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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정각도량 / 10월호 / 통권 50호 / 불기
2543(1999)년 10월 1일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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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법문 원력소생
태교/석성우 스님
일반적인
태교 이론에 관한 이야기라면시내에 나가서
책을 한 권 사서 보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얘기할 수 있는
태교 이론은 그것 과격을 달리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태교이론의 본질은 인과사상,
윤회사상, 업보 사상 둘 불교 안의 사상입니다.
인격의
향기가 나는, 사람의 냄새가 나는, 정말
욕심이 적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많이
태어나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많이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불교의사상인 인과사상,
윤회사상, 업보 사상에서 찾아야 합니다.
다른 종교, 다른 이론에서는 도저히 찾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두 가지의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하나는
업의 소산, 즉 업보 중생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원력소생이라 합니다. 원력소생으로
태어난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 이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기의 원력에 의해 500생을
살아납니다. 또한 남의 원력으로도 태어날
수 있습니다. 실례로 자장스님, 공자,
무학대사 같은 분들은 부모의 원력에 의해
다시 태어난 분들입니다.그 부모의 원력,
바로 원력소생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할
수 있는 것이 저의 태교이론 중의 한 부분이
됩니다
맑은
영혼을 가지면 맑은 영혼을 모실 수 있습니다.
업은 엄끼리 서로 인격을 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숲을 잘 가꾸어
놓으면 학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청정한
숲을 가꾸어 놓지않으면 그 고고한 학은
찾아 오지 않습니다. 역대 많은 위인들,
또한 거룩했던 인물들을 보면 그 부모들이
거의 다 어질고 착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태교를 시켜야 하겠습니까? 저의
태교 이론은 3단계로나누어 얘기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은 청소년 시기입니다.
두
번째, 남자도 태교를 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세
번째, 임신한 후의 태교입니다.그러나
임신하고 나서는 늦은 것입니다.
감수성이
예민할 때, 내가 여자고 남자라는 걸 분명히
알 때, 性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시기부터
태교를 시작해야합니다. 그때부터 자기
영혼을 아름답고 맑고 어질게 가꾸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의 영혼을
맑게 하는,자기 영혼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 때부터
信,已셰 돈독하면 염불을 해도 되고, 참선을
해도 되고, 염불이나 참선을 못한다고
하면 일반적인 명상을 해도 좋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어질고
착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내 생각은 원을 세워서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서 5계를 지키도록
0핵기합니다. 5계라고 하면 딱딱해서 안
들으니까 ''살생하는 인연은 짓지 말아라.
낚시, 사냥 등 악업을 짓는 일, 남의 성명을
빼앗는 일은 하지 말아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훔치는 버릇을 못하게 하고,
거짓말 하는 버릇 그리고사치, 낭비하는
버릇을 못하게 합니다.동시에 요즘 청소년의
음주와 마약 등의 나쁜 버릇은 절대로
못하게 합니다.이 나쁜 습관이 바로 자기와
동시에 자기의 인격을 흩트려 놓고, 길게는
2세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 5계를 지키도록
함과 동시에 머리에 물을 들인다든지,
바지를 찢어서 입는다든지 하는 그런 잘못된
버릇을 못하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좋은 심성을 길러가며 원을 세우고,
이 영혼을 맑게 만들면 틀림없이 좋은
후손을 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일곱 생을 만난다고합니다. 일곱
생을 만나는 도중에 서로업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입니다. 그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업을 녹일 수 있는 정말 좋은 방법으로는
청소년 때부터 자기의 영혼을 맑게 만들어
좋은 영혼이 올 수 있도록 하는 원력소생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남자의 태교로서 그야말로 좋은
습관, 좋은 마음자리를 가꾸어가자고 좋은
2세를 두는 방법입니다.이상의 두 가지
방법이 정말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임신하고 난 후의 태교입니다,
저는
임신하고 나서는 늦다고 생각합니다. 왜
늦느냐? 불교의 업보 사상을 그대로 가진다고
하면, 한 업을 가진샘명체가 그대로 오는
것이기 패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늦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정된 업이 왔기
때문에 이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三不能은,
일체중생을 제도 못한 것과 인연 없는
중생을 제도 못한 것, 그리고 결정된 업은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업으로
온 생명, 이것을 순화시킬 수 있는 것은
다른 어떤 종교, 어떤 이론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바로 불교 안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 업을
순화시키고 또 승화시켜서 업을 녹여 줄
수 있는 기간이 10달인데 이 10달 동안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새로 온 생명이
어떤 인연을 지었는지, 어떤 선입을 지었는지,
어떤 악업을 지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업을 순화시키는 것입니다. 『천수경』은
다 아실 겁니다. '백겁적집죄일념돈탕진(百劫積集罪
一念頓蕩盡)'의 하염없는 생을 살아 오면서
쌓았던고 마음의 업보도 한 생각 맑게
함으로써 달라지는 것입니다.
바로
번뇌가 고리가 되는 그런 위치,그것을
우리가 실용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은 그 역시도 그 사람의업입이다. 한
생명이 왔다는 것은 구업이 왔기 때문에
그 업을 순화시키는일, 이 순화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그것은 불교의 육 바라밀
사상으로도 풀 수가 있고, 우리 불자들은
참선.염불'기도.간경.사경 등 그 어느
것으로나 다 가능합니다.
정말
우리가 지금과 동시에 미래의 행복을 생각한다면
어질고 착한 사람이 태어나야 하고, 어질고
착한 사람이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불교의 업보 사상을 순화시키는 일입니다.
이것만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참선, 참 좋은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할 수 있는 21세기의 대체사상으로서의
선사상, 얼마나 훌륭한 사상 입 니까?
우리의
2세, 다음 세상에까지 갈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 맑은 영혼을 가꾸어야 만이 맑은
영혼을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악업을 지었다고
하면 역시 악업을 지은 사람들과 만날
수 밖에 없는것입니다. 그것은 인연의
법칙입니다.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인연의 쇠사슬을 끊을 수 있는 것은
거룩한 부처님의 법 속에서, 현실 속에서
불교를 응용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우리는
앞으로는 기대해도 되고, 회망을가져도
될 그런 나라가 되지 않을까싶습니다.
어질고 착한 사람이 태어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결코 좋은 세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국토는 서로 믿을
수 있고, 또 살고싶은 나라가 바로 불국토인
것입니다.이 태교 이론 자체가 우리 나라가
정책적으로 받아들여서 실현해야 될 이론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든 무엇이든 초월하고 받아들여서
실현해야 될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행상담 삼귀의(三歸依)/장계환
스님/불교대학 교수
우리가
병이 나서 병원에 간다고 했을 때, 병원에
간사랑은 적어도 의사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진찰도 받고 주사와 약도 먹겠다고
약속을 합니다.이때 비록 말로써는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병원에 간다는 그 자체가
이미 의사 선생님의 말에 따르겠다는 뜻이
무언(旅言) 중에 내포되어 있습니다.그와
같이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에 잠재하고
있는 불안과 고통 그리고 수많은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구나 의지처를 찾게
되는데, 그때의 의지처는 바로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지은 양의 경우는 불교이겠지요.
마치 의사가 환자에게 자신의 치료에 대해
절대적인 신임을 요구하듯이 불교에 입문한
사람도 최소한 세 가지의 약속을 해야하는데
그것이 바로 삼귀의입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요구하는 신임이 바로 치료의 시작이 되듯이,
삼보에 대한 귀의는 불자의 기본자세이며
신앙의 출발점인 셈이지요.
그런데
질문하신 내용을 굳이 꼬집자면 승보에
대한 귀의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가 하는
말로 들립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마땅히 해야만합니다, 왜냐하면 화합단체로서의
승가(Samgha), 즉 스님들은 스스로 부처님이
되고자 수행할 뿐만 아니라 재가신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고 그들에게 공덕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복전(福田)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개인의 승가상을
보면 개중에는 귀의의 대상으로는 존경심이
우러나지 않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에게 박수와
찬사를 보내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그들은
우리가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해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입장에게 스님들을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물론
성불의 길이야 재가.출가를 불문하고 열려
있는 길이지만, 스님들에게는 많은 것을
억제하고 인욕 하는 생활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마디가 없고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화살이 빠르고 곧게 날아가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볼보와 법보, 그리고 승보는 불교 교단을
이루고 있는 기본입니다.불교도가 존경하고
공양해야 할 대상인 삼보에 귀의를 하는
것은 불자로서의 의무인 동시에 자신의
신심에 대한 확실한 결의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삼보에 대한 귀의는 삶의 지표이자
수행의 의지처라고 할 수있습니다. 즉
승보가 중시되는 것은 우리들의 수행이나
올바른 삶에 모범이되고, 불법이 이 땅에
영원히 존속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정각원에서 삼 귀의를 할 때는 무심히
입으로만 따라하지 말고 왜 삼보에 귀의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정각도량 가장
견고한 결박/ 이법산 스님/서울캠퍼스
정각원장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하고
행복을 꿈꾸며 산다. 자유.해방.해탈.
열반은 누가 묶고 풀고 하는가. 진정한인건의
행복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신분.지위.권력
.지식의 유무를 막론하고 모두가 자기
만족감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투쟁.시비.질투.불안.초조의 연속인 인간
사회를 누가 만들어 가고 있는가. 왜 이토록
자기 만족을 모르고 스스로 결박하고 남을
원망하고 시기하며, 불안해하고 있는가.
서로 자기를 믿으라고 하면서 정작 남을
믿지 못하는 것은 자신마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는 자기들만 사는
사회, 당연히 불안하고 초조할 뿐이다.
왜들
자기를 스스로 복잡하게 묶고 나서 남들에게
풀어달라고 아우성인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묶임',
무엇에 묶여 있으며, 누가 누구를 묶고
있는가.
잡아함경
(雜阿含經) 제46권 계박경 (繫沫尊經)에
있는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보자.
밧줄이나
사슬이나 쇠고랑의 결박
非縊
杻械
그것은
견고한 결박은 아니다.
名曰堅固縛
물들어
더러운 마음으로써
染汚,已,顧念
재물이나
보배나 아내, 자식을
錢財寶妻子
생각하는
그 결박 길고 든든해
是縛長且固
비록
늦추어도 벗어나기 어렵다
雖緩難可脫
세상에
다섯 가지 욕심의 향락
慧者不顧念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하지 않나니
국眈間五欲樂
그것은
곧 온갖 결박을 끊고
是則斷諸縛
안온히
이 세상 뛰어나든 것이다
安隱永超了崖''
이
게송은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실 때, 파사익왕(波新匿王)이 정치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구속하여 쇠사슬이나
밧줄로 묶어서 끌고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비고 스님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어떤
결박보다 가장 무서운 결박이 '돈과 재물,
아내와 자식' 이며, 세상의 '오욕락' 이라는
것이다.
