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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도량 45호

   차 례

이달의 법문/ 참다운 수행의 길/고정일 큰스님
정각도량/청춘보상(靑春報償)/최법혜 스님
특집 1/인도 성지 부처님 나라 참배기/조용길
특집 2/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백원기
경전의 세계/유마경의 眞髓/강혜원 스님
불자탐방/김송주 보살님 (정각원 피아노 반주)/편집부
불심의 창/부처님 곁으로/최용근
신행상담/"화두"/장계환 스님
일주문/자비과 파괴/이법산 스님

 


이달의 법문
참다운 수행의 길/고정일 큰스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바르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아집이 들어가지 않은 앎을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는 내가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모든 앎은 내가 아는 것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사실이 아닌 것이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간과해서 알지못하는 사실은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아는 지식 이외에 다른 무수한지 식이 있음을 알지만, 실제로 어떤 문제에 맞닥트리면 자신의 아집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서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집이란 무시이래(無始以來)로 우리에게 훈습되어져 왔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로써는 아집을 떨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집을 벗어 던져버려 미망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불교의 근본 문제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해탈의 길입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부처님께서는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文)을 설하신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불자님들께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룰 수 있는 방편들을 말하고자 합니다.

먼저 경전을 봄에 거울로 보듯이 해야 합니다.거울이란 자신을 비추어 그 잘못된 부분들을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경전도 이와 같아서 항상 경전의 가르침에 자신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본심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은 다음 '좌선(坐禪)'을 해야 합니다. 좌선이야 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 가장 바른 지름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좌선' 이란 무엇인가? 좌선의 '좌' 란생각이 부동한 것이며, '선'이란 잡아서 쓰는 것입니다. 즉, 좌선이란 생각이 부동한 것을 잡아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 불자들이 하는 좌선을보면 참다운 좌선이라고 하기보다는 단지 '참선'이라고 할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러한마음으로는 제아무리 팔만대장경을 외운다고 하더라도 깨달음에 이루지는 못할 것입니다.그러나 참다운 좌선을 한다면, 즉 경전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바로 잡고, 그런 다음에 좌선을 행한다면 경전이 만화책을 읽는 것처럼 쉽게 이해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편은 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모습인 자리이타(自利利他)중에서 自利. 즉 자기 자신을 위해서 수양을 주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利他는무엇인가? 이것은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을 利他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불교의 가장 일반적인 실천덕목인 보시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 같이 어려운 시절에 타인을 위해서 작은 정성을 나누는 것도 좋은 보시의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들이 있어야 수행도 되는 것입니다. 나만 잘 돼야지 하는 이기심이 있다면 백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도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요즘은 IMF라서 그런지 가족과 부부 그리고 친구간에도 서로 정이 없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고 하는데, 여러 불자님들은 이래서는 안됩니다. 불자님들도 지금 이런 상황에 있거나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내가 몇 가지 당부하고자 합니다.

첫째, 아무런 보상 없이 베푸십시오 무엇을 바라고 베푸는 것은 베푼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베풀고나서도 그 바라는 것 때문에 개운한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이것이 번뇌입니다.

둘째,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존경하십시오셋째, 상대방의 뜻을 헤아려 거기에 맞추려고 노력하십시오. 만일 이렇게만 한다면 서로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할 일이 없을 겁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재꺼'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모든 일에 내가 먼저 개입된다면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하지못합니다. 나를 버리고 행동할 줄 알 때, 진정한 행동과 앎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를 '과학 사회'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과학의 발달이 눈부시게 발달했다는 증거겠지요. 그러나 과학이라고 해서 다 아는 것은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과학의 노예가 되어 마음을 닦는 것에 소홀하고 있습니다 이 과학기술이라는 것도 부처님 경전에 비교해 보면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과 같습니다. 과학이 풀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몇천 년 전의 불교 경전이 해법이 되어 풀기도 합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사상입니까.

불교의 가르침은 지행(知行) 일치를 무엇보다도 강조합니다. 경을 통해서 참다운 부처님의 말씀을 배웠다면 그것을 반드시 실천하고,이러한 마음 자세에서 좌선을 한다면 그 성취는 대단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불교적인 삶을 우리는 육바라밀(六 羅密)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육 바라밀을 잘 닦는 것이 곧 진정한 불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끝으로 한 마디만 더 하고자 합니다. '재가깨닫고 너희를 헤아려 보니 모두 나와 같이 똑같은 지혜와 덕성을 갖추고 있구나''라고 부처님이 말씀한 것 저럼 우리는 본래 불성(佛牲)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우리의 미혹된 생각, 즉 무지로 인해서 우리가 본래불성(本來佛'性)임을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불자님들 지금이라도 경전을 거울 삼아 읽고, 마음을 정심(淨,已,)하게 갖는다면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은 그렇게 아득하지 만은 않을 겁니다. 모두 정진하십시오.

 

 


정각도량
청춘보상(靑春報償)/ 최법혜 스님/ 경주캠퍼스 정각원장

기묘년 새해의 봄을 맞이 하였다. 정원에 매화꽃이 필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춘春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다.오늘의 약속을 모두 다음 날로 미루고 조용히 혼자 앉아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온 그것은 무엇일까. 아니,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초등학교 어린 시설 담임선생님이 전근을 가시게 되어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남기신 ''벽돌 한 개의 역할을 하라''는 말씀은 지금도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하나의 교훈이요, 의지처다.출가를 하고, 수계를 하고, 강원(현승가대학)에서 경론을 수학 하고, 그리고 다시 종비(宗費)로 교육을 받으면서 수많은 금구성언(金口聖言)들은 모두가 나를 지탱하게 해 주는 의지처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의지처가 있고 또 그 길을 지금까지 걸어오고 있기 때문에 나는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에 행복하고,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 있다.

국러나 사람은 아직도 번뇌와 망상이 남아 있는 중생이기 때문일까. 가끔은 그 의지처를 잊어 버리고 때때로 허전하고 고독을 느끼고, 그리고 마음이 흔들리는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바로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내 자신의 모습이다. 아마 지혜 있는 분들은 나의 이러한 됨됨이에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몇 해 전 신도님들과 거제도 해금강으로 방생을 갔었다. 돌아오는 길에 장기자랑을 하며 즐겁게 놀았다. 마침 사회를 보는 신도님이 동승한 젊은 거사님에게 노래 한 곡을 신청을 했다.그 거사님은 현철씨의 「청춘을 돌려다오」를 목청을 높여 불렀다. 얼마나 열심히 불렀던지 차 안이 박수 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항상 존경하는 마음으로 마음에 새겨두고 있는 「현장(玄奬)법사(600-664)」의 구법전(求法傳)이 떠올랐다. 아래에 인용하는 일본의 송원철명(松原哲明)씨의 「현장삼장법사」의 글은 나의 연약한 구도(求道)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서기 600년, 현장법사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그가 흰옷을 입고 서쪽으로 가는 꿈을 꾸었다. '아가야. 너는 어디에가느냐' 라고 묻자 '불법(佛法)을 구하러 인도에 갑니다'라고 대답했다. 꿈은실현되었다. AD.629년 현장은 오직 혼자서 장안(長安)을 출발했다.

당시의 서역(西域)은 치안 상태가 나빠 국외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현장은 그것을 무시하고 몰래 중국을 빠져나갔다. 어떻게 해서라도 인도에 가서 석존(釋尊)의 성적(聖跡)을 방문하고 불법을 연모하여 구하고자 하였다.

만리 장성 외 연안에 실크로드(SilkRoad)를 서쪽으로 향했다. 사막을 넘고 천산(天山)산맥을 넘고, 그리고 세계의지봉인 파일고원을 정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설산(雪山)을 넘는 모습을 『대당자은사삼장법사전 (大唐慈恩寺三藏法師전傳)』에서 인용해 보았다.

