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문화재와 보존과학

 

불교문화재와 보존과학
김선덕/경기도 박물관 Conservator

보존과학이란 문화재의 물질적인 구조와 재질을 밝혀 그 노화 또는 붕괴 등의 변화를 연구하고 방지하기 위한 과학이라고 국어사전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발달된 과학기술을 역사자료에 응용하여 과학기술사를 연구하고 궁극적으로는 문화재를 원형 그대로 영구히 보존·관리하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보존과학이라는 학문은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나라에 도입된 것은 1968년 문화재관리국이 ‘문화재의 과학적인 보존관리에 대한 조사 연구’를 과학기술처에 의뢰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1969년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실 내에 보존과학반이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오늘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을 비롯하여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박물관, 호암미술관 등 여러 정부기관과 사설 연구기관에 보존과학실이 설치 운영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여러 대학에서 보존과학 관련 학과가 신설되는 등 국민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어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들 학교에서 배출되는 인력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전반의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학박물관을 포함한 연구기관들에 의해 많은 유적들이 발굴되었고 출토된 매장 문화재는 선택적으로 혜택(과학적인 보존처리, 보관, 관리 등)을 받았지만, 더 많은 문화재들이 소외되어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는 현재 정부기관에서 보존처리하는 임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러한 현실이 더욱 더 안타깝고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다. 이 글에서는 보존과학의 역할과 불교문화재의 보존에 있어서의 현실적인 문제점들에 대한 생각들을 간단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으로 약 1,6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우리의 조상들은 불교와 함께 살면서 불교적인 소산들을 우리들에게 문화유산이라는 모습으로 남겨 주었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불교계의 입장에서 성보문화재(聖寶文化財) 또는 불교문화재란 용어를 사용하여 일반문화재와 구별하고 있는데, 한국 불교의 중심적 교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에서는 1972년 5월 30일 제정 공포한 ‘성보보존법’ 제2조에 불교문화재의 범위를

1. 불상, 건축, 탑, 전적, 회화, 공예품, 기타 유형의 불교문화 소산으로 불타의 정신에 입각하여 신앙의 대상이 되고 역사상 또는 예술적 가치가 큰 것.

2. 범패, 무용, 음악, 연극 등의 각종 양식 및 공예기술 등 무형의 불교문화 소산으로 불교정신이 투철하고 역사상 또는 예술적 가치가 크다고 인정되는 것.

3.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의, 식, 주, 법의 및 기타의 불구로서 불교정신을 이해하고 나아가 국민생활에 끼친 바 영향이 크다고 인정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불교문화의 소산으로 건축, 조각, 회화, 공예, 의식 등 문화복합체로서 존재한다. 이러한 불교문화재는 본질적으로 신앙의 결정체인 까닭에 역사성과 가치판단을 초월한 성물(聖物)이지만 현실적으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지방문화재로서 보존·관리하고 있다.

보존과학이란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문화재를 물질적인 구조와 재질을 밝혀 그 노화 또는 붕괴 등의 변화를 연구하고 방지하기 위한 과학”으로 보존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문화재(문화유산)를 최상의 상태로 보존하여 후세에 널리 전해주는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보존과학(Conservation Science)이라는 용어는 1952년 동경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존과학부’가 설치되고 이를 영어로 ‘Department of Conservation Science’로 표기하면서부터 시작된 말이다. Conservation에는 과학적 연구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내용 전달을 쉽게 하기 위해서 Science라는 말을 첨가한 것이다.

모든 문화재는 어쩔 수 없이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으로 부패하고 분해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불교문화재도 예외일 수는 없으며, 이러한 부패와 분해과정에는 문화재를 둘러싼 모든 외부적인 조건과 주체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환경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특히 박물관의 보존 관리원들에게 “끔찍한 10가지”라 지칭되는 환경 요소들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을 때 문화재를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1. 공기의 질 2. 먼지 3. 상대습도 4. 온도 5. 빛 6. 내재적인 결함 7. 이동(진동) 8. 곰팡이와 세균 9. 해충 10. 인간(사람)

이러한 10가지 중에서도 인간 요인 즉 무지와 무관심, 이데올로기에 의한 중족간 또는 국가간의 갈등, 산업화에 의한 개발과 환경오염, 경제적 거래에 따른 도굴·반출·절취, 취급자의 부주의 등과 같은 인위적인 손상이 가장 심각하다고 하겠다.

