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정각도량 / 6월호 / 통권 56호 / 불기 2544(2000)년 6월 1일 발행

호스피스의 개념과 국내 현황 / 박건욱 경주병원 종양혈액내과

의학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많은 질병이 치료되고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났으나, 다만 이들은 인간의 죽어 가는 과정을 지연시키기만 할 뿐 죽음의 불가피한 운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처럼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눈앞에 둔 말기환자를 어떻게 돌봐주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현대의학으로 가능한 최상의 삶을 살도록 돌보아 주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이라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들이 급격히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는 매우 부족한 상태이고, 산업사회로의 변화로 인해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효도사상에 의한 환자의 보살핌이라는 측면도 매우 취약해진 상황에서, 말기환자는 심리적 소외감, 질병에 의한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압박감이라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시달리다 삶의 회한만을 간직한 채 쓸쓸히 죽음을 맞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완치가 불가능하여 죽음이 예견되는 환자와 가족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증상들을 돌보아줌으로써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죽음 및 사별의 문제까지 포괄하여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호스피스(hospice)이다.

호스피스란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hospitium 즉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라는 말에서 기원되었으며, 일반적인 개념으로는 말기 환자에게 편안한 장소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호스피스의 역사

구미의 호스피스는 중세기에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가는 도중 쉬어가는 숙소를 지칭하는 이름이었으며, 19세기 초부터 수녀들이 임종자들을 한데 모아 돌보아 주는 임종의 집을 호스피스라 불렀다. 20세기에 들어와 의학의 발전은 주로 질병의 완치에만 몰두하게 되었고, 죽어 가는 말기환자들에 대한 배려가 소홀하게 되어 인간 존엄성에 대한 문제가 야기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호스피스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1935년 영국에서 여의사인 시실리 손더스(Celily Saunder)가 임종환자들에게 통증관리를 위한 약물을 획기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약물 치료 경험 이외에도 다양한 학문을 배경으로 이상적으로 환자를 돌보기 위해 54병상의 병동을 설립하여 오늘날 유럽에서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호스피스의 모델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1963년 시실리 손더스가 예일대학에서 ‘죽음과 종말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뒤 여러 형태의 호스피스가 시작되었으며, 1968년 ‘가정 호스피스’를 시작하였다. 미국에서는 호스피스가 죽음을 너무 강조하는 느낌이 든다고 하여 ‘완화의료(palliative medicine)’라는 용어를 선호하기도 한다.

현재에는 ‘독립된 호스피스 병원’, 병원 내 ‘호스피스 병동’ 또는 ‘호스피스 팀’, ‘가정 호스피스’ 등으로 발전하였고 이러한 체계들이 유기적인 연관관계를 가지면서, 환자는 의사, 간호사, 성직자, 사회사업가와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진 호스피스팀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과 가족이 원하는 바에 따라 가정, 병원, 독립 호스피스 혹은 시설 호스피스 등에서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의료계에서는 완화의학이라는 전문 분야도 생겼고, 사회적으로 재정적 지원이 활발하며, 국가적으로는 의료보험의 지원을 받고 있다. 현재 호스피스가 활발히 시행되고 있는 나라들은 영국을 중심으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영연방 국가들과 싱가폴, 홍콩, 미국, 독일, 일본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선종’, ‘인술’, ‘효도’의 개념에 관습과 생활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으며, 호스피스란 바로 이러한 전통문화를 구체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급격히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물질문명이 발전하고, 의학이 발전하였으나 주로 질병이 완치에만 집중하다보니 말기 환자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은 소홀하게 되었다. 다행히, 1964년에 강원도 강릉에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갈바리의원을 세우고 가난하여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과 오갈 데 없는 임종자들을 간호하기 시작한 것이 우리 나라 호스피스의 시초였다고 할 수 있다.

