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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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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南齋에서 경주도 이제 봄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아직 봄바람의 차가움이 지난겨울 무기력한 일상을 들춰내기도 하지만 시간 앞에 한 시절 묵혔던 체증을 이 바람에 보내고 싶은 날들이다. 학생회관 잔디밭에는 어느새 봄의 맨 처음 꽃인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있다. 시나브로 살며시 드러낸 꽃무더기에는 감춤인지 드러냄인지 모르게 아직도 푸른 싹에 기미도 없는 잔디와 대조되어 웃고 있다. 그 옆의 목련도 이제 꽃망울을 만들고 있지만 산수유는 생명의 이름으로 佛緣을 그렇게 보이고 있다. 경주의 봄은 생기가 넘쳐 이 봄을 좋아한다. 어디 계절마다 서로 다른 개성을 펴보이는 그릇이 모자라 또 뭇 사내의 속내를 채우지 못해서 그러한 것은 아니고, 시절마다 정취는 다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봄이 좋은 이유를 찾자면 첫째로 무거운 겨울을 벗는다는데 있는데 그 추위라는 것이 여간하지 않다. 더구나 내 살고 있는 집에서 겨울을 나기란 여간 고통스럽지 않아 이번 겨울에는 아예 짐을 싸 가지고 상경을 했으니 말이다. 겨울이 좋았던 때는 중·고등학교 시절 눈 밟기를 좋아하던 그때가 아닌가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추운 겨울보다는 따뜻한 시절이 더 좋고 그리워진다. 둘째로 어디나 만발한 꽃들의 잔치가 있어 좋다. 경주는 벚꽃이 시내 전체를 메우고도 남는데 그 살랑거리는 바람에 꽃송이가 몸으로 와 부딪히는 것에 어떤 이가 마다하겠으며, 누가 이런 잔치에 참석하지 않겠다 하겠는가. 黃南齋(택호)에도 봄 소리가 나고 있다. 남산을 뒤로하고 앞에는 문천이 흐르고 있는 미륵곡에 집이 있는데, 보리사 가는 대중들은 피할 수 없이 지나야 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학교에서 멀어 차가 없으면 학우들이 찾아오기에 조금 힘겨운 거리에 있는 것이 흠이지만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아도 혼자서 즐길 줄 아는 편안함을 배우는 둘도 없는 공간이다. 여기서 어찌 사나 다들 궁금해 하지만 이제 너무나 익숙한 이곳 일상을 쉽게 버릴 수 없을 듯하다. 지게 지고 산에서 나무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은 이제 일도 아니고 도끼로 장작을 팰 때 쩍 갈라지는 소리에 속시원한 느낌은 직접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제 마당과 담벼락에는 채마가 푸릇하게 잎사귀를 내밀어 헐은 밥상을 채워줄 것이고 그 사이사이에서 저마다 다른 이름의 꽃들이 다 쓰러져 가는 집을 환하게 화장할 것이다. 이런 때에 긴 시간여행도 같이 할 수 있는 곳이 경주이기도 하다. 아니 과거 어느 시간은 의미가 없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작금의 일상을 찾는 여행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무엇은 탐욕이라 이름하여도 좋을 듯하다. 佛跡을 찾아서… 꽃바람 속에서 花浴을 즐기는 일이 소원해지면 이제 어디든 가보자. 경주에서는 어디든 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화불량으로 사나흘은 고생하는 욕을 봐야하지 않을까 한다. 어디를 가야하냐구 묻지도 말고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가면 바로 경주에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염려도 지레 겁내지도 말자. 그렇게 걷고 있는 그곳은 우리 역사가 있고 정신이 있고 삶이 배여 있는 그런 곳이다. 유무형의 세계가 고스란히 배여 앙금조차 나오지 않을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아니 그 반대로 순수함을 잉태한 미래를 말하려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런 곳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남산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데 황남재 앞길은 보리사 올라가는 목에 있어 주말이면 사람들의 발걸음에 늦잠을 자고 싶어도 여의치 않을 때가 있다. 