기타 수해나 지진 등 자연재해에 의한 손상도 있겠지만 이것은 예방조치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부분이다.

사찰에 보존 중인 불교문화재는 대부분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목조건조물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화재나 도난, 습도나 공기오염 등의 훼손요인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긴 하지만, 시간적 공간적 구애를 받지 않는 신앙의 대상으로서는 본래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여러 사찰에서 불사(佛事)라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행하여지는 건물의 보수·증축·중건·신축을 비롯하여 불상에 대한 개채(改彩) 등으로 말미암아 개발과 보존이라는 상충된 이해관계 속에서 문화적 가치가 상실되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종종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전통사찰은 지리적으로도 국립공원 또는 도립공원지역 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것은 관광객이나 여행자들로부터 자유롭거나 안전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이는 보존에 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불교문화재들이 원래의 조성·봉안처(奉安處)인 사찰을 떠나 공공박물관이나 개인 소장의 존재로 바뀌면서 본래의 신앙성과 존재가치를 상실한 하나의 미술품 또는 골동품으로 취급받고 있는 경우를 우리는 다양한 기회를 통해 볼 수 있다.

또한 사찰을 떠난 불교문화재들이 하나의 조각, 공예, 회화 등 미술사적인 제 분야의 연구 대상으로 밖에 취급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는 공공박물관에서 보관·관리하고 있는 경우가 사찰에 보존 중인 것보다 도난이나 파손 등의 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끔찍한 10가지”를 비롯한 보안상의 문제들로부터 불교문화재를 보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불교문화재의 보존을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보존환경의 제어 및 보존처리와 같은 방법이 채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되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전국 사찰에 보존 중이거나 각지에 흩어져 있는 불교문화재의 현황과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정리하여야 한다.

둘째, 불교문화재를 보존·공개할 수 있는 “불교종합박물관” 같은 시설이 갖추어져야 하겠다. 요즘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생활 속에서 향수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문화재의 특질에 따라 각각의 재질에 맞는 보존상의 대책이 요구된다.

즉, 건축 예정지의 환경이나 건물의 배치가 문화재의 보존·공개에 적합해야 할 것이고, 시설은 화재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해서도 안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전시실·수장고 등의 설비는 적절한 전시 및 보존환경이 확보되고 방화·방범 등의 각 설비가 적절하게 배치되어야 한다.

셋째, 보존처리 시설이 갖추어져야 한다. 현재 국내의 보존처리 전문기관과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발굴 매정문화재를 보존처리 하기에도 힘겨운 상황이다. 따라서 불교문화재의 보존처리를 위해서는 불교 종단 차원에서 지원하는 “불교문화재 보존연구소” 같은 시설이 갖추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넷째, 관리자의 전문지식 확보이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부식·풍화되어 있는 불교문화재를 보존·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문가가 필요하다.

따라서 전문가의 확보를 위해서는 불교종단 차원에서 일반적인 문화재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스님들이 양성되거나, 별도의 전문관리자를 채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국민적 관심의 문제이다. 불교문화재가 불교라는 특정 종교의 소산으로만 취급되어서는 안되며, 지난 세월동안 우리 조상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물려준 문화유산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현재 남아있는 많은 불교문화재들이 우리 민족이 겪은 시련과 기쁨을 함께 하여 왔음은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많은 시련과 상처를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통해 극복하고 우리들 곁에 의연하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몇 가지의 불교문화재를 소개하고자 한다.

일제의 통감부 설치로부터 한일합방에 이르는 시기(1905∼1910)를 전후하여 일본인들이 이 땅의 고분의 도굴을 비롯한 옛 절과 절터에서 석탑·불상·범종 등 많은 미술품들을 수탈해 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경기도 풍덕군(개풍군의 옛 명칭) 부소산 기슭에 있던 경천사지 10층석탑(국보 86호)이다. 1907년 일본정부의 고관 다나카(田中光顯)에 의해 불법으로 반출되었다가 상처뿐인 상태로 서울로 되돌아와 40년간 방치되다가 1960년 경복궁에 복원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대기오염과 산성비, 풍화 등에 의해 붕괴 위험에 처했고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위해 1995년에 완전 해체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전문 처리 팀에 의해 과학적인 보존처리가 진행 중에 있으며 용산에 새로운 국립박물관이 완공되면 그 곳에서 우리들과 다시 해후할 수 있을 것이다.