먼저
인간은 돈과 재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가.
돈과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혹사하고 수고롭게 한다.어느 사회에서건
인간 사회는 돈과 재물이 인간의 생명과
신분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과 재물이 아무리 소중하다고는 하지만
생명이 있어서 필요한 것이지, 생명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아내와 자식
역시 한번 맺어지면 아무리 푸려야 풀리지
않는 묶임이라, 설사 이혼을 하고 인연을
버린다고 하더라도 역시 도덕적 양심과
윤리적 죄책감은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마음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그렇다고
반대로 자기 재산과 처자에 대한강한 집착으로
남을 무시하거나 도외시한다면 더 큰 죄악의
결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돈과
재물과 처자의 묶임은 아무리 끈을 늦추어도
풀리지 않는 결박이다.
또,
'오욕락' (五欲樂)이란, 재(財: 돈이나
재물), 색(色' 이성의 성), 식(食: 먹는것),
명(名: 명예), 수면(睡眠: 잠자는 것)이다.
이 중에서 명예에 맛들이면 가장 끊기
어렵다고 한다.
돈도
없으면 없는 데로 살 수 있고, 색도 힘없으면
어찌할 수 없고, 먹는 것도 참을 수 있고,
잠도 견딜 수 있지만 가장 은근한 욕구가
명예라고 한다. 또, 네 가지는 늙어 죽으면
다 버리고 가지만 명예만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서 묘비에 새기고 족보에까지 남기려하므로
죽어서도 끊기 어려운 것이 명예욕이다.
그러니 살아서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지혜 있는 사람은 오욕락에 물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고, 이 오욕락을 끊는 것이 모든
결박에서 해탈하여 영원히 안온한 자유의
세계를 갈 수 있다고노래하셨다.
전등(傳燈錄)에
있는 이야기다.
14살
먹은 어린 사미승 도신(道信)이 삼조승찬(三祖僧燦)스님께
인사를 드리고,''스님, 자비를 베푸시어
저에게 해탈법문을해주십시오''하고 청을
하자, 승찬 스님께서''누가 너를 묶었느냐?''하고
다그쳐 물었다.도신이 대답하기를 ''묶은
사람이 없습니다''하자, 승찬 스님은 다시
한번 다그치듯''어찌 다시 해탈을 구하겠는가?''라는
말씀에 도산이 크게 깨달아 마음의 모든
속박이 해탈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가
누구를 묶었다고 외칠 수 있는가.자기
스스로 자신을 묶었을 따름이다. 스스로
묶은 결박에 휘둘리지 말고 본래 '묶임'
없는 본심 자성 (本,已,自'陵)으로 돌아가보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출가하실 때 왕(王) 노릇
하는 것을 문틈에 날아드는 먼지만큼도
여기지 않았다고 하시고, 출가는 애착과
욕망을 버리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음을
사십이장경(四十二藏經)에서 말씀하셨다.
각자가
자기 자신을 잠깐이나마 되돌려 살펴보고
부처님의 출가 정신에 입각한 무아의 자리로
돌아가 자기 자신의 결박에서 해탈해보고
자유롭게 열반의 즐거움을 즐겨보자.
특집1/
생명이란 무엇인가 불교의
생명관 이철헌/불교문화대 강사
경제난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는 일까지 일어나는 끔찍한
세상이다. 그런가 하면 취미와 오락을
위해 산 짐승을 잡고,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여 동식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의 생명 경시는 자연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온갖 기구와 기계들에 둘러싸여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차라리 당연한
것인지도모른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이냐고 그것이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맺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생명의 신비감이절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생명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홀바른 이해가 부족한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명이란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을 분간하는 기준, 곧 목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목숨을 지닌 것을
생명이라 하고 이것에는 동물과 식물을
포함시키고, 목숨을 지니지 않은 것을
무생물이라고 하여 광물을 포함시킨다.
유대
.그리스도교의 전통에서는 동식물.광물
등의 자연물에 魂이나 神靈이 깃들여 있다는
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인간 이외의 자연물들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물로
간주한다. 이러한 인간 중심적인 생명관으로
인해 인간의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사고와 삶의 태도가 발전되어, 인간의
끝없는 욕구 충족을 위해 동식물을 약탈하고
남획하는 것이 합리화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인간의 생명만을 중시하고 그 외의
동물이나 식물의 생명은 철저히무시되었고,
인간의 목적에 의해 동물들이 살육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비해 동양의 전통사상에서는 인간은 물론
동식물 나아가 광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생명을 가진 것으로 인정하고 이들
모두가 그 나름대로 존폐의 의미를 지니고있다고
여겨 왔다. 우주와 인간, 자연과 인간이
하나이며. 자연과 우주도 생명을 가진
것으로 여겨져 예견되었던 것이다.
불교에서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有'1嘗이라고
표현한다. 유정이란 감정과 灑識을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감정과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無'1'有이라고
한다. 그 방라면 불교에서의 생명은 곧
감정과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감정과 의식은 眼,耳.鼻一舌.身.意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그 대상인 色,聲,香.味.觸.法의
여섯 가지 감각대상을 만나서 각각의 여섯
가지 인식이 일어나는 것이다 곧 눈.귀.코.혀,몸,뜻으로모양과
빛깔,소리.냄새 .맛.촉감.생각을 받아들여
느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여섯 가지
인식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생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것이다,
우리는
동일한 식물을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게
할 경우,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자란 것이
시끄러운 음악을 듣고 자란 것보다 성장이
빠르고 튼튼하며 결실을 많이 맺는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식물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정을 중생이라고도한다.
일반적으로 유정이나 중생이라고 할 때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세계인 천.인간.
0件라. 축생 , 아귀 .지옥을 뜻하나 넓은
의미에서는 구羚菩薩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 인간이나 동물과 같이 우리가 肉眼으로볼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천.0件라.아귀
.지옥과 같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존재도 있다는 것이다. 생명을 가진 것의
범위가 동물과 식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이제 생명의 범위를 동물과 식물에서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말에도 어떤 물질이 다 닳아버리거나
부서져 버리면 수명이 다 되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 써행무상」고한다.
물질은
생성되어[成] 존재하다[{主] 파괴되어[壞]
없어지고 마는[空] 것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것이 생성되어져 존재하는 동안은 생명이
있는 것이允 파괴되어 없어지는 것은 생명이
다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결국
불교에서는 동식물 그리고 광물 동형상이
있는 것과 天玎1申과 지옥 등 형상이 없는
것까지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생명이었다고
보기에 이른 것이다. 그 예로 이산혜원선사의
발원문에 '유정들도 무정들도 일체 종지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여 무정들도 일
체종지를 이루어 성불할 것을 발원하고
있는 것이다.
타종교의
不殺生 계율은 인간을 죽이지말라는 의미이나
불교에서의 불살생 계율은 생명을 가진
물체는 동.식물을 구별하지않고 모두 살생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집을 수리하기 위해
산나무(生木)를 자른비구에게 그러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꾸짖었고, 비고는 모든
초목을 자르거나 꺾거나 부러뜨려서는
안되며, 나무 위에 말뚝을 박거나 생초목(生草木)
위에 불을 붙이거나 생초목을 여러 동강으로
끊어서도 안된다고하였다(『사분율』).
그리고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 「雨期」에
비고들이 여러 곳으로 나돌아 다니면서
곤충이나 초목들을 밟아 죽이는 일이 없도록
일정한 곳에서 安居 하도록 한 것이다.
한 마리의 벌레, 한 포기의 풀이라도 생명을
가진 것이므로 아끼고 보호하는 자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모든 생명은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며,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형태의 생명이 똑같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생명의 평등주의는
실제로는 수용할 수 없다.생명가치의 질적인
차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으므로
다른 생명체가 희생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자신의 사치나 쾌락 그리고 이익을
위하여 함부로 파괴하여서는 안되는것이며,
생명보존을 위한 불가피한 경우라 할지라도
그 희생을 최소화 하여야 한다. 한 포기의
풀도 함부로 꺾어서는 안 된다는 불타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불교의 참다운 생명관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특집2/생명이란
무엇인가 낙태와 불교의 생명관/ 백경임/가정교육과
교수
생명
존중의 대표적인 종교인 불교에서 낙태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주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성개방 사회에서 아직까지
보수적인 원칙만 주장할 것인가 혹은 새로운
근거를 탐색해 볼 것인가 하는 관점때문이다.
필자는
불교 입장에서 낙태문제를 원론적 측면에서
교리를 근거로 살펴본 후, 오늘날 우리가
취할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인공
임신중절인 낙태를 불교에서는 타태(墮胎)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주지하다시피
불교에서는 인간의 생을 금생의일회적인
삶으로 보지 않는다, 육도 윤회하는 가운데
인연에 의해 이승에 부모와 자녀로 만났지만,
또 스스로 짓는 업에 따라 어떤 형태의
관계로 만나고 헤어질지 알 수없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생과 사를 반복하는 윤회과정에서
존재가 거치는 형태의 변화를사유설(四有說)로
설명한다. 사유란 네 가지 존재형태를
의미하며 생유(生有) .본유(本有) . 사유(死有)
, 중유(中有)를 말한다.사유설에 의할
때 태아는 본유의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삶에 해당된다.
본유(本有
; puvakala-bhava)라 함이 어머니 몸에
수태된 후부터의 태아기간과 출산 후 아기에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의체, 즉 인간으로서의
이승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태아를 한
인간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수태 직후부터 인간으로 인정하는 불교의
태아관은 태아 발달에 대해 언급한 여러
경전(불설포태경,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등)에서 태아를 주체적인 존재로 보고
있는 것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이 사상은
우리의 전통사회에 영향을 끼친듯,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한 살로 인정하는 전통적 나이 계산법에서
잘 드러난다.
불교에서
태아를 이렇게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볼
때 인공 임신중절은 당연히 불살생계(不殺生戒)를
범하는 것이 된다. 『사분율』에서 그
구체적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즉 남편이
없는 사이에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잉태하게
된 한 부인의 요구에 따라 승려가 낙태에
동참하게 된 사례가 생겼다.이때 부처님께서는
''음식에다 주문을 외워 낙태를 시키거나,
약을 주거나, 침을 주거나, 배를 주무르거나
간에 승려가 낙태에 동참하면 바라이죄를
범하는 것이다.'' 라고 강력하게 제약하고
금지시킨다.
바라이죄(parajika)라
함은 극악 . 중금 .단두 근본 죄라고 불리우는
가장 무거운 죄이다. 이 계율을 범한 승려는
승려자격을 잃고 교단에서 추방된다, 이처럼
낙태에 동참함을 강력하게 제약하는데,
낙태를 의도하여 행함은 어떠하겠는가.