「'산길 7일 만에 커다란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그 산은 중첩되어 위험한 봉우리가 줄을 지어 복잡하게 서 있었다.어떤 것은 평평하고 어떤 것은 우뚝 솟아 산의 모습은 일정하지 않고 오르기 어려운 것은 필설(筆舌)로 다하기 어렵다'

 

선년(先年)의 거울, 나(松原哲明)도 역시 현장이 걸었던 실크로드를 출발했다. 중국 신 강성의 <울무치>였다.

2월이었기에 몹시 추웠다. 영하 30도였다. 그렇다면 현장은 훨씬 추위 속을 여행을 했을 것이다. 현장이 다시 중국에 돌아 왔을 때는 45세였다. 현장은 젊어서부터 깨닫고, 일생 단 한번의 인생이기 때문에 50세 이전에 하나의 커다란 위업을 완성했던 것일까. 그래서 나는 <울무치>에서 생각했다. 실크로드는 상인(商人)들의 길이다. 상인들이 당나귀와 낙타의 등에 실은 물건은 인간의논에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 「물건」을팔기 위하여 그들은 이 길을 유지했다.그 똑같은 길을 현장은 걸었다. 현장이 당나귀와 낙타의 등에 실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현대인에 있어서는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인간의논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쓴 경전이었다. 현장은 그 「마음(心)」을 중국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생명을 걸었던것이다. 현장은 64세에 입멸(入滅)했다.그는 입으로 미륵여래의 명호를 소리내어 외웠다.

「 '나무미륵여래(南無彌勒如來)의 회상에 있는 여러 대중들이여, 원하옵는것은 목숨을 버려 끝났을 때 반드시 그 가운데에 새로운 탄생이 있다는 것을'」꿈을 이루고 우리에게 수많은 교재(敎材)를 남기고 간 현장법사, 그의 역 경서를 한 권이라도 펴서 읽는 것은 그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된다.

나는 이 글을 여러 번 읽었다. 아니 마음이 쓸쓸할 때, 이 글을 생각하고 읽고 나면 현장법사가 경전(經典)을 받들고 귀국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비록 인생살이가 한이 많아 되돌려 받고싶은 아까운 내 청춘이지만, 그러나 또한 보람 있고 값지게 살려고 노력한 인생살이였다면 받혀진 내 청춘은 보상이야니라 보살의 보시(布施)일 것이다.하물며 출가한 사문(沙門)의 길은 내 청춘을 다 바칠 수행(修行)과 전법(傳法)의 길만이 있을지언정 어떻게 후회와 보상을 요구하는 청춘이 있겠는가.세상의 요소 요소에서 말없이 보이지않게 젊음을 희생하여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많은 사람들의 고마움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집 1
「인도 성지 부처님 나라 참배기」
 조용길 / 불교문화대학 교수

부처님의 나라인 인도의 여행은 12년만에 다시 이루어졌다 부처님의 위대성을 생각해 본다면 매년 성지(聖地)를 참배해야 되겠지만 그것은 평소의 경전 읽기와 부처님 사상 전법(傳法)을 통해 위안 받을 수밖에 없다 출가 스님네와 재가 신도가 함께 하는 사부 대중의 성지 참배는 일생에 자주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옛날에는 태국을 거쳐 네팔로 들어가 히말라야를 넘고 룸비니로 가는 행로였지만 이번에는 서울에서 직항로가 열려 인도 수도 델리에 안착했다 인구 십 억의 대 수도는 실천만이라니 중국과 더불어 인구 대국이다 그러나 인도는 붓다대국이며, 사상대국이며, 명상 대국이며, 성자 대국이며, 해탈 대국이며, 미래 대국이다 모든 인류의 진정한 고향은 눈 덮인 만년 설산 영산인 히말라야이며, 대평원이 전개된 끝없이 드넓은 유채밭이며, 사탕수수밭이며, 평화로움이 깃든 대자연이며, 정신적 경이로움이 깃든 장소 그 곳이 아니겠는 버오 늘날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우울증적 조울증 적 증상과,탐욕에 정신없고 신경성 질환이 날로 더하고, 어리석은 마음들이 치성하여, 사회적, 정치적, 혼돈의 와중에 있는 상태는 진정한 고향을 잃어버린 것이기도 하리라 부처님 당시의 차별적이고 계급적이며 제사 만능주의의 시대에 부처님은 중생 사회의 고통과 고난을 덜어 주고 구제하기 위하여 구도 행각 하시었고 인류 중생 구제에 빛을 던져 주신 것이다,깨달음의 세계란 인식의 전환과 삶의 체험을 통해 잘, 잘못을 선별해가는 것이지 고정된 의식이나 고정된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광활한 인도는 고정된 세계가 아니고 고정된 인식이 필요없는 해탈(解脫)의 세계였다 맨발에 구두에 샌들에 비행기에 마차에 우마에 자전거에 수레에, 머리에 이고 짐이 어느 것 하나 형식에 얽매여 있지 않은 허허실실(虛虛實實)의 세계였다 다른 세계는 문명(文明)이다 문화(文化)다신사다숙녀다 하며 가식과 허식의 형식적인 허탈의 세계가 진한 실실허허(實實虛虛)이지만 인도 붓다의 나라, 붓다의 세계는 모든 가식과 형식과 허례를 벗어 던진 정토(淨土)의 해탈 경계였다

 소위 문명과 문화의 잣대가 잘못되어 있음이 동서양에 점차 인식되어 가고 있는 이때 붓다의 나라는 시사한 바가 많았다 룸비니 동산의 감회는 카빌라국(석가국)과 코오리아(마야왕비국) 사이의 아름다운 부처님 탄생 동산은 아쇼카왕의 우뚝 선 기념탑과 목욕지 연못과 티벳스님과신도들의 부처님 성도 기도참배 행렬로 장관이었고, 급고독장자가 제 타태자의 동산을 부처님께 기증하게 한 제타바나 동산인 기원 정사에는 폴란드 비구니 스님의 단아한 좌선의 수행 모습이 인상 깊었다 부처님의 모습과 자태를 연상시키는 장면이었고, 여기에도 연 못지 와 수행하던 장소들이 붉은 벽돌 주춧돌로 남아 있었다.

주로 버스로 달리고 시골 같은 한적한 곳에 자리한 호텔, 우리네 여인숙 같은 곳이지만, 휴식을 취한 후 여정을 계속했다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같이 하고 독송하여 일심으로 부처님의 행적을 추적해 가는 것이다 룸비니에서 쿠시나가르의열반 대답을 참배하고 바라나시 부처님 성도 후5비구에게 처음으로 깨달음의 세계를 밝혀 주신 초전법륜지(初傳法輪地) 녹야원 대답을 참배하였다 바라나시에서 새벽에 갠지스강의 일출을 보고화장지 가트를 둘러보고 부처님 성도지인 붓다 가야로 이동하여 보리수 아래의 금강보좌에서 기도참배하고 부처님의 행적을 기렸다, 라지기르로 이동하여 영취산 독수리 날로는 산정에서 영산회상을 생각하며 염불기도하였다 다음에는 죽림 정사를 방문하고, 빔비사라왕의 감옥 터를 둘러보고,나란다대학 터를 보고 2만 명의 학생과 수도자가공 부했다는 장관을 연상해 보았다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 나란다박물관, 마투라박물관 등 4군데를 참배하고 인도가 현재에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불상 등 불교 유적지를 중심으로 세계화 할 수 있음을 실감했다. 파투나 지역에서 그동안 함께 밤낮을 달렸던 현지 기사와 조수를 석별의 정으로 떠나보내고 기차로 둔달리로 향했다둔덜라역에서 새로운 버스로 아고라로 이동하여 타지마할로 향했다 아름다운 백색 대리석의 거대한 건축물은 훌륭했지만 사상과 정신세계가 더욱 더 고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느끼게 했다. 델리에서 고국의 비행기를 타고 귀로에 올랐지만 인생무상의 세계에서, 1천 년의 시대를 뒤로하고 또 새로운 1천 년의 시대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인도 부처님 성지순례는 남다르게 감회가 로혼은것이었다

'나'를 영원한 영혼인양 고집하는 무지한 삶들이 있는 한 끊임 없는 다툼과 고립과 갈등의 세계는 지속적으로 윤회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나'라는 현상은 결코 부인될 수는 없다 이생에서 저생으로, 저 생에서 이생으로 변화하며 흘러가는 '영혼의 흐름', 즉 '의식의 흐름'의 연속성은 바로 윤회며, 인(因)이며, 연(緣)이며, 업(業)이며, 과(果)인 것으로 결코 허무주의적이거나 숙명적이거나 운명적인 것은 아닌 것이며, 이러한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절대적인 '나란' 실체를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① 상처받기 쉽고 ② 스스로의 삶에 책임이 있으며 ③ 더욱이나 성숙할 가능성이 있는 '상대적인 현상으로서의 자아(自我)의 존재'인 불성(佛'性)을 인정하고 있다.

