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의 창

 


내 마음에 지펴진 작은 불씨
김애주 /영어영문학과 교수

  지난 2월 22일부터 24일 까지 대각전에서 있었던 신규교원 수련회는 내게 수련회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신규 교원이 된 기쁨과 감사함, 새로운 각오와 다짐 외에도 각별히 살뜰하게 와 닿는 감동이 있었던 것이다. 우선 2년 전 대각전에 처음 들어섰을 때 받았던 썰렁함이 이제 황금빛 충족으로 바뀐 것은 내 마음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만불전에 제법 빼곡이 모셔진 원불(願佛)은 중앙 불전의 부처님과 어우러져 황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법당 안이 다소 추웠는데 불구하고 추위를 느끼지 않은 것은 함께 수련을 하던 신임 교원들의 용맹정진 열기에 법당을 꽉 채운 황금빛이 마치 법력처럼 더해진 때문이리라.

본교 출신으로서 오랫동안 동국대학교에 몸 담아오면서도 정작 그동안 학교에 산재해 있는 귀한 것들에 무심하고 소홀했다는 데 대한 자각은 대각전 재발견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정각원 법당이 원래 승정전이라는 사실은 이미 정각원 밑 안내 표시판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동국대 교정에 묵묵히 자리잡고 있는 ‘이’ 정각원이 몇백년 간의 시간의 흐름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적 흔적을 새겨온 ‘그’ 정각원이라는 사실은 나의 의식 속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같은 대상도 우리의 인식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달라진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학교를 수없이 오고가면서도 늘 있는 법당으로 여겨지던 정각원이 내게 살아있는 역사로 부각된 것은 거기에 묻어있는 시간의 흔적을 알게된 때문이다. 또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별 감흥이 없던 명진관 앞 ‘서 있는 부처님’께 이전에 느끼지 못한 애틋하고 경건한 마음이 솟아나는 것은 그 부처님을 조성한 사람의 내력을 자세히 알게된 때문이다. 20대의 젊고 패기만만하던 나이에 ‘서 있는 부처님’을 조성한 미술학도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인생의 완숙기에 다시 대각전 불상을 조성했다고 하니 긴 시간 속에 이어져온 인연이 참으로 진하게 다가온다.

수련회 이후 정각원을 찾는 빈도가 잦아진 것이나 교정 불상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새삼 머리가 숙여지는 것은 수련회가 준 큰 선물이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특히 특별 강사로 초빙되신 오국근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나는 학교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동국대학교의 교훈이 무엇인지 눈여겨보지도 않았고 거기에 깃들여있는 정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내게 ‘동국의 전통과 정신’이라는 주제의 교수님 강의는 학교를 새롭게 다시 보려는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다.

일제 때 만해 한용운 같은 동국대 출신들이 항일 운동을 하셨다거나 그러한 항거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일제가 학교를 두 번에 걸쳐 폐교시킨 사실, 민족 문학의 산실 역할을 해 왔던 사실 은 그다지 새로운 것도 아니건만 그때 내가 유난히 애교심에 취했던 것은 그자리에 있게된 뿌듯함과 교수님의 열강이 상승 작용을 한 탓일까. 분명한 사실은 이전에 학교 연보에서나 보고 스쳐 지나쳤던 역사적 기록들이 강의 이후 생생한 체험으로 내게 와 닿았다는 것이다. 강의 후 몇몇 신임 교수들이 본인들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내용들은 잘 보존해서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을 보면 그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숨겨져 있는 사실들을 발굴해서 알리거나 때로는 너무 익숙해져서 그 의미가 퇴색한 사실들을 새롭게 만드는 작업은 현재 삶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문학 전공자인 나는 문학 작품을 읽고 해석하면서 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대부분 작품들이 삶의 밝고 건강한 모습보다 어둡고 고통스런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남달리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길을 택하기 때문인 것 같다. 경제적인 궁핍, 신분 상승에의 욕구, 정신적인 압박감, 사랑의 고통, 공포 등 물질적인 것부터 정신적인 것까지 온갖 인간의 고통들을 여러 문학적 기법으로 교묘하게 치장하여 재현한 것이 문학 작품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문학 작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언제나 어디서나 삶은 고(苦)라는 사실을 절로 실감하게 된다.

특히 내가 전공하는 흑인 문학은 처절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고통을 담고 있다. 흑인 작가 중에 비교적 온건하다고 알려져 있는 토니 모리슨의 작품만 보아도 과거 노예 시절 흑인들이 당했던 끔찍한 고통이 예외 없이 다루어져 있다. 연구 초기에는 ‘자랑스럽지도 않은 과거에 왜 집착할까?’ ‘다른 소재가 아직 개발되지 않아서 그런가?’ ‘상품성에 있어 다른 인종의 작가와 유일하게 차별될 수 있는 그들만의 경험이기 때문에 부각시키는가?’ 등의 의문에 빠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의문은 점점 자랑스럽든 굴욕적이든 과거는 반드시 발굴되어야 하며 명백히 알려져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흑인 작가들이 과거 조상들의 이야기를 발굴해내서 아주 지엽적인 것까지 담론에 싣는 것은 무엇보다도 과거 현재 미래를 건강하게 연결시키기 위한 중요한 제식적 행위임을 발견한 까닭이다. 1993년 토니 모리슨이 노벨 문학상을 타게된 결정적인 작품인 “비러비드”(Beloved)를 두고 모리슨은 수없이 스러져간 조상들에 바치는 진혼곡이라고 말했다. 될 수 있으면 노예 제도의 실상과 그 후유증을 적나라하게 다루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내리누르던 압박감, 조상들의 고통과 그것이 후손의 삶에 지워진 굴레를 반드시 벗겨내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책임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홀가분해했던 것이다. 노벨 문학상이 그녀에게 주어진 것에는 진혼의 공덕도 얼마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과거를 백일하에 드러냄으로써 오는 정신적인 치유 효과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성 확립에 더없이 필요한 품목으로 보인다. 특히 자랑스런 과거는 더더욱 현재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키워져야하고 의도적으로 가꾸어져야할 한 자산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과정, 이른바 과거 복원을 통한 자기충족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수련회를 통해 나에게 일어난 마음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초발 신심은 강하게 활활 잘 타오르지만 그만큼 빨리 사그라든다는 말이 있다. 수련회 이후 한달이 되어서도 그때 느낀 감동이 꺼지지 않고 살아있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점점 색이 바랠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조그마한 불씨가 생긴 것과 아닌 것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실지로 나는 그 이후 학교에 관련된 흘러 다니는 이야기들을 듣고 적어두고 싶어한다. 자료를 모아두었다가 작은 책자로 꾸미고 싶은 마음도 들고 한걸음 나아가 영상물로 제작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유흥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출간된 이후 문화 유산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폭증한 것은 같은 사물에 언어가 깃들여지면서 이전과 달리 의미있는 살아있는 존재로 부각된 때문이다. 불교 대학으로서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대학에 새로운 언어를 부가한다면 교정 곳곳에 잠들어 있는 유산들이 기지개를 켤 것이고 잊혀진 선배들의 정신에 다시 한번 힘이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