원시경전인 『잡아함경』가운데 「타태경」이라는
짧은 경에서는 전생에 낙태를 행한 과부로
백천 년 동안 고통을 받는 모습이 묘사되어
낙태의 부당함을 경고한다.
피임
방법이 개발되지 않은 그 당시 인도사회에서
아마도 낙태의 요구는 많았을것이고, 이것은
중요한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였을 것인데
부처님은 이에 대해 단호하셨다. 불교도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계율인 5계 가운데
그 첫 번째가 불살생(不殺生껴인 만큼
당연한 조치라 하겠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문제로 돌아왔을때, 시대가
변한 만큼 낙태는 허용되어도 좋은가?
살생유택(殺生有擇)의 논리로, 인구과잉을
우려하는 기득권자의 권익을 위해태아는
살생 되어도 좋은가?
불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성의 낙태권리''가 ''태아의
생명권''을 누르고 실력발휘를 하고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 상에서 ''강간당하여임신한
경우''(윤리적 사유), ''법률상 임신할
수 없는 남녀 사이에 임신한 경우''(윤리적인
사유), ''임신의 지속이 산모의 건강에
해를 주는 경우''(의학적 사유), ''태아의
부모에게 전염병이 있는 경우''(우생학적
사유),''태아가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날 것이 예상되는 경우''(우생학적
사유) 등의 사태에서 낙태의 허용이 일반인에게
높은 수치의 호응을 얻는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낙태의 실태 및 의식에 관한 연구』1991.)
낙태에
대한 논쟁은 선택우선론자(prochoice)와
생명우선론자(prolife)라는 두 입장의
대립으로 요약된다. 선택 우선론자들은
헌법에 보장되는 개인(여성)의 사생활권이나
민주 사회가 지향하는 개인(여성)의 자율성에
입각하여 낙태는 개인(여성)의 선택에
맡기는 입장이고, 생명 우선론자들은 ''태아는
인간이다''라는 신념 아래 태아의 인권이
여성의 인권보다 평가절하 되거나 희생될
수 없다는 입장인 바, 불교의 기본 이념은
이에 해당된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을 고려하여 어느 입장에 서야할까?
대립되는 두 입장을 모두 고려하는 방법은
없는가? 두 입장 모두 낙태를 줄이자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는 점에서 합일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 우선론자들이
최대한 낙태건수를 줄일 수 있도록 선택적인
임신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수태조절
자체를 교리로 제약하는 다른 종교와 달리,
피임을 위한 약이나 도구들의 사용은 불교
교리에 어긋날 것이 없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인연의 태아라면 인연을 짓지 않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며, 업(業)사상의
면에서 행위(업)의 선택은 행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행위자 가운데 한사람인남성이
방관자일 수 없음은 물론이다.
태아가
사회에서 보호되어야 할 생명인 점과 마찬가지로
성적 자율성이나 재생산활동(임신, 출산,
육아활동)의 자율성을 통해현 사회적 위치를
변형하려는 여성의 실천행위도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할 가치이다.그러기 위하여 개인
불교도들도 낙태가 필요하지 않는 성숙한
삶의 태도로 도덕적 결정 과정에서 신중해야
할 것이며, 우리 사회도 兩'性平等을 포함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성숙하여 점차 낙태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로 발전되어 가야 할
것이다.
특집3/자연
과학과 불교의 생명관 자연과학과
불교의 생명관/ 이동웅/생화확과
교수
생명은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신비로운
것이다, 그 어떤 훌륭한 문학도 생명의
고귀함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며,
아무리 뛰어난 예술작품일지라도 생명의
아름다움을 완벽히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현대의 최첨단 과학마저도 이제
겨우 생명의 신비를 한꺼풀 벗기는데 그치고
있으니 생명은 정말 불가사의하고 오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문학가나 예술가에
비해 과학자는 생명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온 탓에 금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생명의 본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DNA(데옥시리보핵산)의 구조를
해명하게 되었다, 생명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양자역학을 완성한 슈레딩거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저서에서 앞으로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학적 업적이 될 것이라고 주창하면서부터
불붙기 시작하여 이제 불과 6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생명과학의 전성기가
될 안 세기에는 생명의 본질과 신비의
베일이 한꺼번에 벗겨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러면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 일반적으로는
모든 생물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속성
또는 특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속성 또는 특성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생명을 보는 시각 즉,
생명관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먼저 과학의
세계에서는 생명을 어떻게 보아 왔는가.
18세기 후 반 과학자들이 유기물과 무기물을
구별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生氣論(V比ah沒n)이
그 당시 생명 사상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모든생명체(유기체)는 유기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유기물은 어떤 생명력을 가진
생명체에 의해서만 생성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생명의 근원인 유기물이 합성될 수 없다는
관념이 바로 생기론이다. 그러나 다분히
물질적 관념이라 할 이 생기론의 뿌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명에는 영혼이 있다는
영혼론으로생명에 철학을 부여한데서 생겨난
것이다. 여기서 이 영혼론과 물질론과의
이율배반적 관계는 철학이 과학사상의
모체가 되어 온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는
쉽사리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생기론은
l巴8년 독일의 뵈러가 무생물체인 무기물에서
유기물 합성에 성공하면서 일시에 쇠퇴해
버리지만, 생명이 고유하고 고귀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생기론
이후, 과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성명을 어떤
물질현상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관념을 흔히 기계론이라고 부르는데,
이 사상은 이미 17세기 데카르트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써 이 또한 과학사상에 대한철학적
영향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w세기에
접어들어 핵산과 같은 생명 물질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생명이 다음 세대로 보존되는
현상이 해명되고 또 생명이 유지되는 이유가
단백질 등에 의한 물질 대사 때문임이
드러나면서 기계론은 큰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물질론 적 관념은 금세기초
생명현상의 합목적성이 자연적 원인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 없다는 소위 신생기론(H.
드러시)으로 발전하면서 오늘날 과학적
생명관의 핵심이 되고 있다.
그러면
인간의 정신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종교, 특히 불교에서는 생명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불교에서 생명의 본질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내주는 말 중의 하나로
「無一物中無盡藏」이 있다. 「無一物」이란
존재를 궁극적으로 파고들면 실제성을
갖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요, 「旅盡藏」은
이러한 사실을 잘 이해하면 삼라만상 일체의
참모습이 드러나면서 자유로운 경지가
열린다는 즉, 온 우주가 자기 안에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러한 무실체성의 생명관은
佛經속에도 향기처럼 깊게 스며져 있음을
볼 수 있다. 孑羚經 중에서 생명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경전이 『婚良若,已,經』이다.
「옳爻若」라는 말 자체가 「생명의 지혜」라는
뜻으로서『반야심경』이야말로 우리에게
생명의 본질을 깨달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유일무이한 경전인
것이다.
이
『반야심경』중의 「호」(sunya)이라는
개념은 위에서 말한 무실체성, 비존재성과
상통한다. 즉, 생명은 인연에 의해 생긴
것이므로 아무 실체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五蔘藍槪空」이라 하여 다섯
가지 생명현상인 色(대상), 受(느낌),
想(상념), 行(의지작용), 識(인식)이 모두
空으로서 실체가 없다는 뜻인것이다. 그러나
空이 실체가 없다고 하여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無」라는무한한
에너지가 충만하여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無의 에너지에 의해 생명이
영위된다고 보는 것이 『반야심경』의
가르침이요 불교의 생명관이다.
2년전
영국에서 최초로 복제 양 '돌리'가탄생된
이후, 생명공학의 윤리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의 생명은 정자와
난자의 수정에 의해 탄생되었는데, 이제는
몸에서 세포를 떼내어 똑같은 생명체를
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복제의 윤리문제에
있어서는 과학자가 수세에 몰려있고, 종교인을
중심으로 한 사회단체가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는 모습을 띄고 있는데 과학계가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앞으로
야기될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과학자
스스로도 잘 알고있으나 그 해결에 자신이
서지 않기 때문일것이다. 과학자들은 학문
발전과 이식장기의 확보로 인류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반면,
종교계에서는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오히려 인간의 정신을 더욱 황폐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두 가지 관점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현실이고, 또
현재로서는 동시에 받아들일 그었던 방법론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학자는 속성상 물질론
적 생명관을 견지할 것이기 때문에 거의
본능적으로 생명의 복제 실험을 계속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탐구정신이
아무리 끝이 없다 해도 자신과 꼭 같은
또 하나의 자신을 복제하는 일만은 결코
하지 않을 것으로 필자는 믿고 있다. 생명은
인연에 의해 생긴 것이므로 인연이 없는
복제된 생명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소중한
지금이다.
수행의
길 조사선(祖師禪)의 수행(2)/ 유진스님/불교문화대학
강사
마조가
주장하는 「平常心」은 일체의 차별, 분별과
편견과 고정팔념을 완전히 탈피한 근원적인
인간의本來已,을 말하는 것이지, 일체의
경계에 끄달리며 분별과 차별 심에 떨어져
시기 질투를 일으키는 범부의 몰 자각된
衆生,已,을 지칭하는 말이 아님을 잘 알아야한다.
마조는
「道는 修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만 더럽히지(汚染) 않도록 하라 무엇을
汚染이라고 하는가? 生死의 마음을 일으키고
遣作된 마음으로 수행하여 부처가 되려고
하는 것은 모두 汚染이된다」라고 설하고
있다
마조는
「平常毛셰 道」라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道의 생활은 汚染이 없는 平常,已,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마죠는
번뇌를 일으켰다가 없애고 하는 生毋已,,
차별심, 분별심이나 조작된 마음을 가르쳐
수행하여 도를 이루려고 하거나 부처가
되려고하는 모두 汚染이라고 말하고 있다.
汚染이없는 마음은 다름 아닌 청정한 本來已,인
것이며, 이러한 본래심을 「平常,山이라고
말하고 있다.