부처님은 세 가지 몸(三身)을 가진 우주적인 존재이시다 첫째는 완전한 지혜를 상징하는 진리의 몸(法身), 이 법신(法身)을 궁극적인 실재라 할 수 있다. 깨달은 사람은 이 진리의 몸안에서 온 우주와 자신이 하나임을 체험한다 그 다음에 부처님의 지극한 자비를 상징하는 두 몸이 있다 둘째는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순수한 기쁨을 누리는 몸인 보신(報身)이 그것이며,셋째는 뭇 중생을 그 들 본래의 모습인 자유로인도하는 나토는 몸인 화신(化身)이 그것이다.깨달은 몸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나 순수한 기쁨을 누리는, 육체 뒤에 있는 일종의 신비한 정신적인 몸이다. 이 몸은 무한하며, 부처님은 이 몸을 통해 만물 속에 리쁨을전달하시는 것이다. 나토는 몸은 부처님의 무한한 기쁨의 몸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음을 의식하지못하고 있는 무지한 중생들을 돕기 위해, 기쁨의 몸이 육체적인 모습을 띄고 나타나는 몸이다 진리의 몸이신 법신(法身), 깨달으신 몸인 보신(報身), 다투시는 몸인 화신(化身)은 환생의 몸인 튈쿠(티벳어)로 긍정적인 사유를 통해 부정적인 인생의 요소들로부터 해방되며 해탈(解脫)할수 있는 길이다.

부처님의 나라 인도는 미래의 희망 대국이며,21세기 문명, 문화의 주역인 정신문화(Mind culture)인 불교(Baddhism)의 종주국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순례 여행에 동참한 법우(法友)들에게 불 보살의 가호가 항상 하기를 기원드린다. 마인드 해피 (Mind Happy)!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특집 2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백원기/전산원교수, 영문학

1999년 1월 22일 오후 4시에 정각원장님이신법산스님을 단장으로 한 우리 성지 순례단은 인도의 델 리 곳항에 도착하자, ''나마스테「'( '당신을 존경합니다'라는 의미의 인사말)라고 합장하며 인사한다 어디를 가나 '인간의 숲'이다 이들이 빚어내는 특유의 체취, 차량의 소음,색의 홍수, 아우성이 우리를 맞는다 원래 2i일저녁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인도의 짙은 안개 탓으로 22일 오전 10시 서울을 출발한 것이다 하루의 일정이 거의 취소된 탓에 덴리의 국립박물관만을 들렀다 하지만 관람 시간이 거의 마감되어 현지 가이드 미스터 럭키의 간청으로 수위가 닫힌 문을 열어 주어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할 수 있었다. 인도 역사의 뿌리인 인더스 문명에서 중세와 현대에 이르는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인도 문명의 보고인 박물관을 이렇거] 보고 나오니 몹시 아쉬웠다

뉴 델리의 현대적인 시가지와 무굴제국시대의 분 위가 아직도 짙게 남아 있는 올도 델리를지나며 새로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다 멕시코 도시 다음으로 매연이 심각하다는 델 리 물결처럼 밀려드는 인파, 그들의 떠들썩함, 그리고 빈부의 차가 빚은 형상들이 거침없이 눈에 들어 온다 걸치고 다니는 쇼올로 플랜 홈 바닥의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그 쇼올을 깔고 앉는 수행자들 그들에게는 '처처가 안락궁' 인 듯 하다. 50년대에 만든 것 같은 기차 안, 우중충한 전등불과 거미줄이 매달린 천장, 담요도 없이 새우잠을 자고 나니 새벽녘이다 차창 밖을 내다 보니 노란 유채꽃과 파란 사탕수수 들녘이 이슬을 머금고 손짓한다 허물어져 가는 초옥에서 나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용변을 본다. 이들의 삶이 너무나 자연에 가깝다

1월 23일 아침 9시. 곤다 역에 도착하니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윗옷을 벗으시고 수돗가인 줄 알고 가셨던 법산스님께서 ''화장실이구만'' 하시며 돌아오시자 다들 웃으신다, 취소된 기차 좌석에 대한 환불을 받기 위해 가이드기한 시간 이상 애쓰는 탓에 출발이 늦었다 차선이 없는 도로를 시속 30~40km로 40분을 달려발랑푸르의 파씩 호텔에 들려 '아점'을 해결했다. 호텔이라야 시골의 싸구려 여관 수준이다.파리가 날리고 기름 때묻은 주방과 그릇, 수저들이다 하지만 보살님들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반찬에다 쌀 발을 맛있게 먹고 커피도 마셨다 "I.S.D" "S.T.D''에서 집에 전화를 하니 반가운 목소리다

''원 루피! 원 루피! 하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쉬라바스티의 기원 정사로 가는 길목에는 아름드리 망고나무 가로수가 일직선으로 줄지어있다 제철이 아니라 꿈 속에도 먹고 싶을 만큼 맛있다는 인도 과일의 대명사인 망고를 먹지못하고 가이드가 주는 망고 주스로 대신했다. 사탕수숫대를 가득 실은 '가타' 외 화물차, 우마차, 경륜차, 물건을 머리에 이고 가는 여인들,적벽돌 공장들, 한두 사원, 펌프가 자주 눈에 띈다

 현재 사헤트로 불리는 기원정사 입구에는World Buddhist Foundation Branch Office 라는 스리랑카 불교 승원이 있다 급고독장자라 불린코살라 왕국의 상인 수다 타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마가다 왕국 파사닉왕의 태자 제 타의 요구대로 정사를 세울 땅에 황금을 깔겠다는 열의를 보여 지은 것이 기원정사(Jetavana Vihar)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24번의 우기를 보내며 설법을 하셨다는 설법 좌대와 후에 세워진 승원과 스투파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두 아름 이상의 보리수가 눈에 들어 온다 이 보리수는 아난존자가 심은 보리수 묘목이 자란 것으로 엄청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스냅으로 열심히 담을 수밖에 없다 많은 녹지에 햇빛이 내리고, 여기 저기 수행자들이 앉아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Losang Peldzon이라는 티벳 불교의 스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

오후4시 무렵 이 곳을 떠나 룸비니로 향했다 광활한 대지에 펼쳐진 초원과 숲을 안고 여정은 계속된다 어둠이 깔리는 속에 하나 둘씩 등불이 밝혀진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끝 없는 인간의 행렬이 이어진다 '경적을 울리시오'라는 영문 글씨를 새긴 화물차가 마주 오는 차들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지나간다 차를 세워 일을 보고 난 후, 하늘을 쳐다 보니 깨끗한 별들이 쏟아지고 있다 개 짓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고향의 품안 그대로이다

