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정각도량 / 5월호 / 통권 55호 / 불기 2544(2000)년 5월 1일 발행

삼천배(三千拜)/ 장계환 스님 불교대학 교수

동국대학교에 입학 후 정각원에서 수업을 하는 자아와 명상이라는 교양과목은 처음엔 생소했지만, 가라앉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라서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과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108배를 하는데 이렇게 많은 절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 수강생이 너무 많아 질문도 쉽지 않아서 이렇게 여쭈어봅니다.그리고 몇년 전에 돌아가신 어느 큰스님께서도 생전에 삼천배를 하지 않으면 만나 주시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입니까.(법과대학 법학과 :이종우)

새내기인 종우 군이 절하는 모습을 한번 보러 가고 싶군요.

불교에서 하는 절을 오체투지(五體投地)라고 합니다. 즉 이마와 두 팔꿈치 그리고 두 무릎을 땅에 붙이고 인사하는 방법이지요. 자신의 몸 다섯 부분을(오체) 땅에 닿게(투지) 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오체투지는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만이 절을 할 수 있는데 바로 여기에 오체투지의 묘미가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 인간들은 좀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들 나 잘났다고 자만하고 교만한 태도를 하고 있지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지난 여름 서울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난리를 치룰 때, 다른 곳에서는 가뭄으로 식수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첨단과학이니 인공위성이니 하지만 자연 앞에서는 불가항력입니다. 우리가 대자연 앞에서 이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는 행위, 즉 오체투지는 우리의 잘못된 속성, 즉 교만심과 아만심까지도 고개숙이게 하고 하심(下心)을 하도록 만듭니다. 이것이 겸손을 우선으로 삼는 오체투지의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그 다음 두번째로는 부처님께 공경심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남이 해내었을 때 훌륭하다고 해줍니다. 예를 들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도, 과학자가 새로운 것을 발명했을 때, 그를 찬양하는 것도 다 마찬가지 이유에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부처님도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이 아니겠습니까? 그 누구도 제시하지 못한 깨달음의 길을 열어주신 분, 바로 그 분의 가르침에 경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체투지는 부처님을 향한 예배이지만 결국 자신을 위한 수행의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큰스님을 친견하기 위한 삼천배는 결코 그 큰스님께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그릇에 물이 가득 차 있다면 다른 것을 담을 수 없지 않아요? 그와 같이 참배자가 갖고 있는 이기심·탐욕심·시기심·원망심 등을 절하는 순간 순간에 하나씩 모두 떨쳐버리고 깨끗한 빈 마음이 되었을 때, 비로소 큰스님의 말씀에 귀기울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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