『傅飜』
제5권 慧能章에 「도는 마음으로 깨닫는것(道由,已,'h吾)」이라고
말하고 『祖堂巢』 제3권 동에서「無心이
바로 道(無心곶道) 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 道는 자각된 마음에
있는 것이지 어떤 외부적인 場所나 事象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근원적인
本來心으로 자각된 「平常,已셰 바로 道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본래심의 자각에
의해道가 이루어 지는 것임을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는것이다, 이 自性淸淨心임을
전제로 하고 있는 표현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마주가 말하는 平舍心,은 단순한펌부의
몰 자각적인 衆生心을 지칭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평상심을 자각하고
일상생활에 자유롭게 오염되지 않고 전개할
수 있는 입장이 되게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하지 않고도 가능한 일인가? 汚染과 더불어
禪嫩의 修譜論으로 항상 문제가되고 있는
중요한 禪問答이 육조혜능과 남악회양과의
유명한 대화가 『傅燈롭氣』 제5권 有澱1稟讓章에는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六祖
: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회양
: 「嵩山에서 왔습니다.」
六祖
: 「어떤 물건이 이빻게 왔는고?」
회양
: 一令이라고 說{臥하여도 맞지(옳지)않습니다.」
六祖
: 「또 다시 修行하고 證牙룹해야 할 것이
있는가?」
회양
:「嶼聾證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더럽혀서(汚染)는 안됩니다.」
六祖
: 「단지 이 더럽히지 않는 것(不汚染)만이
諸佛이 凜念하는 것이다. 그대가 이미
이와 같구나 또한 이와 같다.」 『大正籤』
515권 240쪽 下)이미 잘 알려진 유명한
六祖와 '稟讓과의 禪問答은 회양이 六祖戇能의
불법을 계승하게 된 근거가되고 있는 黴彖의
일단이기도 하다. 이 일단의 대화는 사실
마조계의 禪宗史害인 凜林傳』(801년 성립)에
최초로 등장하고 있는 것인데, 『祖堂集』
제3권 등에도 수록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회양이 「설사 한 물건(一輧)이라고
말해도 옳지 않습니머」라는 말은 불법의
본질을 직접 체득하여 자기 자신의 경지에서
자신있게 제시한 한 마디인 것이다 회양은
이 한마디로 六祖慧能으로부터 인가 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말은『桎斟齊誼叭』
등 당대의 선 어록에 자주 인용되고 있으며,宋代에
재편된 『六祖壇經/서 혜능의 ,L,偈를
「本來無-令」로 고칠 수 있게 된 사상적인
근거가 되는 말이기도 하다
「說似一物卽不中」이라는
회양의 말이나, 「本來無-令」은 똑같은
의미로서 因綵으로 이루어진 일체의 모든
존재는 無常한 것이며, 결국은 本來의
空으로되돌아가는 필연적인 것이기에 어떤
고정된 존재로나 형체로서 이름 붙일 수가
없다는 입장을 말한다.이러한 本來麴一物의
경지를 깨닫고 제시한 말이다.『金剛經』에서
말하는 「고정된 정법이란 있을 수가없다(無有定法)」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다시 말하면
「本來撫?令」은 대승불교에서 주장하는
一셍皆空의 입장을 말한다 때문에 육조는
회양이 이러한 一셍皆空의 본질을 깨닫고
「說臥-物卽不中」이라는 질풍 같은 한마디에
곧바로 印찹河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혜능이 다시 「그러면 그대는 다시 修行하고
證斧屛해야 할 것이 있는가?(還可퓸釜람否)」
라고 재차 회양의 경지를 재확인하자,
회양은 「퓸聲證이 필요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더럽힘(汚染)이 있으면 안됩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그러자 혜능은 「이 不汚染만이
諸佛이 貢藻念하는것이다」라고 하면서
자네가 이미 이와 같그L 나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하면서 재차 회양의 修證養!을
확실히認定하고 있다
여기에는
혜능과 회양이 諸佛과 마찬가지로 不汚染의
修꼲을 체득하고 있음을 八祖慧能이 확인하여
확신시켜 주고 있는 일단인데, 不汚染의
修證觀은 어떠한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마주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수행하여 도를 이루고 부처가 되려고 하는
조작된 마음과 生夕0已,, 차별심, 분별심,편견과
고정관념이 없는 근원적인 本來L,(平常,已,)으로
일상생활을 전개하는 그 마음을 말한다.
이러한
自性淸淨한 本來心은 깨달음을 체득하여
얻을 수 있는 마음이 아니라 인간 각자가
본래 구족하고 있는 근원적인 마음이기에
「도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본래심(평상심)을 오염하지 않도록 하라'」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육조혜능도 「汚染되지
않는 수행과 깨달음(修證)」을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조의
「平雷,已,이 道」가 되는 조사선의 일상생활의
종교는 이러한 汚姜徒없는 청정한 本來의
平常,已,으로 일상생활을 지혜롭고 무애자재하게
전개하는 자각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범부의 몰자각적인중생심이 아님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러한 平常心으로 깨달음의 지혜로운
道의 생활을 전개하는 조사선의 汚染없는
수행과 깨달음은 어떻게 체득해야 하는가?
조사선의 수행과 실천구조를 語錄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조사선의
기본 정신은 자각된 근원적인 平常,已,(本來已,)으로
일상생활을 일체의 경계에 浬尊昱되거나걸림
없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생활종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사선에서 말하는 禪이란 다름 아닌 平常,已,으로
일상생활을 자유롭고 지혜롭게 살아가는고
전부를 말한다. 말하자면 禪은 平常心이
바로 다름 아닌 道」인 그 생활이며, 이
깨달음의 平常心으로부처의 경지를 전개하는
「卽心是佛」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일체의 경계에 끄달림이 없고 차별심,
분별심, 번뇌가 없는 本來心 즉 汚當葯없는
자각된 平常,已,으로 무애자재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체득해야 이러한 「平常心是道」와
「卽,已,是矛衆」의 선의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범부의 차별 심과 분별심으로
얼룩진 汚染된 衆生毛,으로는 결코 이러한
平常心으로 일상생활의 종교를 전개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유마경의
세계 불이법문과 향적불/ 강혜원
스님/불교대학 교수
제9입불이법문품
「불도품
에서는 우마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게송으로
말했고 여기에서는 대승보살 들의 법문을
듣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유마경』의
요체가 不二法門'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살 각자에게 불어에 대해서 말하게한다.
불이란 하나이다. 대립뫈 개념을 하나로
보는 것이 우마의 견해이다. 우리들은
사물의 현상을 바라볼 때, 분석하고 구별하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작용한다. 이러한 의식을
지성이라고 한다 인간의 지성이 고도로
발달하여 오늘날과 같은 문화와 문명을
확립시키기도 했지만 각자의 지성에 대한
집착과 고집으로 대림 된 세계인의 사고가
첨예화되어 분쟁으로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를 분별 혹은 知解로
분류하며 이 분별의 작용을 성립시키는
또 하나의 영역을 무분별의 세계라고 지적한다.
무분별의 세계 가운데 분별의 작용영역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분별의 세계에서는
생과 밀이 상반된 개념이지만 무분별의
세계에서는 이 둘이 하나가 된다.
이
품에서는 이러한 뜻의 '불이법문'을 l인보살이
차례로 설명해 보인다, 맨 처음 설한 보살은
법자ㅈ뛔보살이다. 생은 본래 불 생이기
때문에 멸하는 것도 없고 그래서 생도
밀도 없다고 한다덕수보살은 나를 주관,
手史不를 객팔적이라고 보고상대의 세계는
주관과 객관의 둘로 성립하지만 이는 주관이
있기 때문에 객관이 있는 것이고 주관이
없으면 객관도 없다고 하여 주객불어를
깨닫는 것이 불이법문'에 드는 방법이라고
한다, 다음 불 순보살은 取 . 捨를 불어로
보았으며 덕정보살은더러움파 깨끗함을
불어로 보았고 선숙보살은動 , 念을 불이라고
하였다.
이같이
보살들은 계속해서 '불이법문'을 설파한다
선인보살을 一相과 無相의 불이, 묘비
보살은 성문성과 보살심의 불이, 불사보살은
선과 불선의불이, 사자보살은 죄와 복의
불이, 사자보살은 유루와 모루의 불이,
정해 보살은 우위와 무위의 불이, 나라연보
살은 세간과 출세 간의 불이, 선의 보살은
생사의 열반의 불이, 현견보살은 盡과
不盡의불이, 보수 보살은 이와 무아의
불이, 뇌천보살은명과 무명의 불이, 희견보살은
색과 색골의 불이,명상보살은 사대와 허공의
불이, 묘의 보살은 육군과 육경의 불이,
무진의보살은 보시와 회향 일체 지와의
불이, 심해보살은 공과 무상과 無作의
三三昧에 있어서 불이, 적근보살은 삼보의
불이, 심무애보살혼 身과 멸신의 불이,
상선 보살은 신 , 구 .의의 삼업의 불이,
복전보살은 죄 행과 덕행과 부동행의 불이,
화엄보살은 관념과 대상과의 불이,월상보살은
암과 명의 불이, 보인수보살은 열반과세
간의 불이, 주정왕보살은 정도와 삿된
도의 불이, 낙실보살은 거짓과 진실의
불어를 설한다, 보살들의 이러한 불이
법문은 우마의 생각을 그대로 설한 것이다.
보살들은
저마다 불어에 대해 말했지만 아직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보살들은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에게 질문했다. ''보살은
어떻게해서 불이 법문에 드시오'' 문수는
''일체법에 대해연설도 없고 보임(示)도
없으며 갖가지 문답을 여의는 것, 이것이
불이 법문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오.''
다른 보살들은 둘로 대립하는 것이 불이이라는
점을 열심히 설명한 데 반하여, 문수는
일체의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고 말에
의해 알 수 없고 모든 문답해서 떠난 것이
'불이법문' 이라고설했다. 모든 분별을
떠난 자리, 지성에 의해서도 파악될 수
없는 것, 개념에 의해서는 도저히 들(入)수가
없는 것이 불이법문'이라고 설한 것이다.
문수는
이번에 유아에게 질문했다. ''지금까지우리들은
각자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했습니다.이번에는
어진사께서 불이 법문에 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설해 주십시오'' 그러나
유만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일체법은
말로도 설명으로도 안 된다'고 설한 문수로서는
이를 행동으로 보인 우마의 모습에 크게
감탄하며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문자로도
설명되지 않는 것, 이것이 참된 불이 법문에
드는 것이다.''
진실로
불이법문'에 드는 데는 문자. 언설이필요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여기에 있었던
보살오천명은 결국 전부 불이법문'에 들어
우생법인이라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
우마의 침묵은 절대의 세계를 표출한 것이고
'언설의 극치' 였다.일체의 개념과 그
개념에서 온 망상과 집착의 허물을 벗겨
버린 것이다. 순간 문수의 입에서는 감흥의
소리 기쁨의 소리가 흘러 나오고.
제10
향적불품
유마의
침묵은 眞空이며 妙有이다. 이러한 진공모유의
세례와 그 작용을 종낑으로 설한 것이
「향적불품」의 내용이다. 우마의 방에서
사리 불은 이런 생각을 했다. ''정오가
다 되어 가는데 이 많은 보살은 무엇을
먹을까?'' 사리불의 마음을 안 유만은
아직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미증유의 음식을
들게 하고자 하였다. 유만은 깊은 삼매에
들고 신통력으로 대중에게 한 나라를 보여
주었다 그 국토는 항적이라는 부처님이
계시고 향기로 가득 차있으며 성문 벽지
불이 없고 깨끗한 대보살들만이 살고 있고
이들에게 부처님은 끊임없이 법을 설하고
계시는 중향국이라는 나라였다.