1월 24일 5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일찍 부처님 탄생지로 향했다 여명의 시계(視界) 속에 살아나는 생명들이 우리를 반긴다 2600여년 전 부처님께서 이 땅의 중생을 제도하고잖아 투신 곳으로 우리는 간다 부처님께서 고행의결설을 보여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쩌면 미혹의 세계에서 영원히 갈 길 몰라 헤메 일지도 모른다 어미소와 송아지가 그 옆에 함께 잠을 잔 사람들과 기지개를 켜고, 소 젖을 짜서 들고 가는 부자(父子)가 잘못 든 길을 안내해준다. '대성 석가사'라는 간판이 반갑게 시야에 들어 온다. 지평선 저 멀리서 아침의 습한 대지위로 심홍색의 태양이 솟아 오르고, 공원 입구에는 이른 아침 부티 아이를 안은 여인과 노파들이 구걸한다

 넓은 공원 한가운데에 마야부인께서 잡고싣달타 태자를 출산했다는 커다란 무우수 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개개의 생명의 존엄함을 강조하시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위친 탄생 설화가 새롭게 마음 속에 각인된다 이 무 우수나무를 중심으로 사방에 드리운 줄에 네팔인들의 소원을 담아 메달아 놓은 오색의 깃발이 화려하다 불자들이 오체투지를 하거나 열심히 염불하고 좌선을 한다 무우수 앞에는 마야 부인께서 태자를 출산하기 전에 목욕을 했다는 '성스러운 못' (sacred Pond)이 있다 아쇼카왕의 돌기둥 앞에서 예불 문과 반야심경을 봉 독했다 동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했다 마야 당에 들어서니 한 노인이 미동도 하지 않고 석상처럼 앉아있다 안에 모셔진 싣달타와 마야산에 예배한 후 공원을 나오다 꼬마 상인에게 못 이겨 보리수 염주를 몇 개 샀다. 싸게 샀다고 생각했으나 더 싸게 살 수도 있었다

 룸비니 동산을 떠나 네팔 국경을 넘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다시 인도로 들어와 카필라바스투로 가는 도중 간신히 넣은 오일에 불순물이 함유되어 기사가 차량을 손 보아야 했다. 라하이 카필 바스투 호텔에서 점심을 해먹고 이곳에서 4km 떨어진 카필라바스투에 도착하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다비식에서 나온 사리를 8등분하여 이곳에 그 하나를 모셨으니,적멸보궁 중의 적멸보궁이다 하지만 부처님 당시의 모습이 흔적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싣달타 태자가 유년시절 뛰놀았던 곳이며, 어머니를 잃은 슬퓨에 잠겨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고 혼자 앉아 있었던 나무 그늘은 없다. 싣달타 태자가 히말라야의 영봉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그 위에 어머님의 모습을 떠 올리며 눈물 짓던 모습도 그려 본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이다 햇볕이 강해 땀이 흐른다. 이곳에서 148km 떨어진 쿠시나가르로 향하는 길목 중간 중간에서 나무 기둥을 걸쳐 놓고 통행세를 요구한다 파씩 니와스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 6시 피곤했다 온수도 잘 나오지 않는다 벨 보이에게 1달러를 주니 뜨거운 물을 가져다 주었다 그 물을 냉수와 섞어 샤워를 했다. 저녁에 먹은 라면이고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신다.

1월 25일 오늘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호텔 정원에 나가니 새벽별들이 그 날의 깨달음을 축복하듯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다 아침을 먹고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사라 쌍수 아래로 갔다 열반당(Nirvana Temple) 앞에는 10여년 전에 심은 것으로 보이는 두 그루의 보리수가 있다 열반 당에 들어가 예불을 올리고 기도를 하다 춘다의 마지막 공양을 받고 격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이곳으로 오셔 두 그루의 보리수 아래 누우시고 다시는 일어 나시지 못한 부처님께서 비통해 하는 제자들에게 ''스스로를 의지하고 또한 법을 의지하라''라고 하신 말씀이 나직이 들려오는 듯하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열반의 모습은 금빛에 감싸야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부처님 발에 입을 맞추는 순례자가 있어 촬영하려고하니 ''10 루피''를 요구한다 열반 당을 나오니 높이 솟은 사라 쌍수 아래에 한 노파가 앉아 이름 모를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이곳에서 1krn 떨어진 부처님의 나비 유적지인 라마바르(Ramabhar Stupa)를 들르다 들녘에 솟아있는적벽돌로 쌓은 이 무덤을 영국인이 수 차례에 걸쳐 발굴을 시도했으나 천둥이 치고 비가 오는 바람에 중단했다고 한다. 이곳 옆에는 부처님께서 최후로 목욕을 하셨다는 히라냐바티(Hiranyavati) 강이 흐르고 있다 시공을 초월한 부처님이 생사의 본질을 분별하지 못하는 중생에게 무상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유한의 존재로서 죽음을 맞이했음을 일러 주신 이곳을 떠나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녹야원)로 출발한 시각이 아침 7시 30분 여기서 그 곳까지 약280km다

노란 유채꽃 사이로 볼 일도 보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녹야원에 도착하니 오후 4시경 이곳의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된 5세기의 작품으로 설법하는 부처님의 아주 원만하신 상호와아쇼카왕의 돌기둥 정상의 사자 상은 감동적이었다. 푸른 나무로 둘러 싸인 넓은 잔디밭 가운데 유달리 눈에 띄는 커다란 불탑이 바로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다.

6세기에 건조된 것으로 일부 훼손되긴 했으나 외양은 단아하게 남아 있다 이 탑의 주위를 돌며 예불을 드렸다 또한 많은 스님들의 수행흔적을 말해 주는 승원의 터가 빨간 벽돌로 남아 있고, 아쇼카왕이 세웠다는 돌기둥도 기단부분만을 남기고 있다 보드 가야에서 성도하시고, 그 깨달음을 가슴에 간직하고 험한 먼 길을 걸어 이곳에 오셔 5비구에게 최초로 설(說)하신 가르침이 가슴에 다가온다

1월 26일 새벽에 일어나 갠지스강으로 갔다.릭샤의 벨이 울려 퍼지는 어둠 속에 고대 도시 바라나시가 조용히 눈을 뜬다. 한두 성지 중의성 지로 시 봐 신의 성도(聖都) 바라나시는 갠지스강을 빼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히말라야의 물을 모은 성스러운 갠지스강 힌두 신앙에 따르면 이 성스러운 강물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업장이 소멸되고, 이 곳에 죽어 그 재를 강에 흘러 보내면 윤회에서 벗어난다 한다. 그래서인지 차가운 새벽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트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강의 기슭을 따라 늘어선 가트를 내려가니 모든 인간의 영욕을 초월한 갠지스강이 유유히 소리없이 흐르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참으로 보기 어려운 갠지스강의 일출을 보았다 강 건너 저쪽 수면으로 어제 진 심홍색 해가 어둠의 인간세계에 빛을 주기 위해 솟아 오른다 그 장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러 곳의 가트에서 화장의 불길과 연기가 피어 오른다 타오르는 시체, 음식과 배설물의냄새, 부자와 빈자, 성자와 속인, 삶과 죽음의존돈, 그 모든 것을 포용하며 탁류의 대하는 흐르고 있다. 죽은 자의 재를 뿌리는 바로 옆에서 빨래,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기도하며, 그 물로 밥을 짓는다. 그래도 전염되지 않는 것은 신앙의 힘인 듯 하다 빼곡이 늘어선 건물과사원,그리고 가트가 있는 이쪽에서 보면, 강 건너 저쪽의 기슭은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하고 깨끗한 피안으로 보인다. 호텔로 돌아오는 공기가 차다. 바라나시를 떠나 보드 가야로 향한 시각은 오전 8시 30분 가는 길목은 너무나 평화롭다 이 길은 인도의 25개주 중 가장 가난한주 비하르 주에 속한다. 쌓아 놓은 벼 짚단과 벽에 붙여 놓은 소똥이 향수를 자아낸다 오후 4시20분경 보드 가야에 도착하니 팥죽 색 옷을 입은 리벳 불교 스님들과 신도들의 물결이 넘친다.

