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정각도량 / 6월호 / 통권 56호 / 불기 2544(2000)년 6월 1일 발행

루쏘의 『고백록』과 원효의 『대승육정참회』 / 장시기 영문학과 교수

고아로 자란 루쏘의 삶은 똑같이 고아로 자란 원효의 삶과 유사한 면이 아주 많다. 루쏘의 사상과 철학은 프랑스 혁명의 모태가 되며, 그의 모험적인 삶은 서구 근대인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들이었던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의 연설문에는 아주 자주 루쏘를 인용하고 그의 사상을 현실적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루쏘의 『고백록(Confessions)』은 18세기 고백문학의 백미일 뿐만 아니라 19세기 이후 서양문학의 주요 장르로 부상한 괴테와 발작, 그리고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의하여 쓰여진 자전적 소설(성장소설, 혹은 교양소설)의 모태가 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자서전적인 형식으로 쓰여진 루쏘의 『고백록』은 오랫동안 루쏘의 학문과 사상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탕아적인 기질과 패륜아적인 행각의 증거로 읽혀졌다. 고아로 자란 그의 줄기찬 새로움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험심, 보모의 매질을 즐기는 고통의 향유, 자본(돈)에 대한 경시, 쾌락에 대한 심취와 갑작스런 쾌락의 포기, 심지어 끝없는 정신적 고통을 지니고 있으면서 다시 미친 듯이 창녀를 찾는 행위 등등은 전통적인 기독교적 해석학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루쏘를 논하는 글에서 레이놀즈(Bryan Reynolds)는 루쏘의 『고백록』은 그의 삶 속에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를 통한 ‘기관들 없는 몸’(the body without organs) 되기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기관들 없는 몸’은 데카르트의 이분법과 헤겔의 변증법에 토대를 두고 있는 서구 근대철학에 항거하고 있는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elix Guattari)가 ‘언어나 관념에 의해서 규정된 기관화 한 인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즉 일반적으로 죄(기독교적인 원죄의식을 포함하여)라고 이야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죄라는 언어(혹은 개념) 그 자체로부터 벗어난’ 완전한 자유인을 의미한다. 루쏘의 삶과 유사한 원효는 이러한 해탈을 『대승육정참회』에서 ‘참회할 때에 참회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참회의 실상을 사유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죄의 고백 뿐만 아니라 고백한다는 의식 자체를 없애는 것이라는 해탈의 경지는 서구 기독교적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탈의 행위이다. 그리고 이러한 끝없는 탈영토화의 과정은 ‘댐을 뛰어넘자고 깨어부수자고 달려온/ 그들 자신이 어느새 댐이 되어 서 있다는 것을./ 파도를 이루어 뒤쫓아오는 강물을/ 댐이 되어 온몸으로 막고 있다는 것을./ 강물이 흐르는 것를 막고 있는 것은/ 이제 저 자신이라는 것을.(신경림의 ‘댐을 보며’ 중에서)’ 통찰하면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또한 탈영토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들뢰즈-가타리의 ‘기관들 없는 몸’이라는 언어는 서구의 근대문학이 만들어 놓은 주체가 사실은 서구·백인·남성 중심주의의 주체였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더욱 서구의 탈근대적 흐름의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워즈워스, 쏘로우, 그리고 엘리옷 등등의 서구 시인들에게 불교적 특질이 있다고 즐거워하며, 다소 기특하게 여기면서 그들의 시를 암송하며 배우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서구의 근대 이후 ‘모든 부처와 여래 법신이 평등하여 모든 곳에 두루하며 인위적인 의도가 없는 것이 자연’(諸佛如來法身平等  一切處 無有作意故 而設自然)이라는 자연에 대한 개념은 사라져 버렸다. 따라서 워즈워스의 자연은 기독교적 자연이고, 간디에게 영감을 주고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쏘로우의 자연은 여성과 유색인을 배제한 서구·백인·남성 중심의 자연이며, 엘리옷의 이상향은 중세 기독교주의의 파시즘적 성향이 짙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것도 서구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밝히는 것에 우리는 다소 아연실색하고 있다. 이것은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외디푸스』가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지식인들과 교수들은 그 책의 내용을 가장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과도 연관된다. 아담의 언어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언어로 도달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언어로 드러내는 것이 문학’이라는 들뢰즈-가타리의 문학관이나 세계관은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다른 세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구에서도 언어를 버리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하고자 했던 시인과 소설가들은 멜빌, 로렌스, 카프카, 베켓트 등등을 비롯하여 수없이 많다. 『모비 딕』에서 고래를 알고 고래가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탈인간화하는 멜빌, 교육의 목소리라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뱀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로렌스의 ‘뱀’이라는 시, 그리고 심지어 ‘벌레 되기’와 ‘하녀 되기’를 수행하는 카프카의 작품들은 깨달음으로 달성되는 들뢰즈-가타리의 ‘기관들 없는 몸’이라는 하나의 경지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나 서구의 고대적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들뢰즈-가타리의 새로운 철학과 정신분석학이 그동안 서구의 사고로 이해되지 못했던 루쏘의 『고백록』을 ‘기관들 없는 몸’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처럼, 멜빌, 로렌스, 카프카, 그리고 베켓트 등등의 작품들을 새롭게 분석하는 것이 우리의 일일 수도 있으며, 들뢰즈-가타리 이후의 서양과 동양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상호 차별하지 않고 서로 평등하게 상호 이해하고 보완하는 탈근대로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webmaster
서울캠퍼스: (02)260-3015 3016 (Fax) 268-2314
경주캠퍼스: (0561)770-2016 (Fax) 770-2015
동국대학교 정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