그때
부처님은 보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계시었고
향임이라는 천자가 공양을 바치고 있었다.유마는
대중들에게 ''여러분 중에 누가 저 부처님의
밥을 얻어 올 수 있겠소?'' 보살들은 문수보살에게
미루지만 문수 역시 선뜻 나서지 않았다.
유만은 대중들 앞에서 한 보살을 만들어
냈다. 유만은 그에게 중향국에 가서 세존께서
남기신 것을 얻어 오도록 하였다.
화신보살은
우마의 말대로 상방 세계로 올라가 인사를
전하고 향적여래는 발우에 밥을 가득 채워화신보살에게
주었다. 그때 구백만의 보살들이 일제히
사바세계로 가서 석가모니에게 공양하고
우마를 만나고 싶어했다. 향적여래는 이를
허락하策화신보살은 구백만의 보살들과
함께 순식간에 우마의 집으로 돌아왔다.
유아에게 향반을 바치니 이 밤의 향기가
삼천 세계에 진동하였다.
유마의
방에 있었던 많은 보살과 불제자들이 배불리
먹어도 그 향반은 줄어들지 않았다, 유만은
중향국의 보살에게 향적여래는 어떤 법을
설하는 것인가를 물었다. ''여래는 법을
설하지 않고 우리는 가지가지 향으로써
계율을 지키려고 하며 그 묘 향을 맡으면
'일체덕장삼매'를 얻고 그 곳에 의해 보살들은
모든 공덕을 구족한다''고 하였다. 중향국의
밥은 이러한 내용의 향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중향보살이
유아에게 위탁으로 가득한 세상을 정토로
바꾸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물었다.유마는
열 가지 법과 여덟 가지 법을 실행하면
된다고 이른다 즉 요익중생을 하지만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에서부터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갖가지 공덕을 구ㅎ누 것까지를
말한다. 사바세계에서 대승불교의 보살이
지향하는 법을 말한 것이다.인간은 한없이
더럽지만 또한 한없이 아름다운 존재이기에
이러한 대승법을 실천할 수 있음을 유마는
보인 것이다.
일주문 선과
교/정성본 스님/경주캠퍼스 정각원장
한국불교에서는
일찍부터 교학을 버리고 선수 행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拷敎入禪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경전을 배우고 익히는 교학 불교보다
경전에서 제시하고 있는 그 가르침을 직접
선수 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生死大事를
해결하도록 주장하고 있는 말이 다.
여기서
문제점은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버리고
禪체험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二元的인
구조에 있다. 불법은 교에서 선으로, 혹은
범부의 세계에서 성인의 세계로 나아가는
실천을 제시하는 어리석은 교설의 종교가
아니다. 선과 교, 혹은 범부와 성인, 선과악
등 이러한 두 가지의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경계를 모두 한꺼번에 떨쳐버리도록 하는
수행이, 올바른 깨달음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수행인 것이다.
그런데
捨敢入禪을 강조하면서 경전과 어롬을
무시하고 참선 수행만을 무조건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선불 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언어 문자로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不立文字」와 참된 부처님의
가르침은 경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에서 제시한 이정표를 각자가 직접
수행하여 그 경지를 체득해야 한다는 「敎外別博」의
참된 의미와 근본정신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심지어는 不立文字를
잘못 이해하여 경전과 어록을 보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많은
경전과 어록이 존재할 의미는 없는 것이다.
불교가 전승되고 많은 불 보살과 선지식이
출현할 수 있는 것도 경전이 있었기때문이며,
우리들이 참선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체득할 수 있는 것도 경전과 어록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전과
어록은 문자이니 가까이 하지 말라고 강조하고있다,
당대의
많은 조사들이 경전을 읽고,어록을 읽는
참선생활을 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참선수행은 오로지 한 가지를
실천하는 一行三昧가되어야 깨달음의 경지를
체득할 수가있다, 그러나 경전과 어록을
무시한 참선수행은 장님이 지팡이 없이
길을 가는 모습과 같다. 경전과 어록은
장님의 지팡이와 같고, 험한 숲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의 이정표와 같다. 때문에 언제나
경전을 옆에 두고 수시로 보고 확인하며,
자신의 인생행로에서 지혜왜인격을 형성하는
가치 기준과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
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참선 수행을 통해
근원적인 본래심을 자각하고견성성불을
했다고 하여 부처님과 같은 一切智가 구족
되는 것은 아니라는것이다. 본래심을 자각함은
만법을 바로 볼 수 있는 지혜를 구족 하기
위한수행인데, 인간은 체험된 사실만을
토대로 하여 지혜의 안목이 형성되는 것이다.
불성(본래심)에 구속된 지혜를根本智라고
하고, 다양한 번뇌와 고뇌를 수행과 체험을
통해서 체득한 지혜를 嶽乍튬智라고
한다. 사실 인간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일어나는 다양한 고뇌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의 힘은 t艮本智의 안목이라기 보다는
고뇌와 수행을 통해서 체득한 체험의 지혜(斧棄早븅智)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법문을 일반적으로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중생의 고뇌와 번뇌가
팔만 사천이나 되기 때문이다. 팔만 사천이란
고정된 숫자가마니고 무수하게 많다는
의미인데, 무수하게 많은 중생들의 번뇌.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당하는 법문의
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생구제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편으로 치료할 법문의
약이 필요한 것인데, 이러한 방편의 법문은
체험을 통한 지혜의 약인 것이다.
대승불교의
정신은 四弘誓願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가없는 중생을 모두 구제하기 위해서는
한량없는 법문과 위 없는 불도를 이루어야
한다. 다양한 중생들의 번뇌 . 병을 구제하기
위해 붓다나 조사들이 체험을 통해서 중생구제를
위한 지혜의 약으로 제시한 방 편법문의
事芋列가 경전이며 어록인 것이다.
인간의
경험과 체험을 통한 지혜야말로 확실하고
힘있는 지혜의 안목이다. 그러나 인간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 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직접 체험하거나
경험할 수 없다.한없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중생들의 모든 고뇌와 번뇌의
병을 모두다 직접 체험하여 이에 대한
처방의 방편 법문과 약을 제시할 수가
있어야하지만,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중생구제의 방편 법문으로
제시한 경전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익혀서
이를 자신의 수행과 간접체험으로 만들어
자신의 지혜와 인격형성의 좌표로 삼고,
중생구제의 방편 법문으로 제시할 수 있는
지혜의 안목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경전과
어록을 통한 다양한 지혜의 말씀을 통해
각자 올바른 불법수행의 방향을 설정하여
폭넓고 사상의 심화를 이루는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
불심의
창 20년 화두/ 김득영/반도체과학과
조교수
어머님
손에 잡혀 산사를 찾아 부처님 전에 절하며
예를 올리던 인연으로 해서 일찍부터 나는
불교를 신앙 종교로 갖게 되었다,
그렇게
애써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찾아간 법당에서
어머님은 그 땀이 채 식기도전에 다시
마룻바닥이 흥건하도록 왜 또 그렇게 많은
땀을 흘려야 했는지 그 당시에는 잘 몰랐다.
불교와 관련한 교리는 물론이고 법당의
근본 예절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참배를
마치고 법당문을 나서는 어머님의 얼굴이
근심을 잊은 모습인지를 확인하는 것 따위는
더더구나 나의 관심 밖의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입이 까다로웠지만 절밥만큼은
아무런 투정 없이 잘 먹어대는 날 보고
절에서 살면 입에 맞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을 것이라던 어머님의 말씀이 과히
싫지만은 않았다.
산사를
찾아가는 길 옆 잔잔히 여울져 흐르는
시냇물 소리 보다는, 그 물 속 개구리와
가재를 잡아 싸움을 시키던 일이 더재미있었다.
그러는 사이 어머님은 벌써 산모퉁이를
훠이훠이 돌아서고 있었고, 상수리 나무는
두터운 그늘로 모자의 땀을 식혀주었다.
일주문 지나 돌계단을 다 오르기도 전에
부처님 무릎만 보아도 이내 또아리를내려놓고
합 장례를 올리던 어머님의 모습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내 시선은 이미 법당지붕을
넘어 가을 빛에 여물어 가던 밤송이에
꽂혀 있었다.
그
시냇물이 다시 얼어붙고, 하늘을 가리었던
나뭇잎들은 삭풍 거센 겨울 산에 수북이
쌓이고 다시 그 위에 눈이 덮히고......그래도
여전히 산사 오르는 길은 멀지 않았고
풍경소리는 언제나 정겨웠으며 법당내향촉은
밝고 따사로웠다. 그리고 참배 후에는
점심공양이 늘 기다려졌다.
어린
시절 가족들이 눈을 뜨기도 전에 어머님은
벌써 일어나 와중의 아버님 머리맡에 앉으시어
지성으로 불경을 독송하셨다.
南無大悲
藿駐국坍音
願我早乎튱
越苦海
千手經
중의 한 구절이라는 것을 안 것은 내가
한참 자란 후였다.
대학에
들어와 불교와 관련한 여러 문화를 접하고
강의도 듣고 법회에도 귀동냥 눈 동냥을
하였지만 아직도 어째서 불교를 신앙종교로
하느냐고 누가 물어 온다면 그저 주저할
뿐이다, 信d已셰 부족하다고 할 밖에 달리
변명할 여지가 없다, 아마 불교신도자격제도라도
있어서 시험을 볼라치면 몇 날 며칠을
꼬박 새워 공부해도 영락없이 낙방 감일
것이니 그러하지 않은 현실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대학
시절 나의 불심 같지 않은 불심에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
보존법칙이니 질량 보존법칙이니 하는
소위 자연의 기본 보존법칙이 내가 이
저런 기회에 들어 알고 있는 布若心經
중의 한 구절에서 가르치고 있는 내용과
너무나 일치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대학 1학년때 불교학계론 과제물로 般若毛,經
全文을한글과 漢字로 각각 50회씩 써 오라고
하시던 그 선생님 덕분이다. 그 어려운
한자로 된 經文을 간신히 그려낸 것으로
기억되나 다행히 玉篇 없이도 읽어낼 수
있었고 가뼙게 나마 뜻을 직감할 수 있었던
구절이 있었다.