약2만여 명 정도가 오래 전 부티 이곳에 천막촌을 치고 기도하며 부처님의 성도를 축제분위기로 고조시켜 왔다 한다 이는 오늘날의 티벳 불교의 봉과 위상을 잘 말해 준다. 아울러 달라이 라마의 설법으로 이 행사를 마감한다는 그들은 한국불교도의 성도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역설해 준다 태국.중국.일본의 절이 위용을 자랑하나 한국 절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한국 절은 스님들이 상주를 하지 않아 유지가 잘 되지 않는다고 들었을 때는 씁쓸했다 고고학 박물관을 관람한 후 마하보디사원으로 갔다. 찰거머리처럼 달라 붙는 상인 아이들에게 지친 남해 노스님께서 호통을 치신다 마하보디사원을 들어서니 수많은 순례자들의 족적이 뚜렷하다. 아쇼카왕이 기원전 3세기에 세우고 그 후 거듭된 개축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52m의 마하보디대탑 안의 법당에 모셔진 금색의 불상이 살아숨쉬는 듯 미소를 짓고 있다. 향을 사르고 삼배를 홀리다. 2층 법당에 들려 예불을 드리고 참선을 하다

예불에 동참한 영국의 사라 브리워양과 사진을 찍고 연락하기로 하고 헤어지다 그녀는 이곳에서 일주일 더 머문다고 한다. 아래로 내려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금강보좌에 예배를 드리다. 금강보좌 위에는 몇 아름의 보리수가 큰 가지를 펼치고 있다. 시공을 뛰어 넘어 지금도 부처님께서 명상에 잠기고 있는 듯 하다. 어둠이 내리고 있다. 격심한 고행으로 쇠약해져 가는 부처님께 유미죽을 공양한 마을 처녀 수자타. 오늘밤은 그녀의 이름을 딴 수자라호텔에 머물다

1월 27일. 꿈결에 놀라 일어나니 새벽 4시다.첫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고향에서 듣던 그소리다. 선친, 오랫동안 찾지 못한 덕기스님, 그리고 고 3이 되는 소 현이가 꿈에 보였다 세수를 하고 '광명진언'을 30분간 외다. 6시 20분에호텔을 떠나 라지기르에 가는 도중 잠시 쉬는 사이 분당보살님이 예쁜 패랭이 꽃을 꺾어 주셔 모자에 꽂으니 멋있어 보인다 창 밖 황갈색의 비하르의 풍경이 삭막하다. 험한 바위산들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라지기르에 도착하니 10시경. 이곳은 5대산으로 둘러 싸인 분지로, 부처님 당시의 마가다국의 수도였던 라지기르(왕사성)가 있는 곳이다

 영 축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설치된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부처님이 만년에 오랫동안 머무시며 법화경을 설한 바위정산의 탁 트인 조망이 참으로 좋다. 시공을 초월해 지금도 부처님의 설법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정상의 설법 대에서 예불을 올리다 신발의 먼지를 털어놓은 노파에게 몇 루 피 주니 좋아한다. 설법대옆으로 독수리 부리 모양의 바위가 파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그래서 이 산을 영어로eagle peak이라고 함을 알겠다. 멀리 라트나기리(다보산) 정상에 하얀 탑이 보이는데, 이는 일본 사원에서 세운 불탑으로 '세계평화의 탑'이라 한다

 정상 아래 북쪽에 위치한 사리 불 존지와 아나 존 자가 기거하며 수도했다는 석굴에 들려 향을 사르고 지혜와 다운의 불자가 되길 염원하다 하산길에 빔비사라왕이 말년에 아들 아쟈타샤트루에게 반역을 당해 갇혀 굶어 죽는 최후를 맞은 빔 비사라 감옥 터를 들르다. 이곳에서 능인선원의 신도님들을 다시 만나다. 모두 들 반가운 얼굴로 맞아 하며 인사한다. 이어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불교교단의 최초 사원이 된 죽림 정사를 찾았다

 초입의 아치형의 문 안에 키가 큰 대나무숲이 바람결에 서걱이고 있다 인도의 대나무는 한 그루씩 고루 퍼져 자라는 우리의 대나무와는 달리 무더기를 이루고 있고, 그 사이로 통로가 나 있는 것이 독특하다. 대숲을 지나 연못이나타났는데, 그것이 컬런 다카 연못이다. 대숲 아래서 밤새 보살님들이 정성스럽게 쌀 김밥을 꿀맛처럼 맛있게 먹다.

죽림정사 유적지를 나와 사리 불 존지와 목련 존 자의 출생지의 나란다 대학을 찾았다. 이 대학은 5세기에 세워져 12세기 이슬람교도들에게 파괴 당하기 전까지 불교학위 총본산으로, 7세기 현장법사가 이곳에 유학할 당시 i만여 명의 학승에 교수가 2천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당시로는 세계 최대의 대학이었음이 분명하다 옛날 그 대학의 위용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부분 나로 향하다

파트나역의 플랫폼에서 수많은 모기의 공습을 받았다. 모기향을 피우고 벽돌을 깔고 앉아 열차시간을 기다렸다. 12시간 걸려 다음날 1월28일 아침에 둔 덜라 역에 도착하다. 아기라 의타지 마 할을 관람하고 델리로 오는 도중에 마르라 박물관에 들려 간다라 미술의 진수를 맛보았다 델리에 오니 저녁이다. 서울행 비행기가 예정대로 운항한다니 무척 반갑다.

1월 29일 한반도에 하얗게 내린 눈이 너무반갑다. 공항에 도착하니 아내와 소현이가 배웅을 나와 있다 아내의 적극적인 배려가 없었으면 이번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는 순례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법산스님, 홍원장님 내외분, 조교수님 내외분, 덕산노스님, 화랑스님, 성묵스님,정거사님, 식사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챙겨주신 세검정, 분당, 사당동, 구기동 보살님, 끝까지 잘 가이드 해 준 김과장, 인도의 럭키군,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었다 이 인연의 끈이 다음 순례지로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경전의 세계
유마경의 眞髓/강혜원 스님/불교대학 교수

 

不二法門

『유마경』은 대승불교 경전 중 대승불교의 근본원리를 아주 선명하고 쉬운 형태로 나타낸경전이다. 그 근본 원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번뇌즉보리' 라고 할 수 있다. 이 가르침을 『유마경』에서는 不二法門이라고 한다.

'불이법문'은 대립적 관계에 놓인 둘을 하나로 볼 수 있는 고차원적인 입장의 세계관이다. 『유마경』의 전체 사상은 이 불어의 세계관으로 일관한다, '번뇌즉보리'의 불어를 철학자나 불교학자가 설명하면 관념적으로 들릴지도모른다. 그것은 형이상학이 되고 말장난에 빠질 우려가 충분한 화두이다. 그런데 『유마경』에서는 이것을 현실적인 드라마에서 화제를 찾고 그것을 매개로 하여 고차원적인 세계관을 설하고 있다.

선과 악, 생사와 해탈, 번뇌와 보리의 대립을 넘어선 불어의 입장에 서서 세계를 보고 있는 유만은 어떠한 생활방식과 수행의 방법을 설할까? 그것은 바로 '불가사의 해탈' 이다. 속박에 대립하는 해탈은 참된 해탈이 아니며 속박이곤 해탈이라고 보는 것을 의미한다. 우마의 '해탈관'은 속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속박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며, 근거가 없다는것이며, 속박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이다,

인도의 불교학자 용수(BC250-150)는 ''유념이 있으면 마구니의 그물에 떨어진다. 무념이 되면 거기서 바로 나오는 것이 된다.''라고 했다 유념에 대한 무념이라고 하는 것은 '無心'과 같고 어떠한 것에도 걸림이 없다는 것이다.마구니의 그물이라는 것은 '막다른 것'을 말한다 유아에게는 막다른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속박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다. 이같은 불이법문' 이나 '불가사의 해탈'을 우마가 주인공이 되어 설파한 것이 r유마경』이며, 상식을 완전히 부정한 자유무애한 투철한 세계관을 설한 경전이다.

