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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삼보의 언덕에는 온갖 꽃들이
가지가지 자태를 뽐내며 향내를 내뿜고
있다. 이러한 꽃의 향연이 비단 이 삼보의
언덕뿐이겠냐 마는, 유독히 진한 내음은
가뭄이 지속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문득문득 꽃의
업(業)을 생각해 보곤 한다. 중생은 업의
소생이요, 지금의 삶은 과거 업의 결과이고,
오늘 삶의 모습은 미래세의 업을 규정하는
규범이 되는 것이니 과거야 그렇다치고
미래에 대한 투자는 오늘 확실히 할 필요가
있겠다. 세상에 중생의 일상생활 속에서
이윤 추구를 하지 않는 삶이 있으랴 마는
확실하고 큰 투자는 집착하지 않는 베품에
있다고 본다.
꽃은 누구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
향기를 뿜어내지 않는다. 꽃은 누구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하여 상하 좌우로 꽃잎을
뒤틀어 자태를 교묘하게 꾸며내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인간의 마음을 빼앗기도
하고 환희에 넘치게도 하는 것이다. 인위적인
것은 왠지 부자연스럽고 어울리지 않으며
시선을 끌지도 못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꽃을 보는 순간순간 꽃은 도대체 무슨
선업을 그리도 많이 지었기에 만인에게
부러움을 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꽃의 한살이가 마냥 부럽기만 하다.
꽃이 이렇게
멋이 있지만, 이보다 훨씬 훌륭하고 멋의
극치를 달리는 존재가 바로 삼보(부처님,
불법, 수행하는 스님)이다. 삼보에는 여섯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1. 희유(稀有)하여 흔하지 않고 2.
때〔垢〕가 없으며 3. 세력이 있고
4. 장엄(莊嚴)이 되고 5.
최승(最勝)하고 6.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동국대학교는
삼보(三寶)의 언덕에 우뚝 자리하고 있으니,
이 언덕의 교정을 단 한번만 본다거나
이름을 듣기만 하여도 삼보의 위신력과
가호를 입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위신력을 누구나 받는 것이
아니라 신심이 견고한 신앙인에게 국한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불교의 비정함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기만에 기인되는
일일 뿐 성자의 뜻은 전혀 아니다.
누군가가 지위가
어찌어찌 하다하여 삼보를 업신여겼다거나
누군가가 가진 것이 풍족하다하여 홀대를
하였다면 진정한 불자의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고 이러한 자의 삶은 불안하고
왠지 어색한 거동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루는 당 태종이 현장법사에게 물었다.
짐이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싶으나 듣자하니 스님들이
무행(無行)하다 하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 난처한 질문에 현장스님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곤륜산에 옥이 있다하지마는 모래와
진흙이 섞여있기 마련입니다. 흙과 나무로
나한상(羅漢像)을 조성했지마는 공경하면
복이 있기 마련인 것이고, 진흙으로 만든
용이 비를 주지 못하지마는 기우제는 반드시
진흙용에게 지내니, 범승(凡僧)이 비록
복은 주지 못하지마는 복을 닦고 원을
성취하는 데는 반드시 범승을 공경해야합니다.
라고. 현장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감화를
받은 태종은 변치않는 불퇴전의 마음으로
삼보를 잘 받들고 일심으로 불법에 귀의하였던
것이다.
불보와 법보가
아무리 수승하고 위없는 무상의 보배라고
해도 승보가 없으면, 지혜가 있으면서도
불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어둠 속에 있는 보배를 등불이 없으면
못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보적경(大寶積經)에 보면, 적은 자본으로
큰 복을 성취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있다.
낱낱이 그 사례를 열거해 보기로 하자.
1. 꽃으로 보시하면
다라니(陀羅尼), 칠각화(七覺華)를 얻는다
하였고, 2. 향으로 보시하면 오분향(五分香;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을
얻고, 3. 과실을 보시하면 근심, 걱정,
번뇌 망상이 일시 소멸되는 무루과(無漏果)를
성취하고, 4. 방(房)을 보시하면 신체가
강건하고 수명장수, 안락함, 변재를 얻는
것이고 5. 옷을 보시하면 청정한 색신을
두루 갖추어 부끄러울 것이 없고, 6.
등을 보시하면 청정한 불안(佛眼)을 얻게
되고, 7. 코끼리촵말촵수레를 보시하면
신통력이 구족해지고, 8. 영락(瓔珞)을
보시하면 80종호가 구족하고, 9. 보배를
보시하면 32상이 구족한다고 하였다.
적은 자본으로 큰 복을 성취하는 묘법이
앞에 열거한데로 이렇게 다양하니 우리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례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딱 짚어
실행하기만 한다면 투자한 몇 십배, 몇
백배를 내가 받기도 하고, 내가 수용하고
남으면 자자손손이 누릴 수 있는 금강석과
같은 밑천이 되니 정말 희망적으로 환희심을
가지고 투자해 봄직한 일이다.
금년 초파일에는
정각원에 구성원 모두 일인 한 등 달기를
하여 청정한 불안(佛眼)을 얻었으면 한다.
청정한 불안을 얻은 동국가족은 삼보(三寶)의
의미도 잘 알고 실천하여 자기 업장이
소멸될 것이다. 가난한 여인의 등불을
밝힌 뜻과 참되고 거룩한 여인의 모습에서
우리가 받는 교훈이 있다. 또한 그 여인이
한 푼 한 푼 정성스레 돈을 모아 기름을
사서 불을 밝혔듯이 구김살 없는 정재로
한 등 한 등을 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이 맑아지다 보니 성자 앞에서도
거래를 하려고 하는 자들이 허다하다.
이런 사람들은 과실을 보시하여 번뇌 망상을
모두 떨쳐버리는 무루과(無漏果)를 성취하였으면
한다.
범부 그대로가
부처님이라고 하지만 하나 하나 정성스레
닦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되는 일이니까
말이다. 배고픈 사람이 밥 이야기만 한다면
무엇하며, 앓아 누운 사람이 약 이름만
알고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오직 작은
일의 실천자만이 진정한 불자의 참모습으로
화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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