1981년부터 의대와 간호대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자발적인 호스피스 활동이 시작되었고, 1991년에 한국호스피스협의회가 창립된 후 주로 종교계를 중심으로 점차적인 사회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95년 카톨릭대학 간호대학 WHO 지원의 호스피스 연구소가 설립되었고, 1998년 7월 4일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창설되어 의료계에 정착이 시작되었다.

현재에는 전국적으로 퍼져 병원 내 ‘호스피스 병동’, ‘호스피스 팀’, ‘가정 호스피스’, ‘시설 호스피스’가 운영되고 있으나 아직 그 숫자가 미미하고 법적, 제도적 받침이 없는 상태이다.

어떤 환자가 호스피스의 대상자가 되나?

현대의학으로서는 더 이상의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환자로, 통증 완화와 증상 관리가 주가 되는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6개월 전후의 생존기간이 기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의식이 분명하고 의사 소통이 가능한 환자로 주치의나 담당자의 추천에 의해서도 대상자가 될 수 있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 둔 모든 환자를 그 대상으로 하지만 암 환자가 첫 번째 대상으로 꼽힌다. 그 이유는 암이 한국인의 사망원인 중 1위를 차지하고, 통증 등의 증상조절이 특히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위암, 간암, 폐암, 대장암 등이 많은데 진단 당시 이미 전이 되었거나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런 환자들의 경우 항암제 등에 의해 생명 연장 치료가 수행되지 않는 한 6개월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이 호스피스의 대상이 된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주로 호스피스 병동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가족 중심의 사회여건을 고려할 때 가정 호스피스나 시설 호스피스 같이 환자가 원하는 곳에서 적절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호스피스의 활동 분야

호스피스 전문 의사, 간호사, 성직자, 정신과 의사, 사회사업가, 영양사, 자원봉사자, 병원보조원 들이 하나의 팀으로써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일하게 된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환자의 경우 호스피스 전문 팀의 24시간 지속적인 보살핌을 받게 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환자와 가족의 문제에 대해 의논하고 필요시 도움을 제공한다. 환자의 주치의는 팀의 일원으로 간주되며 환자는 계속 자신의 주치의로부터 투약들을 받을 수 있다. 호스피스 팀은 각 환자의 주치의와 함께 환자의 문제와 적절한 증상조치에 대해 의논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가정 호스피스’는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가 가정을 방문하여 환자와 가족들에게 필요한 봉사를 하는 것으로, 환자의 증상이나 투여에 대해서는 각 간호사가 주치의에게 보고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다. ‘주간 호스피스’ 활동은 낮 동안 호스피스 대상 환자를 돌보아 주고, 가족이 없는 외로운 환자들의 외래 진료 시 도움을 주거나 목욕, 미용, 샴푸, 마사지 같은 신체 간호를 제공하는 과정을 통해 환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외에도 사별후 유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가족들이 고통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작 초기부터 제도와 법령을 제정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에서도 체계적인 출발을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 나라의 경우 일부 종교 단체나 병원에서 자발적으로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하여,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하였고 열정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의료인이 많기는 하나 아직 제도적 뒷받침은 전무한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 국민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에 대해 관심이 쏠리면서, 말기 환자들의 삶의 질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그와 더불어 시민운동이 활발해 지면서 국민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국민의 삶의 질이 먹고, 입고, 자는 것과 같은 기본권의 하나로 인식되게 되었고 정부로서도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호스피스의 제도화는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현재 종합병원 내과에 입원한 환자의 8.6%가 말기 암환자이기에, 호스피스 병동을 인정하여 집중치료실 정도로 포괄수가제를 책정하여 그들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보험수가를 책정해 주어야 한다.

호스피스가 활발히 시행되고 있는 종합병원은 하루 빨리 호스피스 기관으로 인정하여 가정 호스피스, 개원의, 시설 호스피스와 연계가 이루어지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사회적 지원으로서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하며 기부금 등의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적,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우리 사회의 인술, 효도의 전통문화를 호스피스에 접목하여 우리 실정에 알맞게 토착화시켜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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