 

경전의 성립과 그 관계성

유마경의 해제

『유마경』은 대승불교 초기에 엮어진 경전이다. 원명은 'Vimalakirti-nirdesa-sutra' 이다 산스끄리트 원전은 전해지지 않지만 『반야경』에서고양된 공의 교리가 근저를 이루고 용수의 『대지도론』에도 상당히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기 150년경에 성립된 경전으로 본다. 또한 경전의 교리 내용을 다른 경들과 비교 검토해봄으로써 초기의 대승경전임을 알 수 있다『반야경』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한역 연대로 보아 『팔천송반야경』의 古本이 2세기 중반에 존재했으므로 『유마경』과 교섭이 있을 것으로추측되며, 그리고 이 두 경에는 묘희국 아촉불(무동여래)이 다 같이 나오는데 둘 중 어느 한쪽이 근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화엄경」의 十地의 이름도 볼 수 없고 『이만오천송반야경』에 나오는 傘乞慧智의 十地說과의 연관성도 희박한 것으로 보아 『유마경』은 『반야경』의古層과 관계가 깊고 따라서 대승경전 중에서도 오래된 그룹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경전을 설하는 방식에 있어서 『유마경』과 가까운 것으로 『대보적경』이 있다. 이 경도 『승만경』과 같이 성문 연각의 二乘보다 보살을 우위로 설하지만 보살의 殊陜,陵을 설하는 일단 중에 ''수미산 정도의 我見이라도 空見의증산만보다 좋다'' ''연꽃은 고원의 육지에 피지않고 진흙의 습지에서 핀다''고 하는 비유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고, 이 경보다 가까운 경이 『수능엄삼매경』이다. 삼매의 힘을 얻은'魔界行不汚' 라는 보살의 활약은 우마와 닮았고, 그 법문도 '얽힘도 해탈도 없는 법문'이라고 부른다. 그외 '십대제자 비판'이나 '천녀의변신'설도 그 유사성을 볼 수 있다.

 

경의 주제와 구성

구마라집 번역의 『유마힐소설경전의 제 명의의미는 '유마경의 설한 경'이다. 유마힐이란'비말라' 외 昔寫이다. 현장은 이를 '無名構' 이라 하고, 길장은 '淨名'이라고 하였듯이 '더러움이 없다는 명성을 얻은 분' 이라는 뜻이다. 또한 이 경전은 경 제목 이외에 별도로 '불가사의 해탈'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이와 같이 유마거사의 활약은 이 경전의 특색이 되며 좀더 치밀하게 대승사상 한 편을 실제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이 경전의 구성은 14품(장)으로 되어 있고序分은 제1-제4, 正宗分은 제5-제10, 北洹分은 제11-14품이다. 이 중 제5에서 제10장이이 경전의 주요부분으로 '유마힐 소설'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각 장의 주요 부분을 개략적으로 소개해 본다. 제1 불국품은 부처님의 처소가 보여지고 부처님은 많幻개의 일산을 공양받고 그것을 하나로 만들고 그 가운데 청정한 불국토의 모습을 보인다. 부처님은 '마음이 깨끗하면 불국토도 깨끗하다' 고 말씀하신다. 제2 방편품에서는 우마가 병든 모습을 보이고 영원한 몸 佛身을 얻기 위해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해 발심을 해야 함을 알게 한다. 제3 제자품에서는 십대 제자들은 우마의 문병을 꺼려 하면서 예전에 유아에게 힐난당했던 내용을 차례로 밝힌다. 제4 보살품에서 문수가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우마를 방문하고 여기서부터 경의 본뜻에 들어간다.

제5 문수사리문질품에서 문수와 우마의 문답이 전개되고 병에 대한 이유를 유만은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나도 또한 아프다. 일체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나의 병도 낫는다''라고 한다.보리 전 법륜 열반을 보이는 것이 보살행이라고한다. 제6 부사의 해탈품에서는 보살의 '불가사의 해탈'에 대한 것을 설한다. 제7 관중생품에서 空.幼化와 같은 중생에 대해 자비행(사무량심)의 실천에 대한 의의를 논한다. 제8 불 도품에서는 문수는 유아에게 역설적인 해답을 듬는다. 즉, 非道가 佛道라는 것, 無明 愛등 62견해가 여태가 되는 종자라고 한다. 제9 입불이법문품에서는 보살들이 不二에 대해 각각 전해를밝힌다.

다만 유만은 昇然으로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제10 향적불품에서 모든 문답이 끝난다. 보살행품에서는 다시 부처님 도량에 우마와 문수가 함께 나타나고, 부처님은 유마에게 여래관을 물으시고 사리불의 물음에 유만은 아촉불의 묘희세계에서 왔음을 밝히시고 그 세계의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제12 견아촉불품의내용이다 제13 법공양품에서는 부처님이 제석천에게 이 경전의 수지독송에 대한 이익을 보이시고 마지막 14 촉루품에서 미륵에게 이 경전을 부축하고 아난다에게 소지할 것을 이르시는 것으로 마친다.

 

 


불자탐방
김송주 보살님 (정각원 피아노 반주)/편집부

보현행원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보현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수승하신공덕을 찬탄하고 나서 모든 보살과 선제동자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이래의 공덕은 가사 시방에 계시는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불 가설불가 설불 미진수 겁을 지내면서 계속하여 말씀하시더라도 다 말씀하지 못하느니라.만약 이러한 공덕 문을 성취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열 가지 넓고 큰 행원을 닦아야 하나니, 열 가지라 함은 무엇인가.첫째는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요, 둘째는 부처님을 찬탄하는것이요, 셋째는 널리 공양하는 것이요, 넷째는 입장을 참회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남이 짓는 공덕을 기뻐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요,일곱째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요, 아홉째는 항상 중생을 순서 하는 것이요, 열째는 지은바 모든 공력을 널리 회향하는 것이니라.』

보현보살님 행 원력을 마음에 지니고 실천하는 김종주 보살님을 만났다. 정각원 교직원 법회와 행사 때마다 악보집을 나타나는 보살님의 법명은 불음심(佛昔心)이다. 피아노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그 인연으로 부처님 전에서 찬불가를 연주할 수 있으니, 어울리는 법명이 아닐 수 없다.

정각원과의 인연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절에 자주 다녔었지만 처음에는 절에 다니는 것이 단순한 휴식차원의 방문이었다. 그 이후 가까이서 알고 지낸 분이 정각원 가족법회를 소개했다. 그 때가 93년이었다.

''무엇보다 불교 의식은 장엄한 것이었고, 리듬이 없는 의식을 따르다 보니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피아노 반주를 곁들이게 되면 훨씬 더 부드러워질 듯했고, 그 자리에 모인 분들이 찬불가를 배우고 싶어하는 바람도 있고 해서 그린인연으로 반주를 맡게 되었습니다.''

안심사 '가릉빈가' 합창단 피아노 반주 또한 이 인연으로 시작했었다. 많은 발표회를 통해서 신심을 다지기도 했었지만,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 발표회 부처님 오신 날, 음성으로 공양 올리는 장엄의식이었다.

지금은 4, 5년간 도맡았던 '가릉빈가'합창단의 피아노 반주는 1, 2년간 쉬기로했다. 그동안은 또 다른 피아노 연주의 경험으로 다시 봉사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비록 한 달에 한번 정도 하는 피아노반주지만, 김종주 보살님의 반 주곡 선정의 꼼꼼함은 남다르다.

