원을 풀었다고 자위를 하면서 산문을 나섰다. 물론 후일 다시 친견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셨으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그 때 함께 참석했던 이들 중 네 사람이나 출가하여 열심히 정진중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염원하고 기도하는 생활속에서 참다운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위에서 언급한 해인사에서의 정지 역시 무엇인가를 염원하고 나의 생활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의 새해 각오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련한 추억으로 돌리려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감을 금치 못한다.

나는 남들보다 좀 늦게 결혼을 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젊은 시절 나의 생활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닌 불교활동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 인연으로 나의 주례선생님으로 모신 분이 한국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기신 故이기영 박사님이다. 주례를 부탁드렸을 때 자네의 주례는 내가 서주마 하고 울산이라는 먼 길을 마다않고 흔쾌이 허락해 주셨다. 노총각의 결혼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굉장히 붐볐던 것으로 기억하며 선생님께서는 주례사의 의미를 넘어 하객들을 상대로 법문을 하고 계셨다. 그 말씀 가운데 아마도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말씀이 있었으니, 선생님께서는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고 뜸을 드리시더니 “오늘은 김영수 거사의 파계식 날입니다”라고 운을 뗀 뒤 바로 불교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었다. 왜 무엇 때문에 이러한 말씀을 하시었나 하고 생각하면서 이 말씀이 어려움을 헤치고 나아가는 지침과 좌표인 동시에 나에게 주신 화두라 생각되어졌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나의 삶은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또한 주어진 생활에 안주해 버리는 나약한 나의 모습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소담스런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지나오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요즈음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남들보다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너무 얄팍한 행동으로 인해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면 이를 깨치고 벗어남으로서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 모두는 주어진 현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탁류가 옥류로 바뀌고 잡석이 옥석으로 바뀌는 수고스러움을 우리들 스스로가 감내내어야 하며 아무리 맑은 물일지라도 정체된 모습에서는 변화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생각하고 맑고 밝은 진리의 빛이 발할 수 있도록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나만이 간직하고 있던 나의 내면의 일부분을 내 비추이는 것을 계기로 삼아 여태까지 움츠렸던 그리고 두텁게 쌓아왔던 껍질을 조금씩 깨려고 노력해 보아야겠다. “거사님 지금 이곳에서는 산수유의 꽃이 만발하여 참 보기가 좋습니다. 한번 들리시지요”라고 옛 지기의 청이 아니라도 이제는 좀 여유를 가지고 나를 다시 돌이켜 보고 초발심의 자세로 이를 채찍하는 용기를 가져보련다. 능히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내는 것이 인욕이리라. 낙화가 두려워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를 두려워 하는 화초가 없는 것처럼 실패가 두려워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큰 죄악이라는 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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