'不生不滅
不淨 不增不簒咸'
앞
뒤 구절을 잘라낸 것도 천하 무례한일이거니와
또 이것만으로도 오래전부터 여러 스님들이
그 오묘한 뜻을 헤아리고자 무척이나 고심
고행하였을 것임을 짐작하면서도 왜 이
구절만이 나의 뇌리 속에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色空論이야 고등학교
시절에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그뜻을
다 알았다는 것은 아님), 이어서 이러한
엄청난 설법이 예속되고 있는 줄을 그때는
차마 몰랐다. 마치 큰 발견이라도 한 듯
우쭐해 하고 나름대로 자연과학의 근본
법칙이 불교 교리에 근원하고 있다고 껍죽거리던
것이 엊그제 일인 것 같은데 벌써 이십여
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고, 사실 지금이나
그 때나그 런 단편적인 해석에서 크게
발전한 것이 없어 부끄러울 뿐이다. 나의
전공이 불 교학은 아니니까, 또 나의 주관심사가
자연과학과 불교학과의 상관성을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고 그냥 넘겨버리자니
왠지 아쉬운 감이 있다. 그렇다고 이 일에
골몰하여 하나하나 실타래를 풀어나가자니
자연과학을 그것도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답지
않게 보존법획에 관한 한 교과서 수준에서
더 이상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i芟學임을
확인케 해 준다. 불교 관련 강의를 좀
들었다고 또 불교신도라고 자칭하는입장이면서도,
더욱이 불교송림 대학 선생이라는 자가
기본 경전에 蒲弱하고 무식하기 비할 데
없다. 어디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할
지 도시 감이 잡히지를 않는다.물론 이미
현대과학과 불교사상과의 상관성에 관하여는
벌써 고래로 많은 현인들이 강론하였고
관련한 법문도 적지 않다. 평소 바쁜 척하지
말고 관심을 갖고 틈틈이 책을 가까이
하였다면, 잡념 버리고 법문에 귀기울이었다면
이런 난처함은 없었을 터인데이제 할말이
없다,
함축적
의미가 너무도 강하고 또한 그 뜻을 헤아려
옳게 해석하는 방법에도 긴 세월이 필요한
불가의 가르침을 속세의 匹夫가 물리적
법칙과 수학적 공식에 의존하여즉설적으로
풀어 해석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무모하고
방자하기 그지없는 일이겠지만 이제 이
상관성에 나름대로 깊이 있게 주석해야
직성이 풀릴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蓼昧하고 어리석어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30년 이상 산사를 찾던 자연과학도가 할말은
아닌 듯싶다.
요
몇 년 전 초파일, 식솔들을 데리고 곳주
동학사 근처 아내가 즐겨 다니는 암자를
찾아갔을 때 아들놈이 한 말에도 명쾌한
해답 없이 어눌해 했던 일이 어제처럼생생하다.
''아빠,
부처님이 낮에 오시면 燈이 필요없잖아요!''
南擅大悲
菰凱汁坵音
原我早孑曆
智慧眼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진구 교수님/ 편집부
전자공학과
이진구 교수님을 만나러 가는날, 동국도량에
가을비가 단풍을 재촉하던 날이다, 연구실이
아닌 반도체 실험실에 계시다는데 반도체
실험실은 어떤 곳일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엇엔가 몰두해 있는연구생들,
연구자료가 쌓여 있는 교수님 책상은 보기에도
기분이 좋았다, 이런 연구실에서 무언가
이루어지고 있구나 생각을 하니까 동국의
미래가 밝게 보인다면 때늦은 희망일까?''동국에서
열 다섯 번이나 가을을 맞이하고보내면서도
가을이 가고 오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했다,''는
이진구 교수님의 말을 들으면서 참 그동안
많은 것에 열중했구나, 또 앞으로도 그렇게
연구해 가는 분야에 열중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이런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그렇게
보면 이진구 교수님은 행복한 사람이다,
세월의 오고 감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니 말이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
것만큼 늙어간다는 말이 있는데, 어찌
보면 끊임없이 무언가 새로운 것, 더 진보적인
학문을 찾아 연구하느라 가을이 따로 없다는
이교수님 말에는 젊게 사는 비결이 포함되어
있는 듯도했다.
연구해
온 분야가 '집적 회로' (集積回路)라는데,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전자재품 전반적인
것에 다 해당이 되는 이 분야인데도 우리는
모르고 산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살아갈 필요는 없겠지만, 때로는
아는 것만큼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요즘은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재단에서
주관하는 ''밀리미터파 신기술 연구 센터''에서주도하는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연간 9一i0억원을
지원 받게 되고 우리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님들과 외부 대학교수님들 약 21명이
참여하는 연구라고 한다-그 연구가 한국의
미래, 전자분야의 학문과 기술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연구가 된다면 얼마나 뜻 있는
일이겠는가....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에서
석사와 쩜f사 학위를 받고, CRAY 연구소에서
연구를 한 세월만도 적지 않은 것같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이
한번 바뀌고도 몇 년을 더 보낸 시간은
헛되지 않은 듯 하다,
동국대학교
내에는 교수님들을 중심으로 한모임이
더러 있는데, 그 중에서 좌선 회 라는
모임이 관심을 갖게 했다, 일주일 중에
금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정각원 법당에
나와서 고요하게 정좌를 하고 앉는 모임이다.
학생들의 발길이 시작되지 않는 이른 아침
시간, 고요한 정각원에 앉아 있는 느낌은
여러 말이 필요없고 ''참 좋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고한다. 꼭 그 시간만이 아니고
집에서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거의 날마다
좌선을 한다는 이진구 교수님은 학생들
앞에 서기 전에 그렇게 늘 자기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 다고. 좌선을 해보니까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이 있어서 동료교수들에게도
많이 권해 보는데, 그 느낌을 충분히 전하기에는
알고 있는 단어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렇게
앉는 시간에 늘 어떤 화두를 챙기고 계시냐는
필자의 질문에 ''전자를 알고 싶다.''는
그 한 마디 뿐이다. 이교수님은 짧은 단어로
많지 않은 적은 말로 마음을 다 전하는
기술도 있는 것 같다. 전자를 알고 싶다는
마음은 아마 이진구 교수님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선사들이 깨달음을 향해 참 구하는
그 화두만큼이나 진지하고 철저한 정진일
것이다.사람은 누구에게나 일생에 해결하고
싶은 과제가 있을 것이다. 그 분야가 학문일
수도,명예 일수도, 재물일 수도 있고 더
근원적인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
일수도 있지 않을까. 선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일통 일체통''이라는 말.
한가지에
통하면 다른 것에도 통할 수 있다는 말일텐데,
수행을 하는 일도 그렇지만 평생을 받쳐
정진하는 연구 분야에도 다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환경은 자연과 인간,사물과
인간 이 모두가 다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수행자가 깨달음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듯이 그렇게 전자를 한죙 정진할
것이라는 다짐도 ''전자''를 알고 싶다는
그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이진구
교수님은 어렸을 적 어머니 손을 잡고
산사의 문을 드나들면서 부처님과 자연히친해졌고,
대학을 다닐 때 룸비니라는 불교 학생회에서
불심을 키워왔다. 유학을 하는 동안에
간절한 어머니 편지를 한 통 받았다. 막대여동생이
출가를 결심했다고, 그것을 오빠로서 좀
말려 달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편지였다.
이교수의 대답은 역시 간단했다. ''동생이
저보다 더 현명한 삶을 택한 것인지도모릅니다,
앞으로 값지고 큰 일을 할 수 있을것입니다,
어머니 허락을 해 주십시오.'' 하는대답이었다.
그
길로 여동생은 출가했고 의젓한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동생을 보면 마음이 왠지 든든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불가와는 돈독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고, 동생이 스님이라서 부처님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어지는 일련의
인연들이 다 자기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인연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지 않은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수도있고, 숙연으로 오는 인연일 수도
있다. 지금하고 있는 것이 다 인연으로
연결 지어지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하는
이진구 교수의 마음엔 또 어떤 인연이
새롭게 싹트고 있을까,이진구 교수님이
교수로서 바람이 있다면''따뜻한 제자들을
키워보고 싶다''는 것이다.유명한 전자공학도가
먼저 되는 것보다는 따뜻한 가슴이 있는
한 인간이 먼저 되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제자들에게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는 스승의 마음을 제자들은 얼마나
알까, 낮추고 낮은 소리로 당당하게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진구 교수님.
불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계속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일상에 실천하며 사는 것이 바람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이교수님.....
다가오는
가을 들녘에 결실처럼 하시는 모든 일이
如尨하게 성취되시길 기원합니다.
불교문학 불교와
인도 문학의 토끼전/ 정승석/불교대학
교수
우리
나라의 전통 음악인 판소리를 통해 널리
알려진 토끼전을 일반인들은 우리의 고유한
민담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렇게
생각하면, 토끼전은 우리의 옛 사람들의
문학적 재치가 뛰어났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예로 간주되기도 할 것이다. 이 토끼전이라는
명칭은 별주부전(鼈主簿價) 또는 토생원전(兎生員博)의
속칭이다.
그런데
토끼전의 내용은 불전(佛典) 중의 불설별미후경(佛說鼈緬廟配)에서
소재를 구하여 각색한 것이다, 그리고
이 불설별미후경의 내용은 인도의 유명한
설화 집인 『판차 탄트라』에 나오는 하나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다만 원본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인 악어와 원숭이가 불전에서는
자라와 원숭이로 바뀌었으며, 원숭이가
없는 우리 나라에서는 토끼가 원숭이 역을
맡았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민담에서는
이 이야기 가두 주인공 중의 자라를 앞세울
경우엔 별주부전으로 불렸고, 토끼를 앞세울
경우에는토생원전으로 불렸다.
불설별미후경은
불전의 분류에서 본생 담에 속한다. 그
내용은 부처님이 기수급고독원에 머물고
있을 때, 포지(暴志)라는 비구니가 부처님을
비방하였다는 소문을 들은 부처님이 여러
비고들에게 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요지를 이러하다.
옛날에
자라와 원숭이가 사이좋게 살았다. 그런데
자라의 아내는 둘의 우정을 시기하여 원숭이를
없애려고 하였다. 자라의 아내는 꾀병을
앓으면서 자라에게 원숭이의 간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자라는
원숭이와의 우정을 생각하여 망설였으나
아내의 성화에 원숭이를 죽이려고하였다.
자라는 원숭이를 꾀어 자신의 등에 업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야 그 사실을 고백하였다,
원숭이는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간을
나무에 걸어 놓고 왔다고 자라에게말했다,
원숭이의 말을 믿은 자라는 다시 뭍으로
돌아왔다. 뭍으로 돌아온 원숭이는 나무에
올라가서 간 없이 사는 목숨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하면서 자라를 놀렸다.