''법회 진행상 필요한 반주여서 참석하는 사람들은 예사로 듣고 지나칠 수 있지만, 저는 나름대로 불교방송을 통해 소개되는 찬불가나, 시중의 찬불가 녹음 테이프를 유심히 듣고 정각원 법회 반주 곡을 별도로 선정합니다. 크게 부각되는 일은아니지만,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해사봉사라는 말조차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할 줄 아는 것이 피아노 치는 것이어서 부처님 전에 찬불가를 반주할 수 있는 것이 저에게 큰북이 아닌가생각합니다."

처음에 불교를 접하고서는 백팔참회문을 보면서 절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비록 꾸준히 하지는 못했지만, 그 신행 생활을 통해서 더욱 신심이 굳건해졌던 것은 사실이다.

''절하는 공덕이라면 마음이 산란하고약하고, 탐심.진심.치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절을 계속하면 나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저처럼 약한 마음을 가진 이는 튼튼하게 될 것이라고 성각합니다. 산란하던 마음이 가라앉고 침착해지므로 주의력이 성기고 따라서 지혜가 열리는 것 같습니다.''

그뿐인가? 또 참회가 되고 기도가 되므로 입장이 소멸되고 액 난 역시 사라질것이다. 맹목적 충동으로 탐 진치심을 일으켜 죄악의 길로 빠지려는 우리의 마음을 항복 받으려면 절하는 실행이 제일 아닌가.

''아직도 법당 밖에서 서성대는 이들이 있다면 부처님 전에 자신을 낮추는 절부터 시도해 보았으면 합니다. 저 또한 불교는 미지의 세계였고, 아직도 헤매는 것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불교쪽에서도 적극적인 방법으로 포교하고 부처님에 귀의하고자 하는 이들도 적극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면 저와 같이 막연하게 생각했던 많은 이들이 부처님께 귀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불교를 어렵게만 생각하고 서성대는 이들에게 권하는 김종주 보살님의 포교 방법론이다.

경전에 나오는 상상의 새, 가릉빈가(kalavika)는 정토만다라 등에 인두조신(人頭鳥身)에 용꼬리가 달린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자태가 매우 아름답고, 소리 또한 묘하고 극락에 깃들인다 하여 극락조라 부르기도 한다.

머리와 팔은 사람의 형상을 하였고 몸체에는 비늘이 있다. 머리에는 새의 깃털이 달린 화관을 쓰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새처럼 부처님 전에 바치는 곡 중에서 보살님이 제일 좋아하는 찬불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성안내는 그 얼굴은 참다운 공양구요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올해에는 처음 108배를 하던 초심자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부처님 법에 의지하는 진실한 불자가 되기를 서원해 본다.개인적으로 발원한 소원성취와 더불어 정각원 피아노 반주를 통해서 작은 힘이나마 불교 포교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김종주 보살님의 소박한 서원이다.

 

 


불심의 창
부처님 곁으로/최용근 / 경주캠퍼스 총무과

 

귀의삼보하옵고,

오늘의 현대 사회는 물질 문명과 과학문명의 발달로 질 높은 생활과 그것을 바탕으로 행복을 추구해 가면서 살아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망각하기 쉬운 것은 본질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본상의 상실에 있는 것이다.

황금만능주의의 세속적 가치에 참'나'를 찾는 것을 잃어버리고,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 속에서 과연 나 자신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 삶이 되고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인가?

물질만능, 과학 만능이 판을 치고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와 더불어 종교 또한 다원종교시대로 가세해서 인간의 근원을 묻는 우리는 가치혼돈을 느끼지 않을 수없다.

이처럼 물질적인 면은 편리하고 풍요로워졌지만,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한 깊은 절망감 속에서 나는 '무엇이 진짜 불교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고,정법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진정 배우고싶었다.

평소 나 자신은 신심 있고 돈독한 불자라고 자부하면서도 불교 교리에 대해 누가 물으면 선뜻 대답해 주지 못하는 부분이 참 많았다.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에 대하여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솟아 나고, 내 삶의 과제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이후 대구 영남불교대학과 인연 공덕을 맺은 뒤 이론적으로 불교를 공부하다보니, 새삼 무지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막연하게만 생각해 오던 불교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처님과의 인연이라면 어렸을 적부터 그냥 절이 좋아 산사를 찾아 다니며, 법당에서 향을 올리고 절하며 염불 기도 올리는 것에 불과했는데, 새로이 불교 교리를 접하고 보니 그동안 나 자신이 무지와 무명 속에서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아쉬움이 더해갔다.

하지만 여기에 낙담하지 않고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배워서 넓고 큰 보살 행과 깊고 미묘한 진리를 배워서 실천하는 불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늦은감이 있었지만 올바른 진리를 공부하기 위해서 기초 교리 과정에 입문하여 결석하지 않고, 전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그동안 동료 법무들의 격려도 많이 받았다.

경주에서 대구까지 통근을 한다는 것이 시간과 거리상의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인연 있는 법무들의 많은 도움이 있어 결석하지 않고 대학원 과정까지 이어 가게됨에 고마움과 보람을 느꼈다.

진실되이 살아야 한다는 나 자신의 주제가 더욱 분명해짐은 물론 불교 본연의 정신을 바르게 이해하고 포교해야겠다는 각오로 배움에 힘쓰고 있다. 정법을 모르고 살면서 어떻게 진리를 안다고 말할 수있겠는가?

부처님의 자비로운 행을 본받는데 우리 중생들은 눈과 귀를 돌리고 입을 열어야겠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 개유불성 (一切衆生 皆有佛性)''이라고 설하신바 지극한 신심으로 수행 정진하면 누구든지 성불할 수 있다고 했다.

알 수 있는 진리의 맛을 외면한다면 스스로가 그 인연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된다.

작년 11월 포교사 고시에 응시해보라는 학장님과 법무들의 뜻에 힘 입어 응시했다. 나 스스로의 실력이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합격의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배우고 정진해야겠다는 각오는 남달랐다. 종무 소로 뜻밖에 도착한 합격통지서를 보았을 때, 부처님의 기피에 감사하고 그저 관세음보살만 연거푸외쳤다. 학창 시설부터 몇 가지 자격증취득을 한 적도 있었지만, 포교사 고시에 합격한 이 기분은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않았다.

대개 불교라고 하면 소원이나 빌고 복을 비는 기복 신앙이며, 스님들만 수행하는 것으로 불교의 편견 된 부분만 보는 일반인이 많은 것을 사실이다. 더욱이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불자들이 많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부처님의 진리에 귀의하여 정진하면서 이 세상 모든 법계가 인연 있는 불자들로 넘쳐나기를 서원하면서 포교 활동에 힘쓰고자 한다. 내가 발원하는 신심 있는불자, 지적인 불자, 행동하는 불자, 성취하는 불자로서 미약하지만 항상 이웃과 함께 할 것이다.

화엄경에서 보현보살은 선재동자에게말하고 있듯이, 과거 한량없는 미진 겁을 내려오면서 보살 행을 닦아 오로지 보리를 구하고, 한량없는 부처님을 친견하여보리 심을 닦고, 일체 세계에서 한량없는시회(施會)를 베풀어 일체 소유를 아끼지않고 베풀어 한결같이 일체 종지를 구하였고, 마침내 본성법신(本性法身).청정색신(淸淨色身)을 체득하고, 일체 살 매에서 자재를 얻어 널리 일체 세계에 시현하고 모든 법문에 들어 그 덕을 가히 생각할 수 없는 보살이다.

보현보살의 원력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부처님과의 인연으로 살아가는 우리 또한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늘 부처님을 생각하고 대자대비한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온 우주가 밝은 빛으로 가득 차게 될것이다.

나 자신부터 원력 보살이 되어 어려운 시대에 부처님의 진리와 함께 항상 깨어있는 불자가 되기를 서원해 본다.