1966년 석가탑이 도굴범들에 의해 훼손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해 10월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손상된 석가탑을 복원하려다가 3층 옥개석이 깨어진 가슴아픈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때 석가탑에서 사리장치와 함께 출토되었던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126호) 이라는 8세기초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세계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에 묻혀 잊혀져 간다.

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 후 1989년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통해서 가능했으며 이 유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1980년 도굴범에 의해 무너진 실상사백장암 3층석탑(국보 13호)은 탑 속의 사리장치는 잃어버렸지만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통해 접합되고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최근 산업화와 자동차의 배기가스에 의한 대기오염과 산성비에 의한 풍화·손상으로 중병을 앓고 있는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석탑도 보존과학자들이 보존환경을 조사한 결과 비둘기의 배설물과 산성비 등이 아름다운 대리석탑을 급속하게 풍화시키고 또 녹아 내리게 했다고 한다. 빠른 시일 내로 보존대책이 강구되어질 것을 기대한다.

세계유산(World heritage)으로 등록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과 석굴암은 오래 전부터 보존의 적극적인 대상이 되어왔으며, 보수공사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과학적인 보존을 위한 환경 모니터링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96년에는 경주 나원리 5층석탑(국보39호)의 수리 복원과정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고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통하여 사리를 비롯한 금제불상, 금동3층소탑, 9층소탑, 목제소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편 등이 신비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원리에 이어 경주 감은사지 동3층석탑(국보112호)에서도 1,300년 전의 신라 공예기술의 정수라고 할 만한 사리장엄구와 진신사리가 세상에 드러나 우리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이 사리장엄구는 약 3년이란 긴 세월동안 보존처리를 거쳐 원래의 화려했던 모습을 되찾았다.

1997년에는 화엄사 서5층석탑(보물 133호)에서 출토된 백지묵서경(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필사본)과 사리 및 유리제 사리병 등이 보존처리 완료되었고, 같은 해 표충사 3층석탑에서 출토되었던 금동불상도 보존처리 되어 현재 통도사성보박물관에 소장 전시되어 있다.

1999년에는 고려시대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41호)이 호암문화재보존연구소에 의해 보존처리 되었는데, 이 철당간은 청주시내 남문로에 위치하여 대기오염에 의한 부식과 진동에 의한 손상이 심한 상태였다.

1914년 붕괴직전에 있던 탑의 남서쪽에 일제가 콘크리트를 덧씌워 현재까지 가까스로 보존되어 온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완전 해체 복원하기로 했다고 문화재관리국은 1999년 4월 22일 발표했다. 이 발표에 의해 학계에서는 견해가 엇갈려 있는 만큼 해체복원은 더욱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고 여기에 참여하는 보존과학자들의 역할과 책임은 막중하다고 하겠다.

이 밖에도 고려불화 등 불교문화재들이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통해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으며, 사찰의 목조건조물에 대한 흰개미 등 해충의 피해 예방을 비롯한 불교문화재보존을 위한 많은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불국사와 석굴암, 해인사팔만대장경 및 판전이 유네스코의 세계유산(World heritage)으로 등재되었다는 것은 우리 불교문화재의 우수성이 입증된 것이기도 하지만, 인류공동의 자산으로 보존·관리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유명세를 타는 것을 포함한 모든 불교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할 책임은 불교계가 주체가 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 없지만 정부와 관련기관, 일반인 모두가 함께 보존·관리하고 향유해야 할 공동의 재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보존과학의 성과에서 보았듯이 불교문화재에 대한 보존과학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문화재를 보다 적극적으로 치유(과학적인 보존처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와 불교 종단은 다양한 지원과 성원으로 이를 도와야 할 것이며, 보존처리자는 보존처리 규범에 따라 처리하고 어떠한 처리에 있어서도 보존처리 방법과 필요성이 객관화되고 합당해야 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문화재가 병들고 상처입지 않도록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미리 미리 보살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들은 지금 우리가 감상하며 즐기고 있는 문화유산이 우리들의 소유가 아니라 후손들의 것을 잠시 보관·관리하는 사람들임을 명심하고 문화유산의 보존에 항상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