부처님은
이 같은 이야기를 마치고, 자라의 아내는
표지의 전생이었고, 자라는 조달(調達)
즉 부처님을 음해해 왔던 제바달다의 전생이었으며,
원숭이는 부처님의 전생이었음을 알렸다,
이
이야기의 소재는 불설분위비구경(佛說分衛比丘桎)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는 분위(分衛)라는
비고가 탁발하러 다니면서 어떤 채녀(采女)의
집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얻고 재녀에게
추파를 던지다가 쫓겨났던 사건이 이야기의
발단이다, 부처님은 이 사실을 알고 그에게
훈계한 후에,옛날에 어떤 자라가 원숭이에게
음심(")從,)을 일으켰다가 원숭이에게
모욕을 당했던 일을 설한다. 이 경우에는
자라가 분 위 비고의 전생이고, 원숭이가
채녀의 전생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는 자라가 원숭이에게 음심을
일으켰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이제 이 이야기의 원본이 되는『판차 탄트라』의
이야기를 보면, 그렇게 각색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섯 주제로 분류한『판차
탄트라』의 제4편의 주제는 '획득한것의
상실'이다. 이 주제에 속한 첫째 이야기가
바로 '악어와 원숭이의 이야기'이다.이야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어느
해변에 열매가 많이 열리는 잠보나무가
있었고, 여기에는 원숭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원숭이는 나무 아래서 뒹구는
악어에게 열매를 던져 주었고, 이리하여
둘은 친구가 되었다. 악어는 둘이 놀다가
먹다 남은 열매를 집으로 갖고 가서 아내에게
주곤 하였다,
어느날
악어의 아내는 그 열매를 어디서 구했는지를
묻고, 그렇게 맛있는 열매를 먹고사는
자의 심장을 먹으면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 친구의 심장을 빼내 오라고 악어에게
부탁했다, 악어가 깜짝 놀라며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대답하자, 악어의 아내는
둘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그
원숭이는 암컷일 것이며 악어의 애인일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그 원숭이가
애인이 아니라면, 원숭이의 심장을 가져
와서 그 사실을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악어는
어쩔 수 없이 아내의 요구에 응하기로
하고, 원숭이에게 가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친구에게 얻어 먹기만했으니,
오늘은 친구를 자기 집으로 꼭 모셔 와서
접대하자고 아내가 당부했다는 것이었다.
원숭이는 악어 부부가 자기 집으로 오는
것이 더 좋겠다고 했지만, 악어는 자기
집이 바닷속에 있지 않고 경치 좋은 해변에
있다면서 원숭이를 자기의 등에 태워서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이에
원숭이는 악어의 등을 타고 바다로나아갔다.
바다 가운데로 나가자 악어는 안심하고서
원숭이에게 사실을 말했다. 친구에게 미안하게
되었지만, 아내가 원숭이의 심장을 먹고
싶어 해서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숭이는 그런 사연이라면 왜 진즉
말하지 않았느냐고 악어를탓하면서, 자기
심장은 그렇게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항상
잠보나무의 구멍에 감추어놓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러니 이제라도 뭍으로 가서
그 심장을 찾아 오자고 악어에게말했다.
원숭이의
그럴 듯한 말에 속은 악어는원승이를 데리고
다시 잠보나무가 있는 해안으로 갔다,
해안에 닿자마자 원숭이는 나무로 뛰어
오르면서 옛 교훈을 상기했다.''믿지 못할
상대는 아예 믿지를 말라. 설사 믿을 만한
상대라고 할지라도 절대 어느 정도 이상은
믿지를 말라. 이 경고를 무시하면, 반드시
낭패를 당하리라.''
원숭이의
조롱을 받은 악어는 비밀을 발설한 자기의
입이 화근이라고 자탄하면서원승이와의
우정을 회복하고자 변명을 늘어놓았으나,
원숭이로부터 매몰차게 외면을 당하고
말았다,
『판차
탄트라』의 이 이야기는 원숭이기상기한
옛 교훈을 강조하기 위해 구상된 것이다.
불교측은 이 이야기의 골격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인과의 필연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수행자에게
바른 행위를 권하고 있다.
열린미당
1 부처님께 띄우는 편지/ 최가영/불교학부
2년
부처님!
초가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습니다.
인도에선
초가을이라는 것이 없었겠죠. 한낱 먼지와도
같은 '나'라는 존재의 제가 그 느낌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비를
보며 쓸쓸함을 느낍니다.이런 날은 아주
부드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감상적인 분위기에
젖곤 합니다. 이것은 아직도 저의 수행이
아주 모자란다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부처님처럼
고행과 선정을 통한 해탈은 조금도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단지 눈에 보이고 느끼는 것들만
추구하丑 그것들에게서 기쁨을 느끼고
때론 고통도 느낀다는 것이 참으로 부처님께
부끄럽습니다. 아니, 제 자신에게 더 부끄럽스니다.
아무런 행동의 변화 없이 부끄럽다 하는
것은 진정한 부끄럼이 아닐 것입니다.
가끔은 산다는 것이 아주 흐뭇할 때도
있지만 솔직히 사는 건 참 허무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불교는 결코 허무주의는
아니라고 하셨지만 아무래도 저는 불교인이라고
말을 하지만 아마도 외도인 것 같습니다.
부처님을
존경하고 있지만, 부처님처럼 살아가지
못하는 제가 한심스럽습니다. 『옆처경』이란
경전을 접할 기회가 있어서 조금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정말 그 경전을 읽고
경외로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육체의 해체에 관한 명상입니다.
죽어서 몸이 부풀어 오르고 또 보랏빛으로
바뀌어 벌레에게 먹히고 서서히 먼지로
바뀌는 지점까지 명상하는데, 자신의 육신도
그러한 과정을 밟아 가리라는 것을 느끼면서
명상하라 했습니다.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를
때, 마음과 심장이 빛과 정적에 이르기까지
죽음에 대해 명상 하라 했습니다. 그리해서
죽음에 대한 걱정과 공포를 이겨내면 삶은
소중한 것으로 보이고 생명의 순간 순간
가치있는 삶으로 보일 거라 했습니다.
저는 아무리 죽음에 대해 미소를 띄우려
해도 그것이 잘 되지가 않습니다. ''제가
죽는다''제 몸이 썩는다''는 생각을 하니까
공포에 질리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서 죽으면 지옥에 갈까봐
그런 것일까요?
부처님!
삶이 두렵습니다, 그렇다고 죽을 용기는
더더욱 없습니다. 집착일까요? 아니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를 잘 몰라 더욱
삶이 두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순간은
즐거워도 늘 마음이 어둡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노스님,친구들. 주위에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그분들이 힘들 때 제가
현명해서 고통을 덜어주고 싶습니다.가장
근본적인 고통은 윤회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고통들을 제가 해결해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기엔 저는 너무도 작고 못났습니다.
우선은 제 자신도 추스르질 못하고 있으니까요.
부처님께서 비록 저희들 앞에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투심이 없으시다 해도 부처님의
소중한 말씀들은 정말 너무도 깊고 깊어서
저 같이 그릇이 작은 중생은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 갈피를 못잡겠습니다. 부처님!
삶이란 정말 오묘한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한량없는 법을 다 알려면 얼마나 큰 그릇을
지녀야 하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제 근기에 맞춰서
조금씩이라도 부처님 법을 실천해 나간다면
언제가는 삶에 대한 옳지 못한 생각들을
변화시킬수 있겠죠.
정말
분명한 것은 저는 평생 부처님을 존경하고
부처님 법을 따르고 실천할 것입니다.
게을러 질 때 마다부처님의 수행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열린마당2 부처님께
띄우는 편지/김서리/불교학부 2년
너무
감사합니다. 결국 부처님께 글을 올리게되었습니다.
근래에
마음이 참 굳게 닫혀서, 아니 제 스스로
마음을 닫으려고 해서 법당에 나가기가
힘든 적이 많았습니다. 연등을 빚는 일도
예불 나가는 것도 하나보면 마음이 열리고
사람들 마음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
일부러 숨으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만큼
부처님께 글을 올리는 일도 죄스러운 맘만
생겨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이 닫혀 있어도 밥을
먹을때, 수업을 받을 때, 햇살을 받고
바람을 탈 때 등등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잡아 끄는 열린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제
햇살을 따뜻하다 느낄 줄 알게 되국 기차소리를
들을 줄 알게 되고 제가 개구리를 잡으며
뛰어 놀던 소녀라는 것도 기억하게 되策저
또한 밝은 아이였다는 것도 짚어볼 수
있게되고 제 법명이 청정 행이라는 것도
다시금 마음에 새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부처님 공부를 생활화 하자며 애쓰던 '육바라밀'
법무들도 마음에 들어오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서리야'' 하고 부르시면서도 늘 따뜻하게
지켜봐 주신 우리 임관스님도 느껴지고
아침 예불을 끝내고 식당을 가득 메우던
'금불회' 법우님들도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제 그릇이 작아 아직은 미세하지만 넓고도
갚은 가르침으로 저의 삶을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늘 곁에서 계셔 주시던
부처님! 마음의 부처님1
이렇게
부처님을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청정함
속에서 부처님을 불러 볼 수 있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요즘
근본불교를 배우면서 울기도 하策 놀라기도
하고 희열 감에 가득 차서 미친 듯이 웃기도
합니다. 어떤 진리가 절실하게 현재의
제 삶에 맞아 떨어질 때가 있는데, 지식으로는
마침표를 찍으면서도 결코 깨끗하지 못한
제 실생활이 스스로를 힘들게 한 적도
많았습니다.
또
마음도 생활도 잘 살피지 않고 대충 살아갈
땐, 어떤 가르침도 말장난처럼 느껴지던
나쁜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 어떤 외부도 제 마음을
투영시킨 결과이고 다시 제 마음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지금이 제 자신의
ㅁ惜을 열고 마음을 밝히고 맑게 하는
때라는 것도 알았습니다.한때는 너무나
감정에 치우쳐 살았었고 한때는 너무나
이성에 치우쳐 살았었는데 착한 바보도
냉정한 방관자도 결코 지혜와는 멀리 있는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과거에 어떤 방랑의
삶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렇게 제자리를
찾아왔습니다. 부처님을 부를 수 있는
이 곳의 제자리 말입니다. 가끔 그 감사하는
제자리조차 팽개쳐 두고 떠날 때도 있지만,
늘 보이지 않는 끈이 있어 찾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 오늘 저는 저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부처님이
계시고 스님이 계시고, 법우님들도 계시고
제 참 마음자리가 있는 이 자리에서 바람을
탈 줄 아는 청정 행으로서 살아가렵니다부처님
!저희 모두의 삶에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가람의
진수 수덕사/ 유문용
수덕사에
대해서 확실하게 기록된 문헌자료가 없어서
그 내력을 찾라가 어렵다. 몇 군데에서
찾아본 자료에 의하면 백제시대 침류왕2년
385년에 인도스님 마라난다가 동진에서
와서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백제 법왕
원년 599년에 지명멉사가 창건했다고도
나온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인 문무왕
2년 662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백제말엽 숭제법사에 의해서 지어졌다고도
한다.
