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정각도량 / 6월호 / 통권 56호 / 불기 2544(2000)년 6월 1일 발행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를 읽고 / 최승혜 부산 경상대 3년

나는 감동 깊에 읽은 책이라고 다시 한 번 그 책을 넘긴다거나 일년에 수십 권의 책을 읽을 만큼 독서광도 아니다. 한 달에 읽는 독서량이 한 권도 채 안 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책 한 권을 다 읽기 위해서는 한 달의 시간을 투자한 적도 있었고 거의 1년의 시간을 보내며 읽은 책도 있었다.

그러던 내가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를 단 이틀만에 뭔가에 홀린 듯 나도 모르게 책장이 넘어갔던 것이다. 그것도 좀 읽었으니까 의무적으로 마지막까지 읽은 것도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거의 모든 편지가 법정스님이 지내시는 오두막에서 쓰여진 것들이다.

가끔 친구들 집에 놀러가게 되면 그 집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멋있게 꾸며져 있는 가를 보고 부러워하던 내가 오두막 편지를 읽고 덮는 순간 그런 호화스런 큰 집보다 법정스님이 이런 아름다운 편지를 남길 수 있도록 안식처가 되어준 그 오두막이 세상 어느 호화 저택보다 좋아 보였던 것이다.

가끔 학창시절에 독후감이나 독서감상문을 쓰라고 하면 항상 그 책을 다 읽지도 않고 겉표지와 대강의 줄거리만 읽고 뭔가 멋있는 표현, 장황한 문장을 나열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오두막 편지를 읽는 순간 글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고 내 스스로 정의를 내렸다. 멋있는 표현, 장황한 문장이 독자의 마음을 자극하고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자연의 진리를 묘사하고 자연 안에서 쓰여진 글들이 분명 나같은 평범한 독자들까지도 일상적인 진리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같은 또래에 비해 옷이 많은 편이다. 해가 지나 못 입는 옷이 생겨도 다른 필요한 사람을 주기가 싫어 재어두는 편이다. 그러다 영 못입게 되면 결국은 버리면서 말이다. 그런 나를 거울로 다 보셨다는 듯이 법정스님께서 집착을 버리라고 핀잔을 주시는 듯했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집안청소를 하다 안 쓰는 물건, 필요 없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감히 스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빈 몸으로 왔다 빈 몸으로 가는 인생인데 아깝고 손해볼 것이 뭐가 있겠는가, 또한 절제된 아름다움이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하지 않으셨던가.

내가 오두막 편지를 처음 펼 때쯤 나는 내 스스로가 절망의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할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마음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누구든 내 상대가 되면 이러쿵저러쿵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다.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는 옛 사람의 말도 있지만 난 아마 이 책을 처음 펴기 전까지만 해도 난 신선이 아니요 신선이 될 수 없는 처지라고 하소연 할 정도로 마음에 있는 많은 일들을 입으로 다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내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이렇게 감상문을 쓸 수 있도록 오두막 편지를 내 손에 쥐게 해준 언니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오두막 편지를 읽고 나니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전등의 전원을 눌러 불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등잔의 심지를 손질해 기름을 채워 불을 밝히는 것이고, 피비린내 나는 수입산 돼지고기가 아니라 우리의 흙 위에서 자연의 순리대로 자란 채소가 익숙하고, 비싼 족보의 알 수 없는 외국산 애완견이 아니라 우리의 흙 위에서 살고 있는 산토끼와 다람쥐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우린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작은 것을 위해 자신도 모르게 큰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마 이 글에서 이런 경우를 얘기하고자 도데의 ‘황금의 뇌를 가진 사나이’를 삽입했던 것 같은데 세상이 삭막해질수록 이런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정말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나는 가끔씩 너무 갖고 싶은 것을 많은 돈을 주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곤했다. 그러고도 항상 뭔가 부족한 듯했고 그것을 가지지 않았을 때 보다 마음은 더 허전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혼자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단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책을 읽고 나도 글을 써주신, 그리고 내가 진정 느낄 수 있는 행복은 갖고 싶은걸 많은 돈을 주고 사서 가졌다고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아니라 내적으로 나약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고 단단해져야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라는 것을 발견하게 해준 『오두막 편지』에 고마움을 표한다.

나는 이제 스무살이지만 우리의 아이들이 이 혼탁한 공기 아래 아스팔트 건물과 햄버거와 콜라에 익숙해지고, 지금과 같이 인터넷실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보고 길에 핀 해바라기를 보고도 무감각해 할 정도로 인간의 가슴을 잃을까 걱정이다. 우리들이 ‘정보의 바다’라 하는 인터넷의 답답한 공간에서 허우적대며 자신들의 능력을 의심해 가며 자신감을 잃어가는 걸 보면 나 자신도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자연이 우리에게 공기를 주고 많은 자연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듯이, 점점 고도화 되어가는 과학의 발전 아래 서로 밟고 일어서려 발버둥치지 않도록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아스팔트 건물이 아닌 탁 트인 자연이 제공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 해 전 나는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었다. 좁은 땅덩이의 우리와는 너무 대조적으로 넓고 깨끗해 보였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거주민들도 너무 부러웠다. 몇 일 동안 지내면서 그 자연을 그대로 지켜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가 그렇게 울부짖던 ‘주인정신’이라 해야하나, 그런 것들이 그곳 사람들이 그곳을 그렇게 지킬 수 있도록 했다는 걸 느낌으로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이젠 앉아서 낭만이라곤 없는 삭막한 세상이라고 푸념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다시 가꾸고 보존해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과 안식을 줄 수 있는 이 자연을 말이다. 아마 그렇게만 된다면 스님의 오두막도 그리 부럽진 않겠지? 다시 한 번 내 머릿속에서 이런 것들을 끄집어 내도록 해주신 법정스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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