그곳에는 불상 一身이 坐定하고 계신데 남산에서는 보기 드물게 원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들이 단지 부처님을 만나 뵈려 산을 오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산의 역사와 신라인들의 정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하고, 산 곳곳에 흩어져 있는 부처님의 깨달음이 자기 깨달음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라기에 그렇게 쉼 없는 오르내리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주의 불교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산을 찾아야 하고 남산에 서면 바로 무딘 바위 어디서나 부처님의 法悅의 미소가 이내 가슴속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디 나 뿐이겠는가. 고 윤경렬 선생님 생전의 노력으로 남산에 대한 신라인의 불연국토 심경을 헤아렸으니 이제 그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는 노력은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디 부처님을 뵈러 가는 길이 남산뿐이겠는가. 동해 바다가 어슴푸레 잡히는 토함산을 오르는 길은 늘 답답함을 풀어내고 淸淨心을 일군다. 더구나 새벽 첫 길을 오른 이들은 남다른 감회가 가슴을 칠 것이다. 입구에서 새벽녘 스님들의 싸리비가 지나간 길을 걷는다는 것은 청정심을 더하는 아련함이다. 토함산 동편의 한적한 이곳에 서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은 사치가 아니라 신라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그들의 자취를 어느새 가슴에 품고 있는 자신을 보는 일처럼 다가온다. 멀리로는 동해바다, 문무왕의 혼이 살아 있는 대왕암이 시야에 실릴 듯 말 듯 하고, 또 동해의 왜구를 쫓는 왕의 염원을 함께 하는 것 같다. 눈 둘 곳은 바다 한 가운데지만 그곳에도 신라 사공의 노 젓는 모습이 언뜻 속살 비치듯이 보인다. 본존불은 여는 부처님과 비교해도 분명 불교조각에 있어서 이름을 달리한다. 그렇게 단아하면서 위엄이 있고 또 그 가운데 미소가 있으니 무언가 형언하기 힘든 고매함이 숨어있는 듯하다. 史家들은 본존불에 대해서 갖가지 해석을 달고 이론적인 수식을 더하지만 매 한가지로 귀결되는 모양이다. 과학과 미학의 틈 없는 논리가 어떻게 법당의 佛世界를 따를 것이며 종교적 환희심의 지극정성으로 돌을 매만지던 신라인들의 불심을 따를 것인지, 미술작품으로 이해하는 것에 앞서 종교의 이해가 있어야 하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문제다. 석굴암에서 과학과 미학은 신라적인 것으로 한국적인 것으로 변해야 제대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강우방 선생님은 석굴암을 바라보매 “지성은 부분만을 보지만 감성은 전체를 본다”고 했는지 모른다. 어디 본존불만이 그런가. 팔부신장상, 사천왕상, 보살상, 나한상, 십일면관세음보살상, 천장주위 감실 안 좌상보살과 거사 등도 모두가 그러한 모양이다. 이제 남산과 석굴암을 보았으면 자전거 타고 王京의 중심지를 한 바퀴 도는 일이 남았다. 봄바람에 자전거를 의지해 몸을 싣고 다리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 되었지만 그래도 경주의 봄을 안기에는 자전거가 가장 제격이다. 집에서 경주역까지 자전거 타고 통학하는데 동남산을 감고 지나 샛길을 따라 가면 박물관이 나오고 바로 울산 가는 길이 이어지는데 다음에 안압지가 손에 잡히고 멀리로 분황사, 황룡사지가 보인다. 안압지 바로 옆으로 월성과 첨성대가 있고 인왕동 고분군과 노서동 고분군도 멀지 않게 끼고 곧바로 달리면 경주역이다. 이렇게 달리는 길은 신라 왕경의 중심지로 이 주위로 유적·유물이 산재해 있다. 하루거리로 충분히 불적과 신라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다시 황남재에서… 부처님 그림자를 쫓아 경주를 말했지만 어디 부처님 마음이 그러할까. 그러나 누구나 경주를 말할 수 있지만 부처님 존상을 헤아리지 않고 경주를 말할 수 있을까. 十方三世 편재하시기에 신라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니 이렇게 존상을 잠시 빌어 경주를 말하는 것이 누는 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살아가는 모습이 한갖 迷妄에 사로 잡혀 그 허망함의 본질을 망각한 채 살아간대도 현실에서는 방편으로 부처님을 염송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고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따뜻한 봄 날 꽃바람 속에서 봄이 옷을 갈아입듯이 마음의 옷을 갈아입고 부처님을 대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빌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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