이
수덕사 덕숭산(德崇山) 남쪽에 있는데
원래가 이 지역에 이 롬이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속한다. 덕산이라는 산은 중국
후난성의 남서쪽에 있는 산이라고 하는데
선종(禪宗)의 포교 지로 유명한 산이라고
한다. 대개 큰 가탈이 있는 산에는 이렇게
중국에 불교와 인연이 있는 산에 이름을
따는 수가 많다. 강원도 오대산에도 그렇고
낙가산의 경우도 있고 그났의에도 많은
예가 있다. 일주문에 ''덕숭산 수덕사''라고
되어 있다. 그 안쪽에 붙은 있는 현판에
''동방제일선원''이라는 글이 손재향 서예가의
글로 되어 있다. 한국땅에 중국에 선종의
포교 지로 유명한 덕 산에 이름이 붙여졌고
이 절이 닦을 修자에 덕이 있는 滑자를
쓰는 수덕사라고 한다면 ''참선으로 수양을
닦아서 많은 덕을 쌓는다''는 의미가 있는
절이라는 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수덕사에는 대응전이 국보 49호로 지정된
고려시대에 집인데 우리 나라에 몇 안
되는 고려시대의 건축물이다.'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는 목조건물은 고려
중기로 보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있고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의 예를
들 정도로 건축사에서 귀중한 자료가 되는
건축물이다, 이 수덕사 대웅전이 고려시대로
부터는 연대가 확실하게 나온다. 1934년부터
1940년 까지 해
체보수공사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 지금은 작고하신 임천(林泉)
선생님이 단청과 벽화를 그대로 베껴내는
모사작업을 하였다. 화반 하단과장혀 하단에서
먹 글씨인 묵서명(墨書銘)을 찾아내었다.
이 묵서명은 흰 선인 백분으로 씌어져
있었는데 조선 중종 23년 1528년에 단청을
개재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벽화를 분리하는
작업중에 고려 충렬왕 34년 1308년에 대웅전을
중건했다는 기록이 나와서 이 대웅전이
1308년에 중건이 되
고
그 당시에 그려진 벽화도 원래의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
이
모사도는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이냐 지고
갔고 벽화가 그려진 벽을 깨어짐이 없이
잘 떼어내서 보관이 되어 있었는데 5년뒤인
45년에 광복이 되고 또 5년뒤인 50년에
6.25 전쟁이 일어 나면서 혼란기가 오게되자
오랫동안 방치상태가 되어서 이 귀중한
벽화는 모두 흩어지고 부서져서 없어졌다고
한다,
그나마
몇 장 남아있는 모 사도는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완질은 아닌 것
같다.
들어가는
길 목에 빼곡이 들어 서 있는 식당과 상점들
사이에 짜이진 돌다리를 보게 되는데 다리의
이름이 덕숭교이다. 이 덕숭교가 요즘
만들어진 것 같지 않다고 본다. 그 다리에
교각(橋脚)을 쌓은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이 계곡이 그렇게 넓지도 않온데
중간에 교각이 있다. 교각이 다리에 폭
만큼 길게 되어 있는데 교각의 형태가
신라시대로 보이는 경주의 남천 내에 있는
월정교외 같이 생겼다. 계곡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삼각형으로 삐죽하게 쌓아 올리는데
양 편모도 그렇게 하였다. 이런 양식은
신라시대 이후로 옛날 다리에서 많이 보게
되는 양식이다. 또 돌을 쌓아 올린 양식을
보면 잘 다듬어진 돌들을 수평으로 가지런하게
쌓아 올려서 옛기법을 잘 살리고 있다.
이 교각 위에 다리 상판(上板)도 통돌로
다듬어 얹었고 난간도 옛기법대로 잘 되어있다.
물론 조금섹은 보충을 해서 이 덕숭교를
보수로 했지만 옛 모습이 잘 남아 있다.
조금더 홀라 가면 다리가 하나 더 있는데
이 다리는 해탈교이다. 덕숭교를 건너면서
모든 잡다한 부정한 마음을 맑은 계곡물에
씻어 버리고 해탈교에서 해탈된 마음으로
다시 계콜을 건넌다면 부처님께 청정한
마음으로 예불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매표소와
안내판 사이로 계단을 졸라서 절로 들어가게
되는데 3단을 올라가게 된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에는
'덕숭산 수덕사''라고 되어 있다. 이 글은
손재형 선생이 쓰신 것으로 되어 있다.임언년
맑은 가을철에 썼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 임인(壬寅)년은 1969년이 된다. 이
일주문이 1969년에 세워졌다는 말이 되겠다.
그리고 그 안쪽에 붙어 있는 현판에는
''동방제일선원''이라고 되어 있는데 역시
임인년에 손재형 선생이 쓴 것으로 되어있다.
전면에 있는 현판과 내부에 걸려있는 현판이
다른 경우와 달리 세로방향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액자를 걸 때에 가로 방향으로
하는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현판을 모두
세로방향으로 세워서 걸었다.
여기서
계단을 따라 더 올라가면 ''황하정루각''이
보인다. 이 집이 법당 앞에 있는 누각(樓閣)인데
7칸에 3칸으로 대단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이 누각은 준공된지 얼마 안 되는 점이다.
정면에 걸려있는 현판에는 "선지종활
수덕사''라고 되어있고 밑에 층에는 '덕숭총림''이라고
되어 있다. 선종의 총찰 수덕사나 일주문에
붙어 있는 ''동방제일선원''이나 같은
맥락에서 선원 위주의 가람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 씌여진 현판들은
큰스님이신 원담스님에 필체라고 한다.
여러 단의 축대를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면
넓은 광장이 있고 또 높은 축대가 있다.
이 축대를 계단으로 올라가면 대웅전 앞에
광장이 있는데 대웅전 앞에 건물에 자리가
또 하나 있다. 이 곳에 선방이었다고 하는데
오래전에 조사된 책자에 보면 이 선방만이
있었고 먼저 보았던 누각은 자료가 없다.
이 선방이 대훙전에 정면에 있었던 집이었는데
누각 겸 선방으로 사용되던 집이었던 것
같다. 원래는 이 선방의 건물이 법당 앞에
누각을 대신하여 있었으나 이 선방을 제거하고
큰 누각
을
축대 밑에 확장하여 신축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웅전 앞마당서 보면 건물의 배치나
심지어 고목의 배치까지 완전한 좌우 대칭으로
되어 있다. 좌우에 청련당 백련당이 똑같은
크기에 ㄷ자집으로 지어져 있고 법당 앞에
좌우에 석탑이 같은 위치에 끼 가서 있고
또 좌우에 범종각과 법고각이 똑같은 규모,똑같은
모양에 집이 참은 위치에 서있는데 특히
놀라운 것은 범종각과 법고각에 앞에 수령이
몇 백년은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똑같은
위치, 똑같은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임 신기하다. 집이야 그렇게 지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느티나무는
몇 백년을 두고 자란 나무이기 때문에
신기하다는 것이다. 특히 주변에 산세(山勢)를
보면 좌우대칭을 더 실감나게 볼 수가
있다. 대웅전이 있는 뒷산에 능선이 제일
높고 좌우로 능선이 아늑하게 삼태기 모양으로
흐르는데 좌우에 산세나 숲이 우기잔 모습도
거의 흡사하게 생겨서 자연의 대칭과 인위의
대칭이 조화를 이루어 장관을 이
룬고
있다. 이 수덕사 자체가 꼭 삼태기 안에
폭 쌓여 있는 그런 아늑한 정경이다. 대웅전의
기단은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전형적인
기단이다, 높은 기단을 쌓아 올릴 때는
그냥 직선으로 쌓지 않고 퇴물림라고 해서
안쪽으로 약간씩 물려 쌓는 방법인데 특히
삼국시대로 부
티
고려시대에 주로 많이 활용하던 고대 축조
방법이다. 계단 밑으로 터널처럼 구멍이
뚫려 있다. 계단 밑에 공간을 둔 것은
구름다리라는 개념으로 상상을 해본다,
부처님이 계시는 천상으로 올라간다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분명한
의도가 있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대웅전의 구조적인 특성은 고려시대에
건물 중에서도 유일하게 백제계열에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데에 유의하여야 한다.
백제의 예술적인 감각은 유연하고 원만한
곡선에 있다고 상상하면 된다. 특히 건물
측면의 축조 구성은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양식인데 첫눈에 들어오는 것이 맨
바깥 기둥 머리에서 부티 맨 가운데 꼭대기의
종도 리까지 연결되는 부재가 계속해서
동글동글하게 연결되어 올랐기는 것이
보인다. 이것이 이 집에 특징적인,'구조이다.
이렇게 동글동글하게 휘어져 올라가는
부재를 '우미량''이라고한다, 이러한 곡선미가
백제계열의 유연한 곡선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문짝의 형상이 특이한데 이만한 넓이라고
하면 문짝을 4짝은 달아야 하지만 여기서는
시원시원하게 널찍한 문짝을 3짝만 달았다,
그것도 문살을 보면 단아하면서도 간결한
빗살문으로 했나 그렇게 요란해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미해 보이지도 않는 소박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백제의 기질이다.
상대건축에서는 맛배짐에 주심포로 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되어 있고 특히
기둥머리 위에 얹혀진 네모난 주도나 소로가
삼국시대로 부터 고려시대 까지의 양식이
조선조 양식과는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주도 밑의 면이 안으로 휘어지는 경사진
곡편(曲面)으로 된다. 이런 주두를 보고
굽주두라고 하는데 이 굽주두와 급소로
되어 있는 건물은 반드시 상대건축으로
보면 틀림이 없다.
내부에
크게 지나가는 대들보의 단면(斷面)도
꼭 항아리 모양으로 다듬는 것이 고려시대
건물에 특징이 된다, 기와막새에 숯막
새는 아주 정원형이 되는 막새기와를 썼고
암막새도 납작한 평행 곡선 막새를 사용한
것도 삼국시대부터 고려조 까치에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 된다. 우리 나라의
목조건물에서 수덕사 대웅전은 유일하게
9량집으로 되어 있다. 측면에서 볼 때에
도리의 개수를 세어서 그 도리의 숫자대로
3량집,5량집, 7량집, 9량집 이라고 분류를
하는데 우리 나라의 건물 중에 9량집은
수덕사의 대웅전이 유일하다. 실제로 보면
도리가 11개 이지만 기둥 위에 있는 도리
까지만 헤아리고 기둥 밖에 있는 도리는
구 초의 구성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제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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