그리고 자비로운 부처님의 기피가 가가호호 전해지길 두 손 모아 합장한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 아본사석 가모니불

불기 2543년 2월

동국문수회 부회장 최용근(원융) 합장

 

 


신행상담
"화두"/장계환 스님 / 불교대학 교수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수련대회에 다녀왔다니 참으로 값진 체험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질문하신 참선의 방법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임제종의 간화선(看話禪)이고, 또 하나는 조동종의 묵조선(墨照禪)입니다.전자는 화두(話頭)를 참 구하여 수행하는 것이고, 후자는 지관타좌(只管打坐),즉 일체의 사랑분별을 끊고 묵묵히 좌선만을 하는 수행 방법을 가리킵니다.우리 나라의 선원에서는 임제종의 산맥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에 간 화선이 널리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 진군은 화두가 어렵다고 했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입니다. 오직 선원에서만 3, 40년을 지내면서 정진해 오신 대덕스님들도 깨치지 못하고 임종을 맞으시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선원(禪院)의 문턱도 밟아 보지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단지 재주로 배우고 눈썰미로 익히는 그런 공부와는 처음부터 출발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화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사람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관문(關門)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화두를 드는 데는 출가자나 재가 자의 구별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얼마만큼 열심히 수행을 하느냐에 달려 있겠지요.

화두란, 말 이전에 있는 본질에 대한 의구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상식적인 말과 논리로써 해석하려고 들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임제스님의 할(喝)이나 덕산스님의 방(捧)을 흉내내는 것은 더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따라서 질문하신 <임제록>의 어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식선이나 도덕적인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되지요. 그러나 임제스님의 본 뜻은 ''모든 기성의 권위와 사고를 전부 쉬어 버려라''는데 있을 겁니다. 즉, 부처님과 조사들에게 얽매이다 보면 오히려 자기의 자성(自,性)마저도 잃어버리고 만다는 의미, 즉 마음의 자유와 자발성을 강조한 것이지요.

그리고 화두를 참 구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입니다. ''큰스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 화두를 내렸을까?'' ''왜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가?''하고 끝없는 의구심을 솟구치게 하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화두를 막론하고 그 이면에는 ''너라면 뭐라면 하겠느냐'' 혹은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대기(對機)의 질문이 내포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이 러한수행을 거치고 난 후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하는 자신감 있는 해답, 즉 자기 자신만의 답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화두가 가지고 있는 좌선의 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주문
자비과 파괴/이법산 스님 / 서울캠퍼스 정각원장

지난 1월 22일부터 28일까지 나는 인도에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지금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가장 뚜렷한 영상은 마 투라 박물관에서 보았던 코 없는 불상, 머리 없는 불상, 머리만 남아있는 불상의 모습들이다. 코는 누가, 머리는 어디로 갔으며, 어째서 몸뚱이만 덩그렇게 남아 있는 것인가. 누가 이토록 무자비하게 파괴하였을까?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난 나라 인도가 가난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불교를 믿으면 가난하게 된다는 말로써 불교를 모멸하는 배타적 종교인에 대하여, 또 그 강변에 쉽게 대적할 만한 해답을 찾지못하고 오늘날까지 살아왔으나, 이번 인도 여행을 통해 현장을 확인하면서 그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인도에서의 불교는 한때 매우 흥왕하였고, 불가사의한 문화유산을 탄생시켰으며, 심오한 철학적 이론도 전개하였지만, 결국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패망해버린 원인에 대해 나는 아고라의 타지마할과 파투라 박물관을 보고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인도는 세계 5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로서 갠지스 강을 원류로 하는 5000년의길고 오묘한 문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신비의 나라다. 인도의 종교와 철학은 신앙의 논리화된 철학과 철학의 실천화된 신앙이 둘로 나설 수 없는 상관관계를 이루면서 서양의 어느 철학이나 종교와도 견줄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으니, 이러한 인도의 종교.철학의 기반은 무저항이라는 자비 정신에 있다고볼 수 있다.

인도의 모든 종교.철학에서의 첫째 계명은 불살생, 즉 생명 존중사상이다 단순히 인간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생명 중심의 종교인 것이다. 보살 행과 자비 정신은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사는 상의상존 실천 철학이다. 인도인들은 이렇듯이 긴 역사를 통해 많은 이민족들을 받아들여 함께 살아 왔고, 그들의 문화까지도 함께 발전시켜왔다. 인도에 동화된 모든 민족이나 종교는 이질적인 것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인도의 풍토와 정신 문화에 합류되면서 인도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문화를 창출하였다

 무엇보다 유목민족이었던 아리안족 또한 인도 북부로부터 넘어와 드라비디안족과 섞이는 과정 중에 어떠한 마찰도 일으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베다'라는 인도 고대 종교.철학을 탄생시켰으며, 이어서 바라문교와 힌두교 의인도 전통 종교로 계승.발전시키는 역사를 통해 특징 있는 문화유산을 창출해 왔다. 그러나 인도의 전통 종교가 말살퇴고전통 문화가 파괴되면서 그 후로부터 인도는 문화 선진국에서 후진국의 끝자락으로 밀려나게 되었으니 그 원인은 이민족의 침입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종교인 이슬람의 수용 때문이었다. 인도는 모든 이질적인 것들을 자비로 포용하고인 도적인 방식으로 수용하여 인도의 새로운 문화 발전에 기여하게 해왔지만,이슬람만은 포용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한 채 반대로 그에 의해 침해 당하고파 괘 당하고 말았다

 자연스레 스며들던 이슬람교도들이 이질적 집단으로 뭉치고 세력을 확장하여 12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부분적으로 이슬람 왕국을 건립하다가, 16세기초반에 이르러 드디어 이슬람 왕조인 무갈 제국이 인도를 통일하고 지배하게되었으니, 그 후로 인도의 힌두교, 불교 등 무저항'비폭력적 종교는 거의 파괴되었으며, 시크교나 자이나교 등의 군소교단들도 극심한 탄압에 저항하면서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무갈 왕조는 타지마할이라는 이슬람식 왕비의 무덤을 만들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힐 만큼 훌륭한 건축물 유산을 남겨놓기는 했으나, 19세기 초반 영국의 식민통치에 인도의 주권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되는 치욕을당하였다.

영국의 식민통치 150여 년은 그래도잊혀졌던 힌두교 정신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는 하였지만, 1945년 독립한 이후 인도의 현실을 바라보면 이교도에 의해 파괴되고 식민 통치에 시달린 가난의 현장만이 오늘날까지 방치되고 있을 뿐이다.

인도는 이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각적인 방안들을 써보았지만 파키스탄 . 아프가니스탄 . 방글라데시 등의 국토 분열을 일으켰을 뿐, 아직도 갈등과 투쟁의 요소는 상존하고 있다.타지마할이라는 유적이 인도의 상징이 되고 세계의 이목을 끌어 관광 수입을 올릴 수 있을지라도, 만약 불교와 힌두교의 전통 문화와 유적을 파괴 없이 그대로 보존만이라도 했더라면 과연 그것들이 타지마할만 못했을 것이며, 인도의 존재와 위상은 과연 어떠할까...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종교적 갈등으로 인한 이처럼 무참한 파괴의 현장을 보면서 나는 생각하였다.천사와 성자를 운운하며 이상주의적 패러다이스를 꿈꾸면서 인간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갈등과 파괴의비윤리, 비도덕, 비인륜적 행위들을 '성(聖)스럽다'는 말로 포장해버리는 인간의 심사는 참으로 개탄스럽지 않을 수없는 것이다.

중국의 임제선사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이라 했다. 즉,어느 곳에서나 자기의 주인 노릇을 할 때 참되어진다는 말이다. 자기 노릇, 자신은 과연 참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지, 나와 내 가정, 우리 학교, 우리 사회,우리 나라의 주체 이념을 지키며 나날이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가를 참회하고 살펴보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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